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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믿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첫 단어는 헬라어로 피스튜오멘(pisteuomen)이며, 영어로는 “we believe(우리는 믿는다)”입니다. 라틴어에서는 첫 단어가 크레디무스(credimus)이다. 동사 credo(“나는 믿는다”)에서 영어 단어 creed(신경)가 파생되었습니다. 신경이란 교회가 믿도록 요구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신경을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진술로, 또 신앙고백(confession)은 보통 더 길고 포괄적인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진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경과 신앙고백은 신약성경의 여러 명령에 대한 응답입니다. 곧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딤전1:3), “바른 교훈을 따르라”(딤전4:6), “가르침을 살피라”(딤전4: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바른 말씀과 경건에 맞는 교훈을 따르라”(딤전6:3), “건전한 말씀의 본을 따르라”(딤후1:13),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잡고, 바른 교리를 가르치며, 잘못된 교리를 반박하라”(딛1:9)라는 명령들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올바른 것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16:13)라고 물으셨는데, 이 질문은 곧 그의 참된 정체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뜻합니다. 오순절 이후의 제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전념하였으며, 이것이 원시 교회의 첫 번째 표지였습니다(행2:42). 바울은 종종 믿음과 고백의 필수성(롬10:9∼10)을 말했고, 그가 받은 복음 전통을 다른 이들에게 전수해야 함(고전 15:3–11)을 강조했습니다. 서신서들에는 초기의 신앙고백문들이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니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 중보자이신 사람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와 같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때때로 그리스도에 관한 거룩한 진리들에 따라 책무를 받기도 했습니다(딤전6:13∼16;딤후4:1∼2). 여러 곳에서 우리는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 고백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다”라는 사실을 봅니다(고전12:3;빌2:11).
초대 교회에서 정통 교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반복해서 명령합니다. 그에게 맡겨진 사도적 진리의 ‘보화’를 지키라(딤전6:20;딤후1:13∼14),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라(딤후 2:1∼2)라고 합니다. 특히 목회자로서 디모데는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딤전3:2), 온유함으로 대적자들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딤후2:25). 마찬가지로 바울은 디도에게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어야 한다”(딛1:9;1:13)라고 말합니다. 결국, 기독교회가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붙들어야 할 사도적 가르침의 핵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로마 종교
고대 세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초대 교회가 교리를 그렇게까지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유대교의 토양에서 자라난 기독교는 특정한 ‘믿음들’의 절대적 중요성을 확신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과 그 사실들에 대한 신적 영감의 해석(“…우리 죄를 위하여”)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교리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종교와는 달랐습니다. 고대 로마 세계의 전통적 종교는 네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기보다 종종 겹쳐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 종교는 무엇보다도 제의적(cultic) 의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여기서 cultic이라는 단어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있는 소수 종교 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와 관련된 행위와 의식의 체계를 뜻하는 학문적 의미입니다. 로마인들은 종교에 대해 어떤 ‘믿음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교리의 정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생제사, 제사장, 신전 등에서 일어나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우리 눈에는 미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인생과 가정과 도시에서 좋은 일이 일어나길 원할 때 지켜야 하는 의식과 절차가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의 많은 종교가 본질적으로 교리보다는 의식 준수에 더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둘째, 로마 종교에는 황홀경적인(ecstatic) 경험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체험은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오늘날 그렇듯), 많은 사람에게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향기, 빛, 소리, 촉감, 움직임, 음악, 음식, 음료, 그리고 종종 성적 행위까지, 이런 것들이 고대 세계의 종교적 관습에 자주 수반되었습니다.
