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할 듯이 협잡하고 침침한 지하실, 불에 탄 널판지 양철 조각 등으로 적당히 간을 찔러 사는 피난민 몇 세대 화장품을 제조하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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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 아저씨, 홀아비 냄새가 케케 풍기는 최 열. 산뜻하고 이쁜 회사원 옥경 등이 같이 살고 있다. 막이 오르면 창에서 새어나오는 저녁녘의 여윈 광선을 받아가며 가짜 아저씨 외국산의 화장품 용기에 가짜 화장품을 채우고 있고 그 반대편 어둠 침침한 구석에는 장발 청년 최 열. 궤짝 책상에 고개를 묻고 뭔가 쓰고 있다. 전깃불을 켤 때다. 이윽고 화장품 행상하는 여자 나타난다.
[행상녀] (들어서며 떠들석하게) 가짜아즈바니, 화장품 좀 더 많이 맹글어야갔시요.
[가짜] (깜짝 놀라 화장품을 감추고) 쉬- 너까지 가짜 가짜하믄 어떻게 돼?
[행상녀] 인자 살길 났쉐다.
[가짜] 기분이 단단히 났군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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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글쎄. 이것 보라우요! (하고 빈 가방을 털어 보인다)
[가짜] 아이구 그 물건을 어디에다 다 멕였누?
[행상녀] 오늘은 더 서면짝으로 나가지 않았갔시오? 어느 부잣집엘 들어갔더니 제가 바로 사장댁이외다레. 한 에미나이가 사니끼니 너도 나도 하고 막 달려들어서 글쎄. 호호호---
[가짜] 하하하하--- 통쾌하다.
[행상녀] 이렇게 가짜가 판을 쳤으니 내레 떠들만 하잖소?
[가짜] 헌데, 오늘 맹근 건 그보다 더 근사하지. 자아--- (하고 행상녀의 코에다가 화장품을 자랑스럽게 대준다)
[옥경] 나더러 서울가서 한밑전 잡자던 그 김사장 알죠? 그이가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대. 우리 회사로 이 전보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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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시무룩해지며) 살아 있으믄 모두 만나게 되는구먼.
[옥경] (책상위에 있는 사진을 바라보고) 어머니, 어머니께서 잠시도 잊지 못하시던 언니가 살아 옵니다.
[행상녀] 덩말 한 달만 니어 이런 소식을 들었어도 너의 오마닌 돌아가시지도 않았을게다.
[옥경] (눈물을 슬쩍 씻는다)
[가짜] 언제 닿는대?
[옥경]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
[행상녀] 넌 참 좋캇다. 난 나가서 빈병 좀 모아 오리다. (퇴장)
[가짜] (노래 조로) 좋을씨고. 좋을씨고--- 죽은 사람 찾았으니 이 아니 좋을씨고--- 옥경아! 나도 맘이 이상해진다.
[옥경] 총채와 비를 들고 시인 최 열의 방으로 가려 하며) 아저씨 최선생님께서는 언제 외출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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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가리키며) 저기 있잖아?
[옥경] (그제서야 비로소 발견하고) 이크! 안 계신줄 알고 소제부터 해 드리려던 참인데, 선생님! (하고 조심스럽게 불러 본다 그러나 대답이 없으니까) 주무시나 봐 (새로 다린 와이샤쓰와 접시에 담은 양과자와 냉차를 최 열 옆에 가만히 갖다 놓는다)
[가짜] 자식, 팔자 늘어졌다. 잠이 깨면 잡수시라는 거지. 옥경아, 그럴 게 아니라 이번에 언니 오거든 그만 결혼해 버리렴. 피차에 독신이자 한 지붕 밑에서 살겠다---
[옥경] (최 열이 들을까봐 토끼눈을 뜨며) 쉬!
[가짜] 아냐 국수만 해 오면 다 어울러진 잔치니까 하는 소리 아닌가베
[옥경] 아이 좀--- (말문을 막으려는 듯이 총채를 둘러멘다)
[가짜] (호들갑스럽게) 아야야--- 인자 안 그럴게.
[옥경] (총채를 도로 넣으며) 늙은이나 젊은이나 남자들은 음흉해.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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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친절히 굴면 그걸 곧 이상야릇하게 해석을 하고 내가 최선생님을 보살피어 드리는 건 다른 아무런 뜻이 있는 게 아냐. 다만 선생님께서 되도록 틈을 내셔서 훌륭한 시를 한편이라도 더 많이 쓰시라는 것 밖엔
[가짜] (일부러 옥경의 변명을 무시하려는 듯이 큰 소리로) 야 저녁 찌갯거리는 뭐냐?
[옥경] (뾰로통하게) 몰라요! (하고는 호호 웃더니) 가짜아저씨 이것 봐요. 오늘 아침 회사로 가는 길에 내가 아주 큰 망신을 당했다우, 글쎄 광복동 큰 거리로 나오자니까 우리 언니가 앞에서 걸어오지 않겠어요? 이게 웬일이냐 하고 덤벼들어 언니! 하고 덥석 안았구려 그랬더니 그건 언니가 아니구---
[가짜] 허지만 그 대신 회사 책상위에 그 전보가 와 있었단 말이지?
[옥경] 골똘히 생각하면 하늘이 알아 주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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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도대체 6.25에 잃어버린 내 마누라는 어떻게 된거냐? 왜 날 안 찾아 와? 우리 마누라야말로 참 아까운데--- 침공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기고---
[옥경] 우리 언니야말로 참 인물 덩어리지요. 명동 거리에 나가면 안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여기 나타나면 이 지하실이 훤해질걸.
[가짜] 미인 타령이라! 내 마누라를 두고 한 말일까? 에이 기막힌다. 술 어딨더라? (술병을 찾는다. 비었다) 애꿎은 술하고나 씨름을 해야지. (빈 술병을 안고 애처롭게 나간다)
[옥경] (새 시집을 펴 들고 낭독한다) 오늘 하루도 헛되이 옛 추억을 안고 두더지 모양 나는 어둠을 딩굴었나니 아아 인간이란 본시-
[최열] (이때 고개를 들며) 옥경아-
[옥경] 아이구 깨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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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그 뭔구?
[옥경] 에그, 선생님두! 벌써부터 서점에서 팔고 있는데 저자이신 선생님이 모르고 계셔요? (하며 시집을 보인다)
[최열] 망할 것들! 출판하지 말랬는데-
[옥경] 좋은 시가 참 많던데요 뭐 널리 읽혀야지요.
[최열] 예술이란 본시 광고할 건 못돼.
[옥경] 그래도 전 이 시집을 내 준 출판사를 여간 고맙게 여기지 않아요. 아침에 출근할 때 이 책을 사 가지고, 그새 변소에 숨어서 한번 쭉 읽었는데 선생님의 시를 한 편 한 편 단편적으로 읽을때보다 한 권 책으로 통독해 보니까 선생님의 시 세계가 환히 체계적으로 느껴져 여간 감명 깊은게 아니었어요. 더구나 이 시 같은 것은--- (하며 아까 읽던 시를 되풀이하여 낭독한다)
[최열] (벽력같은 소리로) 그만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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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질려서) 예?
[최열] 옥경이는 남이 제 속곳 밑을 들여다 보면 좋겠어?
[옥경] 그 무슨 말씀이세요?
[최열] 시란 그것을 쓴 사람의 피묻은 내장이야
[옥경] 그렇다면 그렇게 보기 싫은 내장을 도대체 왜 종이에다 옮겨 놓으시나요?
[최열] 옥경이는 마려운 대소변을 참을 수 있어? 못 참지? 그와 마찬가지로 시를 쓴다는 건 하나의 생리야. 그러나 나는 이러한 배설물을 내깔기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자신을 경멸해. 마치 제가 내뜨린 똥오줌을 보기 싫어하듯이. 그 책 없애버려!
[옥경] 선생님, 저것 좀- (아까 갖다놓은 냉차와 양과자를 가르킨다)
[최열] (세탁물을 발견하고) 이것도 또 빨아 다려 놨군! (불만스러운 듯이 옥경을 흘겨본다) 앞으로 이런 신경일랑 쓰지 마. 난 때묻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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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려 좋아. (신발을 찾는다)
[옥경] (세탁해다 둔 샤쓰를 주며) 갈아 입고 나가시죠?
[최열] 누덕이 세상엔 이것도 깨끗해. 옥경아 내 짐이나 좀 싸줘.
[옥경] 다따가 왜요?
[최열] 좀 떠다니고 싶어. 부산 바닥엔 너무 인간이 많어. 난 인간이 싫어.
[옥경] 사람 없는 데가 어딨어요?
[최열] 하늘도 없고, 땅도 없고, 공기도 없고- 그런 델---
[옥경] 그런 곳이 어딨어요?--- 무덤?
[최열] 무덤도 좋지. 산다는 그 자체가 대단치 않은 것처럼 죽는다는 것도 대단찮어. (퇴장)
[옥경] 그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옥경 얼굴을 싸고 돌아서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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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빈 술병을 들고 약간 비틀거리며, 조금 전에 들어와) 왜 우니?
[옥경] (안타깝게) 아저씨 어떻게 하면 최선생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요?
[가짜] 부러워, 진짜 조물주가 만드신 진짜 인생일는지 몰라.
[옥경] 저 훌륭한 시인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요? 인간성으로나 재주로서나 우리의 국보 같은 존잰데-
[가짜] 아따, 국보 좋아하네!
[옥경] 밥벌이를 안한다구? 헹 도대체 인생이란 싫은 일을 해 가며 살만한 가치가 있답디까?
[가짜] (벼락을 맞은 듯이 두 손으로 머리를 싸며) 아이구머니! 가짜로라도 살려는 것들은 다 죽어라, 그거지?
[옥경] 몰라요!
[가짜] 헤헤헤--- 에랑 에랑 에헤요. 네가 내 사랑가? 하긴 이 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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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애비가 뭣 때문에 남은 속여 가며 바닥바닥 살려는 건지 나도 몰라. 다 죽어라! (분한 듯이 만들어 쌓아 놓은 화장품을 쓰러뜨린다)
[옥경] (붙들며) 아저씨---
[가짜] (삐죽거리며) 제기, 마누라나 살았더라면 고생을 해도 고생한 보람이라도 있을 텐데. (콧물을 씻으며) 옥경아, 용서해라. 받아 들그 와야 대작해 줄 사람도 없고 해서 뱃속에 넣고 왔구나
이때 행상녀 빈 화장품 용기를 싸 들고 급히 나타난다.
[행상녀] 옥경아, 왔다! 손님이-
[옥경] 뭐?
밖에서 자동차 클랙슨 소리, 왁자지껄하는 소리 옥경 출입구로 뛰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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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아즈바니. 옥경이의 언닌가봐. 날래 좀 나가 보라우요.
[가짜] 에랑 에랑 에헤야. 네가 내 사랑가-
김 대석의 비서 고군 들어온다.
[비서] 옥경씨의 방이 어느 거죠?
사장 김 대석 낡아빠진 양공주 차림의 한 여인을 신부 위하듯 부축하여 들어온다. 그것이 옥경의 언니인 성희다. 이웃 여자, 아이들 구경이나 난 것처럼 뒤에 따라 들어온다. 성희, 주춤 서서 힘없는 눈으로 실내를 둘러본다.
