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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실
김 영 훈
오늘도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다. 어느새 시침이 새벽 한 시로 가고 있다. 지금은 모두가 잠들어야 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잠을 청하기는커녕 오히려 울고 있어야만 한다. 아내는 아예 훌쩍거린다. 하지만 나는 애써 눈물을 참는다. 다행히 아내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방에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이가 집을 나가면서 밤이 되어도 불을 아예 켜지 않았다. 자신의 슬픔을 최소한이나마 어둠으로 가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외등불빛이 흘러 들어오지만 그 옅은 불빛은 아내의 눈물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얘는 지금 어디쯤 가 있을까요? 이 순간에도 신나게 모터사이클을 즐기고 있 을까요?”
아내는 실신하기라도 할 듯한 가녀린 모습으로 내게 몸을 기대면서 묻는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아니, 대꾸할 말이 없다. 우린 아이의 가출에 대해 이미 긴 세월을 허물어진 가슴으로 묻고 대답하면서 대책을 무수히도 논의했다. 그러나 묘책이 없었다. 나의 가슴도 오래 전에 아내만큼이나 참담하게 무너져버렸다.
아내가 다시 운다. 엉엉 울지는 않는다. 그냥 작은 흐느낌으로 운다. 벌써 아주 오래 전에 마른 눈물이었는데도 오늘따라 서러움이 밀려오나보다. 또 운다. 말랐던 눈물이 다시 샘솟는다. 가슴 무너지는 참담함이 아내의 행복감을 두 동강이 낸 지는 오래 전이었다. 나올 만큼 나온 눈물샘에서 눈물이 다시 터져나오나온다. 나는 아내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무기력에 빠진다.
스무 살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목부터 조인 것도 아니다. 여름밤에 편한 속옷 바람으로 자고 있는 우리를, 전설 속에서 나오는 그 천년 묵은 능구렁이가 휘감듯이 목을 조여 버리는 섬찍함도 아니다. 그냥 아이는 지금도 춘잠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이 나와 아내를 야금야금 먹어버리고 있어 당하는 고통이고 절망이었다.
20년 전이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다. 그러니까 가랑잎이 뜨락에 뒹굴던 가을 밤, 내 아이는 우리에게 별빛이 되어 희망으로 내려왔다. 아들은 나의 분신이었다. 그를 맞던 날, 그 아이에게만은 나의 눈물겹도록 아린 상처와 외로움을 결코 전수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한겨울에 서러움에 지쳐 눈밭을 헤매지 않게 하고 싶었다. 여름밤 수레바퀴 밑에 잠을 자면서 동가식서가숙하는 방랑을 하게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는 지금 청솔가지가 타는 매쾌함에 두 콧구멍을 그을리면서 왕방울처럼 큰 눈을 꿈벅이며 살아왔던 그 불우한 유년의 덫에 갇힌 채로 내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는 지금 바람이 분다. 창문이 덜컹인다. 이따금 지나는 자동차 소리도 들린다. 우리는 그 소리들 속에서 자박자박 걸어 돌아오는, 내 아이의 그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땡-.
새벽 한 시를 알리고 있는 벽시계의 종소리가 내 청각을 후벼내며 파고들고 있다. 결혼 기념으로 받은 괘종시계였다. 20년 동안 내 곁에서 어김없이 나의 기상과 취침을 눈여겨보아 준 괘종시계.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렸지만 아직 시간은 정확했다. 째깍 째깍- 시계소리도 낭랑하다. 내가 대학 시절 함께 참여했던 서클 ‘어울림’이 결혼을 기념해 마련해 준 벽시계이다.
서른다섯에 아내를 만난 나는 그 벽시계의 짹깍거림 속에서 만으로 20년 전 그 어느 날 밤인가, 아내의 자궁 속에 내 아이를 잉태시켰다. 아이는 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명의 씨앗으로 자리를 잦고 평온하게 자랐다. 그 곳은 평화로운 바다였다. 바람도 없었다. 그 아내의 자궁은 아이뿐만 아니라 내 유년의 외로움도, 한스러움도 다 포용해 준 평화로운 바다였다. 그래서 아내의 자궁 속은 머언 먼 옛날, 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명의 씨앗으로 내가 자라면서 유숙했던 때의 그리움이 남아 있다고, 나는 그렇게 굳게 믿으며 살아 왔다. 회귀 본능으로 아내의 자궁 속 그곳을 은밀하게 찾아들어 그날 그곳에 내가 떨어뜨린 씨알 하나가 내 아이이다. 그가 왜 20년 후인 지금 내 품을 떠나려고 하는지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그가 왜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지를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가 지금 나를 벗어나 질주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여보, 걔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지금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 리를 질주하고 있을 까요?”
