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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頭大幹記
화방재~태백산~도래기재
'Jiri-깽이' 恩敬의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
(7)
가노라, 자병산아
다시보자, 청옥 두타야
아는 사람들은 알 만한 시 한 편에 빗대~
처참한 모습에 차마 발길 떨어지지 않았던 자병산
멘탈붕괴로 전혀 기억에 없었던 청옥산과 두타산
이번 구간은 태백산입니다.
이 명성 자자한 산도 저는 이번에 백두대간 하며
처음으로 와 봅니다.
오~~예~
백두대간 벌써 6번의 걸음이었습니다.
1구간 진부령-신선봉-미시령 <17km>
2구간 미시령-한계령-조침령 <47km>
3구간 조침령-구룡령-진고개 <45km>
4구간 진고개-닭목령-삽당령 <53km>
5구간 삽당령-백복령-댓재 <46km>
6구간 댓재-피재(삼수령)-화방재 <47km>
이번 진행할
7구간 화방재-태백산-도래기재 <25km>
총 백두대간 진행거리 280km
금강산권, 설악산권, 오대산권을 지나
태백산권입니다.
앞으로 진행하게 될 소백산권
월악산권, 속리산권, 덕유산권
육십령을 넘어 지리산 천왕봉까지~
총길이 1,400km 중 남한 구간은 약 680km
앞으로 발걸음해야 할 거리는 400km정도
팽달이가 방장님과 함께
지난해 추석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꽤 많이 걸었네요^^
설악산을 빼고는
모든 길이 처음 들어보고 접한 길이었습니다.
지명들도 생소하고,
대간길을 그냥 산길과 동급으로 생각하며
너무 쉽게 여기며 시작했더랬습니다.
진부령에서부터 시작해서
남한 구간 금강산의 숨겨진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고
백리척 지도인 동국대지도의
정상기님을 찾아 만나며.
설악 공룡을 넘어 대청봉,
조침령에서 잠시 숨고르기 후,
어둠 속 안내표지판의
큰강 물줄기와 1대간 1정간 13정맥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인식 체계
태풍 길마중이라 비바람과 추위가 더해져
가도가도 끝없던 갈전곡봉(치밭골봉),
화려하지 않았지만 나름 행복했던 단풍구경~
야밤 두로봉과 동대산
힘겹게 걸음 옮기며 진고개까지.
대관령 구간의 귀여운 아기 멧녀석들과의 조우며
소똥냄새에 숨이 턱~ 켁켁~
야박한 인심의 안반데기 고랭지밭
고루포기산(골폭산)을 지나
한강 본류로 흘러드는 송천의 죽은 물줄기인
도암호의 존재에 대해 기함하며 삽당령까지.
올 겨울 첫눈 맞이하며
신나했다가는 석병산을 지나
뼈가 깎여 나가는 고통 이보다 아픈 것이 또 있을까...
백두대간 보호법이 만들어지게 한 촉발제 자병산
눈 처발처발~ 갈미봉을 지나며 멘붕 상태로
고적대-청옥산-두타산까지
제 기억은 아무리 떠올려보려해도 전무.
작년 12월 첫 주 댓재까지
장경인대 다리 질질 끌고
지옥을 맛보며 하산.
별빛 좋은 밤하늘
태백의 인심 좋은 고랭지밭을 지나가며
행복한 웃음 짓고,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인
삼수령(피재)을 지나
풍력발전기 가득한 매봉산~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갈림길이며
금대봉, 두문동재, 은대봉을 지나
함백산 주목 알현
만항재를 지나 화방재까지.
첫 걸음의 삽을 가볍게 뜨고
그러려니하며 한 걸음씩 가다보니
산 너머 이면을 조금은 바라볼 줄도 알게 됐고
몸의 아픔, 이 땅의 고통과 슬픔을 마주하며
묵묵히 가다보면 끝나리~ 그러며.
방장님이 늘 말씀하던 한 발의 미학으로
이번 걸음까지 280km를 걸어냈습니다.
진행해 오는 동안
‘백두대간’이라는 네 단어 속에서
이제 참으로 많은 것들이 생동~
바로 '無'에서 '有'가 생겨났습니다.
매번 꽤 짓궂은 날씨며
덜 다져진 몸상태로 힘들게 이어가고 있었지만,
산행 후 마음은 한결같이
‘이번 걸음도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으로 요약.
모든 산행날은
누군가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라도 한 듯
후기 좀 더 재미나게 쓰라고??
^^
ㅎㅎㅎ
그 때...
그 날씨가 아니었고
그 몸 상태가 아이었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나의 소중한 백두대간 길.