[가짜] 이 분이 바로 옥경의?
[비서] --- 그렇대요.
[가짜] 야. 집이 훤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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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엄마는- (하며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옥경] (책상위에 있는 사진을 성희에게 보인다)
[성희]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다가 사진에 맨 까만 리본을 만지며) 이게? (하고 사장을 본다)
[사장] 어떻게 된거야? 돌아가셨나?
[행상녀] 벌써 달포는 됐지?
[사장] (놀라) 그래? 난 몰랐지
[성희] 으아 엄마!! (하고 울부짖더니 허물어지듯 폭 쓰러진다)
[사장] 성희씰 서울서 만나자 내게 묻는 첫 인사가 뭐였는지 알아? 어머니 소식이었어. 난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부산에 편안히 계시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어머니를 만나겠다면서 부산으로 데려다 달라고 날 못살게 졸랐어. 어떻게 조르는지 내 볼일도 집어치우다싶이 하고 짐차에 부쳐서 내려오는 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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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돌아가시면서 우리 성희- 성희- 하셨지. 이 색시 이름이 성흰가?
[사장] 그럼, 돌아가신 아주머니의 큰따님이시지.
[가짜] 조금만 더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걸. 허구한 날 행방불명 된 딸을 만나게 해 주십사고 기도로만 세월을 보내더니--- 제기- (마루 구석에 돌아서서 소리를 내며 느끼고 있는 옥경이더러) 사람이란 한번은 죽게 마련이야 슬퍼함 뭘해? 옥경아 원로에 흔들려 오느라고 고단하겠다 언니를 두 다리 뻗고 좀 쉬게 해라.
[사장] 나는 좋은 일만 하느라고 한 노릇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괜한 짓을 했는데- 옥경이 미안해
[옥경] 천만예요.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언니를 데려다 주셔서 정말-
[사장] 그렇다면 울기 전에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있어야 하잖어?
[옥경] 고마워요 사장님 정말 고마워요.
[사장] 하하하--- 옥경씨에게서 고맙단 소리 듣긴 난생 처음이군.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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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이런 공치사나 듣자고 고생스럽게 언니를 데려온게 아냐
[옥경] 대관절 언니를 어떻게 찾으셨어요?
[사장] 바로 그저껜가봐. 사업 관계로 서울 갔다가 외국 손님을 접대할 일이 생기지 않았겠어? 그래서 서울 시내는 아직 전투지구라 똑똑한 요리집도 없고 해서 영등포 어떤- 야, 양공주 집엘 가지 않았겠어 그랬더니 뜻밖에도 거기서- (하며 성희를 힐끗 쳐다본다)
[옥경] 어머나-
[사장] 애초엔 나도 내 눈을 의심했어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귀태가 나는게 어딘지 모습이- 한참 뜯어봤지.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옥경] (얼굴을 싸며) 그만 두세요.
[사장] 나도 기가 막혔어. 우리 나라에서 제일가는 대학 교수자 우수한 학자의 따님으로 한때 예술계를 들었다 놓던 당대의 소프라노가 분으로 횟박을 쓰고- 없는 교태를 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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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옥] 아- 어머니- (운다)
[행상녀] 야- 이 난리에 살아 온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 게다.
[가짜] 우리 마누라는 어떻게 돼 먹었기에 생사조차-
[행상녀] 또 예편네 타령이지. 그 예편네는 죽은 것으로 접어 두고 날 진짜 예편네로 모신다고 하늘같이 맹세해 놓고는- 에이 가짜! 그것도 가짜 맹세야! (때릴듯이 달려든다)
[가짜] 에랑 에랑 에헤야- 네가 내 사랑가-
[사장] 이것 받아 둬. 오는 도중 찻속에서 언니가 조는 틈에 핸드백을 뒤졌더니 이게 수면제야- 그것두 한두 알이 아니구- (하며 약병을 옥경에게 준다)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사고날까봐 내가 빼돌렸어. 그럼 난 이제 그만 물러가겠어. 며칠 후에 난 또 서울에 올라갈텐데--- 옥경이 한번 둘러보러 서울에 안가? 나 한턱 두둑이 낼께. 명심해 두어. 비서 가!
[옥경] (귀를 기울여 보더니) 아냐. 저것은 뱃고동 소린데. 부두에서 들려오는 거야 (뿌우- 하고 뱃고동 소리 이때 울린다) 저것 들어봐.
[성희] 쿵! 쿵! 대포 소리야.
[옥경] 서울서 주야로 듣던 포소리가 귀에 젖어 그래. 여기서 푹 쉬면 괜찮아질 거야. 여기선 전쟁같은 것 말끔히 잊어버리고 살고 있어.
이때 술이 잔뜩 취한 최 열. 술과 안주 기타 식료품을 한 아름 안고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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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경애하는 형제 자매! 이것들을 처리해 주십시요. 죽은 굼벵이는 채매밭을 망쳐버리고, 조그마한 송충이는 산을 마르게 하잖어? 이렇게 덩치가 큰 인간은 어째서 땅덩어리를 없애지 못해? 실컷 뜯어 먹어서 이 세상을 거덜을 낼순 없단 말야? 뜯어라! 먹어라! 마셔라!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가짜] 어찌된 일이야? 쌔빈 건 아니겠지?
[최열] 이 최 열도 가짜로 뵈시우?
[옥경] 이번에 나온 선생님 책의 인세를 받으셨나봐.
[최열] 모두들 이 할아버지가 없어 궁상들이지. 이게 인간을 마비시키는 거야. 얼마든지 있다. 만세를 불러라- (허공에 지폐를 뿌린다. 방안에 지폐 날린다)
[옥경] 그것 두셨다 생활에 쓰시지 않고- 모두 주운것 이리 내세요 (하며 방안 사람들이 달여들어 주운 지폐를 일일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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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옥경아 허튼 수작 마라!! (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른다. 옥경 주춤한다) 그 돈 도로 내 줘. 안 내 줄테냐?
[성희] (지폐를 바리바리 찢으며) 그래서 유치한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그 술 이리 다오. (옥경 의아한 듯 언니를 바라본다. 최 열이 들고 온 소줏병을 자기 손으로 갖다가 잔에 부어 한잔 맛있게 맛을 본다) 일선의 술이나 후방의 술이나 술맛은 다를 것 없는데- (또 한잔 따라 마신다)
데- 여기서는 가짜아저씨라고들 불러요. 옥경이가 지어준 이름야. 우리가 이렇게 한 식구로 사는 동안에 어느새 내가 이 집안 아저씨가 된거지. 하지만 진짜 아저씨가 아니니까 가짜라는 거지. 결코 내가 가짜 화장품을 만든다고 해서 가짜가 아냐. 그렇지 옥경이? 한잔만- (하고 술을 권한다)
[성희] (술을 받아 마시고) 진짜고 가짜고 내 술도 한잔- (하고 따라 준다)
[가짜] (좋아서) 헤헤헤---
[옥경] (다시 한번 따르려는 가짜아저씨에게) 가짜아저씨, 혼자서 그만 다 비워버리슈.
[성희] 안돼! (가짜아저씨에게서 술병을 가로채서 병나팔을 분다)
[옥경] (걱정스러워서) 언니! 어쩌려구 그 독한 소주를? 최선생님, 좀 빼앗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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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꽤 멋진 여성인걸.
[옥경] 선생님까지 우리 언니를 조소하시는 거예요?
[최열] 조소라니?! 처음으로 내가 인간을 봤어.
[옥경] 여자가 술에 취해서 저 꼴이 된 게?
[최열]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면 누가 바른 정신으로 이 현실을 보겠어? 병으로 생각지 마. 저게 정상야. 인간이면 저렇게 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어 오늘의 이 시간, 오늘의 이 현실, 오늘의 이 상황-에서는 말이야.
[옥경] 비꼬지 마시고 언니에게 한 마디 위로의 말씀이라도-
[성희] 아냐, 저 사람 머리가 좋아. 쓸만한 소리를 하고 있어. 옥경이 너는 이해가 안 갈지도 몰라, 지금 저 놈팽이 진실로 나를 위로해 주고 있어.
[최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제발 더 독한 술을 조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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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도 더 많이 들이키라는 거야.
[성희] 아 좋아! 이리 와! 맘에 들었어 (빈 병을 들며) 얘 옥경아 부산엔 바다가 있다지? (조용하게 그리고 천천히) 바다는 넓을 거야- 망망도 할 거구- 갑갑하지 않어? 이 창고! 여기서도 태산같은 담벼락이 날 가로막고 있어. 꼼짝 못하게- 날 떠밀어 주어! 푸른 물속에 풍덩! 아이 시원해! 부산바다는 태평양으로 잇닿었다지, 하늘에 티끌! 그 티끌 같이 두둥실! 남극으로 아니면 북극으로! 그러믄 그 하늘 끝에서 옴마를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아? 옴마!!
[옥경] 여름 날씨가 무더워서 저래요. 문을 열어젖힐까?
[성희] 어머니! (하고 불러 보더니) 내가 여태까지 죽지 않고 버틴건, 단지 그리운 어머니나 한번 만나 봤으면 했기 때문인데-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 왜 안 보여? 왜!! 왜??
[옥경] 언니 내가 살아 남았지 않어?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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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 다시는 절대로 헤어지지를 말고-
[성희] 아- 답답해- 바다- 바다- 시퍼런 바다- 망망한 바다- (비틀거리며 나간다)
[옥경] (불안해서) 최선생님 최선생님? 어서 언니 뒤를 좀 밟아 주세요. 예?
[최열] --- 저러다가- (성희의 불안한 발걸음을 바라보고만 섰다)
[옥경] 선생님 어서요- (옥경. 최열을 떠다밀다시피 하여서 퇴장)
[가짜] 난 내 예편네 생각 아주 안할래. 저 꼴로 살아와도 곤란해 에랑 에랑 에헤야 네가 내 사랑가. (하고 행상녀의 목을 껴안으려 한다)
[행상녀] 에그 저 좋을 대로--- (하며 빠져 나와버린다)
[옥경] (소리만) 언니! 언니!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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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막
2, 3일 후 아침. 부산 시내 모병원 입원실. 의사, 침대에 잠든 성희의 맥을 짚고 앉았고, 옥경, 사장 김 대석, 간호원 등 각각 적당한 자리에 긴장하여 섰다.
[의사] 다른 증세는 별로 없고 바다에 투신해서 고민하는 동안에 짠 바닷물을 과도히 켠 탓이겠죠. 위장에 약간 고장이 생겼을 따름입니다. 잠이 이렇게 깊이 든 것을 보면 입원 후로 신경은 다소 진정된 모양이구요. 별 걱정 마세요. 이만 정도면 곧 퇴원해도 좋습니다.
[옥경] 고맙습니다.
[김대석] (옥경에게) 정말 불행중 다행이군그래
[의사] 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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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나간다. 간호원 따른다.
[김대석] 옥경이, 얼마나 놀랬어? 나도 신문에서 보고 이크 그예 저질렀구나 했지.
[옥경] 신문에까지?
