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형렬이 주간인 계간지 <시평>의 특집 청탁에 응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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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삶의 원 포인트 프로젝트
김완하(시인․ 한남대학교 문창과 교수)
봄빛이 밝다 못해 극도로 찬란한 오후, ‘시창작 실제’ 수업의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다. 잠시만이라도 눈길을 밖으로 돌리면 세상이 온통 꽃 천지인지라 교수입장에서도 솔직하게 말하면 수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강의실 안으로도 쉬지 않고 꽃들의 몸살이 저리도록 안겨드는데, 이 한 많은(?) 청춘들은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와서는 이 봄날 오후 시창작에 대해서 강의를 듣기 위해 이곳에 몰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또 다시 훅하고 꽃의 열기가 가슴으로 밀려든다. 이 상황에서는 시창작을 강의하는 교수로서 미안하기도 한 심정이다. 그래서 교수는 두 시간 가운데 나머지 한 시간은 벚꽃 아래로 나가 야외 수업을 하기로 한다. 그때 학생들의 환호성이 벚꽃처럼 터진다.
그때 교수가 묻는다. “여러분 ‘전업작가’란 무엇인가요?” 어디 이런 뻔한 질문이 있을까. 학생들을 향해 다가선 이 질문에 잠시 후 그들은 대답한다. “네, 문학을 함으로써 경제력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작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작품을 써서 그것을 팔아 밥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학생들의 생각이기 보다 우리 사회가 통념으로 믿어오는 상식정도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문학을 하고자 하는 결정 앞에서 가장 주저하게 되는 문제기도 한 것이다. 바로 문학과 삶, 문학과 밥의 그 문제!
교수는 3월초 수업시간에 새내기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입학을 진실로 환영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문학을 하겠습니까?” 학생들은 대답했다. “네,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습니다. 방송 드라마 작가가 되겠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러한 답변에 익숙해 있다. 이것도 쉽게 말한다면 돈이 되는 문학을 하겠다는 것이다. 유명해져서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윤택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보다 쉽게 유명해지고 쉽게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리라. 문학도 하고 돈도 벌고 싶다는 것, 그것을 누가 탓하겠는가. 그러나 거기에도 또한 문제는 있다.
돈과 명예와 문학과 진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쉽게 말해서 ‘원 포인트’로 해결할 비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대학 교수로서 매년마다 40명씩 몰려들어오는 문예창작학과의 선생으로서, 학과장으로서 학생들 앞에 섰다면 그들에게 이 모두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비법으로서의 금방망이나 은방망이는 아니더라도 어떤 처방 정도는 통쾌하게 내려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 해마다 새내기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면서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을 좀 더 쉽게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가. 우리 대학의 문창과는 올해로써 신설 8년째를 맞고 있다. 그 사이에 시인 2명, 소설가 1명, 동화작가 1명이 나왔어도 아직까지 시나리오 작가, 방송 드라마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는 나오지 못했다.
그게 그런 것이다. 언젠가 신학대학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는데, 신학대의 학생들은 1학년 때는 목사, 2학년 때는 전도사, 3학년 때는 집사, 4학년 때는 평신도가 되어 간다고 신학대 학생들의 신앙에 대한 자세를 풍자하는 말을 들었다. 나의 제자 중에도 영화감독을 꿈꾸면서 그래야 안 되도 조감독....., 지나가는 사람, 아니면 비디오 가게 주인이라도 된다고 해서 웃었던 적이 분명히 있다. 물론 시나리오 작가나 방송 드라마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거기에는 인식의 차이가 반드시 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장르를 선택하는 데에도 자신의 신념이나 열정보다는 쉽게 삶이 해결되고 빨리 유명해지는 쪽으로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다시 ‘시창작 실제’ 강의실이다. 교수는 말한다. 여러분들의 대답은 대단히 옳다. 그러나 옳은 것하고 정답하고는 차이가 있다. 나는 우리의 문학이 밥이 안 돼서 발전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생각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리고 밥이 된다고 하여 문학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고 하는 것과 그들이 진실로 가치 있는 작품을 쓴다고 하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고 판단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것과 성과는 곧 일직선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즈음 우리 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 점에서 문예창작학과가 위기라고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보자. 우리 학과는 지금 한창 성장해가고 있지 않는가.
엊그제는 서울의 모 저널과 기획사에서 전화 두통을 받았다. 그 하나는 주간 저널을 발행하는 곳으로 제자 중에서 여기자 한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고, 기획사에서는 대전의 수자원공사 40년사를 편찬하는 일을 맡아하면서 여성 보조 작가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것은 전화를 받은 즉시 학과 조교에게 알아보라 했는데 여학생들이 다 취직을 하였기에 금방 대상자를 선발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검토를 거쳐 두 곳에 모두 제자를 추천하였고, 그들은 지금 다 일을 잘하고 있다. 그만큼 문예창작학과를 나오면 다른 학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교수는 그러한 것과 달리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전업작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한다. 전업작가란 밥의 문제를 필두로 해서 설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전업’이란 ‘올인(all in)’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업작가란 작가에 올인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의 출발에서부터 작가로서 어떻게 밥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전업작가가 아니다. 그것은 문학을 통한 밥벌이다. 문학이 밥벌이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문학에 올인 할 수 있을까, 작가로서의 삶에 올인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전업작가다. 그리고 문학을 위해서 올인 하면 반드시 좋은 작품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러면 작가로서의 브랜드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당연히 밥이 해결된다. 학생들도 이미 그러한 작가들을 보았지 않았는가.
그러기 위해서 문예창작학과의 학생들은 27세 이후에 가서나 취업에 대해서 골몰했으면 한다. 취업이 어려운 만큼 미리미리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겠지만, 교수는 학생들이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 보다는 ‘전업작가’로서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러기에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취업을 염두에 두고 이것일까, 저것일까를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4년 동안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졸업하느니 아예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취업의 문제는 27세 이후 정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믿고 뒤로 미루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4년 동안에는 대학생활에 최선을 다해서 문학을 공부하고 좋은 작품을 읽고 또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적어도 정확한 문장은 구사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만 있어도 밥은 굶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취업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문학의 기초를 충분히 다졌고 일정한 성취를 이룬 상태라면 학생들은 ‘전업작가’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문학을 포기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이 학생들이 문예창작학과에 들어와서 두 가지를 동시에 얻게 되는 ‘원 포인트 프로젝트’인 것이다. 학생들이 귀를 기울이는 듯한 사이에도 봄꽃들의 열정은 대지를 뒤흔들고 봄빛의 찬란한 꽃무리를 이루어 강의실 안으로 들이대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성급한 판단과 관심으로 문학의 현장을 앞질러 가면서 벌이는 여러 유형의 담론들에 대해서는 다소 목소리를 낮추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보다는 문학을 향한 내적 성찰을 보다 뜨겁게 하라는 외침과 좀더 깊은 정신의 탐구로 나아가는 노력을 펼치기를 촉구해 주었으면 한다. 삶의 문제는 좀더 천천히 생각하고 무엇보다도 문예창작학과 학생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소양을 쌓고 다지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것이 문학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전업작가라고 생각한다.
김완하
019-470-7726
306-791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 약력 >
경기도 안성 출생
1987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
첫시집 <길은 마을에 닿는다>
계좌번호
국민은행 451-21-0739-517(예금주 김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