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 시험 문제의 전반적인 특징은 일단 한국교육평가원 측의 '쉽게 출제한다'는 원칙하에 통합교과서적인 소재를 활용, 고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생활에서 얼마나 활용할 수 있나를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리탐구I은 지난해보다 쉽게 내고 다른 영역은 지난해와 같거나 다소 쉽게 출제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방침에 맞추어 참신한 소재를 활용한 새로운 내용의 문항과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졌으며, 전반적인 난이도도 비교적 작년 수준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아진 경향이었으나, 유독 언어영역의 경우는 작년에 비해 다소 어려워졌고 특히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입시직후 중앙, 종로, 대성학원 등 주요 입시관련 기관에서는 전반적으로는 4-6점 정도의 성적 향상이 기대되나 언어영역은 적게는 4점에서 많게는 8점정도의 점수하락을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 출제의 기본 방향
언어영역의 출! 제! 에 있어서 평가원은 기본적인 출제 방향을 "일상 생활에서의 전반적인 언어 활용 능력 측정"이라고 밝혔으며, 이를 위한 세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이한 문제를 내되, 학교교육과의 연계성을 위해 지문은 교과서와 관련해 출제한다.
둘째, 문학감상, 맞춤법, 사전활용, 경어법 등 교육현장에서 소홀하게 다루는 분야를 출제한다.
셋째, 실제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출제한다.
- 출제 지문과 문제 유형
문학지문은 소설에서, 김유정의 [동백꽃]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시에서, 정지용의 [향수] 김광균의 [외인촌] 고려가요 [청산별곡] 등과 수필로 현진건의 [불국사기행]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 비교적 명작 중심으로 출제되었다. 비문학 지문에서는 [세종대왕의 음악정책] [언어의 특질] [루소의 교육사상] [물질적 풍요추구의 문화적 가치판단] [우리식의 수학적 사고] 등이 출제되었으나 다소간 인문사회과학 쪽에 보다 치우친 감이 있었다. 지문의 수는 통상 10개에서 9개로 줄었다. 이것은 평가원 측의 기본 방침인 '쉽게' 출제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며 많은 수의 수험생들이 시간이 모자람! 을! 호소했던 점이 반영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지문을 통해 많은 질문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의 유형이 다양해졌고 지문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도 요구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전반적인 난이도의 상승을 초래하였다.
출제 문항은 기존의 65문제를 그대로 고수하였고, 문항들이 담고 있는 큰 틀에 있어서는 예년의 경우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묻는 내용은 평이한 것이었지만, 통합교과적 기준과 실생활의 적용이라는 측면이 강조된 문제가 상당히 많았으며, 기존의 것과 비슷한 내용을 묻는 문제이더라도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 점이 부각되었다. 가령 언어사용의 실제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어법이나 화법에 관련되는 문항은 예년에 비해 3배 정도 많이 출제되기도 하였다. 이런 점들이 수험생들로 하여금 낮설고 힘들게 만든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문제의 분석과 평가
듣기평가에서는 실제 방송된 뉴스프로그램에서의 기자의 보도를 들려주면서 기자의 취재태도를 묻는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었으나 난이도란 측면에서는 별다른 상관관계! 가! 없었다. 다만 문제 2번은 실제 화법과 관련되는 역시 새로운 유형의 문제로서, 이번 수능언어의 전반적 출제 경향이 <언어의 실제적 사용>이란 측면을 강조한 점과 연관되는 것이란 점에서, 다음 2001년도를 대비해서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7번부터 12번까지의 쓰기관련 부분에서는, 홍보물의 제목을 달게 한다든지, 거꾸로 된 지도를 제시하여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든지, 개요작성을 퇴고와 관련시켜서 낸다든지 하는 등, 상투적인 물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이 보였다. 그러나 일정정도만 기본실력에 충실하다면 어렵게 느낄만한 문제들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6문제 중에서, 글의 퇴고(2), 자료의 수집 및 활용(1), 제목달기(1), 맞춤법(1) 등 실제적 언어생활이 강조된 문제들이 압도적인 점이 큰 특징이다. 이는 기존의 출제에서 요약, 글의 전개방식, 문장들의 논리구조, 단락구성 등과 관련된 원론적이고 상투적인 문제들을 지양하고 있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시 부분은 고전시가 두 편과 현대시 두 편이 지문으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지문에 대한 문항 수가 9개나 되어서 매우 이색적이었다. 제? 천! ?시들 중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다소 부담이 되는 외에, 나머지 작품들은 시중의 문제집이나 모의고사 등을 통해 수험생들이 자주 접했던 작품들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시를 어렵게 여기는 학생들이 많은 데다가 지문에 따른 문항 수가 9개나 된다는 점이 작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들은 시적 화자의 성격, 화자의 태도, 발상법, 표현법, 시어의 기능 등 시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평이한 내용의 질문들로 이루어졌다. 32번의 후렴의 기능을 묻는 문제나 37번 내재적 접근 방법에 따른 감상을 묻는 문제 등은, 시 관련 문제에서 항상 강조되고 있는 문제들이면서 근간에 출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은 근래 몇 년간의 기출문제 뿐 아니라 오래 전 대학별고사나 본고사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문제들을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한 대비책이 됨을 시사해 준다.
