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0 순창 회문산 빨치산사령부를 가다>
2009-12-20 순창에 있는 회문산등산을 위해 익산에서 8:30에 출발 회문산등산진입로에 도착하니 10:30분, 함박눈이 내리는 차가운날씨에 등산을 시작하다.
등산로를 따라 약 30분 걸으니 6.25의 비극 역사의 현장 남부군 빨치산 사령부 푯말이 보여 기념사진 한컷을 하고, 1950년 6.25 전란의 참화를 생각해보며 빨치산사령부를 둘러보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안에 빨치산 남부군사령부가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았다. 6·25 당시에 700여 명의 빨치산이 주둔했다고 하던데...
동굴 같은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서 불을 켰더니 내부가 환히 드러난다. 청동으로 만든 빨치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 환자, 회의를 하는 사람들... 그들이 쓰던 물건들도 전시되어 있다. 말이 전시된 것이지 바닥에 뒹굴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이 사람들, 이제는 전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나. 이들이 모두 소탕(?)된 것은 1954년의 일. 지금이야 회문산까지 차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지만, 60년쯤 전이라면 이곳은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그런 산에 들어가려면 교통수단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니 다리품을 팔아도 한참 팔았을 것이다.
먹을 것도 없고 난방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깊은 산중에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견뎠을까? 이념이 뭐길래... 사령부 안을 둘러보니 그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먼 훗날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그들의 흔적을 둘러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 그들은 전혀 하지 못했으리라.
전북도당사령부는 순창군 구림면 엽운산 금산골의 골짜기에 자리잡았다.(빨치산 얘기에는 으레 나오는 구림면의 가마골을 근거지로 했던 빨치산들은 거의가 순창군 구림, 쌍치 양면의 빨치산이었으며 이 양면은 당시 빨치산의 대명사처럼 알려졌었다.)
입산 초기 전주에서 대피해온 도당의 간부들을 중심으로 그 근방의 쌍치,구림,덕치,칠보, 운암, 팔덕, 태인,강진, 청웅등 각 면의 민청원, 여맹원 기타 기관원등 약 3백명이 주변에 초막을 지었으며 10여명씩 조를 짜고 한국전쟁전에 빨치산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구빨치산들이 한 사람씩 붙어서 조장 역할을 하였다. 이후 각 부대는 병단체제로 개편되어 회문산 외곽에 배치되었다. 회문산 남쪽 정면인 성미산 미륵정이 벼랑 일대는 백암의 벼락병단이, 동쪽 정면 엽운산은 번개병단과 카츄사병단이, 후방부가 있는 북쪽 이여터 방면은 탱크병단이, 서북면은 독수리병단과 독립중대격인 임실군당 유격대가 담당하였다. 남해연단 잔류병으로 된 기포병단은 예비가되어 필요에 따라 출동했고 도사령부 직속으로 보위병단이 있어 외곽방위선이 뚫리는 경우라도 도사령부 주위를 호위하도록 하였다. 각 병단의 병력은 일정치 않으나 대체로 백여명 안팎이었고 번개병단은 2백여명이 넘었다.
전북 빨치산은 1953년 12월 11일부터 1954년 3월 31일까지 실시된 5사단장 박병권전투사령부의 동계공세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때의 전투에서 전북 도당 위원장, 각지역 부위원장들이 전사를 하였고 이어 계속된 한신 전투사령부의 공세에도 많은 지도부와 당이 소멸되었다.군경에 의하면 1955년 공식적으로 전라북도의 빨치산은 완전히 토벌되었다.
빨치산(partisan)이란 말은 조직, 단체라는 의미나
군사용어로서 게릴라를 뜻한다. 이들은 조직적인 무장으로 중앙권력에 대항한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은 빨치산, 파르티잔이라는 용어 이외에도 야산대, 무장대, 유격대라거나 산바람, 비적, 폭도, 공비등으로 부르며 이것은 공히 빨갱이와 같은 의미로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져 와다. 그리고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에겐 밤낮으로 점령군이 바뀌면서 그에 따라 수많은 피해를 받은 것으로 인해 그저 그런 시절이 있었다거나, 서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빨치산은 6.25때 빨치산 전북도당의 사령부와 정치훈련원인 노령학원, 세탁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의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입구에는 땅속으로 연결된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빨치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환자를 간호하는 모습, 총기를 수리하는 모습 등이 마네킹으로 재현되어 있으며, 당시 사용된 물통, 모자, 찬합, 모포 등이 전시되어 당시 상황을 잘 말해준다.
빨치산사령부를 둘러본 후 등산로로 이동해서 등산길에 나섰다.
☞회문산 자연휴양림
▷ 소재지: 전북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산3-1번지
6•25 전후에 지리산과 더불어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구림면 안정리 뒷산인 장군봉 아래 87만 평에 조성된 자연 휴양림은 빼어난 절경과 역사의 현장으로 주목되어 주말이면 전국적으로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회문산 주봉으로 가장 오르기 쉬운 안정리로부터 3시간 걸리는 5.5km의 험한 바위길과 울창 한 숲속을, 도로를 개설 휴양림으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경내 울창한 숲이 우거져 6•25때 빨치산 간부 정치 훈련장이었던 '노령학원'이 있었던 중턱은 이제는 최적의 삼림욕장으로 조성되어 지난 날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성벽처럼 쌓아올린 '노령문'옆에 폭포가 있고 그 위에는 길이 30여 m의 구름다리가 가로 지르고 그 위에 6각 전망대가 있어 여기 올라 바라보는 경치는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