◎ 삿포로(札幌 さっぽろ) 구도청 청사
삿포로(札幌)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도청소재지로 삿포로역에서 도보로 5분 안팎의 거리에 있다. 1871년 현대식으로 도시계획을 한데 이어 1886년에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구도청 청사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라 하여 아카렌가라 부르며, 명치시대의 뛰어난 서양식 건물 중 하나이므로 1969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다.
입구 안내실 유인물에 따르면, 지을 때 쓰인 벽돌은 250만 개나 되고, 건축 자재의 대부분은 홋카이도산이라 한다.
이 건물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의 회당 건물을 본떠서 미국식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지었으며, 오늘날까지 삿포로시를 상징하고 있다.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청사 내부를 둘러보고, 홋카이도의 연혁 문헌과 역대 장관 지사의 집무 기념관, 홋카이도 역사갤러리, 관광정보 코너 등도 견학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눈길을 끈 것은 “북방영토회귀 기성동맹”에서 펴낸 《북방영토를 생각하며》라는 84쪽 분량의 제20회 고교생 변론대회 보고서였다. 그들의 실지 회복의 집념이 이렇게까지 강한 줄은 미처 몰랐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본이기에, 북방영토 회귀 주장도 억지로 내세우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순리에 맞는 것인 지 아리송해진다.
북해고교 1년생 고오타의 주장을 보면, ①반환운동의 중심이 원도민의 문제로만 생각해 온 것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바뀌어야 하고 ②원도민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보다 원주민과 전문가, 일반인도 참여시켜 이 문제를 배우고 자기 의견을 내세울 수 있게 해야 하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등으로 정기적인 의견교환을 하게 할 것 ③ 학교 같은 곳에서 이 문제를 배우게 하여 일본 모두의 문제로 여기고 해결해 나가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북방영토는 현재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4개 섬인데, 북해도(北海道) 지도 바로 위에 있는 다음 섬들이다.
①에토로후 토오(擇捉島 : えとろふとう) ②쿠나시리 토오(國後島 : くなしりとう) ③시코탄 토오(色丹島 : しこたんとう) ④하보마이 쇼토오(齒舞諸島 : はぼまいしょとう)등이다.
일본의 북방영토 문제는 1855년 “러 ․ 일수호조약”에 따라 국경선이 정해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수호조약 4년 뒤인 1859년(安政6년)러시아 제독 무라비요프가 군함 7척을 끌고 시나가와 항에 들어와 가라후토(사할린)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돌아간 사실이 있다가, 1875년(明治8년) 가라후토와 치사마(쿠릴열도) 교환조약으로 일본에서 가라후토를 포기했다.
1905년(明治38년)러 ․ 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로 북위 50도 이남은 다시 일본령이 되었지만, 1945년(昭和20년) 8월9일. 구소련군이 일 ․ 소중립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여 남 카라후토를 다시 점령하여 현재에 이른다.
북방영토문제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와의 그간의 관계는 힘을 바탕으로한 외교, 지하자원 개발 투자 유혹 등 협상과 배신이 되풀이되었지만, 그래도 일본의 대러시아 투자의욕은 꺾이지 않고 있어, 러시아 언론에서 “카미카제 투자의 일본”이라고 야유까지 한다는 것이다.
◎ 삿포로 맥주공장 견학
안내원은 버스 안에서 북해도의 볼거리를 설명하면서, 2월5일∼12일 삿포로 전역에서 펼쳐지는 눈 축제(눈 마쯔리: 雪祭リ)와 10월 초에 여는 삿포로 마라톤 대회 등이 볼만하지만, 지금은 6월인지라 눈 마쯔리를 볼 수 없으니 오오도리 공원을 지나면서 차창에서나 관람하며 맥주전시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마쯔리란 일본에서 ‘祭リ’로 표기하는데, 보통 축제를 뜻하지만 특별한 경우 긴자(神社)에서 지내는 제사와 관련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버스가 붉은 벽돌로 지은 맥주공장 입구에 닿자마자 공장 여 안내원이 공장 안으로 안내하더니 창설자와 연혁, 맥주의 제조 과정, 시설과 종업원수, 유통과정 등 소상히 설명해 준다. 둥근 모자를 쓴 키 작은, 그러나 옹골차게 보이는 안내원은 톤을 높여가면서도 천천히 그리고 또렷한 말로 설명해 주기 때문에 일본어에 서툰 필자도 웬만한 것은 알아들을 수 있어 좋았다.