[김대석] 어느 신문인지 한구석에 조그맣게 비쳤더군. 미인 투신자살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명을 건진걸 보니 마음이 놓여.
[옥경] 그러나 앞날이 두려워요. 핸드백에 다량의 잠자는 약을 간직하고 다닌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언니가 자살을 계획한 지는 하루 이틀이 아닌게 아녜요? 이번에 실패했다고 단념할 리는 없어요. 퇴원하더라도 말썽일 거야.
[김대석] 정말, (깊이 생각더니) 옥경이 이렇게 하며 어떨까?
[옥경]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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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석] 방금 선생님께서 퇴원을 시켜도 좋다니 오늘이라도 언니를 동래 내 처소로 옮기지. 집은 좋지 못하지만 한적하고 방의 여유도 더러 있고---
[옥경] 글쎄요.
[김대석] 옥경이는 장사치의 비루한 소리로 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경제인은 이 사회의 모든 현상을 으례 경제적 관련성 밑에서 보는데 언니의 염세증도 말하자면 생활고에서 오는 게 분명해. 언니에게 물질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게 해 드린다면 언니의 인생관은 백팔십도까지 홱 변해지진 않는다 처더라도 달라질걸.
[옥경] 언니를 위해선 그렇게 하는 게 좋을는지 모릅니다만---
[김대석] 하하하--- 하여튼 잘 생각해서---
사장 김 대석 퇴장, 옥경 전송하러 나간다. 무대에는 곤히 잠든 성희뿐, 성희 괴롭게 숨을 쉬더니 흐느껴 운다. 옥경 김 대석을 보내고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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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난다.
[옥경] (들어오다가 주춤 서서 성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뭣이 분해서 저렇게 이를 바드득거릴까? (흔들며) 언니! 언니!
[성희] (깊은 숨을 쉬고는 눈을 뻔히 뜨며) 아아, 육실할!
[옥경] 누굴 보고 이러우 언니!
[성희] 가만 내버려 두어 줬으면 속절없이 물고기의 밥이 되고 말았을텐데--- 그 자식이 왜 날 예다 떠메다 놨담.
[옥경] 또 최선생의 욕이군.
[성희] 옥경아, 그 작자가 도대체 나하고 무슨 척이 졌지?
[옥경] 무슨 혐의가 있으믄 왜 제 생명을 내걸고 물도 깊고 파도도 거센 캄캄한 밤바다에 언니를 건지러 뛰어들겠우? 그 선생이 모험을 즐기는 활극배우란 말요. 정신 나간 미치광이란 말요? 신상은 그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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헴도 변변히 못 치신다우
[성희] 그렇잖다믄 도마위에 생선처럼 왜 날 예다가 앉혀 놨대?
[옥경] 언니를 지극히 애끼니까 그렇지.
[성희] 날 두번만 애꼈다간 팔자에 없는 여왕으로 떠받들지 않겠냐? 날 정말 애끼는 건 날 죽여 주는 거야. 날 죽여 지옥에 처넣어 이 육신을 녹여 버리는 거야. 그런 적선을 해 주진 못할망정 죽게 된 사람을 살리다니--- 이게 무슨 심술이람! 앞으로 그 자를 내 앞에 비치지도 못하게 해라. 그 자의 쌍통도 보기 싫어.
[옥경] 언니, 그 선생을 그렇게 악의로 해석하지 말어. 그이는 우리 나라 시인 중에도 가장 양심적이며 가장 순수한 분야.
[성희] 죽으려는 사람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게 시인이야?
[옥경] 시인은 반드시 사(死) 의 찬미자라야 되나?
[성희] 문학하는 것들이란 불행을 향락하는 냉혈동물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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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사실은 그 선생의 시는 구구절절이 생을 부정하고 인생을 저주하고 있어. 하지만 인생을 저주하는 건, 생을 아쉬워하기 때문이요, 생을 아쉬워하니까-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는게 아니겠어?
[성희] 너 그자를 두둔하는구나.
[옥경] 사실 그런걸
[성희] 네가 젊고 이쁘니까 그자가 너한테 야심을 먹고 있는 거야. 그 때문에 물에 뛰어들어 애꿎은 날 건져냈어. 마치 네게서 찬사를 듣기 위해서 날 데리러 온 김 사장인가 하는 작자처럼---
[옥경] 아이, 기막혀! 선생님을 무슨 장사치로 아나봐.
[성희] 놈팽이는 내가 더 잘아 알어. 사내란 동물은 인두겁을 쓴 악마야.
[옥경] 언니, 최선생님은 자기가 며칠을 굶어도 먹기 위해선 손끝 발끝도 까딱하지 않겠다는 신조였어. 그런 선생이 가려든 여행도 가지 않고 지금 부두에 나가서 노동을 하고 있어. 언니의 입원비를 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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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내 입원비를 벌려구?
[옥경] 저 먹을 것은 누가 다 사왔기에?
[성희] (머리맡에 있는 깡통을 쳐다보며) 이걸 그자가?
[옥경] 암 그것뿐인가? 배에서 푸는 무거운 짐짝을 져 내리느라고 등가죽이 벗겨져서 손도 댈수 없을 만큼 됐다우. 그리구두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밤일까지 해.
[성희] 응? (이상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옥경] 그이가 설사 무슨 다른 야심으로 이런 짓을 한다손 치더라도, 이 자기희생을 모른 체한다면 언니는 정말 벼락을 맞을 거유.
[성희] 믿을 수 없다. 날 위로하려고 네가 꾸며대는 소리다.
[옥경] 아이 기막혀서-
[성희] 이 야박한 세상에 남남끼리 무슨 그런 희생이---
[옥경] (화가 나서) 아이 우기기두! 자 약이나 먹우, 시간 됐우.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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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일 준비를 한다. 이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 도어에서 들린다) 들어오세요.
시인 최 열 등장. 찌들은 노동복을 입고 손에는 식료품 깡통과 종이에 싼 꽃을 들었다.
[옥경] 아이구, 선생님 얼마나 고단하세요?
[최열] (들어오기를 주저하며 문께서) 자아, 이것! (사온 물건을 준다)
[옥경] (언니의 눈치를 보며)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정말이에요.
[최열] 사들고 온 것을 슬거머니 한구석에 숨겨 놓고 들어온다)
[옥경] 아이구머니, 웬걸 또 이렇게? 이 꽃! 아이 고와! 언니 이 새빨간 꽃! 정신이 산뜻 들죠? (꽃을 성희에게 보인다)
[성희] 왜 이렇게 까부니? 그 꽃이며 깡통 이 방에 들여놓지 마라. 여태까진 모르고 먹었지만 알고서야 어떻게---
[옥경] 아이 참, 딱해서! 날 못 믿겠거들랑 선생님의 이 어깨를 봐요. (샤스를 걷어 시뻘겋게 벗겨진 어깨를 노출시킨다)
[최열] (창피하다는 듯이) 옥경이!
[옥경] 아이 끔찍스러워! 〕(동시에)
[성희]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응?
[옥경] 이 기막힌 현실을 모르고 선생님께 그런 실례의 소리만 하면 언니는 정말--- (돌아서서 느낀다)
[간호원] (도어를 열고 나타나서) 아래층 회계에서 잠깐 내려오시래요.
[옥경] (눈물을 얼른 씻으며) 예. (하고 간호원을 따라 나간다)
[최열] (성희와 단둘이 앉은 게 열적은 듯이 자리에서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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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잠깐!
[최열] --- ? (주춤 발을 멈춘다)
[성희] 뭣 때문에 내 덜미를 짚어 바다에서 뛰어들었오? 어깨가 그 지경이 되도록 노동은 왜 하고---
[최열] 글쎄--- (하고 생각한다)
[성희] 자기가 하고도 글쎄예요?
[최열] (말을 못하고 망설일 뿐이다)
[성희] 여태 임자는 남은 커녕 제 자신을 위해서도 손끝하나 까딱해 본 적이 없었다면서요? 그런데---
[최열] 정말로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으며 또 하고 있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오. 구태여 그 이유를 캔다면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는지--- 내 자신을 위해서라고 할까?
[성희] 자기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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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예.
[성희] 어째서?
[최열] --- 당신이 죽지 못해 발버둥치는 걸 보고 그 발버둥치는 자태 속에서 난 내 자신을 발견했거든.
[성희] 그 무슨 소리람.
[최열] 그동안 나도 꽤 여러번 죽으려고 소동을 피웠오. 그 때문에 친구에게 폐도 더러 끼치고 경찰의 신세도 졌지. 그러나 그 땐 그건 내 자신이 행한 거니까 내가 내 자신의 자태를 볼 수 없었오. 그러다가 이번에 남이 죽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니, 그게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인것 같았오. 그래 난 나도 모르게 바닷물에 뛰어든 거죠. 그건 마치 우리가 뺨을 얻어맞을 때 저도 모르게 손으로 제 뺨을 막는거나 같은 게 아닌가 싶었오.
[성희] 호호호--- 참, 웃으운 이론도 다 듣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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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이게 무슨 착각인지 모르지만 지금 거기 누운 당신도 꼭 내 자신같이 느껴져서 당신이 아프다면 내가 아픈 것 같고 당신이 괴로워하면 나도 괴롭구---
[성희] ---
[최열] 나는 이게 소위 애정이라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오. 그러나 그것도 아니오. 내 심회는 그런 흔해빠진 통속적인 말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오.
[성희] 그러면 내게서 바라는 댓가는?
[최열] 아무것도 없오. 살아 달라는 것밖엔.
[성희] 그것뿐야?
[최열] 제발 살아주오. 내가 내 자신을 위하듯이 나는 성희씨를 위하고 섬기겠오. 사람이란 자기를 위해선 살 가치가 없는 거지만 자기 아닌 타인을 위해서는 살 수 있는 것이란 말의 뜻을 인제야 나도 알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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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임자는 내가 어떠한 여잔지 모르는구려.
[최열] 압니다. 1.4후퇴 때에 가족과 헤어져서 방황하다가 적군한테 사로잡혀 그들의 야욕의 대상이 되어 있던차, 유엔군이 밀고 올라가자 더럽혀진 육체를 비관하여 죽지 못해 사창굴에 몸을 던졌죠?
[성희]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최열] 전투지구에서 지금에서 살아나온 여성이니 알아볼 수 있는일 아니요.
[성희] 그런데도 이런 사람을 섬기고 살아? 내 살은 썩었구 게다가 구데기까지 욱실거리는데---
[최열] 그러나 당신의 거룩한 순정만은 살아 있오. 마치 돋아나는 새싹과 같이 그 가슴 깊이 고개를 들고 있오.
[성희] 날 모욕하는 거야?
[최열] 성희씨에게 자살할 생각이 난 그것이 바로 성희씨 가슴 속에 순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요. 그 순정마저 없어지면 사람은 죽을 줄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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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오.
[성희] 나가. 남의 모욕 그만하고 나가 줘.
[최열] 예. 나가죠. (일어서 나가려 한다)
[성희] 가만!
[최열] (주춤한다)
[성희] (더 큰소리로) 나가요!
시인 최 열 퇴장.
