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크 알베니스(Issac Albéniz, 1860~1909)는 피아노 신동으로 5세에 연주회를 가지며 인생을 시작한다. 욕심이 컸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유년 시절을 연주여행으로 보내야 했던 그는, 1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유럽과 남미를 전전하던 그는 1880년 드디어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때까지 알베니스의 피아노곡들은 가벼운 살롱용 소품이나 자기 과시를 위한 견본곡 정도에 머물렀으나, 리스트에 의해 비로소 더 큰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알베니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같은 스페인 음악학자 펠리페 페드렐이었다. 스페인 민족음악의 창시자이자 그라나도스와 마누엘 데 파야와 같은 작곡가들을 길러낸 페드렐은 알베니스를 고무하여 스페인의 음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다.
1890년부터 93년 사이에는 런던으로 가서 오페라 작곡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고, 1894년 파리에 정착한 그는 당대의 유명 작곡가들인 쇼송, 뒤카, 댕디 등과 교류하며 1898년 신설된 파리의 스콜라 칸토룸에서 피아노 상급반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신장병의 일종인 브라이트병을 앓고 있었던 탓에 2년 만에 이 자리를 그만 두어야 했고,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된 끝에 1909년 5월 18일 비아리츠 근처의 캉보레뱅 온천에서 사망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몽 주익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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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곡 Evocación 회상 / 랑랑 [피아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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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곡 El Puerto 해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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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곡 El Corpus Christi en Sevilla 세비야의 크리스트의 성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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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그가 파리 체류 시기 작곡한 [이베리아]는 12개의 독립된 곡들을 각 세 곡씩 4집으로 묶은 일종의 모음곡 형식으로서 1905년부터 1908년에 걸쳐 작곡했다. 이 작품은 알베니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탁월할 뿐만 아니라, 스페인 음악을 통틀어 가장 창조적일 뿐더러, 더 나아가 피아노 작품 가운데 뭇 걸작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대작 중의 대작이다. 스페인 전역과 특히 안달루시아 지방(알베니스는 카탈루냐 태생이면서도 무어인의 기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의 ‘인상’을 피아노로 담아낸 이 [이베리아]는 단순히 드뷔시적인 인상주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단순한 풍경적 묘사를 담고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리스트로부터 물려받은 대범한 비르투오시티와 쇼팽의 감수성, 그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아치아카투라, 즉 불협화음과 여기에 대응하는 협화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방법 등이 스페인 선율 위에 펼쳐지는 이 작품은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에 버금가는 새로운 스페인의 인상을 담고 있다. 인상에 대한 승화된 그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만큼, 스케일도 크고 음색 또한 다채로우며, 화성도 대범할 뿐만 아니라 선율과 리듬의 창의성 또한 독보적이다. 무엇보다도 음향의 측면에서 p 다섯 개에서 f 다섯 개와 ‘가능한 한 세게’까지 셈여림의 진폭도 무척 크고 연주 테크닉 또한 난해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때 알베니스 자신도 이 작품을 연주 불가능이라 판단, 없애 버리려고까지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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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작곡가 이사크 알베니즈 <출처: wikipedia> | |
이 작품을 소개하는데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1901년부터 22년까지 알베니스와 함께 스콜라 칸토룸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던 프랑스 피아니스트 블랑슈 셀바(Blanche Selva)였는데, 그녀는 1906년 5월 9일 파리의 살르 플레이옐에서 1권을, 1907년 9월 11일 생-장-드-뤼에서 2권을, 1908년 1월 2일 폴리냑 공주의 파리 저택에서 3권을 초연했다. [이베리아]의 스페인 초연은 이 작품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로서 알베니스로 하여금 3권과 4권에 엄청나게 난해한 기교를 사용하도록 종용한 카탈루냐 출신의 피아니스트 호아킨 말라츠(Joaquin Malats)가 맡았다. 그리고 [이베리아]의 총4권은 각각 에르네스트 쇼송 부인, 블랑셰 셀바, 피아니스트 마르그리트 아셀망(포레의 연인이기도 했다), 피에르 랄로 부인(에두아르 랄로의 며느리)에게 헌정되었다.
스페인적 이미지와 강렬한 색채
드뷔시는 타당한 이유 없이 칭찬을 하는 법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가 알베니스의 창조적 천재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의 조국 특유의 풍부한 우수와 독특한 유머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최초의 인물이다.” 이러한 찬사는 드뷔시가 1913년 12월에 출판한 그의 최후의 콘서트 리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글에서 드뷔시는 [이베리아]에서 펼쳐지는 스페인의 이미지와 그 강렬한 색채에 대하여 상세히 기술했다. 이 리뷰에서 그는 한 편으로는 이 곡들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드뷔시 자신 또한 스페인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작품을 쓴 입장에서 극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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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의 6곡 트리아나는 스페인의 민속 리듬을 통해 투우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출처: NGD>
한편 또 다른 스페인 작곡가이자, 알베니스보다는 젊지만 동향인 파야는 [이베리아]를 가리켜 “열 두 개의 반짝이는 보석들”이라고 말했다. 모리스 라벨 역시 무용수 이다 루빈스타인의 요청으로 이 작품을 발레를 위한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려다가 [볼레로]를 작곡했고, 이후 올리비에 메시앙 또한 가장 적극적이고 열렬한 방법을 동원해서 이 작품을 옹호했다. “알베니스의 [이베리아]는 피아노의 기적이고 스페인 음악의 걸작이며 악기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피아노의 가장 찬연한 빛남 속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곡 Evocación 회상 [이베리아]의 첫 곡인 ‘회상’은 바스크 지방의 시적이고 느긋하며 환상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판당귀요(Fandanquillo)와 나라바라 지방의 무곡 호타(Jota)가 뒤섞인, 낭만적이면서도 모호한 몽상적 분위기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지방의 특징적인 양식들을 그려낸다.