삿포로 맥주의 품질이 좋은 것은 우선 이 지역의 물이 좋고, 호프 또한 좋을 뿐 아니라 기술과 시설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한다.
1876년도에 생산을 하기 시작한 이 공장은 맥주 자체, 그리고 용기에서도 시행착오와 변화를 여러 번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훌륭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행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궁금한 많은 것을 연달아 물어 본다.
인류가 맥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B.C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맥주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서, 보리로 만든 빵을 잘게 부수어 물을 부어 자연 발효시키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로마와 유럽에 전파되어 수도원의 수도사들을 중심하여 발전했는데, 현재처럼 호프를 넣은 방식은 중세부터라 한다.
맥주는 제조과정의 마지막 열처리 여부에 따라, 열처리를 하면 효모가 죽어 병맥주, 열처리를 하지 않으면 효모가 살아남아 계속 발효하는 생맥주가 된다는 것이다.
또 맥주는 몇 천CC까지 마실 수 있지만, 물은 그렇지 못한 이유를 묻는 회원이 있었다.
맥주는 위장에서부터 흡수가 되고, 탄산이 들어있어 소화를 돕는 일도 한다고 한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미리 마련된 시음장으로 옮겨가 한 컵 마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자리에서는 벌써 “카!”한국에서 소주마시는 양 소리를 내지 않는가. 우리도 질세라 “건배!”소리를 높이며 가져간 과자를 마른안주 삼아 마시니 피로감이 순간 사라진다.
◎ 유행의 첨단을 걷는 동경의 긴자(銀座 :きんざ)
북해도 순방 세 번째날은 동경을 보는 일정이다. NH 066기로 치도세를 떠난지 1시간 30분만에 하네다 공항에 닿은 것이다.
곧바로 버스를 타고 옮겨간 곳은 긴자(銀座:きんざ), 이곳은 동경에 있는 최첨단 일류 브랜드점과 고품격 백화점이 많아 마치 명동거리 비슷한 느낌이다. 세련미와 유행의 첨단을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을 만하다.
일행 중에는 간단한 선물 한두 가지를 사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가 여기저기 둘러보며 눈요기만 하거나, 유행하는 옷차림의 여인, 아니면 미니 옷차림의 젊은 여인들 다리만 신기한 듯 바라볼 뿐이다.
긴자는 많은 시민들의 매력적인 존재로, 긴자선, 마루노우치선 같은 많은 도쿄의 거미줄 같은 교통망이 이어져 사람을 끌어들이기 쉬우므로 빌딩숲 사이사이를 활보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곳에는 케익이나 과자 판매점 등 먹거리도 많고, 연인과 함께 가는 영화관과 화랑, 그리고 즐길 만한 밤문화까지 있다지만,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는 해당이 없는 일들이며 또한 그럴 만한 여유도 없다.
◎ 동경 신도청 타워 전망대
동경 신주쿠에 있는 ‘신도청 타워 전망대’는 동경 여행에서 필수 코스로 정하여 관람케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동경은 찾아오는 외국 손님들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듯 싶다.
전망대에 오르면 동경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먼저 아랫층 입구에서 경비원으로부터 간단한 휴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예부터 해오던 관행인지, 테러를 막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나 손님에게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 전망대는 우리 63빌딩에 비할 수 없이 낮지만, 45층에 240m 높이이기 때문에, 전망대에 오르니 장관을 이루는 빌딩숲과 밤거리를 거의 한눈으로 볼 수 있다.
전망대는 두 곳에서 오를 수 있다. 도청 건물 왼쪽에는 남쪽 타워 전망대의 엘리베이터, 오른쪽에는 북쪽 타워 전망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는 초고속이어서 1층에서 45층까지 55초면 오를 수 있고, 그곳에는 기념품 가게와 스넥코너 등이 있어 이용하기 편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곳에서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여행사마다 이 전망대에서 후지산이 보이는 날에는 반드시 복권을 사야 한다고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오른 때는 저녁이므로 야경만을 보아야 했다. 이곳 야경은 날씨 탓인지 몰라도, 서울 남산타워에서 보는 한강과 서울시가지 야경이 오히려 멋진 듯하다.
첫댓글 일본인의 주변 영토에 대한 수복(회귀)의지가 대단한 것을 지켜 보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국가관' 또한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하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항상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