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O |
나 X |
다 O
|
라 O |
마 X |
바 X |
사 X |
아
O |
자 O
|
차
X |
카
X |
타 X |
파 X
|
하 X
|
까
X |
따 X |
싸
X |
짜
X |
빠 X |
거 O |
너
O |
더 O |
러 O |
머
O |
버 X |
서 O |
어 O |
저 O |
처 X |
커
O |
터
O |
퍼
O |
허 O |
꺼 O |
떠
O |
써 X |
쩌 X |
뻐O |
고
O |
노 O |
도 O |
로
X |
모 O |
보
X |
소 O |
오 O |
조 X |
초 X |
코 O |
토 O |
포 O |
호 X |
꼬 O |
또 O |
쏘 O |
쪼
O |
뽀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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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
She decorded
15 'ㅏ' letters
12 'ㅓ' letters,
13 'ㅗ' letters,
She decorded
40 letters
in all.
Her mother wrote
as follows
가 X |
나 O |
다
X |
라 X |
마 O |
바 O |
사 O
|
아
O |
자 O
|
차
O |
카
O |
타 O |
파 O
|
하 O
|
까
O |
따
O |
싸
O |
짜 O
|
빠 X |
거 O |
너
O |
더 O |
러 X |
머
X |
버 O |
서 O |
어 O |
저 O |
처 O |
커
X |
터
X |
퍼
X |
허 X |
꺼 O |
떠
O |
써 O |
쩌 O |
뻐 X |
고
O |
노 O |
도 O |
로
X |
모 O |
보
X |
소 O |
오 O |
조 X |
초 X |
코 O |
토 O |
포 O |
호 X |
꼬 O |
또 O |
쏘 O |
쪼
O |
뽀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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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13일
She decorded
12 'ㅏ' letters
7 'ㅓ' letters,
10 'ㅗ' letters,
2 'ㅜ' letters
31 letters
in all.
가 X |
나 X |
다
O |
라 X |
마 O |
바 O |
사 O
|
아
X |
자
X |
차
O |
카
O |
타 O |
파 O
|
하
X |
까
O |
따
O |
싸
O |
짜 O
|
빠 X |
거 O |
너
O |
더 O |
러 X |
머 X
|
버 X |
서 X |
어 O |
저 O |
처 X |
커
X |
터 X
|
퍼 X
|
허 X |
꺼 O |
떠
X |
써 X |
쩌 O |
뻐
X |
고
X |
노
X |
도 X |
로
O |
모 O |
보 O
|
소 X |
오 O |
조 X |
초 O |
코 O |
토 X |
포 X |
호 X |
꼬 X |
또 O |
쏘 O |
쪼
O |
뽀 O |
구 O |
누 O |
두 X |
루 X |
무 X |
부 X |
수 X |
우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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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08년 사례) 뇌병변1급 장애...
감사 드립니다.
먼저 이 부족한 엄마에게 소원이를 저희 가정에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류소원, 정신지체 2급 장애'
저의 사랑하는 둘째 딸에게 붙는 수식어가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생후 5개월때 경련을 일으켜 전북대 병원을 거쳐 서울의 경희 의료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병명은 ‘영아연축’ 처음에는 '뇌병변 1급 장애'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그 당시 영아연축의 심각성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정읍과 서울의 긴 거리를 눈물로 쫓아 다녀야 했습니다.
모세 기관지염,경기,심한 변비 이런 증상들로 인해 병원 생활이 삶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하고 망망한 대해를 돛단배를 타고 항해 하는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소원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했지만 부모인 우리의 노력은 무기력함 그 자체였고 모든 약물에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은 채 소원이의 경기 횟수는 날로 증가했습니다.
생후12개월, 광주에 있는 병원에서 뇌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하면서 첫 돌을 병상에서 맞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상황으로는 수술 받음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의 상태가 더 악화 되었고 병마와 싸우고 개선장군이 되어 씩씩하게 퇴원을 하고 싶었던 우리 가족의 바램은 무너지고 우리는 병마와의 싸움에서 진 패배자의 모습으로 퇴원을 해야 했습니다.
1998년 한 해동안 9번을 입원 하면서 소원이의 ‘간질’이라는 병과 뇌의 이상소견으로 인한 장애를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소원이처럼 뇌에 이상이 있고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당장 어떤 결론을 얻기 보다는 긴 시간을 지켜 보며 아이의 성장을 기대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을 감당하기란 너무도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아이의 회복을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로인해 저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마음 고생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지경의 고통이었습니다.
