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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허. 기어코 자네가 남의 아픈 곳을 찌르는구먼. 허허허. 비겁한 것이지. 지나간 세월을 빙자해 ‘이제 나는 이미 쓸모없어진 늙은일세’ 하면서 비켜나 앉은 늙은이의 뻔뻔함인 게지. 다른 하나는 자네 스승이나 자네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가? 아마도 지금 자네 스승의 속내도 하루빨리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처럼 세상살이에 달관한 듯 한걸음 물러나 앉고 싶을 게야. 아무렴. 아무렴 그럴게야. 그 사람이나 나는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이제부터 자네가 모든 것을 하게 될게야. 잘 해나갈 걸세 자네는.”
“부족함만이 점 점 커가고 있습니다.”
“허허허. 그것은 부족함이 커가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야. 자네의 사람됨이 커간다는 것이지. 점 점 해야 할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지. 허허허. 볼수록 자네는 내 젊은 날을 꼭 닮았네. 마치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으이. 그래서 더 걱정이 되는 것도 있는가 하면 다분히 마음이 놓이는 것도 있다네.”
“하오시면, 가슴속 울분을 어찌 참으셨습니까?”
“안 참았지. 그 불덩이를 왜 가슴에 담고 아파해야 하는가? 나는 참지 않았네.”
“하오시면서 제게는.......”
“세상이 변하지 않았는가?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시행착오의 시기를 겪어간 사람이고, 자네 스승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침묵으로 일관한 사람이고, 이제 자네는 새로운 길을 가야하는 사람이라네. 내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으나, 자네가 가는 길을 꼭 지켜보겠네.”
“아직은 스승님이 계시옵니다.”
“아닐세. 자네 스승이 자네를 내게 보낸 뜻은, 이제 자네의 때가 되었음을 내게 알리려 보낸 것이라네. 또 그는 느끼고 있었던 게야. 세상의 흐름이 지난날 내가 시행착오를 겪었던 혼돈의 시대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도 실패를 했지만, 그 사람 또한 이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할 자신이 없어진 게지. 그래서 이참에 자네에게 떠넘기기로 마음을 정하고 오늘 자네를 보낸 것임이야.”
“어찌해야 하겠사옵니까?”
“자네가 선택할 문제 아니겠는가? 그간 혼돈의 세상을 주유하며 이치를 깨달은 자네가 선택하고 결정해야지, 한낮 괴산현(槐山縣)의 관노(官奴)인 내게 물어볼 말씀이 아니지 않겠는가? 허허허허.”
노인은 자신의 가느다란 손을 들어 수염을 쓸어내렸다.
“허면 별다른 뜻 없이 한번 들어보시겠나? 이미 자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네만,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일세.”
노인은 이미 지워버렸던 기억을 되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병자년(1216) 이었네. 북이(北夷)의 무리인 거란(契丹)이 쳐들어 왔네. 대단한 위세였지. 아무런 거칠 것 없는 말 그대로 태산도 단숨에 무너뜨릴 기세였지. 머잖아 하삼도(충청. 경상. 전라도)를 점령하고도 남을 대단한 기세였지. 그때 우리 형편이 어떠했겠나? 정 중부.이 의방. 이 의민. 경 대승이 번갈아 난을 일으키며 세상을 핍박하더니, 뒤이은 최 충헌은 그들보다 더 잔학무도 하지 않았는가? 잔혹한 무신들과 환관들과 승려들이 온통 세상을 짓밟지 않았는가? 온통 수탈과 약탈뿐이었지. 허긴 나라가 망한 후(936년 후백제 멸망) 우리네 삶이 한시인들 달리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이었지만,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가기에도 벅찬 우리는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었네. 거기에는 무능한 고려조정과 횡포한 무신정권이 우리들을 가축만도 못하게 처우했던 이유도 있었고, 자운선(紫雲仙)의 기생 상임홍(上林紅)과 순천사주의 직접적인 수탈을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네. 그래서 오랜 장고 끝에 나는 거란의 제의를 선택했고 받아 들였네. 실로 오랜 시간 뼈를 깍듯이 고뇌한 결과였고 당시로서는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 생각되었네. 