이 길을 걸은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아도
저와 같은 걸음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같이 걸었던 방장님조차도.
그래서 걷는 모든 순간은
내가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그 어떤 보석보다 값질 수 있었습니다.
자시(밤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에
태백산 하늘의 문이 열린대요.
태백산에 기도하러 드시는 분들
많은 거 다들 아시죠?
태백산 산신은 기도 하나는
꼭 들어주신다고들 하시는데...
산 내에 숨어있는 기도터도 엄청 많고,
산 아래 입구쪽마다 기도하는 곳들도 많습니다.
지금 하늘에는
하루 늦은 보름달이 저 홀로 잘난 듯
휘영청~
달빛 마중 산책 온 듯 저도 따라 신납니다.
음력 기해년의 섣달 보름을 하루 지났건만
밤하늘의 달은
원모양 자를 대고 그려놓은 것처럼
한둥금~합니다.
하얀 빛을 쏟아내며 밝고 예쁘게 꽉~~
기존에는 보름 하루 전이나
다음날 달이 꽉 차게 둥글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
굳이 찾아보려는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음력 보름과 실제 보름달이 다른 이유 혹시들 아세요?
변변치 못한 저만 모르고 있었나!
음력 한 달은 29일이나 30일을 오가며 바뀌지만
보름달이 다음번 보름달이 되기 위해서는
29.5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런 오차 때문에 꽉 찬 만월이 되려면
하루 정도 차이가 생긴다네요.
심한 경우에는 이틀의 오차까지도^^
이번 2020년 첫 보름달이 뜬 날이었습니다.
올해 제 첫 산행이기도 했구요.
백두대간 태백산 구간
진행했던 날이
양력 1월 10일(금) 밤 자시부터~
유난히 달이 크기도 커 보였고,
밝고 더 진하게 보였습니다.
딱히 의도했던 걸음은 아니었지만
운 좋게도 음력으로 섣달의 보름달과 함께.
일 마치고 대구에서 방장님과 접선 후
고한터미널까지 버스로 이동합니다.
고한터미널(태백행 버스)에서 내리는데
사람들도 우르르르~
이곳 터미널 80~90프로 이용자는
카지노 때문이라고.
아무튼 밤잠 잊고 다들 대단합니다.
어떤 곳일지 살짝 호기심에
한 번 쯤 가보고 싶기도 하고.
이곳에서 내린 사람들 중에
산에 드는 사람은 아마도 방장님과 저뿐인듯
편의점 습격 햇반 데워 가지고 나옵니다.
택시타고 화방재(어평재휴게소로)~
근데 기사님들이 잘 몰라요.
이곳이 어딘지...
고한 지장천이 흐르는 길 따라 정암사.
정암사 뒤로는 북쪽의 금대봉,
동쪽의 천의봉,
남쪽의 은대봉(상함백)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뒤를 막아주고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인 태백산 정암사(淨巖寺)를 지나갑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645년 자장율사가 건립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
보물 제410호로 지정된
수마노탑이 적멸보궁 뒤에 있습니다.
고불고불~
운전연습하기 딱 좋은 길입니다.
만항재부터 산비탈 경사길 따라
한참을 돌고 돌아
차량 인적 없는 도로위
고라니 한 마리가 놀라 달아나고
이런곳에 어떻게 길을 만들었을까
신통해하며 드디어 화방재 도착.
바람은 잠든 듯 하지만,
공기는 제법 차갑습니다.
여기서 데워온 햇반 꺼내 식사하고 출발
방장님이 털팔이인 저 먹인다고
챙겨온 반찬 꺼내
굳게 문 닫힌 이곳 휴게소 외부 의자에
소풍 나온 듯~
도시락은 또 그런 맛이 있어요^^
따뜻한 밥이 몸 속으로 들어가니 좋네요.
방장님 최고~
방장님 술 사왔냐고 물어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
편의점 갔을 때 술을 깜빡했네요.
어이구~ 모질이~
태백산 산신님께 부어드릴 거였는데...
근데 다행히 방장님이 하나 챙겨오셨대요.
역쉬~~베리 굿굿굿~
밥 먹고 주섬주섬 짐 챙기며
카메라 꺼내 켜는데...
아뿔사~ 충전기에 문제가 있었던가 봅니다.
간밤 내내 꼽아놨다 가져온건데
밧데리가 한 칸 간당간당
다른 것으로 교체해보니
그것도 역시나 밧데리 없네요.
이상타~ 이런 적 없었는데...
오늘 사진 우짜지? 큰일입니다.