응급상황이나 입원시에는 남편과 가족의 도움이 컸지만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왔을때는 소원이는 온전히 엄마인 내 몫이었고 내 딸이 장애아이고 병과 싸우고 있다는 현실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버리고 싶은 심정은 우리 엄마들이면 누구나가 거쳐 가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투병생활과 함께 새벽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어느날,
‘하나님! 저는 이 아이를 책임질 수 없어요. 차라리 이 딸을 천국으로 데려 가세요’
눈물의 절규를 하며 하늘을 향해 원망했고
말초신경조차 곤두 서 있는 나의 감정은 남편을 향해 여지없이 쏟아 부었고
미쳐 버릴것만 같은 마음과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끌어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내 삶의 주변에서 보내오는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마음마저 상처로 얼룩지면서 그들을 강하게 거부하는 시간이 찾아 오기도 했습니다.
소원이 아빠는 크게 요동하지 아니하고 아픈 가슴으로 현실을 받아 들여 가며 살아갔고
큰 딸 주현이는 어린나이에 동생으로 인해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돌이켜 보면 우리 가족중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바로 우리 큰 딸 주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아빠는 성인이기에 나에게 주어진 내 몫임을 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의 주현이는 엄마의 눈물을 지켜 보아야 했고
엄마의 살얼음판 같은 감정의 시간들을 곁에서 겪어야 했으니까요.
장애아를 키우면서 현실로 부딪쳤던 가장 어려운 점은 치료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감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소도시이다보니 교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다는 것 이었습니다.
네 살박이 큰 딸과 두 살인 소원이를 품에 끼고 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차 안에서는 보채는 아이 때문에 난감했고 20분간의 치료를 위해서
먼거리를 다니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읍지역에도 장애인을 위한 공간인 장애인 복지관이 세워지게 되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연이 있다면 40개월때부터 걷기 시작한 소원이는 산만함이
너무 심했었는데 40분간 이루어지는 개별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 안의 교구를 온갖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고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함께 했던 선생님과는 올 초에 수업을 종결했는데 마지막 수업 하는 날
선생님의 아쉬워 하는 모습속에서 눈가에 맺히는 이슬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막무가내였던 소원이는 작년부터는 의자에 제법 앉아서 수업을 하는 아이로 성장을 했고
이 모두가 소원이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우리 복지관 선생님들의 노고라 여겨집니다.
소원이가 아기였을때 이 어린 생명이 엄마 아빠도 없이 시설 같은데서 자란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가끔 생각을 하면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를 흔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찾아온 귀한 생명에 감사합니다. 소원이의 모든 것이 내 살이 되고
피가 되기까지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기에 이 생명이 이 세상 어느것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우리 장애아 엄마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죠.
우리 아이들보다 하루만 더 살다가는게 소원이라는 이야기.......
저는 소원이에게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가 생명이 다 하는 그 날까지 소원이가 세상 가운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우리 가족과 소원이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걸음이
느린걸음이라 할 지라도 우리의 느린걸음은 작은 것에 감사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장애아를 키우면 엄청 불행하기만 할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 몫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남들보다 불행 할 수는 있습니다.
겨울을 견디고 돋아나는 새싹이 귀하고 아름답듯이 우리 장애아 엄마들의 행복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게 지켜 나가는 행복이기에 더 소중하고 값진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문득 문득 아이를 바라볼때 시린 가슴을 느끼지만 저는 이것도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결코 핑크빛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있기에 오늘 하루의 삶을 감사합니다.
소원아!
너와 내가 비전을 품고 살아가는
세상은 가는 길이 험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해 낼 수 있단다.
소원아!!! 화이팅~~~^^*
Re: 소원이가 받은 축복이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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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3일]
드디어 한글읽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흥분과 감격!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엄마로서 소원이의 투병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공부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늘 목의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거다.
나는 소원이가 성경책 읽기를 소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소원이가 동화책 읽기를 희망은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의 비전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았고 지금은 성경 읽기와 동화책 읽기을 소망하며 기도의 그릇을 키워 가고 있다.
[영향력] 나의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축복이 흘러 간다면... 다시 말해서, 교장선생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소원이가 받은 축복이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면 모두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소원이는 말을 아주 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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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우리딸! 학교에서 꼴등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어" "이름 석자라도 알아야 할텐데..."
[그랬다] 소원이는 학습쪽으로는 도무지 힘든 아이였다. 생후 6개월부터 시작된 경련제의 복용과 심각한 산.만.함.이 더딘 성장과 함께 공부에 대한 부담감을 무거운 족쇄처럼 떠안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순] 소원이는 참 똑똑했다. 비록 낮은 지능과 사고력을 가졌지만 소원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다보면 똑똑함이 느껴지곤 했다.