그래서 그들의 길잡이가 되었네. 그들 전쟁의 앞잡이로 비로소 비장이 된 것이지. 어느 정도의 우리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지. 머지않아 새로운 백제도 다시 세울 수가 있다고 믿었지. 그런데 오랑캐는 역시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네.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고려 조정의 시간 끌기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2년 후(1218년) 강동성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지. 그와 함께 우리의 꿈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나와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네. 저들은 잔인했고, 포로가 된 우리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에 겨웠다네. 저들이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네. 저들끼리의 싸움에 불려 다니며 전쟁도 치루고 살인도 하고 방화도 하고 약탈도 하고, 그도 아니면 늘 상 노역장에서 살았지. 어느덧 나이 들어 쓸모가 없어졌는지 괴산현에 관노로 보내더군. 처음엔 감시가 심하더니, 이젠 어디 가서 조용히 죽기를 바라는지 아무도 찾지를 않는다네. 덕분에 늘그막에 이렇게 복을 누리게 되는구먼. 사나흘건너 겨우 얼굴만 비추면 ‘영감. 아직 살아있었네’ 하고 놀릴 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네. 그러니 내 나이 이제 일흔 넷에 이렇게 이곳에 와서 자네도 만나고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게지. 내가 없는 동안에 다행히 무리를 잘 수습해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사람 자네 스승의 공이 결코 적지 않음일세. 당연히 힘들었겠지. 그 사람 성품으로 많이 두려웠을 게야. 그 사람 성격에 꽁 꽁 숨어서 지내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디 나다니지도 못했을 게야. 그래도 이만큼 맥을 유지하고 이끌었으니 큰일을 한 것이야 틀림없으이. 안 보았어도 눈에 선하네. 그 사람이 가슴 졸이며 무리를 이끌고 숨어 다녔을 일들이. 그리고 이제 바야흐로 그 모든 일들이 비로소 자네 몫이 되었네. 자네를 필요로 하는 때가 되었음이지.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자네를 의지하는 그네들의 수가 얼마인가?”
“저라도 큰 어르신이 택하신 길과 그리 다르지 않을 성 싶습니다.”
“아니지. 자네는 결코 나와 같진 않을게야. 늘 깨어서 준비하며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있을게야. 내게야 무자리(水尺. 양수척)의 수괴(魁首) 라는 호칭도 과분한 것이었으나, 자네는 결코 화척(禾尺)에 머물지 않을게야. 보다 높은 곳에서 크고 넓게 보고 잔잔한 호수처럼 깊게 생각하며 가시게나. 큰 걸음으로 달려 나가기보다는, 뒤에 처지는 자들의 발걸음에 맞추며 영속성이 있는 길을 가게. 언젠가는 자네가 꿈꾸는 그곳에 다 닿을 수 있을 것일세. 암. 자네는 꼭 그리될 것일세. 그리고 예서 동쪽으로 70 리에 월악산(月岳山)이 있네. 이번 기회에 꼭 올라 보시게. 그곳에 올라보면 느끼게 되는 것이 있을게야. 그 산 아래 계곡을 살펴보면 천혜의 요새인 산성이 있다네. 그곳을 거쳐야 봉우리에 오를 수 있을 테니 유심히 살펴보시게나. 일찍이 견훤대왕(甄萱大王)께서 이 산성(덕주산성.월악산성)을 둘러보시고 감탄을 하셨던 적이 있다네. 이궁(行宮)을 삼으려 손수 터 까지 잡으셨으나, 왕건의 침입으로 그 꿈을 접으셨던 곳이기도 하지. 그 후로 잠시 와락산(꿈이 와르르 무너짐) 이라고도 불렀다네. 유심히 살펴보시도록 하시게. 훗날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니......”
그때, 어디선가 낯선 인기척에 노인은 서둘러 입을 닫았다.
지평이 지극히 날랜 동작으로 바위 둔덕을 넘어 나아갔다. 저만치 아래 소나무 우거진 숲 속으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앞장 선자는 틀림없는 승비였고, 그의 걸음을 따라잡느라 다소 힘에 겨운 표정의 금례와 검은 무복 차림의 사내 둘이 그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이라고는 하나 금례의 어여쁨에는 세월도 반해 비껴가는 것만 같구나. 또한 양 볼에 도화(桃花.복숭아꽃) 열매 하나씩을 달았으니, 그래 나를 간만에 만난 것이 그렇게도 감격스럽더냐? 하하하하.”
