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2015 11 5(앙콜 공연), 대학로 엘림홀(옛 동성교회 별관) ㄱ
연출: 류성. 음악감독 이정아. 제작 극단 경험과상상 제자백가.
1946년 화순탄광사건을 다룬 뮤지컬 연극이다.
화순 탄광 광부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음악극이다. 이 극은 해방 전에 일제에 수탈당하는 상황과 식민지 지배의 억압을, 그리고 해방과 더불어 자치권을 쟁취하려는 인민위원회를 만드는 모습을, 그리고 다음해 1946년 8월 15일 광주대회에 참석하려는 노력(이 원정과정에서 사상자발생)에서 인민의식의 발현을, 미군정에 의한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에서(3명 사망 33명, 미군정보고서) 인민의 덕목의 실현화를, 회오리 상승의 확장처럼, 또는 변증법적 발전을 보여준다. - 광부들의 저항은 다음해 9월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는데 미군정은 이해 색출하여 처형한 인원 49명으로 미군정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실질적 책임자는 미군 피크(Peake) 대령이었다[상당히 높다 내가 알기로 도 단위 고문관이 중령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 극은 팜플렛 쪽지에서 스텐딩 뮤지컬이라 하였다. 움직이며 노래하기보다 서서 노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상황에 따른 분장과 몸짓과 표정에서 특히 분노와 열기 등을 잘 소화해서 표현하였고, 상황에 맞는 노래의 대사는 더욱더 잘 표현되었다. 합창인데도 한쪽 편에서 높은 음으로 가면 뒤에서 낮은 음으로 따라 가고 또는 오른 편에서 노래를 부르면 왼편에서 중첩적 노래를 하는 식으로, 어쩌면 날줄과 씨줄을 엮는 방식으로 한 편의 천을 짜는 듯이 잘 엮었다. - 상하좌우의 중첩은 의식의 다양체를 잘 표현했다.
극은 처음에 일제의 억압에 대한 항거, 그리고 해방으로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며 자치로서 자주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기쁨, 이것도 잠시 점령군이 자치를 인정하지 않고 명령에 따르라는데 대한 저항, 그리고 점점 고양되는 의식의 상향으로 항거는 점점도 조직화를 이룬다. 미군정은 이를 여러 차례 그리고 점점 더 강도 높은 진압으로 매번 사상자는 늘어난다. 분노는 점점 더 타올라 한판의 봉기를 기획하지만 미군과 일제 잔재 경찰에 의해 진압된다. 여기서 진압되기 전에는 가사들이 간단하게 반복하지만 노래는 매우 확고하게 전달되게 반복으로 점점 더 고양된다. 마지막에서 진압의 결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산으로, 그리고 극 속에 동네 꼬마들도 동네를 떠나 현실화(이상)의 길을 찾아 같은 곳으로 간다
이 뮤지컬은 일반 연극처럼 배우의 움직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서서 노래하지만 간단한 몸짓과 옷매무새 등만으로도 관객들에 그들의 뜨거운 가슴, 삶에서 애정, 새로운 조직화, 미군정에 대한 저항과 봉기 등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구 1946년 10월 항쟁에도, 이 화순과 같은 시기로, 미군정이 양곡 배급의 중단이 있었다. 화순에서도 똑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방식이었다고 하니, 미군정은 이미 긴 식민지 지배계획을 위해 준비한 것 같이 보여진다. 지배하기 위해 일정하게 항거자들을 제거하는 방식이 상대에게 저항과 봉기를 유도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를 진압하는데 앞잡이로 일제 때 경찰과 행정조직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승만이 일제 잔재를 이용해서 반민특위를 제거했던 방식이 작은 도시 순천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이런 조작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통치 방식일 것이다. 극도 말한다. 그들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며, 역사적으로도 그들은 식민지 지배를 공고히 하려고 일제잔재들을 다시 동원했다. - 김창룡을 보라.
극은 레미제라블을 연상하는 것도 제법 있다. 인민위원회가 미군정에 인정받지 못하고 해산당할 때 광부들의 대오 뒤에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도 그러하고. 광부들이 미군정의 군대들이 들어올 때 그들에 맞서서 군중의 항거를 보여주는 것도 그러하며, 꼬마들의 새총을 들고 항거하는 것은 바리케이트를 넘어서 총알을 주우러 가는 가브로쉬 혁명 참여 장면과 도 같다.
하나의 백미가 있다. 극단 배우 부부의 아들의 참여이다. 5개월 되었다고 하는데, 배우들이 노래 부르며 박수치면 어머니 품에 안긴 최연소 배우도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칠 줄도 알고, 장면이 좀 고양되면 아기도 고양된 몸짓을, 어머니가 안는 방식에 따라서 슬프면 슬픈 장면이라는 것을 지각하는 듯하다. 여러 번 나왔고 다른 이들의 품에도 안기지만, 1시간 30분가량 공연에서도 우는 적이 없다. 함께 합창하는 소리가 매우 크고 장중한데도 놀라기보다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5개월 아기는 명배우에 손상이 없었다. - 공연이 끝나고 우리의 뒷풀이 장소에 부부가 그 애기를 안고 왔는데 대단한 박수와 환영을 받았다. 이들은 내일 공연 때문에 맥주도 한잔하지 않고서, 흩어져 있는 또 다른 뒷풀이 장소에도 인사하러 간다고 갔다.
극의 마지막 동네 꼬마들이 산으로 떠나면서 조용스럽게 끝나는 장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었다. 우선 극을 좀 더 강하게 끝을 맺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의견도 있었고, 극 중에서 그들이 새총을 버리고 진짜 총을 잡으러 떠났다는 표현했듯이, 이 애들이 마을 어른들도 모르게 떠나는 장면에서 추위를 견디면서 앞서 간 아저씨들을 찾아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라고 했다. 빨치산이라는 것이 생고생이지 않는가, 그런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보다 꼬마들에게서 한 장면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훨씬 더 가슴 찡한 장면이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극에서 어른들이 동네를 떠났다고 노래했지 어디로 가는 또는 간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이는 그렇게 동네를 떠난 이들이 저항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 희망을 심기위해 떠났다고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 하기도 한다. 어째거나 이 극은 막을 구성하지 않았지만(무대에는 막이 없었다), 이 극은 거의 2막 극인 셈이고, 도입으로써 1막이 두 부분(일제와 해방), 내용 부분으로써 2막이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는 셈이다. 넷째에서 항거를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 또한 묵시적으로 이극과 더불어 현재에도 내면적으로는 새로운 세대에까지 연결된다는 표시로서 극이 마친다. 이극은 내적 지속의 표현으로 잘 된 것이다. (48V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