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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창밖의 세월
이 예 훈
점촌. 딸아이의 지리부도에 실린 삼백만 분의 일 지도에서 그 촌스러운 명칭을 찾아내는 데만도 나는 한나절은 좋게 소비하고 말았다. 점촌은 내 형편없는 지리 감각을 비웃기나 하듯 대전에서 훌쩍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간 태백산맥의 발가락쯤에 터무니없이 작은 글씨로 보일 듯 말 듯 박혀 있었다. 경상북도에 있는 고장이라면 충청북도 아래 어디쯤에 있거니, 하는 정도의 어림짐작을 하고 있던 내게 충북을 위쪽으로 거슬러 거지반 허리 위까지 올라붙어 있는 점촌이 쉽게 눈에 띌리만무였다.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뜻밖에 점촌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있었다. 점촌행 직행버스를 발견하고 뜻밖의 행운이라도 잡은 듯 반가움이 이는 건 아마 여직도 내 뇌리에, 눈에 뜨일 듯 말 듯 가물거리던 지도 속의 그 작은 점이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 백만 분의 일 지도 속에서 점촌은 그저 작은 점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 작은 점을 어찌 발견하여 그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을씨년스럽게 살 속으로 파고드는 십일월의 새벽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나는 알 수 없는 긴장을 털어 내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결국 나는 지금 그녀를 따라 그 점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섬찟하게 가슴을 스쳤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이후 ‘점촌’이라는 익명의 도시는 줄곧 내 머리 속을 맴돌며, 무례한 빚쟁이처럼 어떤 결단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순순히 응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그쯤에서 끝내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결엔가 나는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지리부도를 찾아 뒤적인다거나, 누구하고 대화 도중에 불쑥 점촌이 어디쯤에 있어요, 라고 묻는 따위의 이상한 버릇을 들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이유에선지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물론 편지투는, 늘 하던 그녀의 말투와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모든 게 다 좋고, 잘못 될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식이었지만, 나는 과장과 허세로 가득 찬 편지의 행간마다에서 풍기는 위기의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녀를 만나보자. 운이 좋으면, 정말 그녀에게 빌려준 돈을 받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게 아니더라도... 그래, 늘 그녀를 통해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던 나 자신의 문제도 아직 완전히 매듭이 지어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늘 내가 딛고 있는 선분의 다른 한끝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어쩜 나의 맞은편 극점을 봄으로써 그 중심점을 찾으려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한울문학회>에 나타났던 날이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 문학회,라는 어줍잖은 자리에서 하필 만났다. 그것도 집에서 살림이나 사는 여자에게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시각인 저녁 여덟시. 회원들은 하나같이 자유의 냄새를 풀풀 풍기며, 갓 잡아 올린 잉어같이 싱싱한 말들을 쏟아내고, 그 말들의 싱그러움을 즐기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족속들처럼 느껴지는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자주 내가 비워두고 온 산마루아파트 102동 1105호를 떠올렸다. 빈집이 싫어서 어둡도록 밖으로 나돌다가 마지막 한 아이까지 제집으로 돌아간 다음에야 마지못해 집 앞까지 올라온 작은아이는 문 앞에 앉아 학원에서 돌아올 누이를 기다리며 졸고 있을 것이다. 새벽같이 지고 나간 가방의 무게에 눌려 제 동생만큼 작아져 돌아온 지친 누이와 졸음에 빠진 사내 동생은 어둠이 가득 고여 있을 집안으로 선뜻 들어서길 꺼리며 시덥잖은 다툼이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도대체 이 시간에 왜 내가 여기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지. 관성처럼 길들여진 의무감은 내 심장 한가운데 도사리고 앉아 수도 없이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날 모임에서는 몇 주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승희 시인의 <33세의 팡세>가 텍스트로 올라 있었다..
정작 그 시인의 시 한편 제대로 읽지 않았어도, 시류에 밝은 출판사의 입맛으로 엮어냈음직한 에세이집 한 권쯤 읽은 것으로, 그의 문학을 완전히 꿰뚫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놓고 떠벌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 모임의 특성이기도 했다.
늘 밤새워 소설을 쓰지만 한번도 끝을 맺어 본적이 없다는 작가지망생. 몇만 장의 명함을 박아 놓고 때를 기다리는 정치 지망생과 그의 맹신적인 지지자,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시를 쓸 영감이 떠오르리라 확신하며 세월을 보내는 몽상가, 금병산 밑의 왕궁터에 움막을 짓고 개벽을 기다린다는 자칭 도학자와 두어 명의 추종자. 모임의 주 멤버인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시간이 얼마든지 남아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아도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한적한 변두리의 찻집에서 고객 확보 전략으로나 써 붙였을 광고문을 보고도 기웃기웃 찾아들게 되는 것이리라.
게다가 학생운동 바람이 유행병처럼 대학가를 휩쓸고, 제 자신도 미처 깨닫기 전에 은밀히 스며든 체류 가스의 냄새만으로도 의혹의 눈초리에 시달리던 때에 대학을 다니면서, 신상명세서에 명분조차 아리송한 <요주의 인물> 따위의 낙인을 남긴 이들이나, -그것은 취업용 신원조회서에 사회부적응자라는 결정적인 기록이 되어 그들의 발목을 낚아챘다,- 고교 시절 문학소녀의 꿈을 품은 채, 대학생이 되는 대신 작은 사무실의 경리 사원이나 방직공장의 직조공이 된 소녀들이 몇 명 어울리고 보면 모임은 나름의 성격을 띠고 제법 그럴듯한 활기조차 품게 되는 것이었다.