아내는 똑같은 말을 다시 하면서 흐느적거리는 몸을 나에게 기댄다. 나는 아내를 붓끌어 안는다. 아내의 여린 가슴은 호흡도 멈춘 듯이 고요하다. 체중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가 이미 오래 전에 자근자근 먹어 버린 그 만큼, 상대적으로 아내의 체중은 가볍다. 어둠 속에서지만 아내는 나에게 아픈 시선을 던진다는 걸 안다. 아내가 가엾다. 나도 가엾다. 가여운 사람들끼리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그 시선을 굳이 피하려 하지 않는다. 아내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지는 벌써 오래다. 타들어 간 입술. 그의 광대뼈가 유난히 툭 삐져나와 있다. 나는 아내의 광대뼈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진다. 촉감이 딱딱하고 차다.
신은 그 동안에 나의 유년에서 아버지랑 어머니를 거두어 가더니 끝내 내 아이까지를 지금 분리시키려고 하고 있다. 나에게 두 번째로 상실의 아픔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를 원망할 수는 없다. 왜냐면 신은 나에게 불가항력이기 때문이다. 불가항력? 그렇다. 나는 그 신과 대결하기에는 정말 왜소하다. 초라하다. 그래서 순종해야 한다.
“여보, 아이를 어서 찾으러 나가요. 그 아이는 지금 밤바람에 떨고 있을 거예요.”
아내는 또 흐느낀다. 잠시 죽은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다시 가늘게 흐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잠시 말랐던 눈물이 신기하게 또 터져 나온다. 나도 가슴으로 운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다. 지금 아들을 찾으려 나가도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이 도시의 곳곳을 샅샅이 헤쳐보아도 그 아이는 없을 것이 뻔하다. 아니 찾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는 지금 깊은 밤을 가르며, 어느 곧게 뚫린 가로수 길을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모터사이클의 굉음을 내면서…….
‘나, 떠나고 싶다.’ 아이는 틈이 있을 때마다 그렇게 외쳤었다. ‘텅 빈방을 나 혼자 지킬 힘이 없어.’ 아이는 늘 그렇게 외쳤다. 제 어미와 애비의 품이, 그에게는 에덴동산이 아니라고 했다. 아, 나의 의식 속에서 문득 유년의 강이 흐른다. 소나무 숲이 보인다. 고향 마을 뒷산 소나무 숲. 울울창창하게 자란 소나무 숲을 헤치며, 때로는 산등성이에 올라가 나는 청소년기에 바우고개를 불렀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목청껏 바우고개의 ‘님’을 소리쳐 불렀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그 때 한 번은 나의 노랫소리에 놀란 산토끼가 내달린 적이 있었다. 고향 뒷산에는 산토끼가 유난히도 많았었다. 그 짧은 앞발을 가진 재빛 산토끼는 잘도 달렸다. 나는 공연한 짓인지 알면서도 산토끼를 쫓았었다. 산토끼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놓친 산토끼로 인한 허탈감이 내 가슴을 헤집었었다. 어차피 산토끼를 잡을 수는 없을 줄 알고는 있었다. 다만 그 때 산토기가 재빠르게 달아난 산등성이의 푸른 소나무 가지 사이로 햇살만 쏟아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푸른 하늘도 보였었다. 두둥실 떠 있는 흰 구름도 보였었다.
그 구름 속에 얹혀 있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었다. 어차피 그 때만해도 아버지는 나의 가슴속에 구체적으로 살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을 잘 모르기 때문에 떠올릴 수도 없었다. 두 장의 사진. 일본군 장교처럼 삭발한 젊은 청년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나에게 전혀 생소했다. 아버지 같지 않았다. 또 한 장의 사진. 갓 결혼한 어머니와 함께 유아인 나를 안고 찍은 다른 한 장의 사진. 그러나 역시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의 가슴속에서만 희미하게 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우리 아이를 더 이상 이 찬바람에 빠뜨릴 수는 없어 요. 오늘밤은 꼭 찾아내야 해요.”