[2007년 11월 23일] 드디어 한글읽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 흥분과 감격!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엄마로서 소원이의 투병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지만 공부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늘 목의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거다.
나는 소원이가 성경책 읽기를 소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소원이가 동화책 읽기를 희망은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를 못했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의 비전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았고 지금은 성경 읽기와 동화책 읽기을 소망하며 기도의 그릇을 키워 가고 있다.
[영향력] 나의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축복이 흘러 간다면... 다시 말해서,교장선생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인해 소원이가 받은 축복이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면 모두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숙제 했어요] 인터넷을 통해 쪽지를 이렇게 많이 날려 본 적이 없다^^ 교장선생님께서 쪽지와 전화로 소원이의 공부를 계속 지도 해 주시고 엄마는 열심히 실천하므로써 그 결과를 보고한다. (♣좋은일 하나~ 소원이 학교 선생님께서도 자음카드한글공부에 동참 하기로 하셨다)
소원이의 공부에 대한 반응에 따라 엄마의 감정이 흐렸다가 개었다가 한다. 아마도 그러한 엄마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소원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할 것 같다.
[믿음] -말을 하는만큼 글을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나를 감격시킨 말이 또 있을까? 말을 하는만큼~~ 말을 하는만큼~~~ 소원이는 말을 아주 잘한다.
자음카드 한글학습으로 글을 가르치다가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때면 엄마의 마음이 한번씩 흔들린다. 된다~ 라는 마음이 될 것이다~로 변하고 가끔은 할 수 있을까?로 변하기도 하는데 그럴때 교장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 어느새 자신감은 회복된다. 교장선생님안에 있는 큰 비전이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 그리고 또 한 계단... 가나다라~~를 열심히 익히고 거너더러~~를 향해 가고 있다. 소원이의 한글눈이 활짝 열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아자!아자!
자음카드한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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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사례) 초등교사 어머니 글
'가나다라 마바사...' 노래부터 ...
우리 아이는 현재 12세, 뇌성마비 강직형 사지마비 1급 지체장애인으로 전주 W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일반학급에 통합되어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경철이는 태어날 때 난산으로 청색증이 있었고 혈소판 수치가 낮고 적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80%의 혈액을 교환하느라 인큐베이터에서 12일간을 지내고 나의 품에 안긴 소중한 아들이랍니다.
백일이 지나도록 목을 가누지 못하고, 돌때에는 제대로 앉지도 못했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단지 성장이 좀 늦나보다 라는 생각만 했을 뿐 뇌성마비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발달이 지연돼 15개월째 병원을 찾은 결과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고 그때부터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전북대병원에서 일주일에 3차례의 물리치료를 받고 치료가 없는 날에는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목발을 짚고 걷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오로지 물리치료에만 매달렸습니다. 몇 년 뒤 장애인 등록을 한 후 도립 복지관에서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병행하고 도립복지관에서 치료가 없는 날에는 전에 물리치료사로 근무하시다 현재는 보건소에서 근무하시는 선생님께 치료를 받는 등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년간 꾸준히 치료를 한 결과 네발로 기고 균형을 잡아 앉을 수 있고 워커를 이용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취학 연령이 되어 취학 통지서가 나왔는데 그때까지도 우리 아이는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또 제 인식의 부족으로 지적인 성장은 등한시 했습니다.
그저 자기 의사 표현정도는 할 수 있다는 걸로만 만족하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걷는 것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소중한 게 지적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우리아이가 자라 사회생활을 할 때쯤이면 인공지능 로봇과 복제양까지도 만들어 내는 세상인데 이동하는 것은 어느 정도 기계의 힘을 빌어서도 가능하지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지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왜, 그걸 취학 통지서를 받은 후에야 깨닫게 되었는지...
다급해진 마음에 경철이 누나가 했던 교재를 가지고 통문자로 한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과 그림 밑에 사과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단어카드를 가지고 여러 번 반복해 그림과 글자를 보면서 따라 읽게 했지만 그림만을 인지하지 글자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서점에서 코팅된 여러 자료를 구입해 벽에 붙이고 글자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각도 정상인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데다가 무엇보다 관심이 없으니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취학유예를 시키고 1년 뒤 연년생인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입학 당시 기초학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고 제 이름 석자도 제대로 쓰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때부터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닿소리 홀소리를 먼저 알아야 한글 해득이 되겠구나 싶어
‘ㄱ,ㄴ,ㄷ...
