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5]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어데로 가는 배냐
어데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마음이 서럽다
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내 나이 어렸던 시절~~
잠시 읍내로 나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이었던가??
읍내 하나뿐인 극장에서 오후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확성기로 유행가를 틀어 주었던 기억이 있다.
밤에 극장 손님을 끌어 모기기 위해 포스터를 전봇대나 벽면에 풀칠하여 붙이고, 저녁 나절이면 극장 개막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었다. 유성기(?)로 틀어대던 곡목은 당시 유행하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그리고, [울어라 열풍아], [황포 돛대]는 주요 레파토리로 늘상 함께 하였다.
해서 학교에서 배우는 메기의 추억, 보리수, 한송이 백합화, 바우고개등 가곡보다 더 잘 불렀다.
1966년도~~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으로 기억된다.
당시 사촌 형과 나는 모처럼 살던 곳을 떠나 당시로선 제법 장거리(?) 여행을 갔다.
양가 부모님의 허락 하에 내 누님과 사촌 누님이 시집가서 살던 곳으로 떠난 것이다.
지금이야 교통이 좋아 몇 십키로 밖에 아니지만 당시는 도보로는 괘 거리가 있는 곳으로 처음 부모를 떠나 여행하는 것이 긴장되고 들떤 모습이었다.
내 누님은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있어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결혼 후 초년에 혼자가 되어(매형은 일본 징용으로 사망) 완곡한 친정아버지와 양반 시갓집의 유교적(?) 영향으로 평생을 홀로 사신 분이다.
시골 비포장 도로를 목(wood) 보디(body) 버스를 타고 합천 묘산면 0 0리로 모처럼 장거리 여행인 셈니다.
그 때 가본 큰 누님은 외로움 탓이었을까? 등에 업고 있는 밧데리보다 더 작은 트란지스터 라디오를 통하여 예의 이미자의 [황포돛대]와 [울어라 열풍아]를 유창하게 따라 부르고 가사를 배우고 있었다..
내가 살던 시골은 비교적 깡촌이라 당시 유행하던 유선 방송 스피커가 늦게 들어 왔다.
보리쌀이나 쌀을 주고 매월 방송 사용료를 지불한 기억도 있다.
낮이면 집집마다 바깥 세계의 소식을 들려주고 저녁이면 유행가를 틀어주던 추억의 유선방송 스피커였다.
나의 음악적 취미는 아마 이 유선 방송을 통하여 팝숑이나 연주음악 그리고 트롯트 음악부터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유선방송은 낮에는 라디오 방송 중계,,심야에는 전축 레코드 음악을 틀어 주었다.
내 부모님은 낮 동안 농삿일에 지쳐 있을때 또는 저녁 길쌈이나 모겟불 피워 올리고 평상에 누어 있을때 이미자의 노래는 일종의 피로 회복제, 청량제였다고 할까? 이미자의 노래가 흘러 나오면 부모님을 위해 볼륨을 슬쩍 크게 올려 준 기억도 있다.
이러한 어렸을 적 기억들이 ...살아 오면서...추억이 되어 지금은 이미자의 노래는 나의 애청곡중의 애청곡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자리잡았다.
황포돛대!!!!
지금에는 사라져 버린 운송수단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대형 운송 수단으로 큰 강을 끼고 있는 지방에는 포구와 함께 주막집과 함께 경제가 번성하였다. 느릿한 강물 위로 떠 다니는 돛단배는 낭만적 향수를 불어 일으킨다.
이 노래가 좋은 것은 멜로디가 느긋하고 완만하며 구성지다. 그리고 따라 부를 수록 정감이 가는 그런 노래이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 노래는 경남 진해 출신인 [이용일]씨가 작사하고, 유명한 [백영호]가 작곡한 곡이다.
전무후무한 가수 [이미자] !!!!!!!
지금 여기서 내가 언급하면 그 분의 명예를 더럽힐까 두렵다.
그녀를 표현할 언어도 찾기 어렵고,,,,,,,,,,,,,,,,,,,,,더군다나 평가할 능력도 없다.
신문 기사를 스크랩 할 수 밖엔~~~
""아득히 머나먼 길을 따라/ 뒤돌아보며는 외로운 길/ 비를 맞으며 험한 길 헤쳐서/ 지금 나 여기 있네….’
