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 순례길
▲영남길 제9길 트랭글 기록
▲저 게이트를 들어서는 바람에 그 토록 고난의 길이 될줄이야
▲9길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 못 끼워졌다. 이길로 들어서면 안되는 폐쇄된 옛길인데 리본을 따라 가고 있다.ㅠ
▲리본에다 이정목까지 서 있으니 ㅉㅉㅉ 조금 이상한건 화살표 색갈이 달라졌다는 거다. 왜? 철거를 안하는건지?
▲하산전 경로당
▲요놈들에 속아서...뽑아서 없애 주세요.
▲전봇대에도 이정표시가 있어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니 사유지 인지 철망으로 대문을 만들어 문을 닫아 놓아 길이 막혔다.
뭔가 예감이 안 좋아 다시 되돌아 금산 버스정류장으로 갈까 하다가 눈을 치우고 있는 이곳으로 귀농하신 분을 만나
길을 물으니 차만 못다니게 막아 놓은 것이지 사람은 우회하여 갈수 있다고 하며 산길로 올라가라 한다.
금산 일반산업단지와 쎄븐일레븐 편의점등을 물으니 자기는 안 가봐서 잘 모르고 자기 부인이 산길을 넘어간
적이 있다며 산업단지 같은게 있고 연못같은 것도 보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기에 산길을 오르기로 하고
닫힌 문을 우회하여 산 언덕을 오르니
▲응달이라 먼저 온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다가 오늘 새벽까지 내린눈에 더 하여 사람 발자욱도 하나도 없고 도저히
길을 찿을 수도 없는데 눈의깊이는 등산화가 다 빠질정도의 깊이였고 짐승들이 다닌 흔적만 있는데 위쪽을 보니
길 같기도 하고 다시 올라갔다가 따라가니 아뿔사 이건 길이 아닌것 같다, 지인에게 전화를 거니 안 받는다.
▲길도 없는 설산을 헤치며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눈밭에서 길을 찾아보지만 고사목들이 이리저리 쓰러져있고 도저히
길을 찿을수가 없어 진행을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 가기에는 벌써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 귀농인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ㅠㅠㅠㅎ 진퇴양난이란 단어가 떠오르며 산속에서 길을 잃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실감있게 느껴진다.
잘못 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되돌아 갈 수가 없어 계속 산을 내려가 다행스럽게 메타세콰이어길을 만나
산양저수지를 지나 산양리로 내려가 도로를 따라 금산 정류장까지 회기해 9길 입구를 다시 찾아야 한다.
▲계곡을 따라 어느 정도 내려 왔을때 산 아래쪽을 내려다 보니 집 한채가 보이고 얼마 안가면 산을 벗어날수있겠다 싶은
생각이들어 조심하며 산을 빠져 나온다. 코스 이탈음도 울리지 않고 리본도 없는 산속 눈길에서 헤맨시간이 얼마이던가?
긴 헤맴을 마치고 산속길을 빠져나오니 포장된 메타쉐콰이어가 심어진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9길 가는 길은 아니지만 일단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을 벗어나니 살 것 같다.ㅋ
▲길도 없는 저 산길을 내려오며 난감했던 시간, 일단 다시 10길 종점인 금산 버스정류장으로 가기로 하고 길을 따라 계속
진행하니 저수지가 나오며 긴 저수지를 돌아 내려가니 동네가 보이고 차들이 다니는게 보인다.
저 동네가 어디일까? 하고 내려가 보니 우리가 오전에 지나간 318번 도로 산양리이다.ㅎ
▲산양 저수지를 지나고 저 아래 마을이 산양리 일줄이야
▲10길에서 만난 복숭아 과수원,다시 원점회기 했다.
알바를 5km 배지까지 받고 1시간50분, 심설에 길도 없는 산속에 긴 알바로 온 몸은 이미 지쳐가고ㅠ
▲ 5km 알바를 하고 다시 금산 정류장에 도착하여 지인의 전화도움으로 9길 싯점을 찿았다.금산감리교회옆으로
가면 되는것을 완전 반대편 하산전 마을로 들어갔으니...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두시간 이상을 허비하고,
10길을 12시31분에 이곳에서 끝냈는데 지금이 2:50분이다. 두 시간 20여분을 알바를 한셈이다. ㅋ
이렇게 보이지 않으니 너를 어케 찾니..어찌됐던 제대로 길 찾아 늦은 시간인데, 9길을... 이제는 마음이 바쁘다.
▲9길 앱을 켜고 시작한 트랙이 이렇게 나왔다.ㅠ
심설의 산길에서 뒤로 되돌아 나올 수가 없어 계속 진행하여 금산 정류장에 다시오니 딱 5km다.
알바하며 5km 배지도 받은 기록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 할거 같다.ㅋ
▲10길+9길 알바 구간까지 하루일정이 모두 기록된 램블러 트랙 기록
▲예쁜 넘들..표고버섯 농장
▲서산으로 기우는 해를 보며 다시 또 들판 길을
▲농로길 지나 차도로
▲상록 한식뷔페는 15시까지다. 이미 늦었고, 청풍쉼터 편의점 친절하신 여사장님 덕분에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여기에 있는 쎄븐일레븐 편의점을 산속에서 찾았으니ㅋㅋㅋ 편의점 앞에서 차도 길을 건너고,
▲안성 메가스터디 기숙하원을 지나
▲대체적으로 이정표시는 잘 되어 있어 알바 할 일은 없다.