[성희] 순정이 살아 있어 죽을 생각이 나는 거라고? 호호호--- (하고 냉소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에 잠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야. 아주 썩어 빠지면 그런 생각조차 없을 테니까---
노크 소리 나더니 옥경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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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실내를 둘러보고) 아이구, 벌써 가셨네! 최선생님 언제 가셨어?
[성희] ---
[옥경] 또 말다툼을 하였군?
[성희] 좀 불러 들여라.
[옥경] 응? 선생님을? 왜?
[성희] 글쎄.
[옥경] 그래 (급히 나간다)
[성희] (침대에서 내려와 최열의 사가지고 온 물건을 물끄럼이 바라보더니 혼잣말로)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보통 사람하고는 생각이 아주 다른-
[옥경] (다시 나타나며) 안 뵈는데. 벌써 가 버렸나봐.
[성희] 저 꽃, 꽃병에다 꽂아 두어라.
[옥경] 웬일야? 아깐 보기 싫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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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머리맡에 있는 책을 들어보며) 이게 그 사람의 시집이랬나?
[옥경] 그럼.
[성희] 어디 뭐든지 한편 읽어 봐. 그 가운데서---
[옥경]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한다)
올뺌아! 광명에 눈 어두운 올뺌아!
너 불구라 서러워 말라.
본시 암흑은 영원! 광명은 수유(須臾)
암흑을 보기에 너의 눈 밝았으니, 차라리
광명밖에 못 보는 인간의 눈을 나는 애닯아 하노라!
[성희] 끝 구절을 한번만 더---
[옥경] 광명밖에 못보는 인간의 눈을 나는 애닯아 하노라.
[성희] 한번 더
[옥경] (되풀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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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 시작부터 다시 한번 더---
[옥경] (한번 더 외우더니) 언니에게 어떤 계시를 주지? (황홀해진 언니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호호--- 언니의 안색이 달라졌어.
[성희] (열적은 듯이 자기의 얼굴을 만져 보며) --- 미친 계집애두!
[옥경] (거울을 보며) 내가 거짓말해? 이 거울을 들여다봐요, 아가까진 두 눈에서 까스불 같은 신경질이 풍겨 나오더니 호호호--- 이젠 그 불이 꺼졌는걸 뭐. 언니 제발 이제부터는 그이를 미워만 하지말고, 가까이 사귀어 봐요. 언닌 꼭 무슨 구원을 받을 테니까. 나도 1.4후퇴 때에 어머닐 모시고 이 부산 땅에 까지 왔을 적엔 때마침 겨울 중에도 그중 추운 때라. 잘래야 잘데 없고 배에선 쪼르륵 소리! 우러러 하늘을 봐도 캄캄하고 굽어 땅을 봐도 의지할데 없어, 당장에 목이라도 매는 길밖엔 없었어. 그때 우연히 어떤 잡지에 난 시를 읽었는데, 한편 그게 바로 선생의 시가 아니겠어! 나는 그 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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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힘을 얻었어. 그 내용이야 세상을 저주하고 부정한 것들 뿐이었는데 그 저주와 부정이 찬미와 긍정보다는 오히려 내 가슴을 더 깊이 뒤흔들어 주겠지. 마치 바위틈에 파고드는 나무뿌리와 같이, 이 쓰라린 피난살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만큼 명랑한 건 전혀 그 선생의 덕분야.
[성희] 그래 넌 어째서 그런 시인하고 같은 지하실에서 살게 됐니?
[옥경] 일년 전 일야. 김사장이 주선해 주는 지금 살고 있는 지하실로 옮겼더니 그때 그 선생이 거기 살고 있겠지. 애초에는 누군지도 모르고 저런 괴짜도 있을 수 있나 하고 문제시도 하지 않았지. 그랬는데 어떤 우연한 기회에 소개를 받고 보니, 그이가 바로 최선생이 아니겠어? 정말 나는 내 눈을 의심했어. 그런 위대한 시인이 어째 우리 같은 것들하고 같이 딩굴 수 있나 하고---
[성희] (갑자기 손에 낀 반지를 빼주며) 얘 옥경아 이것을 처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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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할 준비를 해라.
[옥경] 벌써 회계를 마치고 되려 병원에서 이처럼 거스름 돈을 받았는걸! (하며 한 뭉치의 지폐를 내보인다)
[성희] (의아하여) 웬 일이냐?
[옥경] 금방 아랫층 회계과에서 오래서 갔더니 최선생이 입원비를 마껴 놨겠지.
[성희] 저런, 그처럼이나?
[옥경] 부산을 떠날 준비를 하시더니 아마 그 노자로 해 두었던 건가봐. 그리고 아까 문병 왔다가 간 김사장도 이렇게 금일봉을 내놓고 갔구---
[성희] 네가 아는 남성은 어쩌면 이렇게도 착하냐?
[옥경] 모두 언니의 복이지 뭐.
[성희] 아냐! 너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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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언니, 이 나머지 돈 가지고 최선생 모시고서 우리 바닷가에 갈까? 지하실은 너무 답답하고 침침하니까. 나 회사에서 휴가도 얻을 수 있어.
[성희]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래 볼까?
[옥경] 자, 언니. 일어나요!
옥경, 성희를 안아 일으켜 놓고 서둘러 성희의 옷을 갈아 입히는 동안에 무대 어두워지며-
-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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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막
해수욕객들이 그다지 끓지 않는 한적한 바닷가 모래밭, 옥경과 성희, 최 열과 더불어 캠핑하는 곳. 소나뭇 가지에 그네, 그 밑에 최 열이 기거하는 명목만의 안락의자, 바위틈에 꽂아놓은 책들, 한구석에 성희와 옥경이가 자는 아담한 천막, 줄에 널린 빨래, 이상 삼인 공동의 캠핑 생활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이 전개되었다. 무대가 밝아지면 한구석 바위 위에서는 낚시질하는 어떤 젊은 남녀 한쌍, 시인 최 열은 천막 옆에서 불을 피워 가며 코오피를 끓이고 있다. 퐁퐁거리는 발동선 소리, 먼 바다에서 한가롭게 들린다. 이윽고 새우를 잡아 담은
[옥경] 자 언니두 한잔--- 그리구 나두--- (하며 깡통을 분배하고는 코오피의 맛을 본다) 아이구 왜 이렇게 향취가 높고 맛이 깊어? 마치 선생님의 시와 같이---
[최열] 맛이 나쁘다는 소리 같은데---
[옥경] 아이구머니 선생님두! 언니 내 말이 거짓말인가 입증해 주구려 좀---
[성희] (어색하게)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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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자랑껏) 이것 보세요! 호호호---
[최열] 고맙습니다.
[성희] (어깨를 만지며) 뭐, 괜찮아요.
[옥경] 언니 때문에 생긴 상처니까 치료는 언니가--- (하며 시인 최 열을 성희에게 맡긴다)
[성희] (당황하며) 얘가!
[옥경] 그럼 선생님 돌아 앉으세요. 제가 의사 노릇을 하지요. (최 열의 어깨의 상처에 약을 바르며) 참--- 언니, 그 큰 새우 선생님께 봬 드리구려.
[성희] 이거--- (하며 새우를 들어 보인다.)
[최열] 아이구 꽤 큰데.
[옥경] 그거 언니가 잡은 건데 후라이해서 선생님의 저녁식사에 제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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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우리 둘이서 완전히 합의를 보았답니다. 그렇지, 언니?
[성희] (빙그레 웃으며) 응.
[최열] 아니, 남성이라고 특권시해선 안돼.
[옥경] 그러나 선생님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어요.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생활 원칙이니까.
[성희] 얘가 왜 이렇게 수다냐?
[옥경] 그래도 둘이서 힘껏 합의를 본 것을 선생님이 거부함 사고 아냐 옳지, 두 분이 주먹 가위보로 결정하기로 할까? 언니가 이기면 언니가 먹구 선생님이 이기면 선생님이 자시고, 자아--- (하며 성희와 최 열 두 사람에게 가위 바위 보를 시키려 한다)
[최열] (주먹을 둘러멘다)
[옥경] (권하며) 언니!
[성희] (열적어서) 왜 이래, 얘가? 선생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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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선생님 제가 너무 까불죠?
[최열] 천만에, 그게 좋아. 여기 나올 때에 우린 어린애가 다시 돼 보자는 약속 아냐?
[옥경] 아녜요. 절실히 제가 지나치게 까불어요.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인간이란 환경의 동물이라더니, 그 어둠침침한 지하실을 뛰쳐 나와서 이럴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벗어 내뜨리니까 자연으로 아주 돌아간 셈일까?
[최열] 모두가 언니의 덕이지. 성희씨가 기분을 회복해 주셨기 때문이야.
[옥경] 언니, 고마워. 난 여간 기쁘잖어. 참새와 같이 마구 까불어도 신이 다 풀리지 않겠어.
[최열]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야.
[옥경] 참. 언니, 아까 그 우쿨렐레는? (하며 찾는다. 안 보이니까) 이크, 우리가 놀던 바위 위에다 두고 왔군. 곧 찾아다가 언니에게 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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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줄께. (하고 아까 등장한 쪽으로 뛰어 나간다)
[최열] (옥경을 바라보며) 성희씨는 왜 저렇게 못되지? 나 같은 것도 여기 나오니까 이제야 제 세상에 놓여 나온것 같은데- (숨을 들이키며) 자, 공기를 한번 마셔 봐요. 도회지의 공기와는 맛부터가 다르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곳이 이 세상에 있는 줄을 왜 모르고 살았는지 후회가 될 지경이오.
[성희] (더욱 어색해질 뿐이다)
[최열] 성희씨 기분이 더 새롭게 우리 바다에 뛰어들어 물이라도 좀 둘러 쓸까요? 자아! (하며 옷을 벗고 라이프 벨트를 들고 나선다)
[성희] (별안간 푹 엎드려 흐느낀다)
[최열] 왜? 내가 실례의 행동을 했나요? (도로 옷을 주워 입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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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울며) 아녜요! 아녜요!
[최열] 아마도 여기가 그다지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군.
[성희] 절대로 그렇잖어요.
[최열] 그럼 어찌된 일인지 말을 해야지.
[성희] 아무리 선생님이 애를 쓰셔도 난 틀렸어. 창문없는 그 마굴 생활은 나를 등신을 만들었나봐. 그렇잖으면 내 가슴은 지금 벅찰 만큼 행복에 젖어 있는데, 왜 옥경이 모양으로 뛰놀지를 못해요? 6.25전만 해도 옥경이보다 내가 오히려 활달한 편이었는데---
[최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끼며) 성희씨, 낙심말고 더 노력합시다. 지나가는 감기도 한번 걸리면 몇 달이 가는데,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그 개굴창에서 그렇게도 짓 ꑰ힌 넋이 하루 이틀에 제자리 찾겠어요? 나는 확신해. 이런 밝은 햇빛을 받으며 한적한 대자연 속에 안겨 있으면 얼마 안 가서 성희씨는 다른 사람 못잖게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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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진다고요.
[성희] 정말 이런 년도 사람 구실을 다시 할수 있을까요? 즐거운 때에 웃을 수 있고 서러울 때에는 울 수도 있는---
[최열] 할 수 있다뿐이오?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봄이 오면 땅이 녹고, 아지랭이가 피면 풀잎이 되살아 납니다.