아내가 내 옆에서 부스스 일어나고 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 아내의 모습이 혼란스럽다. 새댁 때의 단정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다. 시집 올 때의 상큼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이미 무너진지 오래이다. 아이 때문에 팍 늙은 모습이다.
“앉아요. 우선 집에서 기다립시다. 어차피 나가야 그 아일 찾을 수는 없소.”
나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독인다. 창백한 아내의 얼굴이 더 창백하다. 내 아이는 지금 제 어머니인 아내에게서 무엇을 더 빼앗아 갈려고 칼을 갈고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버지인 나에게서 또 무엇을 빼앗아 갈려고 모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무섭다. 세상 밖으로 튕기쳐 나가려는 내 아이가 무섭다. 모터사이클이 무섭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정말로 좋은 아빠이고 싶었다. 그러나 부자간의 인연이 닿지 않는 가보다. 악연으로 만난 사이인가 보다. 전생에 어떤 악연의 사슬에 묶여 있다가 이 이승에서 아들과 애비로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이는 우리를 늘 이렇게 남겨 두고 밤마다 허깨비에 씌운 듯이 집을 나가고 있는 거다. 하루도 이틀이 아니다. 사흘씩 나흘씩 더러는 일주일씩 그는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때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를 따러 나섰다. 철길이 놓여진 침산동 저쪽으로, 고속도로가 쭉 뻗어 있는 번안동 그쪽으로, 더러는 진산으로, 공주로…. 온 도시 안팍을 헤집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는 어제 밤에도, 아이가 혹시라도 노숙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를 찾아 나섰었다. 아내와 나는 누가 볼세라 빠른 동작으로 칠흑 같은 밤을 향해 잠입했다. 그 때 마침 열차가 기적을 울리고 있었다. 덜커덩 덜커덩. 밤에 달리는 열차는 늘 요란하다. 그 열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내와 철길 옆으로 한창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 그 어디쯤에서 아이가 노숙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아이는 전에 이런 곳에서 곧잘 노숙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거푸집이 쌓인 후미진 곳을 뒤졌었다. 창호를 만들기 위해 싸놓은 알루미늄 샛시 더미의 밑도 뒤졌다. 서넛이 군을 지어, 그렇지 않으면 혹시라도 계집아이와 짝을 이루며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을 예상하며 찾아 헤맸다. 그때 강한 불빛, 서치라이트처럼 강한 불빛이 우리 머리 위를 뿌려주고 있었다.
“거 누구요? 나가요. 나가.”
경비원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아내와 나는 기겁을 했다. 내 아이는 없고, 아파트 공사 경비원만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 뿌웅, 뿌웅-. 그 때 호남선 열차는 또 달리고 있었다. 목포로 가는 밤 열차이다. 아니면 광주까지만 가는 열차이리라. 경비원의 목소리를 삼키면서 열차는 그렇게 밤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얘는 어디 갔을까요? 여기에도 없군요. 결국 오늘도 얘는 역시 모타사이클을 즐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군요.”
아내는 경비원에 쫓기면서도, 쌓아놓은 거푸집 틈에 걸려 비틀거리면서도 녹음해 미리 담아 놓은 듯한 그 말을 또 중얼거리고 있다. 쓰러질듯 아슬아슬한 걸음걸이이다. 아내의 가슴에는 아이의 걱정만 들어있다. 그러나 절규하듯 외치는 아내의 작은 목소리는 나의 귓가에 정확하게 전달되기도 전에 이 거대한 도시의 밤의 휘황찬란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어젯밤에도 아내와 나는 지친 채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밤인데도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 행렬. 그 불빛. 군데군데 서 있는 첨탑 위에서 반짝이는 십자가 불빛. 십자가는 구원을 청한 사람들에게 밤새도록 빛을 뿌리고 있지만 그러나 나나 아내에게는 구원이 아니었다. 나와 아내는 길길이 높은 빌딩 숲들이 뿜어내는 불빛과 가로등에서 명멸하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밤은 아내의 울음을 그냥 삼키고 있었다. 결코 십자가의 첨탑까지도 아내에게 구원은 아니었다.