<한울문학회>의 모임 장소인 한울찻집 출입문에는 <한울볼링회원 모집> <한울등산회원 모집> 하다못해 <한울수영반> <한울노래모임>까지 별의별 회원 모집 광고가 하루도 쉬지않고 나붙었다. 그러니까 내가 우연히 그 찻집 앞을 지나치던 날은 공교롭게도 <문학회원 모집> 광고를 붙이는 날이었던 셈인데, 그렇다면 그날 볼링이나 수영반 모집 광고가 붙어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볼링 공을 폼나게 굴리거나,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수영장에서 어푸어푸 구정물을 마시고 있을까.
그 무렵 나는 꿈속에서조차도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왜 도망쳐야 하는지 무엇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채 나는 밤마다 식은땀에 범벅이 되어 숨을 헐떡이다 잠에서 깨어나곤 했던 것이다. 아니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분명히, 몸서리처질 만큼 뚜렷이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으로부터였고 아이들로부터이기도 했으며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때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했던 사랑으로부터의 도피였다.
내가 동아리의 한 귀퉁이에 끼어 앉아 그렇게 허둥거리고 있을 때 한울찻집의 여주인이 그녀를 데리고 왔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한울문학회는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이에요. 현재 회원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는데요. 연령층요, 물론 젊은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꼭 그들만의 모임은 아니에요. 대학생, 공장 근로자, 회사원 같은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나 학원 선생님도 몇 분계시죠. 그 뿐인가요. 국가 연구기관에 근무하시는 박사님, 동양철학을 연구하시는 도사님... 그리고 한울문학회 회장은 서울대학교 학생회장까지 지낸... 지금은 조용히 봉사에 힘쓰고 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큰일을 할...‘ 찻집 여주인은 지나치듯 마지막 말을 덧붙이길 잊지 않았을 것이다. 삼개월 전, 비슷한 상황에서 여주인의 쉬임 없는 말소리를 들으며 나는,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같군, 하고 생각했었다. 여주인의 달변에 약간 주눅이 들고, 회원에 대한 장황한 열거에 얼마쯤 마음이 부풀었을 그녀가, 우리에게로 오는 동안 찻집 곳곳에 비치된 책들을 보고 우러났을 기대와 경외감을 얼굴 표정에 드러내며 다소곳이 소개를 받았다. 두 번의 일일 찻집을 운영해 구입했다는 천여 권의 책들. 그것들이야말로 나를 모임에 끌어들인 가장 강력한 유인물이었다. 적절한 안배로 다방 곳곳에 비치한 책들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듯, 그 ‘아름다운 의무’에 사로잡히기 이전의 내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모임 첫날부터 그녀는 삼 개월이나 먼저 온 나보다도 더 스스럼없이 동아리에 어울렸다. 아니 오히려 단번에 동아리를 휘어잡고 제 방식으로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동갑내기의 여자가 모임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때까지도 이질감을 삯이지 못해 겉돌고 있던 내게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활력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천부적인 친화력은 단번에 나를 모임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남편과 별거 중이야. 요즘 와서 남편이 왠지 딴전을 피는 것 같아서. 결혼한지 십년이 넘도록 우린 연애하듯 살았어. 대학교 이 학년 때 만나서 졸업도 못하고 큰 앨 낳았는데 그렇잖음 너무 억울하잖아. 그녀의 거짓말은 여기서 부터였을까.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말을 그녀는 값진 악세사릴 자랑하듯 그렇게 말했다. 아니, 그것이 자랑처럼 들린 건 어쩜 내 탓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산뜻한 결론 앞에 나는 이유 없이 나의 결혼 생활이 부끄러웠다. 아직도 단칸방 살이 때의 버릇을 못 고치고, 한방에서 자기를 고집하는 작은아이를 옆으로 밀어놓고 도둑질하듯 치르는 남편과의 사랑을. 일을 끝내고 돌아앉아 더듬더듬 옷을 찾아 입으며, 이미 잠들어 있는 남편의 후덥지근한 살 내를 맡으며, 문득 삼류 여관에서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늙은 창녀 같은 신산스러움에 가슴을 쓸곤 하던 결혼 생활을... 그러면서도 한번도 다른 궁리라곤 해보지 못한 나의 우둔함을, 나는 그녀 앞에서 열없어 했다. 남편과의 성행위가 단순히 육체적인 욕구의 해소로만 느껴진 게 언제부터였나. 남편이 이미 결혼 전에 더 이상의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수술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도 나는 그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었다. 나 또한 더 이상의 아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에 피임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에게서 솜털이 보송송한 사내아이를 받아 안았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통증이, 실제로 아이를 낳는 어미의 진통과도 같은 숨막히는 아픔이 가슴을 짓눌러 오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하지만 그것은 아이 낳기를 소원하는 여인네의 상상 임신과도 같은 허위의 표출은 아니었을지. 뱃속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선배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그런 통증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단 한 번도 그 아이들이 내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아이들의 생모인 선배가 아직 살아있을 때조차 나는 그 아이들에 대해 피붙이에게나 느낄 법한 집착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덜커덩, 세차게 혼들리며 급정거를 했다. 지난밤의 불면으로 깜빡 졸았던가 추풍령 휴게소를 지나친 게 금방인 것 같은데 어느새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도에 나타난 도로 표지 대로라면 이 차는 김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상주를 거쳐 문경으로 올라가는 국도로 들어섰을 것이었다. 나는 낯선 여정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대전에서 점촌까지 지도 상에 나타나 있는 지명들을 수첩에다가 꼼꼼히 적어 넣었었다. 