폭망~~ 우우우 씨~~~~
그런 저를 보고는 방장님 꾸물거린다며 호통 중~
빨리 안하고 뭐하노?
방장님은 이미 들머리 산비탈 오르고 계십니다.
방장님 산행 스타~~일
꾸물거리는 꼴~을 못 봅니다.
뷰랴뷰랴~
사진기 땜에 속상한 마음 접고 산으로 들고.
바닥이며 길 옆 산죽에 눈 처발처발~
카메라 상태 거의 아사 직전이라
플래쉬도 안터지니...
맙소사~
위에 사진 딱 요상태~
렌턴은 꺼냈는데 날이 하도 밝아서
켤 이유가 없네요.
주머니 속으로 다시 보내고.
밤 11시 넘어부터 시작한 산행
다음날 아침까지 렌턴 한 번을 켜지 않았네요.
대단하죠. 그만큼 달빛이 대단했더랬습니다.
초저녁 들어서는 느낌?
새벽이 열리는 느낌?
그렇게 걸음 시작합니다.
백두대간 사길령을 지나고...
강원도와 경상도로 서로 통하는 고갯길
아주 조금만 오르막 올라가면 산령각입니다.
산령각(山靈閣)
사길령을 오가는 보부상들의 고갯길
방장님 아주 오래전 일이구요.
예전 지금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1월
백두대간하며 이곳 산령각에 합장하고 지나가려는데
안에서 중년의 아재가 한 분 나오시더랍니다.
"예서 합장하며 뭘 그리 빌었느뇨?“
물으셔서
아들 낳게 해달라~ 빌었다십니다.
그때 형님은 따님만 두 분.
집안 어르신들이 한 걱정 중이셨다고.
아내분께서 임신 중이셨는데...
아들인지 딸인지는 알 길 없고.
방장님의 생년월일을 물으셔서 말씀 드리니
음력 3월 중순에 아들을 낳을꺼라고 하셨다네요.
덧붙여 돈 있으면
남쪽에 땅을 사두라고 했다는데...
진짜 그 해 정확히 3월 중순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들이었더랍니다.
그 아들이 벌써 이번에 대학생이 된다고 하시며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같이 왔던 친구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본인도 좀 봐 달라고 하니
볼 거 없다며 쌩~ 찬바람 보태며~
아무 말씀 안해주고는 그냥 들어가시더랍니다.
그냥 쫌 봐주시지. 야박스럽게...
그 친구분...
몇 년 후에 스님이 되셨다고.
아무말씀 안하신 이유가 이렇게 다~ 있었던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방장님께
아주 특별한 곳이네요.
당연히 문 열려있을 거라 여기고
가다가 안에 들러서
기도 하고 가자고 하셨었는데
문을 굳게 걸어 잠궈놨네요.
이곳 많이 궁금했었는데...
그 아재분 누구셨을까도 궁금도 하구요.
방장님 그 후 이곳 몇 번을 더 지났지만
다시는 그 분 만나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문 앞에 서서 잠시 기도하며 갑니다.
가족들의 건강과
J3클럽 무탈 안전 산행을 위해~
저도 방장님께 기도하는 법
쪼매~ 배웠습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기도라는게 되어지네요.
발길 옮기며...
느닷없이 단종에 대해 아는 것
제게 이야기해 보라고 하십니다.
뭘 어찌 이야기하라는 건지요?
몰라요 몰라~
방장님이 이야기 서두 시작하고
저는 이야기 중간중간 말 보태며 처발처발~
단종 이야기로
기분좋게 뽀드득 눈 쌓인
이 산 속의 고즈넉함을 채우며 갑니다.
이런 얘기 무슨 재미로 하냐~
그러실 듯도 한데
재밌어요.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는 사랑 이야기에^^
착한 놈, 나쁜 놈,
더 나쁜 놈들에 광분도 하며
혼령으로 영혼이
이곳 태백산으로 들었던 이야기...
태백산의 산신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왕,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가신 단종(端宗).
눈 쌓인 한겨울인데 바람이 잠잠하니
등에서는 제법 땀도 기분 좋게 올라옵니다.
아~ 좋네요. 좋아.
산행하기 딱 좋다^^
변절자 배신자의 아이콘 신숙주와 정인지~
신숙주를 숙주나물이라 하며 더 크게 변절자라 하는 이유는
같이 집현전에서 동문수학하던 사이라 그런 듯
참고로 저희 집안과
신숙주 집안은 다르답니다.
방장님 심심하면 신숙주와 저를
같은 신씨라고 묶는데...
