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토)
흥시기는 매우 들떠 있었다. 만우절인 이날 흥시기는 3가지 기쁨의 날이었다.
첫째는 흥시기 엄마 8순 잔치가 있는 날이다.
둘째는 흥시기의 형수께서 회갑잔치가 있는 날이다.
셋째는 흥시기가 부국장에서 국장으로 발령을 받은 날이다.
이날 김정숙이가 가수 송창식과 놀다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잔치 분위기에서 흥시기는 카페 대표마담인 최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도 받고 싶고 벚꽃번개 상의도 할 생각이었다.
반갑게 전화를 받는 은주에게 흥시기는
"은주야, 우리 벚꽃번개모임 날짜를 잡아야하는데...언제가 좋겠어?"
"좋지. 아무 때고 좋아. 언제가 좋을까?"
"아무래도 평일 야간모임은 좀 그렇지? 만나자마자 금방 헤어질꺼구. 다음주 8일이 놀토. 8일엔 꽃이 만개하지 않을것 같고.
그 다음주는 15일인데, 벚꽃이 죄다 떨어질지도 모르겠구"
"놀토...좋아 8일날이 좋겠다. 꽃이 있는 남쪽으로 좀 내려가지 뭐. 어디로 갈까?"
"그럴까? 8일이 좋겠어?. 그러자 금요일 퇴근하고 떠나서 다음날 저녁 7시에 돌아오는 스케줄 어때?
내차랑 은주차 그리고 인배차 3대가 움직이면 어딘들 못가겠어?"
"좋지, 그러자. 인배는 내가 꼬셔볼께. 까짓꺼 함 떠나보자구"
은주는 4월7일 퇴근후 떠나 다음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을 흔쾌히 접수했다.
운영자 3명중 2명이 합의했으니 결재는 끝난 셈이다.
이제 게시판에 공지의 글을 올리게 되면 일이 추진된다.
제기럴, 내가 카페지기가 아니었더라면 우리 엄마 8순잔치를 당당히 올릴 수 있는데
중이 제머리 못깎듯 나의 승진 소식은 또 어떻게 올려야 한담?
친구들한테 축하인사를 받으며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건만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정작 나의 글을 올리는 일이란 쉽지가 않다.
마음을 트고 수시로 전화하며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은주에게까지
엄마 8순이랑 나의 승진 소식을 말하지 못했다.
4월2일(일)
언제나 정상근무인 일요일. 신문사 국장이 되어 첫 출근을 한다
출근 하자마자 게시판에 벚꽃번개모임 날짜를 공지했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진해군항제는 이미 시작됐고...벚꽃 만개 소식은 점점 북상하여 4월8일쯤엔 어디에 머물러 있을라나
그걸 가늠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천안? 그때까지 피지 않을꺼야...공주? 공주도 마찬가지일꺼야...대전? 대전도 별수 있겠어?
그렇담 어디가 좋을까?
마당발인 대전의 이재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가지 너스레로 전주곡을 울리고는 본론으로 들어가 좋은 장소가 없겠냐고 물었다.
이재수는 아무래도 대전보다 남쪽이어야 될것 같다며 잠시후에 전화해 주겠다고 한다.
잠시후 재수한테서 전화가 왔다.
포항의 최미자 부산의 남연희한테 차례로 전화를 해봤다면서
4월8일쯤 경주에 벚꽃이 만발하는데 경주벚꽃이 어떻겠댜고 제안한다.
더구나 남연희의 옛 학부모가 운영하는 바닷가 민박집은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아주 저렴하면서도 품위가 있다고 전해준다.
여기저기 알아볼 겨를이 없다. 즉시 경주벚꽃으로 정해버렸다.
게시판엔 구체적인 장소를 적지 않았다.
모임 성격상 친구를 만나는게 큰 목적이 있는것이지. 장소 따위가 문제될 것같지 않아서였다.
혹시라도 경주라고 하면 지레 겁을 먹고 참가신청을 망설일까봐...
남연희와 최미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봤다. 재수가 전해주는 말과 똑같은 대답이다.
날짜 확정, 장소 확정...이젠 누가 몇명이나 갈 것인지 참가자 확정이 급해졌다.
참가자가 몇명인지 알아야 교통편과 먹을 것을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4월3일(월)
"참가자가 몇명이나 될 것 같아요?"
부산의 남연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예약을 위해 필요한가보다.
그런데 나의 답변은 '몰라'였다.
우선 꼽아보면 김흥식 김정숙이는 무조건 가는거구. 날짜를 확정지어준 은주도 갈꺼구
직접 통화한 이재수 남연희 최미자 하고....은주가 책임지기로한 박인배 정용례 부부도 갈꺼구.
석진이랑 광숙이도 갈꺼구.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명은 넘겠는데...
여기에다 박찬임 임화혁 정근진 조승현 이춘호 노승란을 합치면 16명이 되는데
큰방 2개에 밤에 안주거리로 매운탕 3냄비 정도...그리고 아침식사 근사하게...
15명으로 예약하면 되겠는데....
남연희는 "같은 부산에 살고 있는 변상순씨가 혹시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4월5일(수)
올해부터 못노는 식목일.
흥시기는 난꽃 향기로 가득한 국장 방에서
쉼없이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번 벚꽃번개모임 비용의 절반정도는 흥시기가 부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대전의 송인옥도 가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박찬임도 기뻐하며 반드시 갈꺼라고 전해준다.
참가인원이 자꾸자꾸 늘어난다.
이춘호도 갈수 있는 가능성이 60~70% 된다고 내비친다.