1989
년 가을, 개관 이래 11년간 국제가요제 같은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대중음악인에게 단 한 번도 무대를 내주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완고한 문턱이 데뷔 30주년을 맞은 두 명의 위대한 여왕에 의해 마침내 무너졌다. 첫 테이프를 끊은 이는 한국 스탠더드 팝의 디바 패티김. 그리고 한 달 뒤엔 광복 후 한국 트로트의 여제로 등극한 이미자가 한 세대 뒤 여왕의 계보를 이어받은 주현미의 경배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가 삼십 년간 영욕을 같이 했던 작곡가 박춘석의 헌정곡 ‘노래는 나의 인생’을 부를 때, 4000석에 달하는 세종문화회관에 운집한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은 격동의 현대사의 터널을 통과해 온 지난 시간들을 벅찬 감동으로 음미했다.
이미자의 애칭으로 오랫동안 붙여진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왕관은 그 이후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찬탈하지 못했다. 브라운관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하고 거침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한 패티김에게 쏠렸지만 이미자는 오직 노래의 힘으로 민초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음반 판매량 10만 장을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돌파한 주인공이 다름 아닌 이미자였으며 작곡가 백영호와 박춘석과 콤비를 이루어 기록한 히트곡들은 남진과 나훈아, 그리고 조용필의 기록을 크게 웃돈다.
이미자의 연대기는 우리 대중음악사의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적 약호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파란으로 얼룩진 한국현대사의 굴곡진 표정 만큼이나 영광과 상처를 두루 아로새겨 왔다. 열아홉 나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하여 1964년 ‘동백아가씨’의 전설적인 성공으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른 그의 고공 행진은 단순히 어느 한 ‘가수’의 이력서가 아니라 광복 이후 반일감정과 6·25전쟁 직후 미국 대중문화 붐에 의해 주춤했던 트로트의 왕정복고를 선언하는 조명탄이었고, 바로 그 지점부터 끊임없이 분출되었던 ‘왜색가요’ 시비는 이미자와 그의 장르가 숙명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의 생애의 이른바 3대 히트곡 중 ‘동백아가씨’와 ‘기러기 아빠’는 왜색가요로 몰려 1987년 해금될 때까지 21년간 방송될 수 없었고 ‘섬마을 선생님’은 ‘다와라보시겐바’라는 엔카를 표절했다고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가 1989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지만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 제3공화국의 이중 정책의 부산물인 ‘왜색과 저질’ 시비조차 이미자라는 여왕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녀를 정점으로 남진, 나훈아, 배호로 이어지는 새로운 남성 트로트 트로이카 체제와 김부자, 문주란, 조미미 등의 여성 보컬리스트까지 가세함으로써 트로트의 헤게모니는 더욱 공고한 아성을 구가하기에 이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전설을 가능하게 했을까? 무대에서의 동선이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던 이미자는 엔터테이너로서의 화려한 면모는 미약했음에 반해 한국 대중음악의 수용자들에게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꼽혀 왔던 보컬 해석력이라는 위대한 무기가 있었다. 그가 해석하는 트로트 음계의 애상성은 언제 어떤 노래에서도 기교적인 장식과 감정적 과잉을 엄격히 배제하고 중심과 포커스가 정확히 잡혀 있는 사진처럼 표현의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목소리’에 대한 그의 관리 능력은 거듭되는 음반 녹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그 향기와 광채를 잃지 않았고, 수많은 작곡가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오선지에 매달렸던 것이다.
패티김의 노래가 서구화를 향해 줄달음치는 도시 여성의 욕망을 정확히 반영했다면 이미자의 노래는 ‘조국 근대화’의 광풍 속에 해체되고 사라져 가는 공동체 속의 여인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그려냈다. 그의 노래 제목처럼 이미자의 노래들은 배반당할 운명의 순정과 그럼에도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 아롱지는 한국판 ‘여자의 일생’인 것이다.""
- 강 헌 대중음악 평론가 -
황포돛대~~~
한 번 다시 들어 보자~~찰랑찰랑한 젊은 시절 그 목소리로~~~
애절하다. 뭔가 사무치는 듯 내 가슴이 져민다.........애잖하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 진폭이 적은 바이브레이션~~~~
누가 이 처럼 똑 같이 흉내를 낼수 있을까~~
나의 이미자 애청반은 울어라 열풍아, 동백아가씨,빙점, 아씨등이 수록된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이미자 스테레오 일대작 제1집(일명 "백영호"작곡집)을 소장하고 있다.
내 부모님,,,,,어렸을 적 추억이 생각나면 꼬~옥 이 곡을 찾아 듣는다 . 그것도 야밤에.....비가 오면 더욱 좋고,,,
그리고, 처녀시절 녹음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음반의 바늘 긁는 스크레치 소리는 정욱 정감 간다...
나의 필청 음반이다.
황포돛대.w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