이런 때, 별이 빛나면 좋으련만…. 그 때, 유년 시절에 바라보던 그 별빛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참 아쉽다. 나는 도시의 야경에, 바랜 하늘을 바라본다. 별이 뜨무딱 뜨무딱 몇 개 빛이 바랜 채로 비출 뿐이다. 그러나 아이를 찾아 달라고 빌기에는 너무 엷은 별 빛이다. 저 별에게 희망을 걸 수는 없었다. 절망이다. 20년 전, 아이는 나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빛나는 별이었는데……. 저렇게 빛이 바랜 별이 아닌, 1등성이 되어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왔었는데…….
입덧이 유난히도 심했던 아내는 출산의 진통까지도 컸지만, 아이는 출생 이후 내내 우리에게 찬란한 별이었다. 아이를 출산하던 날, 스무 시간의 진통 속에 축 늘어진 아내, 그런 아내는 중간중간마다 언제 고통이 있었느냐는 듯이 말간 미소를 머금으며 나의 손을 잡았었다.
“됐어. 괜찮아. 조금만 힘을 내.”
무슨 말을 더 해야 산통을 겪는 아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내와 함께 끙끙대며 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두 손을 붙들고는 나는 아내에게 내내 배냇 웃음을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내는 편안해 했었다. 그 때 갓 태어난 내 아이의 얼굴은 천사였다. 그날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바라보던 아내는 곧 깊은 수면의 수렁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었다.
나는 그 당시 버릇처럼 아내의 자궁 속으로 자주 들어갔었다. 지금 나는 잠깐 아주 잠깐 감미로웠던 회상의 늪에 빠진다. 나는 정말 아이를 하나 갖고 싶었다. 제 할아버지를 꼭 빼다 박은 아이를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감미롭게 자궁 속의 미로를 헤맸었다. 그 때마다 아내는 늘 편안해 했다. 아내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흡족해 했다.
“난 세상 모든 걸 다 소유했어요.”
“그래, 그래. 그 건 나도 마찬가지야. 머지않아 우리는 아이를 가지게 될 거 야.”
나는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머리칼 하나하나를 세며 어루만졌다. 아내의 따뜻한 체온이 내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냥 가슴을 뛰게 하는 희열 그 자체였다.
“맞아요. 이 아인 우리의 기쁨이 될 거예요.”
아내는 나의 애무에 더욱 흡족해 했었다. 아내는 그런 여자였다. 순수했다. 나도 그녀에게서 그걸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다. 아내의 수줍게 웃는 미소가 나를 항상 반하게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아내로 선택했던 것이다. 유년시절에도 청소년기에도 사랑에 가난했던 나였다. 늘 사랑에 갈증을 느꼈던 나였다. 그에 비하여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나에게 분이 넘치는 여자였다. 그래서 나는 운명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즈음 나는 부모에게서 받을 사랑의 그릇이 채워지지 않았던 유년 시절이었기에 그 빈 가슴으로 늘 갈증을 느꼈었다. 상실감만을 느꼈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포근한 미소로 다가왔다. 넉넉한 그녀의 몸짓. 그녀는 양친 부모의 사랑에 멱을 감으며 성장했다. 7남매나 되는 형제자매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며 흠뻑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여자였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늘 시샘을 했다. 아내에게 위화감을 느꼈었다. 아니, 그녀를 부러워했었다.
그 아내의 몸을 빌어 태어난 나의 분신, 그 아들은 분명 나에게 희망의 별이었다. 여름에만 나타나는 궁수자리에서 빛나는 별이 아니다. 그렇다고 봄에만 나타나는 사자자리도 아닌, 사철 빛나는 별이다. 일 년 내내 빛을 발하는 큰곰자리의 북두칠성쯤이라고 해야 한다. 그보다 차라리 한 자리에 붙박혀 그나마 나에게 유년의 꿈과 희망을 주었던 작은곰자리의 북극성이다.
나에게 북극성은 유년 시절 희망이었다. 그 때 내 옆에는 언제나 조모가 있었다. 연민의 시선을 나에게 던졌던 나의 할머니.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나의 조모는 당시 얼마만큼이나 큰 서러움을 가슴에 묻고 사신 것일까? 나는 조모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여름밤이면, 삶은 옥수수자루로 하모니카나 불면서, 가을이면 홍시를 따 먹으면서 성장했다. 그 때마다 쏟아지던 별들……. 사립문 옆에 선 감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던 그 별들은 올망졸망 열렸던 풋감 사이로 함께 다닥다닥 열렸었다. 나는 열심히 장대를 휘두르면 별들을 땄다. 밤마다 쏟아지는 별들을 가슴에 묻으면서도 나는 또 장대를 휘둘러 별들을 땄다. 그러면서 조모에게 물었다.
