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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조 8세 경시서령(京市署令) 휘 위(偉)공은 고려 우왕때 부터 조선 세조 년대에 이르기까지 생존한 분으로 정헌대부 개성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 문정공 휘 자지(自知)의 9남 1녀 중 장자로 출생하였으니 곧 대장군공계(大將軍公系)의 종파(宗派)가 된다.
공은 조선조 개국초에 출사하여 태조4년(1395) 호조정랑, 세종12년(1430) 가평현감, 그후 경시서령을 거쳐 세조1년(1455) 당시 현령(縣令)인 공은 정란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어 1품계 승진하고, 그 후 중직대부(中直大夫) 행사헌부장령(行司憲府掌令)에 이르렀다. 배위는 파평윤씨(坡平尹氏) 대인공파 15세 대제학 윤취(尹就)의 따님으로 4남 1녀를 두시었다.
본 파는 문무양반에서 인재가 현달하여 문과4원, 무과14원, 사마시 10원을 배출하여 명성이 자자하였다. 계축옥화(1613)당시 연김(延金) 일문은 구명도생으로 후손들은 황해도(평산 금암,해주 율지) 강원도(원주,관천)를 비롯 포천, 개성등지로 분산피화 낙향 후 에는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 또한 만일의 사태를 염려하여 고양군 덕이리에 모신 용보(用寶)공 선영 묘비를 묘전에 묻고 피화하였던 흔적이 지금에도 남아있다. 이에 반하여 외예(外裔)의 영귀(榮貴)가 컸으니 중종년대 영의정 정성(靖成)공 윤은보(尹殷補)는 9세 홍천현감 모(模)공의 외손이고 영의정 성안공(成安公) 상진(尙震)은 9세 성균박사 휘(徽)공의 외손이다. 현대에 와서는 전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국무위원급) 유영(裕泳), 전 3선 국회의원 인영(仁泳), 전 광명시교육장 종민(鍾敏), 전 농림부 서기관 사흥(思興)등이 있다.
본파는 7개 종중이 있으니 12세 통정대부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태수(台秀)공의 증손 병절교위 15세 진려(振礪)․이려(以礪)공의 종형제분이 황해도 평산으로 피화 낙향하여 세거지를 이룬 후손들이 평산종중(平山宗中)을, 15세 병절교위 이려(以礪)공의 제8자 중식(重湜)공이 1670년대 춘천으로 거지를 옮겼다가 양양군 서면 내현리로 이거 세거지를 이루고 양양문중을 형성하고 있다. 대도호부사공의 3자 13세 예빈시 별제 충례(忠禮)공의 손자 15세 통덕랑 취성‧취정(就成․就精)공 형제분이 황해도 율지(속칭 밤가지)로 화(禍)를 피해 낙향 함으로서 해주종중(海州宗中)을 이루고 360여년간 후손의 세거지가 되었다, 본 종중내 18세 승(昇)공의 子 19세 재중(載中)공이 순조년대(1720)에 가평군 내면 달전리(內面 達田里)로 이거하여 훈장(訓長)을 한 이래 그 후손들이 3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또한 11세 이조참의 규(珪)공의 제2자로 부평 도호부사(都護府使) 태준(台俊)의 후손 중 15세 판관(判官) 수백(守白)공이 금천(衿川)으로, 훗날 다시 지금의 수원 땅으로 거지(居地)를 잡아 수원종중(水原宗中)이 되고, 12세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태걸(台傑)공의 후손 16세 중명(重鳴)공이 안성군 양성면 노곡리(陽城面 老谷里)로 옮기어 세거지를 이루니 곧 안성종중(安城宗中)이다. 9세 홍천현감 모(模)공의 제4자 10세 윤보(允寶)공의 후예 중 24세 상기(尙基)공이 포천군 일동면으로 이거하여 살게 됨으로 해서 포천종중(抱川宗中)이라 하고, 경시서령공 제3자 9세 군수 의(椅)공이 4형제를 두었으나 모두 무후이고 오직 제4자 10세 만호(萬戶) 통보(通寶)공의 후손들만이 개성종중(開城宗中)을 이루었으나 을유보에 18세까지만 기록되고 그 이후로는 무단으로 단절된 상태이다. 현재는 평산, 해주, 수원, 안성 4개종중이 용보공종회(用寶公宗會)를 구성하여 종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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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연혁