갑작스레 내뱉은 노인의 농담에 금례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귓불까지 빨개졌다. 펼치던 음식 보따리를 그만 바닥에 놓쳐버린 것이다. 눈앞의 상황을 모두 익히 아는지라 지평과 승비와 사내 둘도 고개를 뒤로 돌리고는 터져 나오는 웃음들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다.
상황을 모면케 해주려 지평이 입을 열었다.
“큰 어르신. 실은 전하여 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스승님께서 큰 어르신께 서찰을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특별히 당부하시기는 매우 중요하게 간직하였다가 꼭 친히 전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지평은 품속을 뒤져 깊이 잘 갈무리 해두었던 서찰봉투를 하나 꺼냈다. 크지는 않았지만 서찰 위로는 오색실을 꼬아서 둘러 묶어 엄중히 봉함을 해둔 서찰이었다. 지평은 정중히 서찰을 노인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노인은 갑자기 심각한 상황을 겪는 듯, 긴장된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평이 내민 서찰을 한참을 노려보기만 하였다.
정성껏 준비해온 음식들을 풀어놓고 잔을 나누어 술을 따르던 금례의 손길마저도 멈추어졌다. 노인의 표정을 눈치 챈 모두의 얼굴에 순간처럼 긴장감이 돌았다.
한참 동안을 노인은 전혀 미동도 없이 정지된 듯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잠시 무엇인가 중얼거리더니, 물끄러미 앞에 앉은 지평을 바라다보았다.
“그 사람이 내게 보냈다고는 하나, 자네가 가져온 그 서찰이 기실은 자네에게 보내진 것이라네. 단지 내 앞에서 받아보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자네가 받도록 하게나.”
“분명 큰 어르신께 직접 전하여 드리라는 당부셨습니다.”
“글쎄. 그런 줄은 알겠으나, 실은 그것이 자네에게 보내진 서찰이라니까?”
“애초 그런 일이라면 스승님께서 제게 직접 말씀하실 일이시지, 이렇게 서찰을 큰 어르신 앞을 통해 보내실 이유가 없질 않겠사옵니까?”
“그 사람이 그리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허니 자네가 서찰을 열어 보도록 하게.”
“그리할 수는 없사옵니다. 큰 어르신께서 이 서찰을 받아주십시오.”
“허허허. 어찌 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가? 이는 자네에게 보내진 서찰이니 자네가 받아보라 하지 않는가? 애초 내가 그 사람에게 보냈던 서찰이, 이제 다시 자네에게 보내어 져 왔는데, 내 이미 다 아는 서찰을 내게 다시 보낼 필요나 내용을 펼쳐볼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네? 하오시면 이 서찰이 애초 큰 어르신께서 스승님께 보냈던 서찰이란 말씀이십니까? 내용도 이미 아시고 계시고요?”
“어허. 지평이 자네가 어찌 이리도 내 말에 토씨를 달고 따지려 든단 말인가? 이는 분명 자네에게 보내진 서찰이니 자네가 열어보라 하지 않는가? 천 쪼가리에 달랑 글자 하나가 쓰여 졌을 뿐인 것을.......... ”
노인의 진노한 표정을 보자 지평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평은 노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절을 올려 예를 표한 후 서찰을 집어 들고 오색실로 봉해진 봉함을 풀었다.
봉함 안에서는 가로 세로 두 뼘 정도인 쪽빛 비단조각이 나왔고 한 모서리에 하얀 색실로 수를 놓은 글자 하나가 보였는데 백(白)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지평은 떨리는 손길로 비단 조각을 꺼내들고는 노인을 바라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새로운 거자(鉅子)가 나타났으니 의당 유자(遺者)로서의 예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이 순간부터 여기 지평이 우리 유민(流民)들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모두 그를 받들고 따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승비가 앞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 예를 갖추었다.