“할머니, 아빠별은 어디쯤 떠 있어요?”
조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나는 아빠별을 열심히 찾았고, 그 때마다 할머니의 가슴은 수천 길의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었겠지만 난 그저 아버지별만 따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때마다 조모의 한이 또 다른 원한을 만들고 있었다는 걸 나는 성장 후에 알았다..
“자식을 버리고 간 못된 년. 독한 년. 어휴, 못된 것…….”
“…….”
그 때마다 조모는 덩두러니 앉아 있는 나를 늘 감싸 안았다. 그래서인지 조모의 품은 언제나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나마 내가 이 자리에 서서, 별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할머니의 덕이었다.
“넌 이 다음에 커서 마음이 이쁜 각시를 얻는 거여. 그려. 맞어. 매정한 네 에 미같은 그런 각시가 아녀.”
그러나 나는 조모의 속마음까지를 헤아릴 줄은 몰랐다. 나는 당시에 그 말뜻을 알기에는 너무나 어린 유년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나의 가슴에 흠집을 내면서 자꾸 못을 박고 있었다.
“넌 말여. 너처럼 착한 아들을 낳아 고이 키워야 하는구먼.”
조모는 울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따라 울었다. 그 날 밤도 그런 할머니와 나에게 별들은 쏟아지고 있었다. 밤이 이슥해 이슬이 온몸을 축축하게 할 때까지 쏟아지는 별들을 먹으며, 그렇게 울고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 나는 조모의의 눈물의 무게를 알 수 없는 채로 그냥 따라만 울었을 뿐이다.
“나의 몸이 흙이 되고, 넋은 무주구천을 떠돌더라도 이 할민 내가 착한 지집 을 만나 너같이 어여쁜 아들을 낳고 사는 걸 지켜 볼 거여.”
조모의 말씀이 왜 하필 이 순간 나의 심장을 비수가 되어 파고들고 있는가! 내 아이는 증조할머니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착해야 했다. 저승에서 할머니는, 이승에 있는 나를 위해 지금도 그렇게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라도 지금 나에게도 아이는 여전히 우리 부부의 소망일 수밖에 없다.
부르릉 부르릉. 윙윙. 부르릉 부르릉.
그 때 갑자기 때문 앞으로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질주하는 모터사이클의 굉음은 갑자기 순해진다. 모터사이클이 멈추었나보다. 순간 나는 긴장한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집 앞 대문 앞을 이내 지나가 버린다. 이내 소리가 잠잠해지는 걸 보면…. 내 아이가 탄 모터사이클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긴 이 시간에 골목길을 누빌 아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조금 전 그 모터사이클은 신문배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 소식을 전해 줄 배달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청소미화원 아저씨의 4륜 오토바이 일수도 있다.
이 이른 새벽, 아니 새벽이라기보다 아직은 깊고 깊은 밤이지만, 이 거리를 누빌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다. 모두 잠들어 있으니까. 나도 아내도 잠들어 있어야 한다. 편안한 침대 위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취침했어야 한다. 내일의 활동을 생각하며, 그 내일을 위해 우리 모두는 수면에 취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지금 깨어 있는 것이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아이에 대한 번민으로 이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아이는 개조된 변형 모터사이클을 타고 어디쯤을 달리고 있다는 걸까? 궁금하다. 총알같이 달리는 모터사이클. 생명을 담보로 하며 달리는 내 아이, 그는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를 목표로 정해 달리는 걸까? 그렇다. 질주하고 있을 내 아이가 지금 나와 아내를 잠 못 이루게 하지 않는가! 우리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아프다. 그런데도 내 아이는 여전히 스릴만을 즐기면 된다. 부모의 아픔과는 상관없다. 어디에서인가 또 누군가에게 내내 ‘안녕’을 고하며 내달릴 것이다. 어쩌면 지금 제 또래의 사내아이들과 그리고 모터사이클 뒷좌석에 그에 걸맞은 계집애들과 철없이 희희낙락하며 이 현실적 삶을 즐길지도 모른다.