핏줄이 달라유~~ 달라~ 아니래니까~
우린 평산 신씨 무신 집안
신숙주는 고령신씨 문신 집안
근데 아무리 듣고 들어도 설마~설마~
진짜 그랬을라고....
어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를
노비로 달라고 했을꼬~
백번 양보해서 죄책감에
잘 돌봐주려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까.
정인지는 김종서의 셋째 며느리를 종으로 달라고~
참.. 얼굴들도 두껍네요.
어쩜... 대놓고 그런 말을...
암튼 나쁜 놈들이라며
처발처발~
노발대발~
이 두 사람 나중에 저승 가서 만날 수 있으면
진짜였느냐고 따져 묻고 싶습니다.
사람의 인두겁을 쓰고...
설마~ 진정~
태백산 비구니 사찰인 유일사 갈림길
건물은 잠겨 있는데
의자가 있어서 잠시 앉았다 갑니다.
방장님 배낭에서 보온 물병 꺼내며
따뜻하게 한 모금 하라고 하는데
"방장님~ 요거 꿀물?? 우와~ 달다~"
제가 꿀에 사족을 못씁니다.
얼매 안되니께 목 따뜻하게 쬠씩만 마시래요.
여기서부터 지난 해안길에서 노송님이 빌려주셨던
무릎보호대도 꺼내 차고~
제 배낭 속에 고이 모셔져 있더라구요.
있는 줄도 몰랐는데...^^
여튼 노송님 오늘 밤도 잘 쓸께요.
근데 요거 언제 돌려드리나~
이렇게 저 늘 잘 챙겨주시는 우리 노송님
고맙습니데이~
같은 태백산권의 더 높은 함백산 1,573m
지난번에 걸었지요.
태백산은 1,567m로 함백산보다 낮습니다.
그럼에도 태백산최고봉이라 하는지...
우리나라 천제단은 3곳
마니산 참성단, 태백산 천제단, 구월산 천제단
그 중 가장 큰 천제단은 이곳 태백산
고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유서 깊은 곳.
이곳 태백산에 천제단이 3곳이 있고
천제단은 예로부터
왕이 나라의 안위로 천제를 지내던 성지
함백산 기원단은
백성들이 제를 올리던 민간 신앙 성지
백두대간 산줄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져 오면서
장군봉 천제단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뭉쳐지며
기도발이 잘 받는 특히나 영험한 곳
이곳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나무들..
등로상에도 많고...
태백산에 그런 주목이
약 2,800그루나 있다고 하네요.
이 주목마다 눈 내려 상고대 꽃 피면
진짜 장관이겠습니다.
기도발이 잘 받는 곳 하면...
또 생각나는 한 곳 바로 계룡산.
유래로는 무학대사가 이성계와 함께 천도를 하기위해
대궐공사를 했던 신도안(암용추,숫용추 아래 일대)과
계룡산을 둘러보고는
“이 산은 금계포란형이요, 비룡승천형이니
계룡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산세가 좋고 혈이 왕성하기 때문에
좋은 기운을 갖추었다네요.
무속인들이 계룡산은 산신으로부터 기를 받는데
참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들 말한다고 하네요.
진짜 그런가?? ^^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은 또 비운의 터라고 하는데
조선 개국 초 이곳이 도읍지로 언급되다 밀렸지요.
그 수치와 분노의 땅이라
또 기도발이 잘 먹힌다고도.
계룡산은 한때 계곡이고 골마다 당집이며 점집
어떤 분들은 계룡산의 좋은 기운 받으려
합방하러들 온다고.
실제로 가보면 산 아래 모텔도 엄청 많아유~
아아~ 이런 이유도 있었구나.ㅋㅋ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종교정화운동으로
1984년 이후 대부분의 당집, 점집은 정리된 상태.
혹시들 알고 계시려나요?
계룡산이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 국립공원 지정이라는 사실.
(1968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본사 마곡사의 말사인
계룡산의 동학사(東鶴寺)
통일신라 승려 상원이 창건하였구요.
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분.
김시습(金時習)
이분은 21세 때 수양대군의 단종 왕위 찬탈에
3일간 통곡하고는
그 뒤 머리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하기 시작했고,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담아
매장한 사람이 바로 이분이라~ 합니다.^^
1457년 김시습이 단종과 정순왕후,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과
사육신의 제사를 모셨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구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이런 분께 쓰여져야 하는 말 맞죠?
멋지다~ 김시습 ♡~
신라 충신이었던 박제상(朴提上)
고구려와 일본에 볼로로 잡혀간 왕제들을
고국으로 탈출 시킨 분으로
일본에 유배되었다가 살해당하셨죠.