[성희] 틀렸어. 내 주위가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내 꼴은 더욱 처참해 보이고 더욱 더러워 보이는걸. 그럴땐 나는 그 당장에 이 등신을 돌로 짓찧어 그 흔적조차 없애 버리고 싶을 뿐이오.
[최열] 가엾은! (하고 성희의 손을 꼭 쥐며) 제발 제 육신을 그렇게 학대하고 제 영혼을 그렇게 업신여기지, 흙에 묻힌 눈 없는 지렁이, 발에 채이는 말 없는 돌멩이! 그런것 조차가 연고없이 된게 아니거든,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랴! (스스로가 감격한듯 시 한구절을 왼다) 생명! 눈에는 안 보여도 소리치면 응하는 산울림- 생명!
[최열] 바로 오늘 아침의 일야. 내가 저 바위에 올라앉아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겠어요? 잠자는 바다는 죽은듯 했오. 그러나 한번 바람이 불면 사나운 파도가 되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요. 그리고도 바다는 제 아름다움과 권위를 잃지 않고 있잖아요? 우리 인간도 바다와 같이 대자연에 순응해야 할것 같애. 저 하늘에 뜬 물새! 저 수평선에서 감실거리는 돛대! 영원을 지향하여 그 얼마나 허탈해?
[성희] 사람도 그와 같이 자연에 몸을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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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저를 내세우려는 야망과 허세를 버리고---
[성희] ---
[최열] 눈으로 볼수 없는 대기와도 같이---
[성희] 아아, 선생님! 옥경이가 선생님의 시를 읽고 살 힘을 얻었다더니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나도 어쩐지---
[최열] (다정히 성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바다바람의 상쾌함을 느낄수 있잖아요.
[성희] --- 예.
아까부터 우클레레 소리 들리더니 이때 옥경 우클레레를 뜯으며 등장.
[최열] (바라보며) 옥경이군. 신선도에 나타나는 선녀같이 악기를 뜯고---
[옥경] 언니! (하고 소리치며 달려온다)
[성희] 너 왜 이렇게 늦었니?
[옥경] 그새 물이 들어, 이 우쿨렐레를 얹어 둔 바위가 물 가운데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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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 있지 않겠어?
[성희] 너 헴치노라고 고생했겠구나.
[옥경] (그렇잖다는 뜻으로) 어엉, --- 뭐 할까?
[성희] 아무거나---
[옥경] 학생 때에 노상 언니가 부르던거?
[성희] (옥경이가 뜯는 멜로디에 맞춰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
피는 구름 흰구름
두둥실 하늘 저편
은빛깔 맑은 바다
꿈 인듯 아슴푸레
사랑은 향기련가
그윽히 어리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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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황홀하여) 아니, 웬일이오? 전문가 이상인데-
[옥경]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언니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일류 소프라노였다는 사실을-
[최열] 그래?
[성희] 얘, 창피스럽다--- (하며 동생의 입을 막으려 한다)
[최열] 앙콜! 앙콜!
[성희] 그만 놀리시고 물에나 한 번---
[최열] 좋아요. 그러면 더위를 좀 가시고 나와서 다시--- (옷을 벗어 던지고 성희를 데리고 간다)
[옥경] 언니 가만 있어. 이것 가지고 나도 같이--- (라이프 벨트를 찾아든다)
[성희] 옥경아, 저녁 지을 때가 되지 않았니?
[옥경] ---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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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라이프 벨트를 뺏으며) 넌 예서 저녁 지어라. 선생님 모시고 잠깐 들어갔다 곧 나올께--- 선생님 가요.
최 열은 성희와 바다로 사라진다. 못마땅한 듯이 쓰고 있던 수영모자를 벗어 던지는 옥경. 천막 안에서 원피이스에 에프론을 찾아 입으면서 궁금한 듯이 두사람이 사라진 바다 쪽을 바라본다. 성희의 노랫소리 바다 쪽에서 들린다. 이 때 가짜 아저씨 등장, 그는 낚시대와 낚시 도구들을 들었다. 그의 뒤에 행상녀 따랐다.
[가짜] 옥경이 뭘 그렇게 바라봐?
[옥경] 가짜 아저씨, 두 분 낚씨질 나왔구려.
[가짜] 밤낮 사업에만 몰두할 수 있냐? 이거 지져 저녁 반찬 해라. (망태에서 생선을 몇 마리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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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에그, 벌써 많이도 낚았네.- 고마워!
[행상녀] 너희들이 이런 데 나와 있겠거니 하고 찾아 왔다.
[가짜] (살림 차려 놓은 것을 둘러보고) 아이구, 우리 지하실 살림이 그대로 나와 있구나.
[옥경] 근사하지 않아요?
[가짜] 자리 잘 잡았다. 얘야, 먹을 물 좀 줄래?
[옥경] (최 열과 성희의 나간 쪽에만 정신이 팔려서 대답이 없다)
[가짜] 옥경아, 뭐가 있기에 그쪽만 자꾸- (하며 같이 바라보려 한다)
[옥경] (못 보게 한다) 아무것도 아녜요.
[가짜] (가리키며) 아니, 저기 저 사람이 최 선생하고 언니 아니냐?
[옥경] ---
[가짜] 어이구, 웬일이야? 사람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안던 최선생이 언니하고 어린애처럼 물 장난을 하고 있으니- 왜 넌 같이 안가구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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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옥경] 요즘 우리 지하실은 무척 덥죠?
[가짜] (옥경을 의아하게 쳐다보며) 이 자석이 딴전은?
[옥경] 요 다음에 나오실때 그릇하나 갖다 주실래요? 뭐가 없더라? 옳지, 화젓가락-
[가짜] (옥경의 얼렁뚱땅하는 것이 하도 기가 막혀) 하하하--- 이 자석! 너 샘이 났지? 최선생을 언니에게 빼앗겨서?
[옥경] (당황하여) 에이, 이놈의 아저씨! 망칙스럽게 그 무슨 소리야? (하며 달여들어 때린다)
[가짜] (손을 내저으며) 아이구 잘못했다. 그 말 취소다!
[옥경] (생선을 내동댕이치며) 요까짓 것 안갖다 줘도 좋아요! 가지고 가요! (하고는 앵돌아 앉아 풍로에 부채질 한다)
[가짜] 아따, 장난으로 놀려 봤는데 이렇게 틀릴 게 뭔고? (생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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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주워 놓으며) 집에서 화젓가락을 가지고 오랬지? 음, 그래. 내일이라도 갖다 주마.
[옥경] (쏘듯이) 그만둬요, 일 없어.
[가짜] 정말 일 없다믄 그만두구--- (나가려 한다)
[옥경] (고개를 들어) 아저씨!
[가짜] (고개를 돌이키며) 응.
[옥경] --- 거, 사내 어른들은 과거를 가진 여자라도 진심으로 좋아할수 있나요?
[가짜] 갑자기 그건 왜?
[옥경] (조르듯이) 글쎄 말예요.
[가짜] 혹, 짓궂은 녀석은-
[옥경] (눈이 둥그래지며) 뭐요?
[가짜] 맛이 든 과일을 골라 잡을려거든 버려지 먹은 것을 따 먹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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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있잖어?
[옥경] (별안간 쏘다시피) 괜한 소리 마세요. 그런 병든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딨단 말예요?
[가짜] 톡 털어 놔봐. 최선생이 너를 두고 언니만 데리고 가서 그렇지?
[옥경] 몰라요! (앵토라져서 흐느낀다)
[가짜] 걱정 마, 난 네 편이야. 네가 최선생님을 얼마나 은근히 사모하는 줄 알고 국수나 한 그릇 얻어 먹을까 하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은근히 애를 썼다구. 하지만 이러구 보니 최선생은 싱싱한 과일보다 버려지 먹은 걸 즐기는 것 같애. 컴컴한 지하실을 떠나지 않던 최선생이 볕이 쨍쨍이 쬐는 해수욕장엘 나온다고 책을 싼다--- 의자를 끌어낸다. 풍로를 싣는다 할때 부터 난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옥경] ---
[가짜] 언니는 그만 주어 버려, 최선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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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뭐요?
[가짜] 두더지 새끼는 두더지 새끼끼리 흙을 파는것 아냐?
[옥경] (대들며) 그럼 우리 선생님이 두더지란 말야?
[가짜] (쓴 입맛을 쩍쩍 다시며) 아! 아!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나하고 같이 집으로 가자 그만.
[옥경] 내가 왜?
[가짜] 나이 먹은 사람의 말은 들어서 약이 되는 때가 있느니라. 암말 말고 네 짐이나 챙겨라. 이 사람이 어딜 갔어? 여보! 여보--- 저기서 게를 잡고 있군그래. 여보, 집으로 돌아가지. (퇴장)
경쾌한 성희의 노랫소리 들린다. 옥경 얼른 저녁 짖는 시늉을 한다. 성희, 아까와는 딴판으로 아주 쾌활하게 나타난다.
[성희] (손을 흔들며) 선생님 기다리게 안돼요, 빨아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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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멀리서 소리만) 오오.
[성희] 바다에 뛰어들어 물을 흠떡 둘러썼더니 여간 상쾌하지 않다. 최선생님은 매점에 가셨다. 오늘 저녁에 내 독창회를 열어 주신다나, 과자니, 과일이니, 사이다니 사가지고 와서- 밥 좀 많이 지어라. 오늘 저녁엔 밥 맛이 여간 있질 않겠다. 참, 이게 선생님께 해드릴 새우지? 요리는 내가 할께 아이고, 후라이에는 빵가루가 필요한데--- 없지?
[옥경] 음
[성희] 아냐, 빵부스러기가 남았었다 (부산하게 빵부스러기를 찾아내어 가루를 만든다. 스위이트한 노래를 흥흥거리며--- 문득) 옥경아! 웬일이냐? 지금과 꼭 같은 이런 전경이 지난날 언제구 우리에게 한 번 있은 것 같구나. 그때가 어느 때였던가? (깊이 생각더니 별안간) 오오 인제 생각났다! 옥경아, 너도 잊지 않았겠구나. 해방된 이듬해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충청도 속리산에서 한 여름을 지내던 땔? 우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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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숲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그윽한 향기를 마시면서 바위틈에서 솟는 맑은 약수를 떠다가 저녁을 짓노라고 지금 꼭 이때와 같이 넌 불을 피우고 난 반찬을 다듬고--- 호호호--- (우는 소린지 웃는 소린지 분간할 수 없다)
[옥경] (눈물을 슬쩍 씻는다)
[성희] (여전히 공상에 취하며)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6, 7년밖에 안 되는데--- 아, 행복이란 언제나 이렇게 꿈같이 아득한 건가?
