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KTFS 인터뷰 - 아름다운 인생 60 이영순 화곡클럽 회장
다사다난했던 2008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번 12월엔 우아한 철의 여인, 이영순 화곡클럽 회장님을
'KTFS 인터뷰'에 초대했습니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시던 이영순 회장님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당신의 삶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꼭 필요한 사람 '질그릇' 같은 삶을 오롯이 펼쳐 보였습니다.
아내, 어머니,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KTFS 랭킹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올 한 해를 평가를 한다면?
올 한 해는 KTFS랭킹제가 도약의 해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올 한 해를 짚어보면서 보완해야 할 점이라면 랭킹위원들과의 친밀감이 부족해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한 기아자동차배대회를 하면서 일 손이 많이 부족했는데
내년엔 랭킹위원들을 지역, 클럽을 안배해서 더 확충해야 할 것 같았다.
KTFS는 내년 한 해가 정말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테니스를 하는동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있다면?
남편(곽만석 62세)이다.
막내를 서른 다섯에 출산한 이후 저혈압과 체력이 약해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때
남편이 테니스를 권유해 서른 일곱살에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처음엔 레슨을 5분도 못받을 정도로 헉헉거렸는데
1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1시간도 거뜬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물론 저혈압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회장님의 인생에서 테니스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테니스를 한 이후 건강 걱정은 해본 적이 없다. 또한 23년동안 테니스장을 누비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겠나?
각계각층의 지인들이 소중한 재산이다.
무엇보다도 성격변화에도 도움을 주었다. 내성적인데다 내가 좋으면
간, 쓸개라도 다 빼 줄듯이 하지만 싫은 사람에게는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차가웠다.
그러다가 테니스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세상사 이게 아니구나'라는 깨우침이 있었고,
지금은 완전히 오픈마인드로 변화됐다.
-테니스에 대한 열정은?
내가 테니스를 하는동안은 4대 그랜드슬램(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 OPEN)은 다 보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형택(삼성증권)이 2000년 US OPEN 16강에 진출할 당시 32강까지는 보았는데
16강 게임을 보지 못하고 서울로 온 것이 후회스럽다.
미국에 갈때마다 이형택과 주원홍 감독(전 삼성증권)과 뉴욕에서 식사도 했는데
지금은 이형택이 유명인사라 내가 밥 살 기회가 없어졌다.
호주오픈도 봤고,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은 차차 보면 될 것 같다.
'나이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다'
아우들 보면 맛있는거 사주고 싶고, 외국 갔다와도 아우들 줄 선물이 한보따리다.
-현재 화곡클럽 회장인데, 화곡클럽은 어떤 클럽인가?
화곡클럽 회장은 4번째 맡고 있다. 34년 전에 화곡동에서 7명(김춘자, 김지나, 윤복희, 정규복, 박영민, 김유희,
신성희)으로 출범했다.
지금은 회원만도 60명이고 매주 화요일 영동산하코트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 연령도 30대 초반부터
70대 중반까지 있으니 세대차이가 날만하다.
-화곡클럽이 34년동안 '화곡여성테니스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그당시 어떻게 동호인대회를 치르게 됐나?
70년대 당시 여자가 짧은 치마입고 테니스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회는 생각지도 못했을법 한데 김춘자 형님이 테니스선수출신이라 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살려
대회를 창설했다고 한다.
또한 김지나 형님이 여자연맹대회에 출전해서 3위에 입상하면서 화곡클럽을 알리기 시작했고
대회 창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때는 코트장에 라이트도 없어서 자동차 라이트를 비춰놓고 경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또 각설탕을 얻으러 다녔던거랑, 손수 장만해 온 음식을 나눠 먹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은 참가상품을 주지만 그당시에는 참가상품을 없던 때라 코트장에 밥 솥, 국 솥 걸어놓고
따뜻한 식사 한끼를 대접했다.
우승 상품으로는 맛있는 과자, 운동화, 트로피 정도였다.
-화곡클럽이 2009년에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34년 전통에 맞는 '화곡여성테니스대회' 잘 치르는 것이다.