2곡 El Puerto 해안 카디즈만(灣)의 조그만 어항 산타 마리아의 인상을 묘사한 ‘해안’은 유쾌하고 왁자지껄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안달루시아의 민요 폴로(Polo)를 바탕으로 플라멩고 춤곡 불레리아스(bulerías)가 가미된 이 곡은 단일 주제로 된 곡이며, 에피소드로 삽입된 세귀리야(Sequiriya) 같은 부분들은 처음 주제를 다소 어둡고 음울하게 변형한 것이다.
3곡 El Corpus Christi en Sevilla 세비야의 크리스트의 성체 강력하고 기복이 심한 표현력을 발산하는 “세비야의 크리스트의 성체”는 북소리와 함께 먼 곳의 종교 행렬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 쓰인 행진곡 주제는 세비야 지방이 아니라 부르고스 지방의 민요에서 가져온 것이다. 행렬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히스파니코 양식) 탄툼 에르고(Tantum ergo) 성가 첫 음이 나오는 순간 울리는 요란한 종소리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사에타(Saeta)를 거친 뒤 행렬 위로 밤이 내리면서 길고 느린 코다로 접어든다. | |
4곡 Rondeña 론데냐 안달루시아 지방의 론다의 지명을 딴 ‘론데냐’는 과히라스(Guaj iras)의 양식을 따라 3/4박자와 6/8박자가 번갈아 나타나며 멜랑콜릭한 말라궤냐(Malagueña)가 펼쳐진다.
5곡 Almería 알메리아 타란타스(Tarantas) 리듬으로 시작하는 ‘알메리아’는 대범하고 유연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분위기가 호타와 타란타스를 거쳐 다시금 우아한 분위기로 끝을 맺는다.
6곡 Triana 트리아나 세비야 교외의 한 지명으로서 흔히 파소도블레(Pasodoble)로 불리는 세비야나스(Sevillanas) 리듬과 토레로스(Toreros) 리듬이 교차하며 투우 장면을 묘사한다.
7곡 El Albaicín 엘 알바신 드뷔시가 카네이션 향기 가득한 스페인의 저녁 분위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엘 알바신‘은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맞은 편 고지대에 있는 집시 구역으로서 기타 스타일의 음형이 인상적이다.
8곡 El Polo 엘 폴로 “흐느끼는 기분으로”라고 지시된 ‘엘 폴로’의 비통한 분위기에 대해 메시앙은 “천재적이고 숙명론적인” 음악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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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는 스페인의 민속춤, 플라멩고에서 가져온 토속적 색채가 가득 담겨 있다. <출처: NGD> | |
9곡 Lavapiés 라바피에스 마드리드 번화가의 무용수들을 연상시키는 악장으로서, [이베리아]에서 유일하게 안달루시아와 무관한 곡이다. 마드리드 시내의 같은 이름의 명소에서 딴 것으로, 라틴 아메리카 풍의 리듬이 무도장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알베니스는 주된 제재를 안달루시아의 유명한 비안시코(Villancico) 춤곡에서 가져왔다. “경쾌하고 자유롭게”라 지시되어 있으며, 자극적인 불협화음이 특징이다.
10곡 Málaha 말라가 순수한 집시의 노래인 ‘말라가’는 말라궤냐를 소재로 했으며 자유로운 조바꿈, 코플라(Copla)의 떠다니는 듯한 화성, 주제의 대위법적 결합 등이 돋보인다.
11곡 Jerez 헤레즈 조용하고도 우아한 ‘헤레즈’의 풍부하고 복잡해지는 짜임새는 무어 지방 건축의 복잡한 아라베스크 무늬를 연상케 한다.
12곡 Eritaña 에리타냐 세비야 외곽에 위치한 여관 이름인 ‘에리타냐’는 끊미없이 소용돌이치고 활달하며 조바꿈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비야나(Sevillana)다. 유일하게 코플라가 들어 있지 않은, 격렬한 피날레 곡이다.
13곡 Navarra 나바라 나바라 지방의 전통무곡인 호타를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기교로 처리한 이 음악은 본래 [이베리아]의 마지막 4권에 넣으려던 작품이었지만, 알베니스는 이 곡이 “지나치게 서민적”이라고 생각하여 ‘헤레즈’로 대체해 넣었다. 그의 때 이른 죽음으로 인해 끝내 완성을 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스물여섯 마디는 알베니스가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가까이 지낸 바 있는 랑그도크 지방 출신 작곡가 데오다 드 세브라크(Déodat de Séverac)에 의해 완성되었다. | |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몬테프리오의 풍경 <출처: NGD>
추천음반 알베니스의 [이베리아]에 관한 최고의 해석가는 단연 알리시아 데 라로차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60년대 하이파복스에서 남긴 녹음(EMI)은 젊고 싱싱한 플라멩코와 같은 에너지로 가득 찬 녹음으로 길이 기억될만하고, 1986년 디지털 레코딩(DECCA)은 스페인적 열정보다 알베니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과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 가능성을 극대화한 희대의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 외에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의 최신 녹음(Hyperion)은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고도의 테크닉으로 듣는 이를 압도해버리며, 1권만 수록하여 아쉬움을 남기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음반(Teldec)은 작곡가의 탐미적 감수성과 라틴적 낭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탁월한 연주를 담고 있다. | |
- 글 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
-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발행일 2010.11.15
음원 제공 소니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