ㅏ,ㅑ,ㅓ,ㅕ...’를 반복 했지만 ,
‘ㄱ’과 ‘ㅏ’는 알지만,
이것이 결합하여 ‘가’가 된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 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모든 학습의 기초는 읽기, 쓰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자연 다른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고 또한 또래아이에 비해 정신 연령이며 지적수준이 매우 낮아 글자를 익히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글을,
손이 부자연스럽고 눈과 손의 협응이 잘 안돼 쓰기는 불편하지만,
읽기라도 가능하게 할까 ?
고민하던 중 아는 분의 소개로 김영생 교감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감선생님께서는 학습 부진 아동을 위한 문자 해독에 관해 실전 경험이 풍부하셔서 우리아이의 문제점을 금방 알아내시고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음절지도만으로는 글자를 익히기 힘들기 때문에
가,나,다,라...까...빠 19개 낱글자를 우선 노래로 암기하도록 하셨습니다.
유난히 노래를 좋아했던 경철이는 ‘학교종’ 노래에 맞춰
“가나다라마바사 아자차카타 파하까따빠싸짜 너무 재밌다!”를 곧 잘 따라 불렀습니다.
노래를 완전히 익힌 후부터는
‘가’가 씌어있는 음절카드를 보면서 ‘가’를 따라 읽고 또한 그 음절표를 거실 유리창에 붙여놓고 손으로 한 자 한 자 짚으면서
노래를 부르게 해 그 글자에 익숙해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후 여러 개의 탱탱 볼을 준비해 볼 하나하나에 각각 가, 나, 다, 라... 한 글자씩을 쓰고 공을 던지고 받는 놀이를 통해 쉽게 글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제시해 주셨는데 그게 매우 효과가 컸습니다. 여러 개의 공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꺼내 던지면서 거기에 씌여 있는 글자를 큰 소리로 말하면서 던지면 그 공을 받아 나에게 던지면서 따라 하는 방법으로 하자 글자 공부가 아닌 놀이로 생각하며 글자를 쉽게 익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글자는 좋아하는 장난감에 그 글자를 써서(자동차에 ‘카’를 써서 익히게 함) 익히도록 하여 그 글자가 나왔을 때 ‘자동차’ 하면 금방 ‘카’가 나올 수 있도록 연상법을 썼습니다.
또 이때쯤 해서 우리 아이가 컴퓨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이용해 자판 연습을 시켰습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게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기 때문에 한글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낱글자를 익히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글자를 쉽게 깨치게 되었습니다.
19자를 이용해 여러 개의 단어를 만든 다음 그것을 공부하고 나니 웬만한 글자는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등교길에 신호대기 중인 차안에서 앞에 있는 버스에 씌어있는 ‘대한 여객’라는 글자를 읽었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츰 간판에 쓰여 있는 글자에도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하였는데 거리의 화려하고 커다란 간판들은 우리 아이의 훌륭한 교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읽기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 부자연스런 손 운동도 겸해 쓰기를 병행시켰는데 의외로 글씨 쓰는 자체를 즐거워했습니다. 삐뚤삐뚤한 모양이지만 글자모양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했을 때 일기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일기를 한두 줄 정도 써주고 그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쓰도록 했는데 글자를 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 걸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현재 어느 글자를 보고 써야하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써준 일기를 다시 한자 한자 짚어가며 읽어주면서 보고 서툴게 쓰던 일기를 얼마 후에는 내가 불러주면 곧잘 받아쓰다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어휘력이 늘면서 혼자서 주제를 정해 놓고 생각을 정리해서 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경철이와 같은 아이들은 일반 아동과 달라 학습에 지속력도 없고 학습 효과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꾸준한 지도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계를 느끼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꾸준한 관심과 지도자료, 지도방법 수정 등을 메일이나, 직접 방문하셔서 해주신 것이 제게는 큰 기폭제가 되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하게 되어 오늘날 경철이가 스스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아이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성벽은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끌어갈 때 우리 아이는 어느 순간 내가 바라던 방향으로 그 목표치에는 조금 못 미치더라도 닿아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치고 지루할 뿐 아이에게는 항상 새로운 경험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글은 읽되 여러 가지 경험 부족으로 이해력이 뒤떨어져 내용 파악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낱말이 나왔을 때, 그것을 묻는 아이를 보면 ‘이제는 정말 희망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흐뭇해지곤 한답니다. 지금은 곧잘 대화 중에도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든지 해서 나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모두가 문자를 해득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이 기쁨, 우리 아이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 주신 교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감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문자만 깨닫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아이의 미래를 바꾸어 주는 역할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1981년 사례) 뇌성마비... 지능 49..... 지금 30살이 넘은 그 아이는 ......