셋째, 로마 종교에는 다양한 신비 종교가 존재했습니다. 여기서 신비(mystery)는 ‘신비롭다’라는 뜻이 아니라 ‘클럽’에 더 가깝습니다. 신비 종교의 신자들은 비밀 의식을 행하고, 함께 식사하며, 특정한 옷을 입고, 신탁(신의 뜻이나 미래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예언)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회원들에게 혜택과 공동의 경험을 제공하는 비밀 결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 종교는 필연적으로 시민적 덕(civic virtue)과 결합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는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지 않고, 황제의 존귀한 지위를 해치지 않는 한 용인되었습니다. 황제에게 제사드리고, 맹세하고, 정해진 고백문을 외우는 것은 제국의 안녕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는 여기서 거칠게 그렸지만, 이 네 가지 표현 방식 모두에서 교리(doctrine)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로마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역사와 신들의 세계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고대인들도 많은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을 조목조목 정리하고, 세밀히 정의하며, 종교 전체를 어떤 ‘신앙고백적 진리들’에 본질적으로 결속시키는 일, 이런 것은 고대 세계에서 신앙이 작동하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의식 몇 가지를 행하고, 자신에게 맞는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사회 질서를 흔들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로마식 종교’였습니다.
신앙의 규범
오늘날 일부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교리가 경시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통, 혹은 올바른 신앙(orthodoxy)”보다 “정통적인 삶 혹은 올바른 삶(orthopraxy)”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대위임명령(Great Commission)”과 “큰 계명(Great Commandment)”이 우리로 하여금 교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지 말도록 경고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나는 종교적이진 않지만 영적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말은 긍정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교리적 명확성을 피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들조차도 종종 모호한 일반론에 만족합니다. 우리는 신학적 용어와 신중한 논증에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교리적 정밀함보다는 경건한 감상적 언어(devotional platitudes)를 더 선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바라보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의 신앙을 글로 남길 만큼의 지식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2세기경, 교부 이레네우스(Irenaeus, 약 130∼202)는 “신앙의 규범”이라는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이레네우스는 사도들과 겨우 두 세대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고, 기적을 직접 보았으며, 변화산에도 있었고, 빈 무덤과 오순절의 다락방에도 있었습니다. 이 요한이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Polycarp, 69∼155)을 가르쳤고, 폴리캅은 순교하기까지 신앙을 지켰으며, 그가 바로 이레네우스의 스승이었습니다.
2세기에 이레네우스는 정통(orthodoxy)을 영지주의(Gnosticism)의 이단 사상으로부터 수호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영지주의자들과 싸운 방식 자체가 그의 논증만큼이나 중요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을 인용했고, 오늘날 우리가 신약성경으로 알고 있는 많은 문서를 인용했습니다. 진리를 변호할 때, 그는 언제나 과거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가르쳐진 것, 이미 전해진 것, 이미 기록된 것에 비추어 모든 것을 시험했습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신앙의 규범”, 즉 사도적 교리의 유산에 호소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이며, 결코 거스르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논증 방식에서, 이레네우스는 교회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기독교적 본능을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신경은 아마도 2세기 중엽에 기원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미 교회 안에서 사용되던 예전적 공식구에서 발전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신앙의 상징”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symbol”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기독교 교회의 종교적 신앙을 공식적이고 권위 있게 요약한 진술”을 의미하는 기술적 용어입니다.) 세례를 받으려는 성인들에게는 세 가지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1.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2. “당신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으며,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습니까?”
3.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 그리고 육체의 부활을 믿습니까?”
이 언어는 대부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게 들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요점입니다. 이러한 교리적 언어는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교회의 가장 초기 시기부터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신앙고백을 해야 했으며, 그 고백에는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삼위일체적 신앙 공식구(Trinitarian formula)가 포함되었습니다.
니케아 신경이 “우리는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야로슬라브 펠리칸은 모든 기독교 신경과 신앙고백에서 나타나는 가장 지속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너무나 자명해서 종종 간과되지만, 특히 자유주의 신학 이후로 더 쉽게 잊혀지는 특징입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교리 문제를 문자 그대로 ‘생명과 죽음의 문제’로 다루는 절대적인 진지함”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처럼 살라”라고 권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도적 메시지는 경건한 삶을 살도록 권면했지만, 그것은 반드시 죄, 구원, 성육신, 부활, 속죄, 화해, 영생에 대한 견고한 복음적 진리의 선포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 핵심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건너뛰어 다른 것에 집중하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의심하게 하거나, 정직하게 다루지 않는 모든 복음은 결국 “다른 복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믿어야 할 교리 이상이지만, 동시에 결코 교리보다 덜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삶은 교리 위에 세워진 삶이며, 그 교리를 떠난 신앙은 더 이상 복음적 신앙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