그것에 의하면 김천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어모, 두원, 옥계, 옥산, 청리, 상주, 공검 등을 거쳐 점촌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버스가 멎은 노변에는 시멘트만으로 조악하게 만들어 놓은 승강장 구조물이 뽀얗게 먼지를 쓰고 있고, 구조물의 앞머리에는 옥산,이라는 지명이 빛과 바람에 색이 바랜 채 먼지 속에 잠겨 있었다. 승강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넛 있었지만 이 차를 탈 요량은 아니었는지 버스가 멎었는데도 움직일 기색이 없다. 무연한 표정으로 길 건너의 빈 들판에 눈을 주고 있는, 그저 이웃 나들이나 가는 듯 허름한 차림의 그네들을 바라보며, 나는 불쑥 내가 드디어 여행길에 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면의 어느 부분이 푸르르 권태를 털고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초상집을 다녀온 후, 목적지도 기한도 정하지 않은 여행을 제안한 건 오히려 나였다. 그 무렵 나는 내 의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나날이 견고해져 가는 일상에 대해, 마치 시멘트 반죽을 둘러쓰고 반죽이 서서히 굳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조급증을 내고 있었다. 당장이라고 그것을 부수고 벗어나지 않으면 내 삶은 영영 그렇게 화석으로 굳어지고 말리라.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위기의식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일탈을 도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박사일 간의 그녀와의 여행. 비록 어설픈 해프닝처럼 끝나버린 일탈의 시도였지만, 이번 여행을 결심하게 한 배경에는 결국 그때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지난밤 나는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고, 남편에게 굳이 하지않아도 좋을 변명을 늘어놓고 말았다. 그것은 남편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현실 타당한 어떤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야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남겨둔 채 새벽 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일이 가능했는지도. 사실 그녀는 마치 맡겨 놓은 걸 찾아가듯 아무때나 나를 불러내서는 오만 원만, 십만 원만, 쉽게도 내 얄팍한 주머니를 발라 갔다.. 그때까지도 거의 십원 단위까지 꼼꼼하게 가계부를 쓰던 내게 그것은 적지않은 부담이었다. 그녀에게 건너간 돈이 백여만원 가까이 되면서, 나는 그녀와의 만남이 아무리 진지한 상황에서도, 오늘은 이 여자에게서 돈을 받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을 완전히 떨쳐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로 건너간 돈이 다시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점촌은 시라기 보다는 한적한 시골 소읍 같은 느낌을 주는 고장이었다. 대전에서 사라진지 한 달여 만에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한때 30여 개의 광업소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이 나라의 호사객들이 온통 그곳에 다 모이기라도 한 듯 흥청이던 도시였는데 이제는 한물 갔고, 요즈음은 근처 시골에서 특수작물로 목돈을 쥔 촌부들이 가끔 들러 주머니를 푸는 게 고작인... - 이라는 말로 그 도시의 쇄락을 표현했었다. 그녀의 편지를 보면서 나는 불쑥 그녀와 함께 떠돌던 작고 낯선 도시들을 떠올렸다. 우리는 평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은 도시만을 골라 찾아갔는데, 그녀는 생소한 고장의 골목들을 기웃거리며 말하곤 했다. 밤낮 없이 낯선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는 곳, 도시의 모든 시민들과 사랑을 나누더라도 이튿날이면 아무도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는, 그런 도시는 없을까. 그런 곳이 있다면 난 지금이라도 거기 주저앉고 말 거야.
점촌시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회색빛 철 구조물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변전소였다. 주차장을 낀 거리의 맞은편 지역을 온통 그 변전소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한적한 시골의 소읍처럼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거리의 모습에 비해 그것은 터무니없이 크고 웅대해서 마치 이 고장과는 전혀 동떨어진 외계의 성처럼 보였다. 그 변전소를 제외한다면 거리의 모습 어디에서도, 한 때의 번영으로 시 승격의 영예를 일궈냈던 번성의 흔적이나 그 후의 쇄락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막 공기 중의 물기를 말끔히 걷어 낸 햇살에 여지없이 벌거벗기운 작은 도심은 그저 수줍은 듯 수굿이 가라앉아 낡고 소박한 겉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선배가 이곳에서 찻집을 시작했는데 좀 도와 달라고 사정을 해 급하게 떠나오게 되었노라고, 선배가 그 쪽 일에 원체 경험이 없어 그녀가 없으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쉬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대로 여유롭게 잘 지내고 있노라고, 꼭 한번 시간을 내서 놀러오라고 그녀는 편지에 썼었다.
그녀가 말한 향촌 다방은 버스 정류장 뒤쪽의 시장 안에 있었다. 정류장의 상점 주인에게 물어 찾아간 시장 거리는 겉보기와는 비교도 안되게 넓고 웅숭깊었다. 그토록 작고 단조로워 보이던 도시가 이렇게 음험한 거리를 품을 수 있다니... 그곳이야말로 이 고장이 누렸던 잠시동안의 번성과 쇄락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채 음험하게 웅크리고 있는 도시의 이면인 셈이었다. 나는 끝없이 이어질 듯 늘어서 있는 이층 혹은 삼층 건물에 붙어있는 다방이나 술집, 당구장, 성인오락실 따위의 간판들을 훑어보면서 선뜻한 한기를 느꼈다. 거의 인적이라곤 없어보이는 거리를 원색적인 색깔로 물들이고 있는 크고 낡은 간판들은 어딘가 마술적인 음산함을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원색의 간판들이 내뿜는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욕구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팽팽한 거리의 정적 때문일 것이다. 금방이라도 어둠이 고여있는 건물의 구석구석에서 수상쩍은 괴물들이 쏟아져나와 한바탕 굿판이라도 벌일 듯, 그 불균형한 정적은 불안스러웠던 것이다.
그녀가 말한 향촌다방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볼품없이 덩치만 큰, 짙은 갈색의 낡은 3층 건물 2층에 있었다. 발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요란하게 울리는 목재 계단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나는 다방으로 올라갔다.