『나 수정이 포기했네』
“ 나 수정이 포기했네. 20년 교직생활에 이런 아이는 처음이야.”
입학한 지 1달이 지난 4월초, 이웃학급 담당인 00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수정이는 연필로 줄을 긋기가 불가능하였다. 연필을 꽉 잡지를 못하였다. 따라서 연필로 글씨 보면서 옮겨 쓰기를 할 수가 없었다. 뒤뚱뒤뚱 겨우 걸을 수 있으며 줄지어 함께 걷기가 불가능하였다.
“수정이 제게 주세요.”00선생님께 말씀드려 우리 반으로 수정이를 옮겼다. 수정이에 대한 전주 예수병원에서 나온 의학적 진단 결과에 의하면 수정이는 뇌성마비에 지능이 49였다.
우선 95음절표를 만들어 수정이네 집 안방에 붙여주었다. 그리고,‘ㄱ,ㄴ,ㄷ,ㄹ,ㅁ,ㅂ,ㅅ’까지의 일곱 자음에 ‘학교 종’의 곡조를 붙여 ‘가,나,다,라, 마,바,사’라는 음으로 암송하기, 일곱 글자를 인쇄한 유인물에 칼라펜으로 덮어쓰기를 시도하였다. 손이 덜덜덜 떨리는 모습이 덮어 쓴 선에 나타나면서 꾸불꾸불 그어졌다. 그러나 수정이는 그렇게 나타난 자기의 작품(?)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모음이 없는 19개 자음‘ㄱㄴㄷㄹㅁㅂㅅ… ㅆㅃㅉ’만을 빨간 색 물감과 그림붓으로 쓴 자음카드를 가지고 ‘가나다라마바사 … 싸빠짜’처럼 읽게 하여 자음의 자형 변별 및 음가 변별에 주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ㅏ’모음이 붙여진 19글자 카드를 사용하였는데 이 때에도 자음 부분만은 빨간 색으로 써서 검은 색을 사용한 모음(ㅏ) 부분과 차이가 있게 함으로써 각 자음에 주의가 집중되도록 하였다. 1학년 1학기 동안 지도목표는 단모음 95음절에 대한 변별이었다. 7자음 및 19자음을 익히는 데 암송하고 변별하는 데 2개월, 그리고 95음절의 변별에 다시 3개월이 소요되었다.
1학년 2학기의 지도목표는 95음절에 받침글자 붙여 읽기를 통하여 1000음절의 습득하고 1학년 1학기의 읽기책에 나오는 동화를 끝까지 읽는 것이었는데 1학년 2학기 동안의 지도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먼저‘코울림 소리 내기’를 연습하였다. 그리고는 코울림 소리를 내면서 입술을 살며시 다물어 붙이는‘ㅁ’받침 붙여 읽기를 시도하였다. 첫 번째 받침 ‘ㅁ’의 습득에 1개월이 소요되었다. 새로운 95음절이 또 습득되었다.
다음에 코울림이 있는 ‘ㄴ,ㅇ’을 하나씩 지도하였다. 받침 ‘ㄴ’은 코울림에 혀를 살짝 내밀도록 하면서 지도하고, 받침 ‘ㅇ’은 코울림에 입술모양을 동그랗게 벌리게 하면서 지도하였다. 각각 1주일 정도 소요되었다.
2) 다음에는‘급히 아랫배에 힘을 주기’를 연습하였다. 그리고는 이미 익힌 받침 3개와 각각 짝이 되는 받침을 붙여 읽기를 시도하였다. 즉 받침‘ㅁ’에는 받침‘ㅂ’을, 받침‘ㅇ’에는 받침‘ㄱ’을, ‘ㄴ’에는 받침‘ㄷ’을 연계하여 지도하였다. 또 받침‘ㅌ’은 받침‘ㄷ’과 소리가 똑같다고 지도하고, 받침‘ㅅㅈㅊㅆ’도 모두 받침‘ㄷ’과 소리가 똑같다고 지도하였다. 각각 새로운 95음절을 더 습득하게 되었다.
2학기 학습속도는 1학기 학습속도와 크게 차이가 있었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가면서 수정이는 1학기 책에 나오는 동화를 비롯한 읽기교과서의 내용을 거의 다 혼자서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읽는 일에 재미가 생기게 되었다. 현재 수정이는 30살이 되었다. 1000원을 들고 가게에 가서 라면 1봉지를 사고서도 얼마를 거슬러 받아야 할 것인지 계산이 되지 않으며, 여전히 뒤뚱뒤뚱 걷는다. 하지만 성경책은 어디를 펴든지 줄줄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