그런 남편을 치술령(鵄述嶺), 울산)이라는 고개에 올라가
오매불망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부인의 이야기며~
매월당 김시습이 존경했던 분이 바로 박제상
이 박제상 아드님이
백결선생(百結先生) 떡방아 박문량~
가난하여 백번 기운 옷을
입고 다녔다 하여 그리 불렸죠.
다른 집들은 떡방아를 찧는데 가난이 죄라~
떡방아 소리를 거문고로 냈다 하죠.
무릇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매인 일이어서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인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부질없이 상심하는가.
그렇게 알콩달콩 아내를 음악으로 위로하며~
이번 진행하며 만나게 되는 물줄기는
서쪽으로는 모두 옥동천
(남)한강에 합류하며 어전으로 흘러갑니다.
죽어서도 눈 못감았을 단종
그 투명 눈물도 어전을 지나갔으려나??
방장님 옥동천(58km) 강행
얼마 전에 후기에서 만났었죠.
산신께서 도와주셔서 무사할 수 있었던 방장님 강행길
경고 문구 있다면 무시하지 마세요.
제발 쫌~
혹시라도 태백산 구간 올라왔다가 탈출 시도하신다면
총탄이 날아드는 계곡쪽은 꼭 피하시길.
장군봉 표지석 개구지죠?
어쩐지 장군님들은 글씨 쓰면 진짜 이럴 듯
붓으로 쿡~ 찍어 쓱쓱~
우리 남자 조카가 글씨 배우며 쓰는 것 같은 느낌.
다음에 받아쓰기 할때
'장군봉' 써 보라고 해야겠습니다.
우리 장군같은 조카 주헌이~
사랑한데이~
동쪽과 남쪽으로 흐르는 강은
화방재~깃대배기봉 사면쪽의 황지천과
깃대배기봉~신선봉~구룡산 사면의 물은 운곡천으로
각각 낙동강에 합류~
오늘 우리의 발길은
태백시에서 영월과 봉화를 지나갑니다.
전에 산에 다닐 때는 그냥 산 하나만 보며 가니
걷고 있는 이곳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걸었었는데...
물줄기를 같이 보게 되니,
지역이 머리에 들어오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대충 감이~
좋죠.
뭔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알아진다는 것.
저 앞이 3곳의 천제단 중 가장 규모가 큰 천왕단
위에 사진처럼 오늘 밤, 이정도의 밝기
보름달 덕입니다.
앞의 산세도 어느정도 다~ 보일 정도라~
진짜 밝죠?
아휴~ 깜짝이야.
이 추운 한 겨울 밤에
여기에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사람이 앉아 계시더라구요.
하늘문이 열린 지금 이 분은 여기서
뭘 보고 계시는 걸까요?
뭘 빌고 계시는 걸까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다운 책으로는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있지만
단군 이야기는 삼국사기보다 140여년 후에 쓰인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1281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단군신화(檀君神話) 내용이 사실이라기보다는
설화 같은 형식으로 등장하구요.
단군이 나라를 처음 연 고조선 건국 기념 국경일인
개천절(開天節), 10월 3일.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왔고
곰과 범이 백 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버티면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곰은 여인이 되었고
여인이 된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기를 점지해 달라 빌었습니다.
이에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해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를 세운
우리의 단군왕검(壇君王儉) 되시겠습니다.
태백산입니다.
좀 전에 만났던 장군봉 표지석과는 사뭇 다르게 어쩐지
우러러 봐지는 것이...
진짜 이곳 산신은 임금님이신건가?
여기 이곳 기운이 그래요.
단종비각 만나러 잠시 아래 내려갔다 와야해요.
비탈이 꽤 있구요.
사람들이 좀 오르내렸는지 미끌미끌~
꽈당~ 어이쿠~
그런데 방장님은 잘도 내려갑니다.
난 힘들어가 더딘 걸음인디~
단종비각 만나러 가며
준비해온 술 부어줍니다.
단종을 달래고 정순왕후를 달래드립니다.
두 분 지금은 만나셔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그럴거라 믿으며...
조선의 왕 중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었던 단종(端宗)
1441년 7월 23일 태어나,
어머니가 바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인 세종 1450년에,
아버지 문종 1452년 2년간 재위하고는 39세로 붕어.
왕실에 보호해줄 어른 하나 없이
어린 나이에 조선의 6대 왕이 되어버린 단종
당시 문종(아버지)의 형제였던
수양대군(세조)은 당시 35세.
할아버지인 세종의 인재들 황보인 김종서 등과
집현전 학자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신숙주 등에게
어린 단종을 잘 부탁한다며 가셨건만...