“모든 부족민이 모이고 절차상의 의발(衣鉢)을 갖추었어야 하나, 작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그 사람이 서둘러 자네에게 막중한 책임을 선양(禪讓)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였으니, 부디 그 깊은 뜻을 헤아려 주시게. 부족한 이 노인네가 새 거자에게 예를 갖춤으로 부족한 절차와 의발을 대신하고자 하니 부족의 유자들을 대표한 나의 절을 받아주시게나.”
노인은 지체 없이 바닥에 엎드려 지평을 향해 절을 올렸다.
황급히 지평도 노인 앞에 엎드려 맞절을 드림으로 노인에 대한 한없는 감사와 존경의 예를 받쳤다.
충주 목(忠州牧) 읍성(邑城)의 기찰포교 노 인달(盧牣獺)은 상대의 칼날이 어깨를 향해 내리쳐 오자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비틀며 두어 걸음 밀려났다.
그때 무엇인가가 그의 복부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무엇인가에 의해 몸이 집어던져진 듯 퉁겨져서는 그대로 담벼락에가 부딪쳤다. 단말마적인 경련이 일었다. 극심한 통증과 함께 두려움이 전신을 엄습했다. 그러나 발길질로 자신의 복부를 걷어찬 사내는 예서 멈출 생각이 아니었다. 몸을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극심한 통증에 대한 공포만 머리가득 찼을 뿐 마음먹은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상대가 몸을 날려 재차 발길질을 날려 왔다. 노 포교는 두려움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억’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순간처럼 노 인달은 자신의 눈과 입을 의심했다. 자신의 입이 지금 의지와 상관없이 비명을 토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 순(禹侚) 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기찰(譏察) 임무에 나선 신참포교 우 순 이었다. 이름처럼 호리호리하고 날래겠다 싶었는데, 생각한 바대로 이었던 것이다.
일전에 칼재비라고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파견 나온 낭장(郎將,정6품의무관)이 무예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포졸들 사이에선 그 칼재비 기술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멈춰서 있는 우 순의 동작은 정권으로 사정없이 상대를 내지른 후 정지된 동작인 듯싶었으나 아니었다. 내질러진 그의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벌린 채 멈춰있었다. 그리고 저만치 앞에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자는 목을 감아쥔 채 고통을 호소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갑자기 가녀리게만 생각했던 이 신참 포교가 믿음직스러웠다. 엊그제 스물셋의 우 순을 신참으로 받았을 때 노 인달은 ‘얼떨결에 애물단지를 하나 매달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가 지금 자신의 생명을 구하지 않았는가?
인달은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채 통증이 다 가시지 않은 듯 쉬이 일어서지를 못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수상한 무리의 하나가 재차 칼을 휘둘러 온 것이었다. 비켜나간 칼날이 흙 담벼락에 박힌 돌에 부딪치자 파공성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인달의 눈앞이 다시 아릿해 졌다. 꾸역꾸역 헛기침을 하면서 겨우 일어서긴 했지만 눈앞을 보니 칼을 뽑아든 사내가 다섯 이었다. 하나를 해 치웠음에도 다섯이나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며 자신들을 가로막은 채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이기도 했고, 틀림없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우 순에겐 오히려 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슬아슬 상대가 쳐오는 칼날을 피하기도 하고, 피하지 못했다 싶으면 상대의 칼 잡은 손을 발길질로 막고, 턱밑으로 다가 섰는가 싶으면 빙그르르 한 바퀴 도는가 싶으면서 손바닥으로 상대의 가슴을 밀쳐내듯 내질렀다.
“순이 등 뒤에..... ”
‘등 뒤에 칼을 들어 찔러오는 자가 있으니 조심해’ 라고 말하려 했다.
인달은 정녕 그리 말하려 했다. 그러나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찔러오는 자의 손놀림이 더욱 빨랐다. 이제 그 날카로운 칼날이 사정없이 우 순의 등을 꿰뚫고 들어가 심장을 관통한 뒤 앞으로 삐져나와 시뻘건 핏줄기를 흩뿌리고 말리라.
기우였을까?