다방 안은 한산했다. 아직 이른 시각 탓일까. 텅빈 실내가 터무니없이 넓어 보였다. 진한 흙빛으로 번들거리는 두툼한 다탁과, 눅진한 살 내가 느껴지는 푹신한 쇼파, 다방 안의 집기들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크고 육중해서 낯선 객(客)을 압도하고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가능한 한 카운터에서 가까우면서 밝은 곳을 찾아 앉았다.
카운터 옆에 다리를 꼬고 서있던 서른 안팎쯤의 여자가 물 컵을 들고 내게로 왔다.
여자는 아직 화장 전인 듯 푸릇푸릇 화장독이 오른 맨 얼굴에 지난밤의 졸음이 그대로 묻어 있다.
“저, 우경진 씨라고... 여기서 일한다고 들었는데요. ”
지극히 불성실한 태도로 던지듯 내 앞에 물 컵을 밀어놓는 여자에게 나는 이유 없이 주눅이 들어, 아니 오히려 이런 곳에서 그녀의 이름을 거론한다는 게 무슨 모욕처럼 느껴져서, 우물우물 말까지 더듬으며 그녀에 대해 물었다.
“야- 우경진이 누구냐?”
“우경진...? 아, 유미언니잖아요. 유미언니 본명이 우경진이랬어요. 남자 이름 같아서 햇깔린다고 마담언니가 그래 놓구선.”
그녀들의 거침없는 대화가 나를 행해 쏟아 붓는 야유 인양 귀 전에서 와글거렸다.
“배달 나갔어요.”
호기심으로 번들거리던 그녀들의 집요한 시선과는 달리 대답은 지나치게 짧고 냉랭했다.
그녀들이 우경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느낌이- 내가, 그녀들이 우경진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이상한 통증으로 혹은 부끄러움으로 엄습해 온다.
인국씨 부친의 초상이 났던 날, 우리 한울문학 회원들은 그녀의 집에 모여 있었다. 그녀가 세 번쯤 모임에 나오고 나서였을 것이다. 그날 따라 모임은 적당히 흥이 올라 점액질 같은 미련을 각자의 가슴에 끈끈히 남긴 채 끝이 났고 차마 헤어지기 아쉬운 걸음으로 찻집을 나섰다. 하지만 너나없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축들이다 보니 누구도 2차를 제안할 염을 내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제집으로 가자고 우리를 끌었던 것이다. 그녀의 제안은 회원들 사이를 뜻밖의 결속력으로 밀착시켰고 그녀는 그 한가운데 있었다. 이미 이윽히 깊어진 밤거리를 한데 어울려 걸으면서, 그 시간에 오롯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 한 독신녀의 방에 대해 우리가 깊은 호기심과 열렬한 환심을 동시에 키웠으리라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은 전적으로 세를 놓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당 한가운데 수도가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방들이 마치 부챗살을 펼치듯 둥그렇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 왼쪽 끝방이 그녀의 것이었다. 그 날은 다행히 밤이어서 더듬더듬 그녀의 방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둥그렇게 펼쳐서 있는 그 다섯간의 방문 앞 기둥에는 빨랫줄이 겹겹이 매어져 있었고, 언제나 손바닥만큼 한 여자들의 속옷이 가지각색의 빛깔로 시든 꽃처럼 후줄근히 널려 있었다.
그녀의 방은 마치 병든 짐승이 숨어든 속 깊은 동굴처럼 적당히 어둡고 알맞게 음습했다. 그 후로 나는, 그 집의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맞닥뜨려야 하는 난잡하고 민망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걸핏하면 그녀의 방을 찾아가곤 했다.
‘처음엔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얻어 볼까 했는데, 이렇게 어울려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들 착하고 성실한 애들이야. 부모 잘못 만난 탓에 제 몸 팔아 동생들, 오라비 학비 대고 부모 공양하고. 하나같이 심청이들이지. 여기서 저 애들 대모 노릇 하는 것도 세상에 빚 갚는 거 아니겠어.’
나는 그녀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그때 막 배우기 시작한 담배를 뻐끔거리며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그녀의 장광설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곤 했다. 내가 그렇게 그녀의 집에 수시로 드나드는 걸 그만 둔 것은, 아마 그녀가 내게 이종이거나 혹은 고종, 아니면 오라비의 친구라서 오라비라고 소개했던 사내들을 그 방에서 맞닥뜨리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나와 만날 때 사내를 한 명씩 데리고 나타났는데, 별 조심성도 없이 불쾌감을 드러내곤 하는 내게 그녀는 그들을 그렇게 소개했던 것이다. 무슨무슨 오라비 혹은 아재비라고... 물론, 그럴 때 내가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때쯤엔 나도 그녀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들과의 관계를 짐작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그 작은 방에서 파자마 차림의 사내와 맞닥뜨릴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불쾌감이 치밀었고, 은밀한 성역이 여지없이 능욕 당하는 걸 목격하는 듯 충격을 받곤 했다.
우리들이 오면서 사들고 온 몇 병의 맥주와 오징어 따위를 그 방에다 풀어놓고 바야흐로 우리 모임의 새로운 국면을 막 연출해 내려하고 있을 때, 한울찻집 여주인이 이인국 씨 부친의 사망 소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왔다. 이인국은 데모와 휴학을 거듭하면서 십 년이 넘게 다닌 대학을 그 해 봄에 겨우 졸업을 했는데, 입만 열면 신춘문예의 사기성을 성토하며, 가끔 투사들의 결의문 비슷한 시를 모임에 가지고 오곤 하는 회원이었다.