1453년 10월 10일
단종 1년에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황보인,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을
추대하는 역모로 몰아 숙청
수양대군은 그 후 실권을 장악(계유난정)
안평대군은 강화로 유배, 후에 사사 됩니다.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도 유배(단종 3년)되고
단종도 폐위(1455년)
후에 사육신의 단종 복위가 실패하자
군사를 모아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
1457년 6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며
영월로 유배를 보내고
한 달 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영월로 찾아들지만
차마 사약을 드리지 못하지요.
천만리 머너먼길 고운님 여의옵고
내마음 둘데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물도 내안같아서 울어밤길 예놋다.
_단종을 기리며 지은 왕방연의 시조_
단종에 목에 활줄이 감기고
단종의 하인이 줄을 당기니 승하.
영월에 사는 우천 추익한(한성부 부윤을 지냈던)
단종에게 머루와 달래를 진상했다 전해지죠.
추익한이 어느날 단종이 백마를 타고 가는 걸 봤는데
“마마~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지금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다.”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라며
진상 과실은 내 처소에 갖다 두라~
처소에 가니 이미 단종은 숨을 거두신 뒤라...
그 뒤 추익한도 쓰러져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전해집니다.
단종의 가계조 잠시 들여다 보며 갑니다.
쿠데타로 왕권을 잡은 <*조>로 불리죠~
첫 왕인 태조가 그랬고
수양대군인 세조가 그러했고, 선조, 인조....
저 같으면 왕 자리 준다고 해도
머리 시끄러워서 싫을거 같은데..
휴~ 우리나라 왕들 안쓰럽습니다.
측은하고 불쌍합니다.
세개의 천제단 중 하단.
하단 옆에 신기하게도 제법 큰 묘가 하나 있더라구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묻혀 있으실꼬~
세조가 단종의 시신을 장사지내는 자
삼족을 멸한다 하니
10월 24일 그렇게 어린 목숨이
차디찬 청령포 물속으로~
영월 땅을 흐르는 물은 한강 물 되시겠습니다.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
몰래 그 시신을 수습, 장릉에 안장
활줄에 목이 감긴 채, 그 후 엄흥도도 자취를 감추고.
또 한사람 영월부사 박충원.
부임했던 부사들이 귀신을 보고 연달아 세 명이나 급사~
곤룡포를 입은 귀신 바로 단종이 나타나니
“내가 죽을 때 목을 조른 활줄이 답답하구나~”
단종이 일러준 엄흥도를 찾아간 박충원
단종의 목에 활줄을 제거하고
묘를 다시 만들어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합니다.
단종은 승하한지 242년 만에 숙종시대에 와서야
정식으로 복원되었습니다.
물론 사육신도 충신으로~
진행하는 앞쪽으로 부쇠봉이 보이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문수봉과 두리봉~
렌턴 없이도...^^ 보일 것들은 다~ 보입니다.
백두대간 등로 표시도 잘 되어 있어 걷기 좋고~
사람들 발길도 꽤 있었던 듯^^
주목을 지나 헬기장,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부쇠봉입니다
문수봉으로의 갈림이며~
돌탑이 있는 문수봉도 가서 직접 보고 싶지만
백두대간을 해야하니~ 통과.
부쇠봉을 지나니~
눈 내린 등로에 사람들 발길이 뚝!
그냥 눈밭이에요.
렌턴 없이 반짝이는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하던지~
남들 자는 시간에
저는 이런 낭만을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방장님이 도장 찍으며 가고
제가 또 도장 찍으며 걷고.
태백산 중천에 만월이 떴을 때의 경치
산꾼들 사이에서 태백산에서 볼 수 있는 풍광 중
최고로 치곤 한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저와 배방장님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게 태백산은
왜 이렇게 국립공원 승격이 늦었을까요?
2016년이 되어서야 국립공원 지정.
그전에는 도립공원.
대덕산~ 함백산~깃대배기봉까지가 국립공원 경계~
꽤 그 범위가 큽니다.
등로상 깃대배기봉 인증석은
좀 떨어져서 2개~
동물 발자국도 가끔 보이며~
키작은 조릿대 사잇길을 달빛 조명등 하나로
거뜬히 걸어 갑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_사육신의 성삼문 시조_
지금 어딘가에서 독야청청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있을 것 같은
성삼문을 기억하며...
어쩜 죽어서 다들 이곳 태백산에
나무며 동물로 다시 태어나
재미나게 지내고 있지는 않을지...
방장님 지나가신 발길 따라 갑니다.