조승현 갈 수 있는 확률 40%
임화혁 갈 수 있는 확률 90%
정근진 갈 수 있는 확률 20%
변상순 갈 수 있는 확률 50%
정확한 숫자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예상했던 인원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다.
차량이 문제였다. 은주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신호만 가고 받지 않는다. 교감노릇하기 무척 바쁜가보다.
이번에 장기리 주행을 하게 될 내 차.
16년이나 된 16살짜리 내 차...경주까지 갔다오는데 문제 없을까...좀체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서울에서 갈 사람은 10명도 넘는데...확보된 차량은 겨우 두 대 뿐이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여유좌석은 커녕 차량이 절대로 부족하다.
그렇다. 서울에서 10명만 가자.
그리고 대전의 이재수가 여유좌석으로 출발하게 되면
부산의 남연희와 변상순 그리고 포항의 최미자를 태울 수 있지 않을까. ...
그렇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차량이 부족하다.
단 한 명이라도 정원을 넘게되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한군데서 내내 있다가 헤어져야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저녁 먹을 시간에 정근진과 함께 있던 은주한테서 전화가 왔다.
흔들림없는 추진...변함없는 참가...
그날 우리 모두 함께 정말 재밌게 놀자며 은주는 거듭거듭 확인했다.
그러면서 정근진에게 전화를 바꿔준다.
정근진은 4월8일 학교에서 직원끼리 충주에 가기로 되어있단다.
어쩔수 없이 이번 번개에 참석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번 한번만 봐달라는 거다.
하는 수 없이 이번엔 용서해주는데...다음엔 절대로 빠져선 안된다고 못박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직도 확보된 차량은 두대...
정근진이가 못가겠다는 전화 연락을 이렇게 해석했다.
서울출발 인원을 차량 두 대 정원인 10명 이내로 맞춰주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4월6일(목)
요즘은 매일 저녁마다 술이다. 잘 먹지도 못하면서. 오늘 밤도 술 먹을 약속이 있다.
은주한테서 온 문자메시지를 오전에 확인했다.
여차저차하여 이번 벚꽃번개모임에 참석할 수 없음. 밤샘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이니 양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쩔수 없는 경우가 왜 없겠는가. 오죽하면 이런 문자메시지를 날릴까.
누구보다 바쁜 은주의 사정을 잘 아는지라 원망에 앞서 불쌍한 은주 처지를 동정했다.
30분 후 은주가 보낸 멋진 축하 화분이 내 방에 배달됐다. 친구들을 꼼꼼히 챙기는 은주가 고맙다.
근데 큰일났다.
은주가 못가게 되면 차량이 한 대 줄어든다.
서울 출발 10여명인데 차량은 16살된 내 차 한 대 뿐이다. 정말 큰일났다.
공주에서 고금혜가 참석하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대전에 와서 픽업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여유좌석도 없는데 어떻게 태운담....난감했다.
이재수와 연락하여 함께 타고 가라고 알려줬다.
저녁의 술자리는 시끄러웠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미치겠다.
도데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할까? 집에 돌아와 김정숙과 상의했다.
내 차를 집에 두고 승합차를 한 대 렌탈하여 내가 운전하고 가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결론에 이르자 쉽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사이트를 보니 노승란이도 참가신청을 했다. 다들 이렇게 좋아하는데....
4월7일(금)
한 주일을 마감하는 금요일은 하루종일 회의다. 축하인사를 위해 찾아뵙겠다고 예고된 사람도 많다.
시간도 없는데 렌트카 예약은 언제 하나.
1분기 총평인 품질회의는 신경을 곤두세워 진행해야 하는데...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달리지만 금요일 출근길은 유난히 막힌다.
회의 소집 시각 20분 지각이다.
신문사에 거의 도착할 즈음 전화가 왔다.
이계민 주필 모친상. 내일 발인. 오늘 오전 오후 저녁 중 하나를 선택하여 빈소 내방객 접견 총책을 맡으란다.
고위공직자들이 모조리 문상을 오기때문에 임원 및 국장단으로 조를 편성하여 도우미 역할을 하라는
관리담당 이사의 주문이다.
오전 당번은 이미 틀렸다. 더구나 내 복장은 이게 뭔가. 티셔츠 바람에 바람막이 점퍼 그리고 편안한 골덴바지...
경주벚꽃 보러 소풍가는 날나리 복장인데...이런 꼴로 삼성의료원 상가에 가서 무슨 도우미를 할수 있겠나.
김흥식. 흥시기 너 무지 바쁘다. 너무 바쁜 흥시기는 이제 죽은 사람까지 덩달아 보고싶다고 불러댄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문상객 접대를 하다보면 자연히 술을 먹게되는데...술을 먹고 운전을?
렌트카 예약은 언제? 그 차를 술먹고 운전한다고?
포기를 해야했다.
벚꽃번개를 포기해야 했다.
애당초 너무 멀다는 의견이 없었던 게 아니다. 분명 무리한 일정을 계획했던 건 사실이다.
이재수 남연희 최미자에게 전화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 사이 노승란이는 스스로
특별한 사정으로 함께 갈 수 없다는 글을 게시판에 남겼다.
서울출발 예정자에게 일일히 전화를 했다.
그리고 게시판에 '벚꽃번개모임 취소' 글을 올렸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출근때 하룻밤 자고 온다고 집에다 어렵게 얘기하고 나왔는데...이대로는 도저히 못들어간다는 거다
날더러 오늘 하룻밤을 무조건 책임지란다.
벚꽃모임......추진도 어렵지만 취소도 어렵다.
전화벨이 울릴때마다 취소해서 미안하다고 통사정을 한다.
친구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는 내 능력의 한계가
한없이 서글퍼진다.
흥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