우 순은 어느새 고개를 돌리는 듯싶더니, 어깨를 비틀며 무릎을 앞으로 굽히면서 드러눕듯 자세를 낮추었다. 마치 고양이가 장독대를 튀어 올라 담장 위를 소리 없이 넘어가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날렵한 동작이었다.
칼날이 우순의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갔다. 한 치만 어긋났어도 그의 목에 가는 핏줄기가 뿜어졌으리라.
칼날이 허공을 찔렀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새 우 순의 두 손이 칼을 쥔 손목을 낚아채더니 재차 비틀며 잡아당겼다. 사내는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돌아서는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어느새 칼을 뺏어든 우 순은 한 무릎을 땅에 대고 구부려 앉은 자세로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 쓰러진 사내의 목덜미에 댔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느라 칼을 잡은 그의 오른손이 떨렸다. 목덜미에 대어진 칼끝이 떨리자 이내 나동그라진 수상한 사내의 상처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
인달도 막대기 하나를 주워들고 우순의 뒤에 섰다.
뜻밖이라는 듯 놀람에 잠시 머뭇거리던 사내들이 칼을 고쳐 잡고는 서서히 진세를 가다듬으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멈추어라.”
마을 어귀의 담장 끝나는 지점 늙은 감나무 뒤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다가왔다.
“멈추라 하지 않았느냐? 썩 칼을 거두지 못할까?”
사냥꾼 복장 차림에 초립으로 얼굴을 감춘 무리들은 칼을 거두고 서너 걸음 물러섰다.
나타난 사내는 삼십 줄은 좀 넘어서 보였다. 남빛 비단으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 차림에 허리에 두른 띠에는 옥으로 만든 장식까지 달려있었다. 백 저포는 벗어서 팔에 걸쳤고 손에는 제법 값나가 보이는 부채를 들었다.
초립을 쓰고 얼굴을 다소 가리기 까지 했으나 치켜 올라간 눈썹과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과 뾰족한 턱은 가히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황새모랭이(안림동 안림성당뒷편 부근) 노 포교 아니신가? 아니 어쩐 일로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다소 놀란 듯 표정과 말투 이었으나 다분히 빈정거림과 멸시하는 투의 표정이었다.
“섬말(東村,정문학원 길 건너 동편의 마을) 큰 서방님 아니십니까?”
“그렇다네. 날세. 그나저나 이 무슨 일이신가? 이들은 내 집에 가솔들인데 무슨 불상사라도 있었든 겐가? 정황을 보자니 예삿일은 아닌 듯싶네만?”
“이자들이 학정(學正,국자감에 속한 정9품의 벼슬) 어르신 댁 가솔들이란 말씀입니까? 이런 난감할 데가......”
“당혹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 일세? 그래 무슨 변고란 말인가?”
“진즉이 알았다면 별 탈 없었을 것을, 별일은 아닙니다요. 이보시게 순이. 칼을 물리시게. 이 어른은 관아 동편 섬말의 학정 어르신 댁 큰 서방님이시라네. 인사 여쭈시게나.”
우 순은 칼을 물리고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아직 의심이 다 풀리지 않은 듯 경계를 놓지 않고 있었다.
“저자가 오늘 처음 근무하는 날이라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하옵니다. 학정 어른 댁 일이라 하였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름 아니옵고 이 자가 순라 첫 날이라 읍성을 구경시켜 주는 길이었습니다. 숲거리(武學堂,삼원초교 동편의 마을로 숲이 무척이나 우거졌음)를 가르쳐 주고 오는 길이었지요. 저희 포졸들이야 수시로 훈련하러 다니는 곳이니까요. 관아로 돌아가려고 사천 징검다리(대수정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요. 마차가 하나 개천을 건너오는데 무엇이 그리 중하고 급한지 행인들을 마구잡이로 몰아세우고 내쳐 오는 것 이었습니다요. 지게꾼 둘을 개천에 밀쳐버리고 도망치듯 둔덕을 올라서기에 보다 못한 저 사람, 우순이 불러 따지려 하자 대꾸도 없이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오니 기찰포교의 임무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서방님 댁 가솔들인 줄 알았다면 좀 달랐겠지만. 뒤 쫒아 오다보니 이곳 아니었겠습니까? 하여 불러 세우니, 다짜고짜 주먹질에 심지어 칼부림을 해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짝. 짝. 짝.