소설 부분의 지문은 교과서에 실린 김유정의 [동백꽃]과 김만중의 [사씨남정기]가 제시되었다. [동백꽃]은 익히 다루어 본 내용이라 내용 이해에 부담이 없었고, [사씨남정기] 역시 고전소설 작품들의 일반적 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어서, 고전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 途! ?관련문제를 조금이라도 풀어보았다면 어렵게 느껴질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제시된 소설지문의 스토리 라인의 전개와 주인공의 성격, 심리상태 등을 파악하면 무난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동백꽃]의 59번 문제는 시점과 관련되는 문제로 시점의 효과를 묻는 문제였다. 소설에서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며 출제자의 입장에서는 난이도를 높히기 쉬운 부분이 시점과 서술자에 관련된 문제인데, 이런 점에서는 평이하게 출제되었다 하겠다. 그러나 이 시점 및 서술자 문제는 소설의 이해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만큼 언제나 출제될 수 있는 것이고, 또 문제 풀이시에 보다 정밀한 독해가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 비해서 보다 깊이있는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씨남정기] 지문의 52번 사씨의 심정을 묻고 있는 문제는 그 해답이 되는 선지가 굴원의 죽음을 제재로 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33번 문제의 굴원의 어부사와 관련된 문제와 내용상 중복되는 것이어서 이번 출제의 다소 매끄럽지 못한 면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이번 수능에서 가장 독특했던 부분은! ? 儲珝?화법 정서법 등 국어의 실제 생활에서의 사용이란 측면에 중점을 둔 문제들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2번 문제는 듣기에서의 화법의 유형을 묻고 있고, 22번은 '말'이란 어휘의 다양한 운용, 30번은 '그리다'란 어휘의 사전풀이에 대한 이해, 43번은 '가공'이란 어휘의 사전적 의미를, 56번은 '쌩이질'이란 어휘의 의미를 묻고 있다. 또 18번은 '글슬'이란 어휘의 의미전이와 관련된 문제이며 9번과 11번은 글의 퇴고와 관련된 문제이고, 48번에서는 속담을 16번에서는 한자성어를 묻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어휘나 어구의 운용면에서의 미세한 차이?이해하느냐 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은 글 전체의 맥락과도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시 언어영역에서의 고득점을 위해서는 단순한 문제풀이와 병행해서 다양한 글들을 읽는 연습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지문은 서구식 연립방정식과 비교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수학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주는 글이다. 연립방정식의 의미를 '난법가'의 문제와 관련해서 물어보는 63번 문제는 글의 독해와 더불어 기본적인 수학적 추론을 함께 ? 갼! 咀릿?새로운 유형의 문제여서 적지않은 수험생들이 당혹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문제 자체의 난이도는 중학생 정도의 수학적 지식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이나 유형의 낯설음이 많은 수험생들로 하여금 시간을 소비하게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까지의 수능 대비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었던 점을 반성하게 한다. 즉 이제까지의 수능대비는 기존 문제를 풀이해 보거나 모의고사나 수능문제집들에서 계속 반복되는 유형의 글들만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자주 대하던 것과 조금만 글의 유형이나 전개방식이 독특해 지더라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 준다. 기존의 문제에서 자주 대하던 유형의 글 외에, 다소 난해한 개념이 사용되었거나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글, 긜고 신문이나 전문잡지의 기사, 역사서적 등 문제와 직접 관련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글과도 접하는 기회를 수험생 스스로가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망
출제 직후 인터뷰에서 교육과정평가원장은 수능시험의 난이도에 대해서, '이보다 더 쉽게 출제할 수는 없다. 이보다 ! 더! 쉬워지면 수능으로 변별력을 가지겠다는 생각자체가 무의미해 진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이 시사하는 점은 수능시험에 대한 대비가 너무 쉬운 문제 풀이 중심으로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언어영역은 지문의 종류와 문학관련 문제에서의 조그만 차이가 커다란 난이도의 편차를 가져오게 됨을 유념한다면, 수험생 여러분들은 이점을 염두에 두고 너무 '쉽게 출제한다'는 말을 너무 과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수능문제에 있어서 80% 이상이 제시문의 주제를 파악하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리고 글의 주제와 함께 글쓴이의 의도를 결부시켜 독해하는 것이 곧 고득점의 지름길이 된다. 이것은 다만 글 전체나 단락의 주제를 찾아내는 것 뿐 아니라 지문 중의 어구나 어휘 하나도 글 전체의 주제 혹은 글쓴이의 의도라는 큰 틀에 비추어서 가늠해 보아야 한다는 점도 더불어 숙지해야 할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는 이번 수능시험도 전반적인 맥락에 있어서 예전의 출제방향과 같다.