차돌배기 안내판이 나오고~
지나는 길손들 쉬어가는 곳으로
깃대배기봉과 신선봉 사이에 위치하고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있었다 전해집니다.
눈밭이라 좋은데
뭐~ 마땅히 쉬어갈 수는 없으니...
그냥 걷기만 하는 밤이네요.
순간 순간 고개를 들면
저 앞에 커다란 불빛이 보여
뭐지? 하는 순간...
그게 보름달임을 알고 놀랍니다.
몇 번을 그러네요.
그 정도로 크고 밝아요.
이 밤, 어떤 등이 이보다 밝을까요?
걷고 있는 등로 오른쪽으로는
등로 안전 장치가 없으니
거의 낭떠러지~
눈길 잘못하다가는 옆으로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
좁은 비탈 등로 걸으실 때는
부디 조심히~
처사경주손씨묘를 만나며~
천하명당 조선십승지라는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신선봉입니다.
조선 십승지,
10군데의 좋은 피난 터.
오지중의 오지~
백두대간을 축으로
내륙 산간에 집중되어 있는 이상향이자
살아남을 수 있는 곳.
영주 풍기(태백산과 소백산 사이)
봉화 춘양, 보은 속리산
남원 운봉(백두대간과 지리산 바래봉)
예천 금당실, 공주 유구·마곡
영월 연하리·미사리·노루목
무주 무풍, 부안 변산, 합천 가야
見指望月(견지망월)
달을 보라 손짓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본다~
성철 스님의 말씀이지요.
나는 백두대간을 하며
달은 아니보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도 해보며~
이번 산행 진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다리 통증 시작됐었는데...
방장님께 처음부터 말씀 드리기 뭐해서
참고 걸어오다가
아무래도 50km이상 가는 것은 무리일 듯 하여
방장님께 도래기재까지만 진행하자고
다리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산죽밭을 지나며~
안부가 나오는데
경상도와 강원도의 길목인 곰넘이재.
태백산 천제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고갯길로
문헌 영가지(永嘉誌)에 웅현(熊峴)이라고 표기.
순 우리말로 곰넘이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이렇게 곰넘이재를 지나는데
방장님께서 다리 힘들면
여기서 그냥 내려가자고 해주십니다.
도래기재까지는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괜찮다고~
의쌰의쌰~
씩씩하게~
좌측은 춘양면 참새골과
우측은 옥동천 사격장으로 가는 길~
방장님 얼마전 옥동천 강행하며
전투기 사격장에서 정신줄 놓았던 곳.
이 물은 김삿갓면을 지나 남한강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아침 되기 전 가장 춥죠.
능선 바람도 좀 불고~
등로 매달린 시그널이
아침 댓바람에 90도 까지 몸을 곧추세우네요.
뒤로는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고.
태백산 사고지가 있다는 각화산이 뒤로 보이며~
저야 방장님이 얘기해주시니까
아~그렇구나.
알죠.
위 자료는 인터넷에서 찾아서 맹글었습니당~
왕실 족보나 실록 등을 보관하던 서고인
조선시대 5대 사고지(史庫址)
창덕궁 내 춘추관
평창 오대산 영감사
무주 적상산 안국사
강화 정족산 전등사
봉화 태백산 각화사
구룡산, 두리봉, 청옥산 남쪽에 위치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각화산에 있는
각화사(覺華寺)
686년 원효(신라 신문왕6)가 창건
대한불교조계종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로
사고를 수호하는 사찰
보름달은 밤새 흰색에서
아침 나절 기진해서인지 노란색으로 바뀌었네요.
구룡산 뒤로 꼴딱꼴딱~
노랗게 질려서...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산세는 오르내림이 별로 없이 더없이 순하고~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가르는
구룡산(九龍山)
낙동강과 (남)한강으로 나뉘고
아홉의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 한다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물동이를 이고 가던 아낙이
"뱀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되어버렸다는
웃픈 전설
구룡산 정상봉 옆에서
우리 글스글스 이글스님
팥죽 개구지게 혼자 드시던 사진 기억나며
소환해 보고.
한번 방긋 웃어도 봅니다.
구룡산 사면이 운곡천(41km)의 발원지 되시겠습니다.
방장님 배낭이 방장님 몸만합니다~
어휴 크다 커~
방장님의 짐은 비단, 저 배낭만은 아니겠지요.
저분 양 어깨 위에 지워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어마어마한 짐들
고토분지로 일본 지질학자죠.
산줄기를 산맥으로 둔갑시켜 놓은 장본인
산맥이라는 말
어쩐지 숨이 턱턱 막힙니다.