세사의 기록에 의하면, 1945년 광복 전까지는 평산, 해주에서 문중별로 4,5인의 참사(參祀) 대표를 선정 파견하여 10월 5일 고양 군산릉 통례 용보(用寶)공과 황새터 예빈시별제 충례공 시제를 봉행하고, 10월 10일 상세조 문정공 시제봉사 후에 홍천현감 모(模)공의 시제를 봉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시제일을 기해 문중 일족간에 쌀계를 조직 장리를 놓아 종재(宗財)로 활용한 기록이 있으며, 1974년 파조 경시서령공의 봉단 설단후 지금까지 시제를 봉행하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통영 찬성사공(諱,祐)의 시제에 참사하고 10여일의 일정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한다. 광복절의 감격도 잠시 남북으로 분단되고, 6.25동난 및 1.4 후퇴시 50여호 만이 남하 하여 근근히 생활해 오다가 정부수립 직후 남하한 종실(鍾實) 태영(泰泳)공이 가좌리 본동 안성문중 일족과 선영을 수호해 오다가, 휴전 후 생활 터전을 잡고 하나 둘 모여 구심점을 이루게 되었다.
본회는 경시서령공파종회의 대표 기관으로 파조 8세 경시서령 휘 위(偉)공과 공의1자 9세 홍천 현감 휘 모(模)공의 분묘와 봉단 수호, 향사봉행, 종유재산의 보존관리 및 일족간의 상호 돈목을 목적으로 하여, 1963년 파종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초대회장에 태영(泰泳)공이 추대되었으며 평산, 해주종인들에 의하여 선영을 수호해 오다가, 함께하는 종사를 위해 뒤늦게 수원․ 안성종중 일족을 가가방문 독려하여 본격적으로 파세(派勢)를 확장 하고, 2003년부터 파 조직을 재정비하여 양양문중이 합세하면서 6개 종중과 9개 문중으로 조직되어 230여 종원의 참여로 명실 공히 반세기에 이르는 전통을 가진 종파(宗派)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 조직
본회의 임원은 회장 1인, 부회장 1인, 운영위원 6인, 감사 2인, 이사 13인(총무,재무 각각 1인 포함))으로 구성하며, 회장과 감사는 이사회에서 선임하고 총회에서 인준하며, 부회장은 운영위원 중에서 회장이 지명한다(단 회장과 동일 종중의 위원은 지명 불가).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하며 1차 연임 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본회의 운영을 협의 결정하고 총회의 의결사항을 집행하는 기구로서 각 종중을 대표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파종회의 회무를 계도하며 연락사무를 담당하는 당연직(종중회장) 과 제반 종무사항을 기획 입안하는 임명직으로 구성 한다.
다. 현재임원
고 문 : 현기(賢基;해주), 무영(武泳;수원), 유영(裕泳;수원), 인영(仁泳;해주), 한영(漢泳;해주:상임) 회 장 : 찬영(燦泳;해주) 부회장 : 종민(鍾敏;안성) 운영위원 : 서영(瑞泳;평산), 수영(壽泳;해주), 해영(海泳;안성), 건주(建柱;수원), 사흥(思興;평산), 철주(鐵柱;해주) 감 사 : 사직(思直;평산), 건주(建柱;수원) 이 사 : 종만(鍾萬;수원:총무), 주신(柱信;해주:재무), 두영(斗泳;해주:홍보), 종순(鍾淳;평산), 주환(柱煥;해주), 정주(貞柱;해주), 철주(鐵柱;해주), 태영(泰泳;수원), 필주(弼柱;수원), 성영(星泳;안성), 필주(弼柱;포천), 호성(好性;해주), 성모(性模;평산)
라. 역대회장
제1대 태영(泰泳) 1963~1971 제2대 사범(思範) 1972~1980 제3대 현기(賢基) 1981~1989 제4대 관선(寬善) 1990~1992 제5대 형주(瀅柱) 1993~1995 제6대 한영(漢泳) 1996~2001 제7대 무영(武泳) 2002~2004 제8대 찬영(燦泳)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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