이 귀남(李貴男) 이 갑자기 옆에 선 검은 무복차림 험상궂은 사내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이었다.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내 정황을 알고도 남음이 있겠네. 이놈들. 내 아무리 일이 중하기로서니 남을 해하거나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누누이 일렀건만. 내 아버님의 위신도 생각지 못하고. 학정(學正)이 무엇이더냐? 장차 이 나라 조정을 이끌어갈 만조백관을 양성하는 국자감에서 참 인재를 길러내는 귀한 자리가 아니더냐? 아버님의 위신을 봐서라도 누누이 일렀건만, 너희가 그렇게 다짐을 줘도 정녕 알아듣지 못하였단 말이더냐?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아. 그렇게 당부한다면 가축도 알아들었을 것이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음인지 이 귀남은 가솔이라 한 사내들을 사정없이 패고 걷어차는 것이었다. 잔인하다 싶을 만치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몽둥이를 주워들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강타하고 있었다. 고래고래 악을 썼다.
“죽어라 죽어. 그렇게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네 놈들에게 일을 지시한 내가 잘못이다. 이놈들아. 아예 오늘 예서 명줄을 스스로 놓는 편이 저승으로 가는 수월한 길일 게다.”
결국, 이 광란은 인달이 막아서서야 끝이 났다.
“큰 서방님. 고정 하십시오. 저들이 부러 그러기야 했겠습니까? 나름으로 잘 해보려 서둘다 보니 그랬겠지요. 고정 하십시오. 그러다 정말로 사람 잡겠습니다. 그 정도면 아무리 무지렁이라도 알아듣지 않았겠습니까? 서방님의 노여워하심을 보니 오히려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저희가 불찰인 것 같습니다요. 그만 고정하십시오.”
이 귀남이 한참을 숨을 고른 후에야 전대에서 작은 엽전 꾸러미를 슬며시 노 인달의 손에 쥐어 주었다. 노 인달의 손사래에도 기어코 건네는 것이었다. 극구 사과의 말을 늘어놓더니 다친 자들을 마차위에 싣고는 사라졌다.
“노 포교. 이따가 해시(밤9시)에 쇠전거리(대원고등학교 부근의 우시장터) 주막에서 잠시 좀 만나세. 내 따로 긴히 할 이야기도 있고 하니.”
말을 마친 이 귀남이 앞장서자 이어 무리와 마차도 서둘러 뒤따라 길을 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우 순은 그래도 서 있었다.
빼앗은 칼도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을 노 인달이 빼앗다 시피 하여 돌려주었다.
“위계입니다. 저들은 결코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모면하려고 이미 서로 짜고 화풀이를 한 것 입니다”
“이보시게 순이. 그러니 어찌 하겠나? 자네는 아직 저들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게야.”
“저들은 결코 손속을 두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죽이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뻔히 쳐다보면서 순순히 보내주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시게. 자네의 재주가 있어 이렇게 우리 둘 다 무사하지 않았는가? 여기 이렇게 치료라도 하라고 약간이나마 사례도 받지 않았는가? 잊어버리시게. 차차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알게 될 게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노 인달은 이 귀남이 사라지면서 남긴 말이 귓전에 여전히 아른거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후하게 대접 받으리라는 확신에서였다.
“그들이 그렇게 중하게 운반하는 물건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겠네. 아마 개경으로 올려 보내는 귀한 물건일 것만은 틀림없네. 진상품 이거나 그보다 더 귀한 물건일지도 모르지. 그건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누구나 아는 사실 이라네. 읍성의 포교치고 저들의 일을 모르거나 저들에게 어느 정도 사례를 받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라네. 위의 어른들도 대부분 그러할 걸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잘못 걸려들면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되니, 차라리 모른 척 피하는 것이 상책 아니겠는가? 오늘일은 예서 끝나는 것이 다행인 게야. 차차 지내노라면 자네도 다 알게 될 것이고 적응하게 될게야. ‘은상서(銀尙書) 일가 곁에는 가지마라. 기필코 화를 당하리라.’ 하는 이 말을 명심하게.”