아이는 헤어오일을 찐득찐득 바른 채로 이 밤의 어둠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할 지도 모른다. 올 컬러 헤어스타일로 아직도 스무 살 사춘기를 끝내면서 마지막 스릴을 즐기는 삶을 조명하고 있을 수도 있는 내 아이,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내 아이의 친구들……. 나는 그들이 언뜻언뜻 내 시야에 나타날 때마다 가슴을 수없이 쓸어내렸었다. 이제는 더 무너져 내릴 내야 더 이상 무너져 내릴 수도 없는 내 가슴. 그리고 그보다 더 참담한 아내의 가슴팍이다. 언제쯤이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 밤바람이 내 전신을 핥으며 포근하게 지나가는 것을 즐길 수 있을까? 그 밤바람이 그립다. 포근한 그 바람이 그립다. 아내를 신부로 맞이했던 그 날 밤의 포근한 밤바람이 그립다.
“여보, 이 밤도 또 결국 지나가고 있군요.”
아내가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몸을 의탁한다.
“그래, 맞아. 이 밤이 또 하얗게 지나고 나면 새 날이 올텐데….”
“하지만 우리에게는 새날이 보이지 않잖아요. 여보, 어쩌지요? 자꾸 울고 싶어 요.”
나는 아내의 손을 잡는다. 아내의 손이 따뜻하다. 아내가 다시 울고 있다. 나는 아내와 내가 어떤 인연으로 이 별에서 만나 이승에서의 삶을 함께 어렵게 보내고 있는 걸까를 생각한다. 나는 아내 얼굴의 눈물을 쓸어내린다. 눈물이 질척거린다. 그러면서 ‘울지 말아. 울어도 소용없는 걸 어쩌겠니.’ 그렇게 말했던 나 역시도 운다. 오래 동안 참았던 눈물이다.
안녕, 안녕? 그가 그의 몸에 최초로 새긴 문신이다. 그의 왼쪽 허벅지에 퍼렇게 새긴 문신이다. 아찔하다.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한다. 안녕이라니? 눈을 다시 씻고 봐도 그의 허벅다리에는 안녕이었다. 왼 쪽 뿐만이 아니다. 오른쪽 허벅지에도 또 문신이다. Good-bye. 영문으로 새긴 문신이다. 아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지를 벗는다. 욕실로 간다. 물소리가 요란하다. 문질러도 벗겨질리 없는 문신을 그는 박박 문지르나보다. 그는 무엇과 결별하며 안녕하고 싶다는 걸까? 일주일 만에 돌아온 아이, 나는 아들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슴이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나는 결코 평온할 수 없었다.
나의 유년 시절에 나의 조모는, 나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었다. 이런 때 조모가 생존해 계셨다면……. 조모가 많이많이 그립다. 나는 나의 어머니 같은 ‘할머니’를 불러본다. 비 오는 날, 치마 자락 질질 끌며 고추모, 들깨모를 옮겨 심느라 옷이 젖는 줄도 모르던 할머니. 그 치마꼬리 질질 붙잡으며 따라다녔던 유년이 그립다. 가난한 추억이지만 오히려 그 때가 그립다. 지금처럼 참담하지는 않았었다. 불같은 성품을 지녔던 나의 조모였지만, 나를 위해서는 늘 눈물을 뿌려 주었던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너진 가슴을 어떻게 해야 다시 복원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할머니를 부른다.
아이가 샤워를 끝냈는지 그 험한 허벅지 살을 드러내며 안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의 허벅지로부터 피할 수만 있으며 피하고 싶다. 안녕. 그는 누구와 인사를 하고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것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Good-bye. 그래. 그는 나와 아내로부터 결별을 원하고 있다는 거구나. 나는 살그머니 눈을 뜬다. 내 아이가 웃고 있다.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웃음이 무섭다. 그의 웃음이, 나를 섬찍하게 한다. 얌전히 내 품안에서 성장한다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나의 품에서 벗어날 걸 나는 잘 안다. 그런데 아이는 왜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여전히 지금도 아이에게 암탉이고 싶다. 오래오래 내 아이를 품에 품는 암탉이고 싶었다. 그랬는데…….
아버지가 난리 통에 세상을 뜬 그 날부터, 나의 유년이 일시에 상실되었다. 내 앞날에 비전이 없었다. 내 앞날은 고향집 마당에서 바라보는 앞산만큼이나 좁고 답답했었다. 아니, 그보다 더 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고 초가집에 나만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서 바라본, 그 고샅길은 더욱 좁고 답답했었다. 그러한 나를 거둔 것은 할머니였다.