’이인국 씨 아버지는 육이오 때 홀홀 단신 월남한 분이라는군요. 원체 일가붙이라곤 없는 데다 인국 씨가 외아들이라 초상집이 쓸쓸하기가 말이 아니래요. 진호 씨가 우연히 전화를 했다가 알게 되어 지금 그곳에 가 있다며 찻집으로 연락을 했더군요. 어떻게 우리라도 가봐야지 않겠어요.‘
내 무위한 일상에 새롭게 끼여든 그 턱없이 엉뚱한 상황을 불현듯 인식하기 시작한 건 아마 그 순간일 것이다. 거의 운명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유효 적절한 상황의 진전. 우리는 마치 그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 그곳에 모여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의기투합해서 초상집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모두들 호기롭게 나서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 집에 가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회원 중의 한 명이 가지고 나온 승합차에 우르르 몰려 타고, 찻집 여주인이 전화를 통해 전해들은, 대신동 사거리에서 전신전화국 쪽으로 전신전화국 앞에서 명랑초등학고 뒤로, 초등학고 후문 앞에서 좌회전 다음 골목에서 우회전...... 하는 따위의 미로 찾기 같은 길 안내를 따라 밤길을 헤집고 있었다. 찻집 여주인은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자신도 전화를 통해 들었을 뿐인 길목과 건물들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지만 적당히 술이 올라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운전자는 도무지 어두운 미로에서 헤어날 것 같지 않았다. 어둠 속에 음험하게 실체를 숨기고 있는 낯선 도로와 건물들을 내다보면서 나는 은밀하게 나 자신을 향해 주문을 걸고 있었다. 이 차는 어쩌면 영원히 이렇게 미로 속을 헤매게 될지도 모른다. 컴컴한 차안에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수상쩍은 사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들은 아마 나를 이 숨막히는 자전의 괘도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온 사자들일 것이다. 아니, 나는 이미 괘도를 벗어난 괴물체에 몸을 싣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사자(死者)가 된 아버지를 뉘어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시인의 집은 그러니까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 우리는 어디에서도 그 집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도 이미 그 누구도 찾아낼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드디어 괘도 이탈에 성공한 것이다. 괘도 이탈... 그것은 순간이긴 하지만 뜻밖의 해방감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그것을 꿈꾸어 왔던가. 아니 지금까지 줄기차게 맴돌아온 그 자전축의 실체를 선명하게 의식만이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아주 잠깐 나는 집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떠올렸다. 내가 정작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쩜 그들로부터라기보다 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활의 얽게로부터라는 게 맞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뭔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완전한 사랑이니, 완전한 평화, 따위의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나이. 그것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희생이 너무도 아름답게 여겨져, 내 자신의 존재가 차라리 초라해 보이던 때에,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B 대학 기숙사에서였다. 나는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그녀는 3학년. 하지만 나의 기숙사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삼 개월쯤 후 그녀가 그곳에서 나올 때 나도 그녀를 따라나와 함께 자취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칠년,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져 있었고, 나의 삶은 그녀의 일부분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이인국 씨의 집은, 한 도시의 역사와 맞먹을 만큼 세월의 때가 낀, 허름한 집들이 촘촘히 머리를 맞대고 있는 언덕배기 마을의 중턱쯤에 있었다. 이미 문상객들의 발길이 끈긴 시각인 탓도 있겠지만 초상집은 정말 가슴이 서늘할 만큼 깊은 정적 속에 잠겨 있었다. 질 낮은 삼베에 화학 염료를 먹여 지나치게 노란빛을 띤 상복을 몸에 걸친 인국 씨는 아직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색하고 멍한 표정으로, 이렇게 누추한 곳을 방문해 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는 듯한 수줍은 미소까지 띠고 우리를 맞았다.
“세상에, 초상집은 사람이 발 디딜 틈 없게 벅적거려도 적적한 법인데...... 아이고 아이고 인국 씨... 아이고 아이고......“
그것은 정말이지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미처 상주와 인사도 차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앞으로 달려나가 인국 씨를 덥석 안으며 걸판진 곡을 시작 한 것이다. 그녀가 인국 씨를 만난 게 단 두 번이나 될까. 모임이 있다고는 해도 늘 모든 회원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쩌면 그녀는 인국 씨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실행에 옮길 뿐이었다. 그녀의 눈부신 활약은 단번에 적막한 상가(喪家)를 왁자하게 되살려 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끌음을 따라 우리는 고인이 누워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고 그녀의 곡은 더욱 깊고 구성지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그 곡은 전염병처럼 서서히 우리 모두에게 옮겨져 어느 사이 초상집을 슬픔과 애통의 도가니로 변화시켰다. 아, 도대체 우리들은 어디에 그토록 절절한 통곡을 숨기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마치 하나의 정화 의식과도 같았다. 가슴 밑바닥에 켜켜이 쌓여 그 두께조차 선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좌절과 소외의 상처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통곡으로 흩뿌려 대는 찬란한 의식.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마치 가벼운 농담처럼 그렇게 훌렁훌헝 살아내고 있는 자신들의 일상을 들추고, 문득 이무기처럼 웅크린 존재의 실체와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차 배달이 늦어지고 있다. 짧은 스커트와 굽 높은 구두, 뽀얗게 드러난 아름다운 다리와 걸음을 옮길 적마다 경쾌하게 흔들리는 앙증스런 엉덩이. 그녀들의 손에는 커피나 혹은 쌍화차가 담긴 보온병과 몇 개의 찻잔이 든 작은 보퉁이가 들려 있다. 그녀들을 볼 적마다 나는 그 작은 보퉁이가 그네들의 일부이기나 한 듯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경진이 차 쟁반을 들고 힙을 흔들며 거리를 걷는 모습이라니.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울룩불룩 귀퉁이가 불거져 나온 보도 블록에 높은 슬리퍼의 턱이 걸릴까 조심하면서 한적한 골목을 지나 따박따박 층계를 밟아 오르는 미니스커트의 여자. 그녀는 좀더 젊고 팽팽한 피부라도 가졌어야 하지 않은가.
