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하늘을 향해 피는 도라지꽃

[으아리]

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m) 꽃이 한창이다. 
대규모 도라지 밭에 보라색과 흰색 꽃들이 어우러져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꽃봉오리는 마치 색종이를 거꾸로 접어 풀을 붙여 만든 풍선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가만히 보면 다섯 개의 봉합선이 뚜렷하다. 
때가 되면 그 봉합선이 터지면서 다섯 개의 꽃잎으로 갈라 펼쳐진다. 
가위로 오려낸 듯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보라색 또는 흰색 꽃의 색상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도라지꽃은 초롱꽃과의 다른 꽃들, 
이를테면 초롱꽃이나 잔대나 모시대나 더덕과 달리 종모양의 꽃이 아래를 향해 달리지 않고 비스듬히 위를 향해 핀다. 
꽃 피는 시기가 장마철과 일부 겹치는 걸 감안하면 이와 같은 구조는 얼핏 의아스럽다. 
보통의 경우 많은 비를 맞게 되면 꽃가루가 씻겨서 수정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갓 핀 꽃을 들여다보면, 가운데 보랏빛 암술대가 하나 솟아있고, 다섯 개의 수술이 암술대에 바짝 붙어 감싸고 있다. 
그 상태에서 수술은 꽃가루를 내어 솜털이 가득한 암술대에 꽃가루를 묻히고는 곧 수그러든다. 



연약한 수술이 꽃가루를 계속 달고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비교적 튼튼한 암술대에 꽃가루를 붙들어 두는 것이 장맛비에서도 꽃가루를 비교적 길게 가져가는 방법으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수술 밑과 꽃잎 가운데 부분에 솜털이 촘촘하게 나 있어 떨어진 꽃가루 하나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다.



도라지 꽃에는 꿀이 없다. 때문에 꽃가루를 먹이로 하는 곤충들이 찾아온다. 
이때 꽃이 위를 향해 피어 있으면 좀 더 많은 곤충을 불러 모을 수 있다. 
벌뿐만 아니라 파리 종류를 비롯해서 아래를 향해 핀 꽃에는 찾아가기 어려운 날개구조를 가진 원시적인 딱정벌레 종류도 찾아온다.

곤충들이 암술대에 붙은 꽃가루를 먹거나 채집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꽃가루는 자연스럽게 곤충의 몸에 달라붙게 된다. 
이때까지 도라지꽃은 수꽃으로서 기능한 것이다. 






이후 꽃가루가 거의 다 떨어질 즈음 암술대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지면서 꽃가루를 받을 준비에 들어간다. 
이제부터 도라지꽃은 암꽃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차를 두고 수꽃과 암꽃으로 역할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히 자기꽃가루받이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다섯 갈래의 암술머리는 각각의 씨방에 연결되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면 다섯 개의 칸을 가진 열매로 성숙한다. 
씨앗의 크기는 작지만 씨앗수는 많다. 
초롱꽃과의 다른 식물들과 달리 꽃을 위로 향해 피는 방향으로 진화한 도라지의 승부수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