왜 역사는 개인의 삶을 도외시하면서 짓뭉개는 걸까? 역사는 수레, 선친은 그 수레바퀴에 깔린 푸실푸실한 돌맹이. 단단하지도 못해서 수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린 분진. 그러니 아버지 없는 고향의 하늘은 내게 포근함을 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홀연히 떠난 어머니는 나의 길고 긴 방황을 부추겼다. 그래서 나는 나의 유년을 뒷동산 소나무 숲에 묻어야 했다. 바우고개를 부르고 또 부르며 그래도 모자라 목청껏 외쳐대다 마침내 목이 쉬어 버렸다.
그러니까 바우고개의 님은 그리움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내게는 나의 아버지였다. 간혹은 어머니였다. 노랫말이 지시해 주는 다른 상징성은 없었다. 그냥 막연한 그리움이다. 그 그리움은 늘 나의 입을 다물게 했다. 누구와 있어도 나는 입을 다물기만 했다. 웃음도 잃었다. 희망도 잃었다. 그런 채 마을 앞으로 흘러가는 시냇물만 바라보아야 했다. 그래서 바우고개를 목청껏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산골짜기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시냇물은 나의 그리움과 노래를 함께 싣고 흘러갔었다.
“여보,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어떻하죠? 이렇게 앉아만 있어야 해요?”
나는 녹음테이프 돌아가는 듯한 아내의 그 말에, 다시 깜짝 놀라며 유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온다. 이제 시간은 어느 새 새벽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동이 튼다. 그러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출이 시작되겠지.
아이가 제 왼쪽 허벅지에다가 안녕이라 쓰고 다른 쪽의 허벅지에는 Good-bye라고 우리에게 결별을 고하고 나간 후, 일주인 만에 그러니까 사흘 전에 한 번 더 집에 들렸었다.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면 나보다 반가워하는 것은 아내였다.
“얼마나 추웠니? 밥은 제대로 먹은 거야?”
아내는 실성한 듯이 그에게 다가가지만 또 그만큼 다정다감하다. 무서운 모성애다.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은 다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이다. 그러나 제 어미의 말에 아이는 대꾸도 하지 않는다. 날카롭게 웃을 뿐이다. 또 무섭다. 아이의 웃음은 우리를 늘 이렇게 무섭게 한다. 밖에 나가 무슨 험한 짓을 했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20세의 그 험악한 웃음이 무섭다. 웃음. 청순하고 싱그러워야 할 20세의 청년의 웃음이 언제나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힌다.
아이가 들어오면 그는 그 때마다 우선 먼저 옷을 벗었다. 버릇처럼 옷을 벗었다. 어디서 며칠이고 그냥 뒹굴어 버린 그의 옷에서 알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자신도 아나보다. 그래서인지 집에만 들어오면 먼저 옷을 벗는다.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는다. 그래도 제가 성장한 제 집이 제 허물을 벗어놓을 유일한 곳이란 듯이 옷을 벗는다. 나는 그 때마다 시선을 돌려야 한다. 또 그의 맨살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안녕. Good-bye. 그 문신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처럼 어린 시절 문신을 했었다. 그리움을 내 왼손에 썼다. ‘어머니’ 라고 검정색 잉크를 연필에 묻혀 왼팔에 썼다.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이 다가 들었다. 역시 얼굴을 잘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실체가 나의 의식 속에서는 뚜렷했었다. 연필에 잉크를 묻혀 쓴 ‘어머니’를 할머니에게 들킬까봐 덧옷으로 가리고 또 가리며 혼자 있을 때마다 훔쳐보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게 그리움으로 다가들었다. 며칠이 지나면 그리움이 지워지기에 다시 써야 할 문신이지만 나는 쓰고 또 썼다.
그 문신을 할머니에게 한 번도 들킨 적은 없었지만, 할머니가 그 때 그 문신을 보았다면 어떤 노여움을 내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며느리에 대한 증오의 화살을 내게 쏘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가 아버지를 이념의 벼랑에 몬 장본인이었다는 걸 알고는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유년시절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물러설 수 없는 이념의 벽으로 밀어 넣은 걸 나는 먼 훗날에서야 알았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전쟁 시, 좌파를 친정으로 가진 조모 그러니까 진외가 댁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역사의 벼랑 끝에 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도 할머니를 미워할 수가 없다. 다만 나의 운명을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이 마당에서 나는 지금 무엇인가? 외갓댁은 아버지를 벼랑에 몰아넣고, 나는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애정 분배를 잘못하는 시행착오를 범해 그를 벼랑으로 밀어낸 것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흔든다. 그 때 아이의 얼굴이 나에게 확 대든다.