그녀의 늦어지는 차 배달에 대해 누구 하나 조급해 하거나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텅빈 다방을 둘러보며 나는 문득 그녀가 받았다는 선불 삼백 만원이 의아스러웠다.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칠백 원짜리 커피 배달과 기백 만원씩 월급을 받는 (그것도 선불까지 주어가며 데려온) 여종업원의 함수관계를 나는 도저히 풀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어리숙한 선배가 경영하는 찻집에서 그녀는 어쩜 차 배달 따위가 아닌 다른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편지에 쓰지 않았던가. -대전에 이것저것 걸린 게 있어 못 간다고 했더니 그날 당장 삼백 만원을 온라인으로 부치고는 빨리 정리하고 오라고 성화를 대지 않겠니.... -
그녀의 말에 대해 나는 언제부턴가 늘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버릇이 생겼다. 거짓말이거나 어쩌면 참말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말은 어쩜 사실일지도 몰라. 거짓말일게 뻔한 그러면서도 거짓말이라고 단정해 버리기에는 너무 진지해서 때로 감동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혹은 굳이 거짓일 이유가 없는 사소한 이야기에도 나는 언제나 그렇게 두 개의 가정을 먼저
세워 보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녀의 그 허위로 가득찬 생활에 그토록 너그러웠던 것은 아마 그녀의 삶이 품고 있는 그 현란한 다양성에 매료된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양면성조차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채 오로지 양지의 따사로움만을 쫓아온 그간의 내 살이에 대한 야유와도 같았다.
회원들간에 어차피 초상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수밖에 없다는 결정이 내려지고 나는 집에 전화를 걸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공중전화는 초상집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작은 공터 앞에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열 한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이 시각에 전화를 해 집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면 남편은 어떤 표정이 될까. 그는 그것이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부여해 정당화시킬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그 자신이 혼란스러워 지는걸 피하기 위해서. 그것은 말하자면 그가 세상에 적응해 가는 한 방편이었다. 그의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결혼전의 단산수술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믿었던 건 아무래도 지나친 자만이거나 위선이었던 것 같다. 남편의 그 단호한 조치는 그와 사랑을 나눌 때조차 나는 단지 선배의 대용품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게 했다.
굳이 집에 가겠다고 하면 모임에서 나 하나 빠진다고 안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또 하루쯤 내가 집에 안 들어간들 어떠랴. 밖에서 맞는 밤은 이처럼 고혹적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살갗에 와닿는 밤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양팔을 크게 벌리고 작게 아, 라고 소리를 내 보았다. 검은 물감이 묻어나기라도 할 듯 짙은 어둠이 깃든 밤 공기는, 촉촉이 습기가 밴 손길로 전류처럼 전신을 애무해 왔다.
공중전화 부스 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한 건 거의 그 앞에까지 바짝 다가섰을 때였다. 부스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그녀는 마치 작은 짐승 같았다. 그녀는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 수화기를 아래로 끌어당겨 잡고 무언가 쉼 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나는 그 목소리에 배어있는 울음과 끈질긴 애원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뻔뻔하게 느껴질 만큼 천연스레 남을 속이고 기만할 망정 그녀는 결코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여자가 아니었다.
‘전화 걸러 나오셨군요 ? ...... 저런, 경진 언니죠?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쯔쯔쯔’
예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같은 찻집 여주인의 목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흩트리며 호들갑스레 튀어오르는 걸 들으며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저 언니가 술에 취하면 저래요. 모르셨죠. 애들이 많이 보고싶은가 봐요. 오죽하겠어요‘
’그럼 지금 아이들하고 통화하는 거예요? 이 시간에.....‘
’아이들요? 어머, 아니에요. 아무하구두 아니에요 혼자 저래요. 그러니 기가 막히죠. 어찌 어찌 전화번호 알아내서 통화가 되면 그 이튿날로 번호가 바뀐 데요. 하긴 그것도 까마득한 옛날 얘기 일거예요. 서로 연락이 끊긴지 오래된 것 같아요.’
‘왜 헤어졌대요? 남편하군... ’
‘저두 잘은 모르겠어요. 저 언니 말이 그렇잖아요, 좀. 그래두 취중에 하는 얘기들 종합해 보면 언니가 어떤 실수를 했는데 그걸 빌미로 쫓겨나다시피한 것 같아요. 남편이 바람을 피니까 반발심으로 가출을 했다가 뭔가 문제가 생겼던 게 아닌가 짐작이 가기두 하구요. 정말루 남편 집안은 꽤 괜찮았었나 봐요. 그런 사람들이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더 냉혹하잖아요 왜. 정신병원에 갇힌 적도 있었다죠 아마. 자꾸 아이들 주변 맴돌구 애들 데리구 도망치구 하니까 남편 쪽에서 거의 강제로 그랬었대나봐요 봐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구 각서 쓰구 거기서 풀려 났구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얘기죠? 하지만 이건 경진 언니가 직접 해준 얘기가 아니고 술 취해서 전화기 붙들구 하는 소릴 종합한 거니까 전혀 엉터린 아닐 거예요. 술이 저렇게 억수로 취하면 집으로 가지않구 꼭 찻집으로 오거든요. 아마 혼자 있는 게 무서운가 봐요. 특히 그럴 땐... 저 언니 저래두 얼마나 살림 솜씨가 야물구 깔끔한지 몰라요. 음식두 정말 맛있게 잘 만들어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그녀는 반찬거리 몇 가지 사들고 불쑥 내 집을 찾아와서는 제집 부엌처럼 익숙한 솜씨로 조리 도구를 다루며 놀랄 만큼 맛깔스럽고 정갈하게 음식을 만들어 내곤 했었는데, 그럴 때 그녀의 몸짓에는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 깊은 열정이 배어났다. 집안일에 어지간히 염증이 나있어 무슨 일이건 그저 의무감으로 혹은 길들여진 관성에 의해 무감각하게 치루어내던 내게 그녀의 그런 모습은 뜻밖의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그 동안의 그녀의 무책임과 방종에 대한 불신을 말끔히 씻어 낼만큼 산뜻한 파문으로 내게 여운을 남기곤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우린 경진 언니 데리고 집에 가야 할 것 같아요 그쵸? 저 언니 저 정도면 거의 인사불성이거든요. 사람도 잘 못 알아봐요. ’