화곡클럽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개나리부 동호인을 영입해서 화곡클럽의 후계자로 키우는 것이다.
-화곡클럽과 화곡여성테니스대회가 여성동호인계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여성 테니스인구 저변확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70년대에는 애기업고 대회에 출전하면 서로 돌아가면서 애기를 봐주던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집에만 갇혀있던 여성들을 취미활동으로 테니스를 하게했고 여성들의 인식변화에 큰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또한 남자도 감히 생각지못한 동호인대회를 개최함으로 대회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동호인
테니스계에 대회를 통한 실력향상, 클럽 증가, 화려한 패션문화 등을 선도했다고 생각한다.
-여가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친구들과 온천 여행도 가고, 네 명의 딸들과 쇼핑도 자주 다닌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매일 새벽6시쯤 한강고수부지에서 빨리걷기를 한시간 반정도 한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겨울에는 집에서 자전거타기를 하고, 식사는 되도록 저탄수화물, 저지방으로 먹고 있다. 건강식품으로는 홍삼과
오메가3, 실크로 만든 실큐을 먹고 있다.
-테니스는 언제부터 했나?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남편을 통해서 서른 일곱살에 라켓을 잡았다.
지금은 국화부, 개나리부이지만 그당시엔 A,B,C조로 실력을 평가했다.
C조를 2년만에 탈출했고, B조 역시 2년만에 떠나 A조로 올랐다.
부부대회에서 남편과 함께 우승을 했을 때가 가장 좋은 추억거리다. 주무기는 포핸드랑 스매시다.
-테니스는 일주일에 몇 번, 어디서 하시나요?
화요일과 목요일은 화곡클럽 모임을 영동산하코트에서 하고 있다.
금요일은 금요어머니회 소속으로 역시 영동산하코트에서 뛰고 있다.
남편과 함께 두아름(사랑한아름+건강한아름)부부테니스회에서 활동한지는 20년이 지났는데,
남편 건강이 좋지 않아서 혼자만 다니는게 쓸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남편은 10년전에 허리수술을 크게 받았고, 그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2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8년을 연장하면서 현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건강을 되찾은데는 오메가3와 지압이 크게 도움이 됐다.
(참고로, 이영순 회장은 밤낮으로 남편을 위해 안마를 해서 손목 연골이 다 닳고 없다고 한다).
-골프도 상당한 실력이라고 들었는데?
손목의 연골도 없고, 무릎도 아프고해서 가끔 회원들과 골프를 즐기는 정도다.
-테니스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신운동, 유산소운동, 상대방이 즐겁고, 내가 즐겁고. 코트에서 신나게 떠들고 웃는다는게 얼마나 행복한가!
-동호인대회를 보면서 느낀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3개 단체의 랭킹제가 생긴면서 동호인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실력향상이나 동호인 저변확대에는 일조를 했지만 무분별하게 대회에 참가하다보니
소속클럽활동에 불성실하게 되고, 주부들은 가정에 소홀하고, 우승상품이 너무 커지다보니
성격들도 과격해졌다.
무엇보다 대회 개최를 돈이나 벌려고 하는 인식도 있다.
자질없는 대회의 위상정립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테니스 발전을 위해 평소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테니스는 신사스포츠다. 룰 지키려고 애쓰고, 승리에 집착하지 말고 즐기는 테니스로 돌아가자.
이영순 회장은?
1949년 충남 금산출생으로 남편 곽만석 씨와 4녀를 두고 있다.
장녀는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차녀는 전업주부, 세째는 이영순 회장과 함께 건물운영과 함께 PC방을 경영하고 있고 막내딸은 현재 미국 유학중이다.
남편 곽만석 씨는 거북이클럽 회장 두아름 부부테니스회에서 회장을 맡으며 동호인 테니스발전에 일익을 담당해오다
10년전에 허리수술을 받으면서 테니스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2개월을 넘지 못한다는 판명을 받았으나 이영순 회장의 극진한 병간호 덕분에 8년을 연장하면서 건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