[옥경] (부르짖다시피) 아아, 그만 두어요. 그만! (하며 왈칵 느낀다)
[성희] 너 우는게 아니냐? (자기도 눈물을 씻으며) 호호호--- 나도 괜히 눈물이 나오는구나. 눈물이란 슬플때에만 나는 게 아닌 모양이지? 울지 마, 우리는 그때와 같은 행복한 생활을 지금에야 되찾았으니까---
[옥경] (몸부림치듯) 우린 도저히 그때와 같이 행복할순 없어! 이젠 틀렸어, 그런땐 다 지나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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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물론 그때와는 우린 다르지, 우리는 벌써 나이를 먹어 단발머리가 파아마로 변했고 사변에 부모를 여의어 고향 하늘을 아쉬워할 줄을 알고--- 허지만 옥경아, 불행중 다행으로 최선생과 같은 교양이 높고 이해성 깊은 이가 그림자같이 우리 가까히 계시지 않니? 그이는 네 말대로 사귀면 사귈수록 깊이가 있고 멋이 넘치는 어른이야. 난 진심으로 네게 감사한다. 옥경아 그분의 말씀은 아쩌면 구구절절이 가슴에 스며드냐? 마치 봄을 실은 바람이 한번 부슬거리면 돌덩어리같이 언 땅이 고운 가루가 되듯이 그분의 숨소리만 들어도 내 말라붙은 가슴은 부풀어오르는 것 같구나. 옥경아 이리 와서 이 가슴을 한번 짚어 봐라. 호호호--- 못나게도 이 나이에 다시 내가 소녀로 되돌아가려나? (혼자 대굴대굴 구르다 벌떡 일어나) 아니, 선생님이 왜 여태 안오셔? (멀리 바라보며 부른다) 선생님! 선생님!
[옥경] (북밭치는 울음을 참을 길 없어 얼굴을 싸고 천막 안으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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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다)
[성희] 호호호--- 내 소릴 알아 들으시고 선생님이 저 뛰시는 것 봐. 옥경아, 저것 좀! (옥경을 찾는다. 제 자리에 없다) 얘가? 여기서 불 피우든 애가 어딜 갔어, 갑자기?
[최열] (청료수, 깡통, 과자, 과일 등 먹을 것을 잔뜩 안고 나타나며) 성희씨!
[성희] (뛰어가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많이도 사셨네!
[최열] 일생일대의 대음악회를 베풀 텐데, 이 만큼은 준비를 해야죠.
[성희] 선생님을 실망케 해 드리면 어떻게 해?
[최열] 아무 걱정 마세요. 성희씨가 노래를 부르게 됐다는 사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대만족이오.
[성희] 서툴러도 눌러 들어 주시겠단 말씀이죠?
[최열]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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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라라라라--- (하며 까불고 노래 부른다)
[최열] 서툴은게 뭐요? 목소리가 한결 맑고 깨끗해졌는데
[성희] 아이 고마워! (감격하여 최열의 품에 뛰어들려다가 부끄러워 주춤 피한다)
[최열] (두팔을 뻗어 성희를 냉큼 낚아트린다)
[성희] (남자의 목을 힘껏 끌어안는다)
[최열] (꽉 껴안은채 몇번이고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그리고는 죄나 지은듯 얼른 떨어진다. 열적은 듯이 고개밑으로 서로의 얼굴을 치어다보다가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씩 웃으며 시선을 피한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두사람 후다닥 덤벼 서로 얼사안는다. 아까보다 더 열정적으로 모래밭에 쓸어져 하나가 된다. 다른 정신없이 거센 호흡 씩씩어린다. 마치 눈이 듸짚인 동물들이다)
[옥경] (날샌 짐승같이 덤벼 성희의 뺨을 친다. 연거퍼 서너차례! 힘껏 모질게 그리고 퍼붓는다) 죽어! 뒤져! 이 병신 같은 것! 앨써 살려주니까 하는 짓이란 이 따위야! 일선지구에서 양키놈들과 놀아먹던 갈보년 행세를 여기서도 해야 맛이야?! 잡껏!! 화냥년!! 더럽다! 더러워!! (성희의 얼굴에다 침을 배앗고) 보기 싫어!! 없어져! 뒤져!! (하고 퍼붓는다)
[최열] 얘!! 요 계집애가 어디다가 함부로 못된 주둥아리를 놀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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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며 옥경을 모래바닥에 메다 꽂는다)
[옥경] (쓸어진채 터지는 울음! 악을 쓰고 울더니 원망스러운듯 이를 바드득 갈며) 나는 죽어 버릴테야! 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테야. (다라나려 한다)
[최열] (붓들고) 이게 망신살스럽게 죽긴 왜 죽어?! (옥경을 한번 더 모래바닥에 처박는다)
[옥경] (호덜갑스럽게) 아- 어머니! 날 데려가 이 더러운 꼴 보고 난 못살아! 어머니! 어머니!! (땅을 헤비며 몸부림친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섰던 성희, 참지 못해 옷을 찾아 걸치기가 바쁘게 쏜살같이 다라나버린다)
[최열] 성희씨! 성희씨!!어디로 가요? 성희씨!! (성희의 뒤를 따르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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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고개를 들어 두사람의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바라본체로 못 박힌듯이 한동안 먼 하늘에서 멀고 가까운 우뢰 소리, 두 서너번 울린다. 옥경 자기의 지나치게 흥분했음을 니우치듯 두손으로 얼굴을 싼다. 이때 우뢰 소리와 함께 벼락 치는 소리 하늘을 찢는다. 옥경 「아!!」하고 목이 터질듯 악을 쓰며 두손으로 자기의 귀를 막고 모래밭에 쓸어진다. 캄캄해지는 하늘! 노정의 돌맹이와 같이 모래밭에 뒹구러진 옥경의 꼴! 죽은 듯 동정이 없다.
-가만히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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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4막
제1막과 같은 무대. 전막으로 부터 며칠후 저녁. 막이 오르면 쭈구리고 돈을 세고 앉았던 행상녀, 근심스럽게 집안을 살펴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다음 허리에서 돈 전대를 끄른다. 세던 돈을 도로 전대에 넣고 다시 허리에 차려한다. 밖에서 들어와서 이 광경을 본 가짜아저씨, 시치미를 떼고 안으로 들어온다. 행상녀, 도둑질이나 하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하며-
[행상녀] 기침이나 하고 들어오시라우요
[가짜] 그 돈 이리 내요. 내외간에 내것 네것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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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내외간이면 살이나 섞지, 돈까지?
[가짜] 살은 섞어도 돈은 못 섞는다 그런 말인가?
[행상녀] 우리는 가짜 부부라메?
[가짜] 언제는 진짜라더니?
[행상녀] 그만두시고레. 난리에 잃어버린 묵은 예편네를 밤낮 기대리고 있으면서? 그 예편네만 나타나봐, 난 밀려나고 말지.
[가짜] 우리끼리 말이지만 가짜 아닌게 어딨어? 이세상에,- 가짜 시장에, 가짜 형사.- 가짜 박사에, 가짜 숙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도 가짜구- 진짜는 장차 우리가 영생할 천당뿐야.
[행상녀] 천당에 가 본 사람 있소? 없지? 없는데 뭐?
[가짜] 그럼, 천당이구 뭐구 다 가짜란 소린가?
[행상녀] 가짜가 진짜구- 진짜가 가짜야.-
[가짜] 아아, 그렇다면 우리도 진짜 부부라는 결론이게? 야아 진짜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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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 진짜 신랑에게 맡겨요. 에랑 에랑 에헤야 네가 내-
[행상녀] 아따! 얼렁뚱땅해서 사람을 감아 넘기려구? 어림없다! 이래봬두 난 저 압록강 가에서 이 남쪽 끝 부산바닥까지 휭휭 날으는 대포 알을 헤치고 기어온 사람야, 물어 뜯어도 피 한 방울도 안나.
[가짜] 왜 안 그렇겠어? 저렇게 호초씨 같이 생겼는데- 그만두우, 그러면 자네 문자대로 우리 살이나 섞지. (베개를 찾아낸다)
성희, 실내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큰 흑인 병사를 끌고 나타난다. 그녀의 분장은 두드러진 창부의 차림이다.
[성희] (흑인 병사를 끼고 입구에 버티고 서서 누구나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팽푸! 여기 없냐?! 왜 선뜻 나타나서 모셔 들이지 않아?!
[가짜] (창피를 당한 듯 후다닥 일어나 한구석에 몰리며 행상녀에게) -저게 웬일이야?
[행상녀) 집을 잘못 찾아 들어왔나봐 (입구를 향해서) 여기는 번디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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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네다.
[성희] 서울서 놀아먹던 양갈보 칼멘야, 이거 하나 낚았어.
[행상녀] 옳아! 옥경이 언니로구먼 왜 더렇게 됐어? (하고 가짜아저씨를 본다)
[성희] (색정적인 속요를 흥얼거리며 흑인 병사에게 몸을 치댄다) 나는 까만 것 중에도 진짜 새까만 게 더욱 좋아 (흑인 수줍어한다)
[행상녀] 어, 어드러카지? 집으로 마구 들어오는데-
[성희] 서울에선 거리에 나가기만 하면 덜컥- 참 쉬운데, 여기 부산은 틀렸어. 어디가 낚시턴지 알수가 있어야지. 저 아래 부둣가 으슥한 데서 가까스로 이걸- 우리 신랑 참하지? 첫 솜씨로는 근사한 걸 물었지? 다아링! 들어가서 밤새 날 실컨 뜯어먹어라. 실컨! 실컨! 오케? 호호호--- 이 선량한 눈깔! 오, 다아링! 다아링! 캄인! (걸려있는 어머니의 사진을 떼서 덮어 놓으며) 어머니는 눈감고 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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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캄인! (교태를 부리며 흑인 병사를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흑인이 도리어 수줍은 듯 방문을 닫는다)
[행상녀] 이렇게 되면 우리집이 뭐가 되고 우리가 뭐가 되우?
[가짜]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일선전투 지구에서 놀아먹던 버릇을,
[행상녀] 옥경인 어디메 갔어? (화가나서 소리친다) 옥경아! 옥경아!
[가짜] 옥경이가 오면 뭘하우? 옥경일 보라구 일부러 하는 연극 같은데.
[행상녀] 저런 연극이면 으슥한 데서 하지, 왜 하필이면 내 집에서?
[가짜] 우리같이 담요를 둘러쓰고 남의 눈을 피하는 건 진짜고, 저렇게 펼쳐 놓는 건 가짜 연극 이라니깐! 가짜 연극!! 우리의 하다 만 진짜나 계속합시다.
[행상녀] 기분 잡텼어! (담배를 꺼낸다)
[가짜] 아따! 용렬하기도! (행상녀, 화가 나서 담배를 쭉쭉 빤다.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럼, 나는 일이나 할까? 돈 많이 벌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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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화장품 회사 간판이나 하나 걸고, 진짜 사장님이 돼서 우리 진짜 예편네 기다렸다가 그것이 진짜로 나타나걸랑 흥야 부야 진짜로 놀아 보겠다. 에랑 에랑 에헤야 내가 네 사랑가- (약을 올리려는 듯 힐끔힐끔 행상녀를 흘겨보며 화장품을 담기 시작한다)
[행상녀] (혀를 차며) 끌끌--- 이게 뭐 남의 약을 올리나?
이때 옥경, 여행용 가방을 사 들고 등장.
[옥경] 가짜아저씨, 이 돈 언니 오거들랑 전해 주구려, 난 지금 떠나요. 매월 언니의 생활비조로 그만큼씩 보낼 테니까, 아저씨가 맡았다가 언니의 수발을 좀 보살펴 주세요. (들고 온 가방을 열고 마루끝에 챙겨 두었던 헌 옷을 넣는다)
[행상녀] 야, 너희 방문이나 열어 보라우.