은상서(銀尙書).
결코 좋은 뜻으로 불러지는 호칭은 아니었다. 하도 뇌물을 받아 챙기는 재주가 뛰어나 빗대어 부르는 호칭 이었다.
은상서는 바로 이 현(李峴)의 호(號)였다.
그는 현재 강화도 조정의 국자감에 속한 정9품의 최하급 말단관리였다. 여러 재주와 화술이 특히 뛰어났으나 타고난 천성이 음흉하고 탐욕스러워서, 온갖 이유로 뇌물을 받아 챙기고, 남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재물을 뜯고, 이권이 생기는 일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꾸미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또한 이뤄낸 부를 이용해 출세를 위한 뇌물을 받쳐 벼슬자리를 사고, 자신의 영달을 챙기기에 혈안이 된 자였다.
이 기(李伎)는 이 현의 아비 이다.
한마디로 이 현의 파행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아비에게 적극 물려받은 바, 그 아비의 행실 또한 이 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 기는 애초 개경에 살던 몰락한 양반가의 자손 이었다.
그의 아비 또한 파락호 생활로 가세는 이미 형편없이 기울어 있었다. 아비가 죽음에 생활이 어려워진 이기는 아내를 앞세워 처가인 북원(北原,원주)으로 왔다. 처가에 얹혀살면서도 파락호 생활로 나날을 보내니, 보다 못한 장인은 멀리 떨어진 소태(蘇台)땅 양촌리(陽村里) 반고개와 아웅뎅이에 약간의 전답을 마련해주고 내쳤다. 처음엔 자신을 내친 처가에 저주를 퍼부으며 아내를 연일 구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이기는 이곳의 생활에 재미를 붙였다.
양촌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선창이고, 다시 더 몇 걸음만 옮기면 차말. 웃말. 묵밭골. 건너말이 있는 목계(牧溪)였다.
목계는 강변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 할 수 있겠으나 지리적 위치로 하여 늘 오고가는 장사치들로 붐볐다. 이 기는 이 목계에 들면 마치 개경 서문 밖 번화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규모야 형편없이 작고 시설도 뒤졌으나 나름으로는 제법 격식을 갖춘 점포며 유곽이며 주루며 없는 것이 없었다.
이유는 강 건너의 넓은 공터와 누구나 쉬어가기에 좋은 노송들의 숲과 유유히 흐르던 강물이 급하게 요동치듯 휘어 내리는 군데군데의 여울을 만들기 때문 이었다.
조운(漕運)과 수운(水運)을 통하여 조금 상류의 경원창과 금천창이 번창 하고 있기는 하였으나,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뱃길에 있어서 수량(水量)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었다.
계절적인 요인도 따랐고 극심한 가뭄과 홍수에도 늘 뱃길은 커다란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목계를 기점으로 상류 쪽으로는 안반내(半川. 조정지 댐 자리), 사리올 등 물살이 몹시 센 여울들이 산재하였던 것이다. 가뭄이 들거나 수량이 풍부하지 않을 때는 커다란 조운선들이 오르내리는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었다. 하여 사람들은 뱃골(여울에 수심확보를 위해 골을 팠음)을 만들기 까지 하였다. 또한 목계 상류 쪽의 급한 여울 물길만을 상세하게 파악하여 오르내리는 뱃길을 인도하는 수로 안내인 까지 따로 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여 이 같은 나름의 이유들은 경원창. 금천창과 더불어 이곳 목계 장터가 점차 번창해 가는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들이 쌓여 훗날 이곳을 한강 제일의 창고인 덕흥창으로 발전시키게 되는 것이다.)