내가 은밀히 꿈꾸어 온 하룻밤의 외박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나는 찻집 여주인과 함께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고 새벽 한시쯤 내 둥지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 날 밤의 미진함이 가출이나 다름없는 그녀와의 여행을 결행하게 했을까. 아니면 그 밤의 어둠이 품고 있던 믿을 수 없는 마력이 나를 거기까지 내몰았던 건 아닐지. 초상집에서 돌아온 이틀 후 나는 한 장의 짤막한 쪽지만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당시로선 언제 돌아올지 기약조차 없었던 가출. 그녀를 쫓아 낯선 도시들을 배회하면서, 정말 고작해야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꼴이었다, 나는 옆을 스쳐 가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문득문득 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곤 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던 그 저녁 우리는 남쪽 끝의 오래된 항구 도시에 닿아있었다. 박경리의 ‘파시’를 낳은 도시. 세파를 싸안은 노모의 치맛자락처럼 잔 때가 켜켜이 낀 작은 식당에서 그녀와 나는 세 번째 밤을 맞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히 지쳐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앙금처럼 쌓여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불안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저녁을 거의 들지 못한 채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뒤이은 그녀의 주사(酒邪). 그녀의 말처럼 어쩜 그것은 그녀에게 주사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점점 말이 헤퍼지던 그녀가 갑자기 옆자리의 사내들에게 합석할 것을 청했던 것이다. 나는 질겁을 하며 그녀를 말렸지만 사내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리 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곧 그녀의 아재비가 되고 오래비가 되었다. 서울에서 사업차 왔다는 그들은 이미 중년의 고개를 넘어 초로의 흔적이 역력한 사내들이었다. 2 차로 옮겨간 노래방에서 사내 중의 하나가 목포의 눈물을 목청껏 뽑아대고 있을 때 그녀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네 남편에 대한 사랑을 시험해 보고 싶다면 오늘이 기회야. 그런 대상은 이렇게 낯선 거리에서 물색해야 하거든.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마치 목구멍 속으로 고약한 오물을 들이 붓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구역질이 사정없이 솟구쳐 올랐다. 화장실로 뛰어가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었다. 나는 노래방 바닥에다가 질펀하게 오물을 토해 놓고 말았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나의 알량한 탈출은 애초부터 그렇게 좌절 될 수밖에 없도록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녀와 나는 그날 밤을 역 대합실에서 보내고 새벽 기차를 탔다. 그녀가 다방으로 돌아온 건 거의 점심때가 다되어서였다. 그녀는 좀 초췌하고 지쳐 보였다. 나를 발견한 순간 그녀는 아주 잠깐 표정이 복잡하게 흔들리는 듯 했지만 금세 활짝 개인 얼굴로 안을 듯 내게 다가왔다. 영락없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과장된 호의와 거칠대 없는 명랑함.
“오래 기다렸어?”
“으응- 한 시간쯤... ”
순간 나는 이유없이 끌어 오르는 짜증으로 그녀를 외면하며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좀 허둥거리고 있었다. 나와 마주앉아 있는 것이 몹시 거북한 듯 그녀의 시선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방 안을 떠돌고 있다.
“잠깐만...“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또는 적당한 핑계거릴 찾아낸 양, 한마디 던지고 가볍게 엉덩이를 일으켜 카운터 쪽으로 갔다. 카운터 앞에는 좀 전에 마담언니라고 불렸던 여자가 앉아서 오래 공들여 화장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마담에게 무언가 양해를 구하려는 몸짓으로 긴 설명을 하고 있다. 애원어린 그녀의 몸짓에 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 찍어다 바르고 있는 마담의 얼굴에는 섬찟할 만큼 표정이 없다. 마담이 짧게 뭐라고 한마디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비굴한 표정으로 무슨 말인가를 보태고 돌아서 내게로 왔다.
”나가자. 점심 먹어야지 “
그녀가 도망치듯 서둘러 다방을 나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 일어나면서 불현듯 이곳까지 그녀를 찾아나선 게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의 편지를 받아 든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이곳에서의 그녀 생활이 어떤 것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도 뻔한 사실이었다. 이건 말하자면 확인 사살 같은 것이다. 끼륵끼륵 목젖을 간질이던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다 사그라졌다.
다방 아래층 식당에서 점심으로 오징어 덮밥을 시켜놓고 그녀가 수없이 시계를 보다가, 세 번쯤 전화기를 향해 달려갔을 때 내 참을성은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도대체 왜 그래. 그 놈에 다방은 점심시간도 안주는 거야. 나 밥 먹고 갈 테니까 어여 들어가 봐.”
“ ..... 그러지말고..... 니가 오늘 하루 나좀 사줄래. 나 요새 내 몸둥아릴 바겐세일 하고 있는 중이거든. 한 이십만 원이면 될 거야. ”
풀썩 바닥에 주저앉듯 그녀는 그런 말을 했다.