[옥경]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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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글쎄, 열어 보라니께.
[옥경] 챙길 것 다 챙겼어요.
[가짜]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문구멍으로라도 한번 들여다보기나 하고 떠나려무나.
[옥경] 싫어요. 애착 없어. 과거는 다 흘려 버리겠어. 잊어버리겠어요. (하고 가방을 챙겨 들고 나가려 한다)
[행상녀] 옥경아!!
[옥경] 흥미 없다니까!
이때 옥경의 방문이 휙 열리더니 커다란 군화 한컬레가 휙 날아온다. 옥경, 깜짝 놀라 자기 앞에 떨어진 군화짝을 의아한듯 바라본다. 옥경, 마침내 문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본다. 그만 으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동그라진다. 방안에서 성희와 흑인 병사의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소리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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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이 에미나이야. 어쩌자구 네 언니가 그런 끔찍한 딧을 하나?!
[옥경] (말문이 막혀 일어서지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뿐이다)
[행상녀] 우린 옮기갔다. 이 방값 치뤄내고, 이 집을 너희가 맹탕 떠맡아라. 그래서 매춘굴을 만들든지, 양갈보 소굴을 꾸미든지, 너 멋대로 해라. 얼른 방값 치뤄 내!!
[가짜] 옥경일 데리고 딱따거리지 말아. 옥경이는 우리보다 더 놀랬을 거고, 옥경이 가슴이아픈건 우리의 비가 아닐거야. 옥경아 지금 말이지만, 아래 내가 너희들의 해수욕하는 델 들렸을데 뭔가 불안했었다. 하지만, 언니가 이렇게까지 백팔십도로 급변할 수 있나?
[옥경] 최선생님을 깨끗이 잊으려고 언니가 기를 쓰는군요.
[가짜] 너더러 마음놓고 최선생을 가지라고 저러는 게 아냐?
[옥경] 물론 그렇기도 하겠죠.
[가짜] 에이구, 일이 까다롭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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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내가 없어져야 해요. 그래야 언니는 물론이고, 최선생님까지도 구원을 받아요. 그래서 이렇게 내가 아주 떠나려는 거 아녜요? (자기의 가방을 가리킨다)
[가짜] 그러면 여태 최선생님께 드린 네 공이 아깝지 않니? 난 네 편인데-
[옥경] 내가 미련했고, 내가 잘못했어요. 내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최선생님을 단념 못한 내가 바보였고, 질투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내가 아주 나빴어.
[가짜] 그 신가 뭔가 하는 것에 빠졌던 게 병이야. 그게 뭐가 좋다구- 뭐라더라. 오늘 하루도 헛되이 옛추억을 안고 두더지 마냥 나는 어둠을 딩굴었나니 아! 인간인란 본시- 옘병할 개똥같은 소리-
[옥경] 최선생님이 원망스럽고 미워졌어요. 날 언제까지나 소녀 취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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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내 나이 열여덟- 내게도 여자로서 있어야 할것 다 있고 생겨야 할것도 다 생겼고, 소견도 다 났는데, 그런데도 날 어린애로만 여기고, 내 몸에 한 번도 손도 안대 보고, 날 한 번도 안아 주지도 않고-
[가짜] 열여덟이면 날 것 다 나구말구.
[행상녀] 흉칙스럽게- 그만두라우요! (하며 토끼눈을 흘기며 가짜를 꼬집는다)
[가짜] (당황하여) 아, 아냐, 옥경이가 가엾어서 그래. 얼마나 순진해- 그런데 옥경아 어디로 떠나지?
[옥경] 어제 길거리에서 서울서 같은 중학에 다니던 동무를 만났다고 하잖았어요? 그 동무의 집이 부산서 서너시간 배 타고 갈수있는 섬이래요. 거기 가서 쉬자고 해서- 오늘 밤 배로 같이 떠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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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우리는 어디루 내빼나? (성희가 있는 방을 흘겨보며) 에이 참 속상해서-
이때, 김 대석 그의 비서 고군을 데리고 등장.
[김대석] (들어서면서) 에그, 옥경이! 옥경일 보러 왔는데 잘 만났어. (옥경이가 들고 있는 여행 가방을 보고) 감천인가 어디서 캠핑을 한다더니, 집어치우고 지금 돌아 오는 길인가? 그렇잖어면 어디로 떠나는 참인가?
[가짜] 동무하구 섬에 간다구-
[김대석] 아- 거기 그만두고 나하고 서울 안 올라가! 고급 자동차를 준비했는데 이번에야말로 나하고 꼭 동행해야 돼. 차도 좋고, 편안도 해. 바로 푹신푹신한 장관들이 타는 잡아진 세단이야.
[옥경] 언제 올라가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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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석] 조금 급하기는 하지만--- 이따가-
[옥경] 서울로 올라가면 나를 사장님 회사에서 일보게 해 주실래?
[김대석] 옥경이만 좋다면야- 비서실장! 어때? 좋지?
[옥경] 정말?
[김대석] 난 사장야. 내가 거짓말하는 것 들어 봤어?
[옥경] 아이고 고마워, 떠나겠어요.
[김대석] 최선생인가 하는 시인은 어떻게 하지?
[옥경] 최선생하고 무슨 관계가 있게요?
[김대석] 오오, 이거 옥경이한테 사죄해야겠는데, 여태 나는 옥경이가 그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이인가 하고 오해하고 있었어. 이렇게 되면 옥경이의 그 명석한 두뇌를 새삼 찬양 안할 수 없어. 잘 판단했어. 결국 시인의 세계란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는 신기루! 그 신기루란 일종의 꿈! 우리의 실생활에는 아무 소용없어. 다윈의 학설을 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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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도 없이 인간이란 동물의 일종- 먹고, 자고, 일하다가 죽는---
[옥경] 곧 떠나신다면 시간이 없지 않아요? 나도 같이 가자면 동무한테 못 가겠다는 말도 전해야 하고-
[김대석] 참, 그렇군. 옥경이 나 곧 자동차 몰고 곧 올께. 악수! (악수하며) 6.25 동란에 실업가란 실업가는 모두 다 똑같은 빨가숭이야. 앞으로 나하고 같이 빤스 바람으로 뛰어야 해. 알겠지?
[옥경] 몇시에 오시죠?
[김대석] 한시간 안으로-
김대석 비서를 데리고 퇴장.
[가짜] 옥경아 그자하고 같이 가선 안된다.
[옥경] 아저씨, 가방 맡아 두어요. 내 친구한테 같이 섬에 못 가겠다고 거절하고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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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옥경아, 그 사장인가 하는 녀석하고는 같이 서울갈 생각마.
[옥경] 아니에요, 서울로 가겠어요. 이왕에 멀리 떠나 버리겠어요. 멀리- 멀리- 이 부산을 아주 잊어버리게. 서울보다도 더 먼 델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가짜] 그 자의 본업이 뭔 줄 알아? 갈보장수- 인육상- 포주란 말야.
[옥경] 그러면 그도 가짜 사장이게요?
[가짜] 가짜 아닌 게 어딨어?
[옥경] 어머나!!
[가짜] 큰일난다. 옥경이 너 그자한테 아주 멕히고 만다. 맥히기만 하나 너 언니 꼴 못 봤니? 너 일생을 망치고 만다. 너 밑도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만다.
[옥경] 설마-?
[가짜] 설마가 사람 죽인다. 이 몇 달 동안 그자가 네게 몹씨 친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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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더라. 나는 벌써부터 경계하고 있었어. 그 자가 커다란 명함에다 무슨 고철회사 사장이니, 무역상사 회장이니 하고 주먹같은 활자로 박아 가지고 다니지? 그것 다 가짜다, 비서가 뭐고, 비서실장이 뭐냐? 그자가 서울을 문칸 드나들 듯하는 것은 부산의 우글우글하는 계집애들을 실어다 일선지구에 위안부로 팔아먹기에 바빠서 그래.
[옥경] 그래도 난 서울로 따라가 버리겠어요. 죽기 밖에 더 하겠어요? 죽어도 그만이구, 죽는 게 오히려 나을지 몰라. 낫고말고.
[가짜] 저런!
[옥경] 죽어 버릴테야.
[가짜] 옥경아.
[옥경] 내가 늦더라도 사장더러 좀 기다리게 해 줘요. 꼭 서울로 같이 간다고.
옥경, 급히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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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혀를 차며) 헤이 참, 저 애도 그 예 제 언니 꼴 되고 말겠는데- 그 사깃군한테 걸려서-
[행상녀] (방을 가리키며) 옥경이 대신 더 귀신이 서울로 동행했으면 만사가 펴지지 않겠소? 더짓만 없으면 우리도여기에 눌러 살 수도 있고,
[가짜] 그건 우리 욕심이구-
[행상녀] 님자가 한번 일을 꾸며 보구래. 당신은 가짜 화장품도 만들지 않소? 머리도 나쁘지 않고- 꾀도 많고-
[가짜] 매맞을 소리 말어.
[행상녀] 누구한테 매를 맞어?
[가짜] 아따, 저 귀신을 두고 죽자살자하는 시인인가 뭔가 하는 친구가 있지 않아? 성희가 갈보장사 따라 서울로 올라간 줄을 알아 봐. 그 자가 가만 있겠나? 네가 소갤 하지 않었느냐 하고 나를 막- (머리를 설레설레하며) 에이, 그만 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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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출입구에 자동차 기척이 나니까) 벌써 차를 몰고 오는 것 아니야. 가짜아저씨 당신이 가짜를 부려서 사장을 따돌려 버려요. 당신은 가짜가 아니우? (하면서 옥경이가 맡겨 놓은 가방을 감춰 버린다)
최열 등장.
[가짜] 난 누구라구, 최선생이야.
[행상녀] 최선생 어디 갔다 이렇게 늦었소?
[최열] 성희 아직도 안 들어왔나요? 성희한텐 부산이 생소해서 갈 만한덴 없을 텐데. 해안이고, 산이고 아무리 찾아 헤매도 그를 만날 수가 없군 그래.
[가짜] 저녁이나 자시고 다니나?
[행상녀] 우리 저녁 먹다 남은 것 있으니께 올라와서 한술- (서툴러 저녁상을 차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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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열] (문앞에 놓인 여자 신발을 보고 기뻐서) 아, 성희씨가 아 있군요. (하며 방으로 뛰어가다가 그 옆에 놓인 군화를 발견하고) 이건? (하며 들어 본다)
이때 안에서 남녀의 웃음소리 떠들썩하더니 거진 나체인 성희, 흑인 병사를 끼고 나온다. 기가 막혀 쳐다보고만 있는 최 열에게 군화를 빼앗아 흑인 병사 발에 신겨 주는 성희, 구두끈을 매는 흑인 병사의 목을 등뒤에서 껴안고 몸을 치대며 음란한 속요를 읊조리는 성희, 구두를 신고 일어서자 흑인 병사를 껴안고 춤을 한판 추더니 키스한다.