“나는 이제부터 용이 되어 할아버지가 계신 하늘로까지 비상하겠어요. 날 말 리려고 하지는 말아요. 나는 내 길을 갑니다. 이 모터사이클이 나의 비상을 도와 줄 거예요.”
나는 용이 되어 하늘까지 비상하겠다는 아이에게, 그러나 아직도 그가 우리에게 희망의 별이기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아들에게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또 놀래야 한다. T셔츠를 벗은 그의 상반신. 등 뒤에는 그의 말대로 정말 용이 승천하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을 방황하다 돌아온 선물로 비상하는 한 마리의 용이 되어 하늘로 비상하려고 내게 다가왔다. 아, 섬찍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쉰다. 그러나 아이는 나를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유유히 욕실로 걸어가고 있다. 욕실문이 열렸다가 탕 닫힌다. 그는 어디까지 추락해야 끝을 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시궁창처럼 형편없는 끝이라도 그가 가는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밑바닥을 친 그 때서야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역시 내 힘으로는 아들을 제어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내 아이의 등에서 용이 비상하는 대로 하늘로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하늘. 그렇다. 하늘만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내 아버지가 일찍이 생을 마감하고 돌아간 그 하늘나라, 또 할머니가 가 있는 하늘나라로 아이를 따라 함께 용이 되어 비상을 해야 한다. 나는 그러기 위해서 남쪽으로 난 창가를 바라보았었다. 우선 하늘만이라도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날도 밖은 지금처럼 밤이었었다. 낮이라면 나는 남쪽 창을 통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은 하늘을, 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파란 하늘이 보고 싶었다. 유년 시절의 하늘은 이렇게 어둡지는 않았었다. 절망 속에서도 늘 하늘은 파랬었는데…….
“여보 빨리 나가요. 날이 다 새겠어요.”
나를 기다리다 지친 아내가 결국 먼저 현관 쪽으로 나간다. 혼자라도 나갈 기세이다. 나도 아내를 따라 나가야 한다. 결국 오늘도 우리는 아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대로 아침을 여기서 맞아서는 안 된다. 물론 뾰족한 묘수가 없음을 안다. 그래도 나가야 한다. 아내가 먼저 현관문을 연다. 나도 뒤를 따라 마당으로 나간다. 밤바람이 차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심한 기후에 아이는 입성도 시원찮은데 어디서 벌벌 떨고 있는 걸까? 아내의 한숨이 땅을 꺼지게 한다. 현관문을 밀자 마당은 오히려 불 꺼진 방보다 밝다. 바로 담 밖에서 명멸하고 있는 외등 때문이다. 마당의 정원수 몇 그루가 긴 제 그림자를 앉은 채 떨고 있다.
“얘야, 기다려라. 우리가 갈 때까지. 이 밤이 새기 전에 엄마는 너를 꼭 만나 야 하니까.”
아내는 절규를 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내와 나는 이렇게 아이를 찾아 나서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오늘도 아이들이 모였을만한 후미진 곳부터 찾아야 하겠다. 연립주택의 놀이터나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그리고 초등학교 운동장 프러터나스 밑 벤치부터 찾아나서야 하겠다. 초기인 열일곱 살 때에는 그런 곳에 나가면 아이가 있었는데…. 뻐끔뻐끔 담배를 빨다가 깜짝 놀라 비벼 끄면서 순순히 따라왔었는데…. 아, 그러나 이 새벽에 그런 행운을 만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아이는 이미 모터사이클의 중증에 빠져 있으니까 말이다. 역시 내 짐작으로는 아이는 오늘 이 추운 새벽에도 모터사이클을 끌고 질주할 것이다. 한 마리의 용이 되고 싶어 아니,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모터사이클을 탈 것이다. 그렇다. 모터사이클이다. 그는 지금 어느 대로를 무한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아! 아이가 참 야속도 하다.♠
첫댓글 현대인이 자녀를 양육하며 겪는 아픔을 소설로 형상화시켰군요.
..나이는..24살입니다.. 나이상관 안하구요.. http://boze6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