속담이나 한자성어는 항상 빠지지 않고 출제되어 온 것인데, 이들은 다른 부분에 비해 적은 노력으! 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속담이나 한자성어를 묻는 문제는 비교적 평이한 내용을 물으면서 속담이나 한자성어에 대한 이해도 결부시키는 유형의 문제가 대부분이므로, 쉬운 문제를 이들 속담이나 한자성어를 몰라 놓치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언어의 실생활적 적용이란 차원에서의 문항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어휘능력만을 묻는 것은 아니고, 전체주제나 글쓴이의 의도 파악이라는 큰 맥락 하에서 묻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법이나 국어정서법 자체도 대단히 비중있게 준비되어야 함을 내비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대비는 수험생들이 언어영역 문제에서 주어진 지문 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난이도의 글을 접해 보는 노력이 있어야 함을 말해 준다. 즉 틈틈이 텔레비젼의 뉴스나 다큐멘터리 그리고 신문의 칼럼이나 사건기사의 해설부분, 잡지의 에세이 등을 통해 다양한 내용의 주제와 개념들을 접할 필요가 있다. 또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철학 등의 내용을 담은 다소 어렵고 난삽한 내용의 글도 몇 편 정도는 접해보아서 어려운 개념들을 담은 난해한 글들이 주제! 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가에 대해 눈에 익게 하는 것도 요구된다고 하겠다.
문학 관련 문제는 시 지문에서 9문제, 소설지문에서 11문제, 수필지문에서 6문제가 출제 되는 등, 총 26문제가 출제되었다. 이는 약 40%가 문학지문과 관련된 문제라는 뜻인데, 그만큼 문학적인 글이 수능에서 차지하는 영향이 큼을 의미한다. 수능에서 문학지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요 몇 년간의 추세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 폭이 매우 크게 증가한 것이다. 특히 고전문학과 관련되는 문제는 다른 문제에 비해서 난이도가 낮은 편인데, 그것은 고전문학에 대한 수험생들의 거부감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실제로 고전문학에서 출제될 만한 작품들은 한정되어 있어, 오히려 적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영역에서 이 고전문학에 대한 대비라 하겠다.(예를 들어, 향가에서 출제가능한 작품은 4편 정도, 고려가요에서는 5편 안팎, 가사에서는 7편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이번 수능에서는 한문학이나 한문 번역문은 출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문으로 된 조선시대 글들 중에는 아주 중요한 글들이 많으므로 이 부분도 항시 ? 類! 舟瞞?할 부분이다. 교과서의 [차마설]이나 [기예론] [슬견설] 그리고 여성수필로서 [관북유람일기] [규중칠우쟁론기] [조침문] 등은 이런 점에서 매우 출제 가능성이 높은 작품들이다.
고전소설은 국문학사상 의미있는 명작들이 출제되어 왔다. 따라서 이런 작품들을 중심으로 대비하되 그 중요성에 비해 아직 출제되지 않았던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예를 들어 [운영전]이나 [숙향전] 등) 그리고 작품 전체를 다 읽어보지 않더라도, 고전소설의 몇 가지 유형별 스토리 라인을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한 대비 방법이 된다. 고전소설이나 현대소설 모두 이번 시험에서는 예년의 출제경향과 비교해서 큰 차이는 없고 오히려 전반적인 난이도를 하향 조정하려 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시점과 관련된 부분(서술자, 서술태도, 거리 등)은 언제나 잘 대비해야 할 대목이다.
시 부분은 문항 수가 많는 특이점이 있으나 문제의 유형은 기출문제들에 비슷한 경향을 보였고 난이도도 비교적 평이했다.
시나 소설에서 앞으로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 하나는 월북작가의 작품들이다. 소설에서의 이태준 홍명희 등과 시에서의 백석이나 이용악 ! 등! 의 작품은 그 문학성이나 문학사적 위치에 있어서 기출되었던 작품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것으로, 단지 월북작가란 사실 때문에 기피되었던 것들이다. 이들 작품이 해금(解禁)된 지도 이제 10년이 넘었으므로 다음 수능에서 출제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서강대 정종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