산림청 분들 좀 관심좀 가져주세요.
우리 자라는 아이들이 모두 보는
백두대간 태백산 표지판입니다.
구룡산에서 도래기재 중간 부분인 임도길.
정자형 휴식 공간이 있어서 바람 피하며
방장님 가져온 돗자리 펴고 앉아서
아침 식사 하고 갑니다.
이제 도래기재까지만 가면
오늘 일정 오전 중 일찍 끝이니까~
방장님 애써 준비해온 식사는 비워 드려야죠.
도시락 꺼내시는데 밥도 국도 모두 보온통에~
방장님 많이 무거웠겠다.
저는 일단 방장님 보온물병
꿀물 한모금 마시고 식사 시작~
따뜻한 온기 머금은 밥과 국~
이런 날씨에 이건 천국의 맛이죠.
방장님 맛나요 맛나~
밥 먹느라 손 끝은 얼어가도
마음만은 봄날 부럽지 않습니다.
밥 먹은 힘으로
도래기재까지는 잘 가야죠.
방장님 오르막 오르던 제게
배낭의 짐 넘겨달라고 하십니다.
방장님 그 큰 들리지도 않는 배낭
얼매나 무거운지 잘 아는데
어찌 짐을 더 지워드리겠습니까?
제 짐은 제가... 이정도쯤이야~
등로에 눈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임도길을 지나며~
아침 식사한 곳부터 도래기재까지 4.2km라고 했는데
참 길고 깁니다.
역시 쉽게 끝내주진 않네요.
외진 등로 길에 사람 발자국 하나가 보이고~
토깽이 발자국에, 멧선생 발자국이며
방장님은 찍힌 발자국을 만져보고는
언제쯤 지났겠구나
감이 잡히시나 봅니다.
저는 다~ 금방 지나간 것처럼 보이던데...
거목들이 지키고 있는 백두대간 등로도 지나고
그 나무에 손도 대보며 온기 느낍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도래기재 하산길 너무 좋지요?
여기는 그냥 조금만 올라와서 한참을 머물러도
좋을 것 같은 곳입니다.
숲의 기운이 온 몸 속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나무들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뻥~ 뚫어 줍니다.
초록색 철 휀스에 엄청난 수량의 시그널이
등로 초입임을 말하며~
나무 계단을 내려가니 도래기재 도착입니다.
화방재(어평재휴게소,주유소)-산령각
장군봉-태백산-부쇠봉
깃대배기봉-신선봉-곰넘이재
-구룡산-도래기재
오늘 25km 반만 짧게 걷고는 일정 마무리.
방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택시 불러타고, 춘양버스터미널로 슝~
각화사 인근을 지나며...
방장님 각화사에 대해 기사님께 물어봅니다.
택시로 각화사 태백산 사고지까지 갈수 있는지 묻자
못간다며 각화사에서 내려
한참을 오래 올라가야 한다고 하시네요.
산비탈에 있는 듯...
어느 정도 거리되면 다녀오려 했건만~
아쉽습니다.
백두대간과 동해안 걷기를 진행하며
몇 달 전부터 고관절 쪽에 이상 신호가 포착됐고
장경인대의 극심한 통증까지 겹쳐졌습니다.
그러며 한 달을 쉬었으니
아파도 조금 참고 걸으면 걸어지겠지~ 했던
나만의 착각이었던가 봅니다.
이번 백두대간 구간
화방재~태백산~도래기재
한마디에 한마디 더 보태면
비단길, 꽃길
실제로 걸어보니 이 말은 백퍼~ 사실,
너무도 착했던 등로였건만...
노송님 무릎보호대에 보라언니가 혹시 몰라
몇 봉지 챙겨주셨던 약까지 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픔 참고 대간길 강행하다가는
방장님께도 크나큰 민폐에 안되겠다 싶어~
도래기재에서 오래 쉬었다 가자는
제 나름의 선고를 내리며
한동안 대간길 위,
설렘의 마음을 꾸역꾸역 접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겁이 많아요.
의심도 많고요.
제 대간기도 석달 정도 같이 휴업 들어 갑니다.
쉬는 동안 자료도 더 많이 찾아보며 공부도 하고~
후퇴가 아닌 진보하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 하며 알차게 보내야죠.
나 대간하는 여자야~
ㅎㅎㅎ
방장님 100대강 후딱 마무리 잘 하시구요.
우리 J3클럽 제삼리 식구들 모두
늘 무탈하게 안전산행 하세요.
2020년 경자년(庚子年) 파이팅입니다.
새해복 처발처발~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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