[성희] 다아링, 또 놀러 와. (애교의 키스를 자꾸 던진다)
흑인 병사, 수줍어하며 손을 흔들고 퇴장, 골이 머리끝까지 올라 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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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 최 열을 못 본 체, 성희는 제 방으로 도로 들어가려 한다.
[최열] (벽력같은 소리로) 성희!! (상대의 손목을 잡아챈다)
[성희] (나가떨어져서) 내가 여태 뭘해 먹고 살았는지 몰라? 이게 내 생업이야.
[최열] 뭣이? 생업이라구? (뺨을 모질게 갈긴다) 성희 쓰러진다. (쓰러진 성희를 마구 발길로 차면서) 더럽다!! 더러워!! (겨우 성희의 치부를 가리고 있는 옷마저 갈기갈기 찢고는 마침내 성희를 낚아 내어 메다 꽂는다) 보기 싫다!!
[가짜] 에그! 살인나겠네.
[행상녀] 고래 싸지, 두어둬요. 좀더 얻어맞게-
[성희] (한구석에 메다꽂인 채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앉았다)
[최열] (눈에 눈물이 잔뜩 괴어) 이건 성희 핸드빽에 들었던 수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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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같이 죽겠다고 말해?!
[성희]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독한 술을 받아 와. 아주 지독한---
[최열] 독한 술을 마시고 이걸 먹고 죽잔 말이지? (성희 고개만 끄덕) 좋아, 내 나가서 사 올께. 방 치워 둬 아냐, 저 더럽혀진 방에서 죽을 순 없어 밖으로 같이 나가, 저 뒷 산에 가서 죽어
[성희]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우두커니 앉았다)
[최열] (옷을 내다 던저 주며) 같이 나가요.
[성희] (싫다는 뜻으로 고개만 설레설레 흔든다)
[최열] 죽을 마당에 자리 가릴게 있나? 좋아, 저 구데기 나는 쓰레기 통에서도 좋아, 그러면 저 방에서 죽기로 하자.
최 열, 급히 뛰어 나간다. 성희 슬그므니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서 외출복을 걸치고 가발을 벗는다. 화장을 지우고 가짜아저씨에게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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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할듯하더니, 흑 느끼며 얼굴을 싸고 운다. 한동안.
[가짜] 왜 그래?
[성희] 아까 김사장이 다녀 갔죠. 얘깃소리 다 들었어요. 방에서 아저씨 나를 서울로 올라가도록 해 주세요. 옥경이 대신 내가 가야 해요.
[행상녀] (손뼉을 탁 치며) 그거 잘 생각했쉐다, 그래야 만사가 제대로 들어선다.
[가짜] 사실 말이지, 너희 둘이 자살해서 그 송장이 저 방에 뻗어 있으면 누가 치워? 우리가? 앗어! 앗어! 죽자는 소리를 듣고 난 아찔 했다. 에그, 끔찍해.
[성희] 그 사장 댁이 어디죠? 내가 지금 찾아갈래. 찾아가서 애원할래요. 날 데리고 올라가 달라고.
[가짜] 일루 곧 오기로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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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최선생이 오면 일이 다 틀려져요.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수 없어.
[행상녀] 최선생뿐인가, 옥경이가 와도 안되지. 니어 데리고 꺼져요. 당신이 얼른. 왜 이러고 있어!
[가짜] 그럼 가. (일어선다)
이때 밖에서 자동차 클랙슨 소리 나더니 김대석 급히 들어온다.
[김대석] (들어서면서) 옥경아 준비 다 됐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빨리 왔어.
[가짜] 오, 옥경인 떠났는데-
[김대석] 뭐, 어디로? 어디 숨어 있는 게 아냐? (찾는다 보이지 않으니까) 이 가짜아저씨가 수상해. 늘 나를 못마땅해 하거든! 어디 숨겼소?
[가짜] 아까 사장이 옥경이 찾아오셨을 때, 옥경인 제 동무하고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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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참이라구 하잖았어요? 아무래도 제 동무하고 같이 가야겠다면서 사장한텐 미안하다구요, 약속을 못 지켜서- 그랬지? (하고 행상녀를 본다)
[행상녀] 암, (하며 옥경의 가방을 깔고 앉는다)
[김대석] 개수작 마라!! 내가 고 계집앨 서울로 돌려 내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동안 돈 쓴 것만해두- (이때 뱃고동 소리 뚜우 들린다)
[가짜] 저것 들어 보우, 저게 바로 섬으로 가는 뱃고동 소리야. 이왕 떠나 버린걸 여기서 바둥대면 뭘해? 목만 아프지?
[행상녀] 그렇지요, 목만 아프죠.
[김대석] 에이, 고 계집애 먹을 음식도 잔뜩 준비해서 자동차에 가득 실어 놨는데-
[행상녀] 아따! 요 다음에도 기회야 있잖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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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석] 제에길, 재수 옴붙었는걸!
[성희] 가짜아저씨- (자기의 말을 부탁해 달라는 재촉이다)
[가짜] 저어, 아 서, 성희씨가 옥경이 대신-
[성희] 사장님, 옥경일 태우려던 자리에 나를 좀-
[김대석] 예? 성희씨가 도로 올라가려고? 그 몸 가지고 서울가야 돈벌이는 안돼요, 그만두오.
[성희] 내 몸이 어때요? 꽤 좋아졌는데- 사장님 덕으로 여기 와서 흠뻑 쉬어서-
[김대석] (성희를 튐어보더니) 봉 아니면 꿩이다. 타요! 이왕 한 자리 비었으니- (하며 출입구로 떠밀어 낸다)
[행상녀] 고맙습네다. 사당님! (어머니의 사진을 손에 든다)
[김대석] 며칠 후에 또 봅시다. 옥경에게 요 다음엔 꼭 같이 올라가야 한다고 일러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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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가짜아저씨와 같이) 예, 어련하겠읍네까?
김대석, 성희를 데리고 퇴장, 문간에서 기다리던 비서도 따라 나간다. 가짜아저씨와 행상녀, 나가서 전송하는 게 출입구를 통해 보인다. 자동차 떠나는 소리.
[행상녀] (들어오며) 아이구, 시원해라!! 연극이 아주 잘 들어맞았지?--- 아니, 가다가라도 최선생한테 들키면 어드렇카지?
[가짜] 좀 취해야겠어. 술이나 좀 받아 와.
[행상녀] 내일 팔 화장품도 다 매련해 놓지 않구 술을 자셔?
[가짜] 큰 짐을 벗지 않았어? 술이란 이럴 때 안 먹고 언제 먹어?
[행상녀] 그럼, 이거나 마저- (하면서 술병을 거꾸로 비운다)
가짜아저씨, 술을 아껴 마시면서 화장품을 만들려 할때 옥경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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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경] 금방 저 골목을 빠져 나가는 자동차는? 김 사장 차는 아직 안 왔죠?
[가짜] 그거다.
[옥경] 떠났군요.
[가짜] --- 음.
[옥경] 아직 시간이 안 됐는데?
[행상녀] 너의 언니가 네 자리에 실려갔다, 자 네 가방. (하며 숨겨 놨던 것을 내준다)
[옥경] (놀라) 예? 언니가 서울로 혼자서요? 어찌된 일이야?!
[행상녀] 저도 생각하는 게 있으니까 떠나간 게 아니갔니?
[옥경]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최선생하고 둘이서 겨우 살아나갈 희망을 발견 했었는데- 밑 없는 구렁텅이에서 살아날 희망을 찾았는데- 그런데 언니 혼자? 어떻게 해, 최선생을? 최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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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치 않어? 가엽지 않어?
몇병의 양주를 들고 최 열 등장, 술에 취한 그의 안색은 오히려 찬 바람이 날 만큼 새파랗게 질렸다.
[최열] (혼잣말로 시를 왼다)
삶은삶은유를 비치는 번갯불!
광명은 어둠의 한젓 그림자!
생은 사멸을 위해 존재하고
둥근 지구는 끝내 허공으로만
허공으로만 돌고돌아 무궁으로 무한한 무궁으로
절망을 넘어 조용한 하늘!
칠야 밤중 캄캄한 하늘---
어둠이 깃들여야 되살아나는 별과 같이 죽음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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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빛낼지니
성희! 성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것이
바로 불행의 시초,
성희, 벽에 부딪쳐 차디찬 현실을 응시하고 있는 성희!
문을 여오 인제 우리는 구원되오, 산넘어 망각의 언덕에는 우리의 집이 있소. (반응이 없다) 성희! 성희! (이상한 생각이 든 듯,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더니 방문을 확 연다, 빈 방이다) 아저씨 성희 어디 갔소? 대답을 해주오.
[가짜] 갔어.
[최열] 어디로요?
[가짜] 서울로 다시-
[최열] 뭐?! 나하고 죽는게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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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녀] 피란민 사태에 발 드려 놓을데도 없는 부산보다 텅텅빈 서울이 살기가 나은거 겠지.
[최열] (들고 온 술병을 떨어뜨리고 비틀 쓰러진다, 한 동안 우두커니 땅만 보고 앉았다가) 뭘로 갔나요?
[가짜] 김사장의 자동차에 실려서-
[최열] (말 없이 출입구로 발을 옮긴다)
[가짜] 어딜 가려고?
[최열] 성희를 찾아-
[가짜] 어떻게?
[최열] 걸어서라도-
어두운 한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섰던 옥경 이때 뛰어나오며,
[옥경] 최선생님이 서울 가시면 언니를 어떻게 찾나요? 못 찾으시면 어떻게 해? 두 분에겐 똑 같이 불행이 오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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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넓고도 좁은 제 세상이란다. 찾는다 찾고 말고- 찾아서 잘살랜다. 힘 없는 발걸음으로 퇴장하는 최 열.
[옥경] 죽기도 같이 하잖겠다고 도망간 언니가 같이 살아요?
[행상녀] 인자 마음 턱 놔라. 옥경아, 내 속까지 시원하다, 풍파는 지나갔다.
[가짜] 헤헤헤--- 누가 꾸몄는지 이 연극의 끝 막음이 아주 근사해.
[행상녀] (발끈해지며) 꾸미기는 누가 꾸며요? 하늘이 시키신 거지.
[가짜] 하나님, 용하시오! 병든 것들은 병든 것들끼리, 성한 것은 성한 대로 남아 있게 하고- 정말 하나님의 지혜 아니곤 이렇게 못꾸며 하나님은 나와 같은 가짜 아냐, 정말 진짜야. (옥경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옥경아 이돈 도로 넣어라 아까 내가 언니에게 전해 달라던 거야. 인제 언니 생활 걱정 할것 없이 너는 회사엘 나가고, 우리는 가짜라도 화장품을 만들어 먹고--- 가난한게 탈이지만 그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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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근심 걱정이 없잖니? 피차에 제 고장 찾아갈 때까지 찍소리 말고 우리 여기서 같이 살자. 그러면서 떠나간 언니와 최선생이 부디 다시 만나 깨가 쏟아지게 재미나게 살라고 우리 두손 모아 빌자, 응. 옥경아.
[옥경] --- 음 (느끼며 손을 모아 비는 체하다가 폭팔하듯) 언니, 야속해! 그리고 미워! 최선생도 미워! 야속해! (소리지르고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