“내 몸뚱일 저당잡고 있는 그 여자한테 너 하고 밥 먹고 오겠다고 딱 삼십분 허락 받았어. 후훗. 그런데 이미 십분을 오버했으니 그 삼십분조차도 빼앗겨 버린 거야. 약속을 어긴 대가로... 그게 요즘 내 생활이란다. ..... 매일 밤 고작 서너 시간 자기도 어려운데. 눈만 감으면 꿈을 꿔. 팔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유방 하나 주면... 뭐하나 주면... 흐흐 흑- ”
그래, 나는 그녀를 샀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가까운 여관으로 갔다. 그녀가 매일 차 쟁반을 들고 오르내렸을 법한 그런 여관이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욕실에 들어가 간단한 목욕을 하고 나와 낡은 이부자리에 몸을 뉘었다. 그리곤 한낮인데도 곧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메마른 매미 껍질 같은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왠지 보면 볼수록 낯이 익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때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내 어머니의 얼굴인 듯, 까마득히 윤회를 거듭하던 어느 때의 고단한 내 전신인 듯, 혹은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보게 될 모습인 듯, 그녀의 지쳐 잠든 모습은 낯익고 안쓰러웠다.
나는 어둠이 작은 도시 위로 온전하게 내려앉을 무렵, 잠든 그녀를 여관에 혼자 남겨두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치 그녀에게 단하나 남은 심장을 우려낸 비열한 살쾡이처럼 어둠을 틈타 감쪽같이 점촌에서 도망을 친 것이다.
에필로그
딸아이가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러 가던 날 나는 뜻밖의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그것은 한울찻집 여주인에게서 온 결혼 청첩장이었는데, 놀랍게도 받는 이의 이름 난에 나 자신도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필명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그 이름은 사실 필명이라기보다 가명이라고 하는 게 옳을, 나로서는 찜찜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지난가을 우경진, 그녀에게 다녀온 이후 나는 일 년여 동안을 마치 탈옥에 실패한 무기수처럼 스스로를 집안에 유폐시킨 채, 습관처럼 끄적이는 일기장에 경진의 이야기를 아니, 이 년여에 걸친 내 일탈의 흔적들을 적어 넣곤 했었다. 딸아이의 입시준비가 막바지로 치닫던 두어 달 동안 함께 밤을 지새면서 나는 소일 삼아 그 기록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했다. 그리곤 마치 여성지 따위에 부담 없는 생활문을 적어 보내 듯 별 생각 없이 신인작품을 모집하는 문예지에 그것을 보냈던 것인데 뜻밖에 당선이 되었다. 막상 당선소식을 듣고 보니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경진이었다. 허름한 여관에 그녀를 버려두고 도망치듯 점촌시를 빠져 나왔을 때, 나는 점촌이라고 하는 작은 도시가 그녀를 품은 채 다시 삼백만분의 일 지도 속의 작은 점으로 되돌아가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학입시 생의 어미인 내 일상에서는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가 생경한 가명을 달고 문예지에 활자화되어 버린 순간, 그 도시는 새하얀 햇살로, 음산한 시장거리로 혹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낡은 목재 계단이거나 그녀가 누워있던 여관방으로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나는 감히 누구에게도 그 소설에 관한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울찻집여주인의 청첩장이 날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청첩장에는 마치 협박처럼 ‘등단을 축하합니다’ 라는 그녀의 자필 인사말이 들어있었다.
찻집여주인의 결혼 상대는 짐작했던 대로 한울문학회장이었다. 그리고 결혼식 피로연장은 한울문학회장의 정치입문을 위한 첫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왁자하고 외설스럽게 들떠있는 결혼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예식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식장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살그머니 내 팔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나는 미처 그가 누구인지도 알아채기 전에 그저 마주 인사를 보내고 서둘러 나오려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가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혹시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우경진 씨와 함께 만났던...”
아, 그랬다 그녀가 내게 오라비이거나 아재비라고 소개했던 사내들 중에 그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경진이 내게 소개한 사내들 중 유일하게 그녀의 집에서 맞닥뜨리지 않은 사내이기도 했다. 그는 공무원이라고 했고, 오래 전에 가출한 여동생을 찾아다닌다고도 했다. 그래서 경진이 남 같지 않다고 했다던가.
”경진 씨가 점촌 있을 때 한 번 찾아가셨다죠?“
”네... 그저...“
”아, 정말 안됐어요. 그렇게 가버리다니... 하긴 좀더 삶을 연장한들 무슨 영화가 있을 것도 아니지만...“
”.....“
”참, 경진 씨 사망소식... 알고 계세요?“
”아뇨. 경진이 죽었어요? 그럴 리가......“
”네, 그렇게 됐어요. 경진 씨 본적이 여기 대전이거든요. 아버지 때 이미 여길 떠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아직도 본적은 여기 남아있어요. 그녀를 알게 된 것도 그게 계기였지만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도 그 때문이죠. 사망 후 구청으로 조회가 왔거든요. 공교롭게도 그녀가 가출한 이후 본명을 사용한 것도 대전에서 뿐이더군요. 그녀는 어쩜 이곳에 와서 다시 한번 뿌리를 내려보려고 안간힘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하고... 참, 그렇게 야박한 게 세상 인심인지. 그래도 그녀가 낳은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그리 야멸차게 외면 할 수 있을까요. 그녀 전 남편이란 사람 말예요. 끝내 그녀의 시신 인수를 거절하더군요. 그렇게 연고가 없는 시신은 결국 병원에 실험용 시신으로나 팔려가기 십상이거든요.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는데... 나- 원- 참-“
그는 그렇게 나-원-참을 몇 번인가 반복하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다시 식장으로 들어갔다.
얼마쯤 먹먹했던 내 머리 속의 안개가 걷히고 나자, 그녀가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 불쑥 떠오르더니 마치 실수로 집어삼킨 작은 유리구슬처럼 속속들이 몸속을 맴돌며 내 몸 구석구석에다 그 말을 심어 놓았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
약력)
이예훈
1954년 충북 괴산에서 출생
1994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1995년 계간 [소설과 사상 ] 신인상
<그남자의 여름나기><창밖의 세월> <주방과 거실사이><성전의 문간방>
<상흔>등 발표
2003년 창작집 [딸들의 방] 출간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대일문학 동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