하구에서 올라오던 물품들이 뱃길이 막히면, 이곳 목계에서 운송 수단을 바꾸어 육로를 택하게 되거나 물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상류에서 내려가던 세곡과 물품들을 실은 배가 여울을 내려가다 좌초하거나 부서지게 되면, 이곳 목계의 너른 들판에 물품을 하역해 놓고 배를 올려 수리한 후에 다시 길을 갔다. 부서진 배의 수리에 그치지 않고, 솔밭 뒤 너른 벌판에서는 작은 배들을 건조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또한, 경원창이나 금천창을 거치지 않아도 이곳 목계를 통하면 내륙의 강원도 각 지역으로 물품을 보내고 내리기에 더 적합한 이유까지도 있었던 것이다. 하여 이곳 목계의 규모나 중요성이 여타 다른 곳과 비교하기에도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규모나 격식이 아직은 조금 미흡한 상태였으나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충청과 경상 전라도의 모든 세곡과 진상품이 이곳에 모여져 수로를 따라 개경까지 운송되었다. 바닷길은 험악하기도 하였지만, 가끔 왜구가 출몰하였던 것이다. 굶주림에 내몰린 도적들도 가끔씩 출몰 하였다. 그에 비하면 내륙의 조운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관리하기가 수월하였다. 그러자 내륙사람들에게 필요한 소금과 어물이 올라왔고, 하삼도에 필요한 다른 생필품과 옷감이나 사치품들 까지도 모두 이곳을 통하여 보급이 되었다.
이곳은 비록 창고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너른 들판에 그대로 물품을 야적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내륙 최대의 물류창고였다.
이 기는 이곳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주를 발휘하여 오래지 않아 커다란 부를 일구어 냈다.
타고난 언변과 수단으로 잡다한 모든 거래를 성사시켜주고 이문을 챙겼다. 약간의 돈이 모이자 시전의 껄렁한 잡배들을 끌어 모아 수하로 두고 직접 장사에 뛰어드는가 하면, 온갖 수단으로 일을 꾸며 삽시간에 막대한 돈을 끌어 모았던 것이다.
어느 정도 돈을 모았다고 생각되자, 이귀는 거처를 충주읍성 동쪽의 섬말(동촌)로 옮겼다. 제법 사대부가 부럽지 않을 만큼 커다란 집도 지었다. 하인도 여럿 두었다.
목계와 섬말을 오가면서 재산은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재산이 불어나도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었다.
그것은 본래 살던 개경에서, 그리고 처가인 북원에서 남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과거의 기억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였다.
이곳 충주에서만 해도 사람들의 눈초리는 갑자기 떼돈을 번 졸부쯤으로 비춰졌다. 차라리 목계 장터에서 장사치들과 잡배들과 떠들썩하게 떠들거나 유곽에서 나이어린 계집의 젖퉁이를 주무를 때가 더 마음이 편 하였다. 본시 양반 이었지만 그 누구도 양반 취급을 해 주지 않았다. 그저 돈 앞에서만 잠시 양반 대우를 받는 것 이었다.
그는 그저 돈 많은 시전상인인 양인쯤으로 대접받았다.
그럴수록 가슴 가득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이 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읍성 안팎을 고루고루 드나들며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장사치건 나졸이건 가리지 않았다. 돈을 들여 그보다 나은 서기나 다른 아전들과도 어울렸다.
다른 한편으론 그래도 다행스럽게 글을 잘하지는 못해도 멀리하지 않는 아들이 있어, 사방 글 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들여 자식에게 공부를 시켰으니 그가 바로 이 현(李峴) 이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이 현은 과거에 급제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벼슬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 기는 금전과 연줄을 이용해 아들 이 현으로 하여금 벼슬길을 열어주게 되었든 바, 바로 학정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야욕이 집착으로 까지 비춰지자 사람들은 점차 그들 부자를 멀리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이 기와 이 현 부자는 참지 않았다. 어쩜 이들 부자에게는 애초부터 아량이나 배려는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능멸해 나갔다. 고리대금을 통해 빼앗기도 했고, 모함이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수하를 시켜 강탈이나 심지어는 살인과 방화 까지도 저질렀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합치면 이루 다 헤아리기조차 힘들 지경 이었다. 그러한 이 현 부자의 횡포가 이미 십 이삼년 동안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이 현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이 귀남(李貴男)으로 그 할아비와 아비를 합친 것 같이 잔혹하고 꾀가 많고 욕심이 넘쳤다.
둘째가 귀손(李貴蓀) 이었는데, 집안의 내력과는 달리 무척이나 나약하고 섬세하였다. 귀손은 현재 충주관아의 서기로 나라의 녹을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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