▲종일 흐린날씨가 알바로 지친 맘 달래주려 햇살이 쨍하고 비춰주고 있지만 최악의 미세먼지와 황사까지 겹쳐 아쉽다.
▲판교 마을회관앞을 지나고, 영남길과 함께 가는 경기둘레길 38코스와 39코스
▲대사골 서당에서 축지법을 배웠다는 임경업장군
▲삼대를 이어져 내려온 효자가문 현풍 곽씨
15세기 중반부터 일죽면 장암리와 화봉리 송산마을과 광천마을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현풍 곽씨 가문에는 삼대를 이어 효자 효부가 있었습니다.
현종 6년(1665)에 태어난 곽천재(郭天宰)는 천성이 정직하고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합니다.
어머니 전주 이씨의 병환이 깊어지자 그 변을 맛보아 약의 효력을 살피었고 부모가 돌아가심에
여막살이 삼년을 죽으로 연명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궁궐에 알려져 정4품 문관에게 주던 奉烈大夫의 품계를 받았습니다.
관천재의 며느리인 利川 徐氏 또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마을에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들은 肅宗은 며느리에게 정려를 내렸습니다.
곽천재의 손자인 곽재두 또한 효자였습니다. 어느 날 노친을 모시고 가다 산적을 만나자 몸으로
호위하다가 세 번이나 칼에 찔리면서도 몸을 피하지 않자 적이 놀라 감탄하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자 戶曹左郞에 제수되었습니다.
곽씨 가문에는 효자 외에도 많은 충신들이 있었습니다. 효자 곽천재의 할아버지 였던
장단도호부사 郭邦鍵과 아들 郭宗文이 그들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에 곽방건은 아들 곽문종과 함께
어가를 의주까지 호종하여 곽방건은 扈聖一等功臣에 곽종문은 호성삼등공신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큰 바위가 많았다는 장암리 마을
▲학교인데 폐교같다.
▲갓 바위 전체를 다 찍었다.
▲방향표시가 잘 되어 있고,
▲중부고속도로 지하차도를 지나
▲저 해가 넘어가기 전에 얼른 끝내야 하는데...
▲죽림15교를 건너 죽산 성지를 향하여,
▲새하얀 눈 밭너머로 죽산성지가 보인다.
▲죽산 성지가는 길
▲죽산 성지에 세워진 예수크리스도 상
▲성지 안에 28人 순교자 묘역이 보인다.
죽산성지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된 순교터, 죽산성지
천주교 4대 박해 중 하나인 丙寅迫害(1866)때 많는 천주교인들은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 위치해 있던
죽산관아에서 참혹한 고문을 받다가 이곳에 끌려와 순교하였습니다.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해도 25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순교자 '김도미니꼬'는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 살았습니다. 어느 날 천주교 신자인 것을 안 마을 사람
10여명이 찾아와 열일곱 살 난 딸을 내주지 않으면 포졸을 데리고 와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여러 가족을 생각하여 할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딸을 내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고수하다가 순교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이렇게 밝혀진 순교자 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신도들이 끌려와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원래 이 부근은 고려시대 몽고의 3차 침입 때 송문주 장군이 이끄는 죽주산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몽고군이
진을 친 곳으로, 오랭캐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이진(夷陳)터라고 하였답니다.
이러한 유래를 지닌 '이진터'는병인박해 때 '거기로 끌려 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터' 가
되었는데 후에 음이 변하여 '이진터'란 이름으로 비뀌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천주교 4대 박해
신유박해 순조1년(1801) , 기해박해 헌종5년(1839), 병오박해 헌종15년(1846), 병인박해 고종3년(1866).*
▲죽산순교자성지 정문. 시간상 많이 둘러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퇴장한다.
▲주차장 근처 화장실 앞에있는 9길 스템프함
▲죽산시내 가는 길
▲들녘길
▲멀리 8길 죽주산성길이 보인다.
▲지하차도를 지나 죽산쪽 방향으로
▲어둠이 내리고 전등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다음에 가야할 죽주산성을 바라보며 죽산천변으로 오른다. 해가지니 눈 녹은 물이 바로 얼어버려 미끄럽다.
▲어둑해 지는 시간 노을이 곱다. 죽산천변을 따라
▲죽산천 생태습지 공원
▲죽산 시내 환한 불빛이 우리를 반겨준다.오늘 고생 많았다고, ㅋ
▲죽산교를 건너 시내로 진입하여 터미널로 들어가 매표를 하고 18시 05분차가 바로 들어와 남부터미널로 이동한다.
우여곡절 끝에 영남길 제9길을 끝내고...
금요일 밤부터 내리는 눈 비는 중부 내륙지방에 토요일 오전까지 이어진다는
예보에 갈가 말가 갈등하다 이왕 마음 먹은거 가기로 하고 새벽에 일어나보니 눈은 아니고 비가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서울을 지나 차창으로 보이는 세상은 하얗게 눈이 쌓여있고 막힘없는
영동고속 도로에 눈이 녹아 우리가 탄 죽산행 버스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것 같다.
어재연 고택에서 10길을 시작하여 2:50여분 만에 금산 버스정류장에서 깔끔하게 끝내고,
9길을 이어 걸으려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 더니 정류장 옆에 있는 9길 이정표를 못 보고
하산전 마을 안으로 들어 가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9길이다.
어느분의 후기에서 하산전 마을로 진입한다는 후기를 본 것 같다.
9길이 바뀌기 전에는 맞는 길이 였는데 언제부턴가 길이 바뀌어 그 길로 가면 안된다.
리본도 그대로 붙어있고 이정목도 기대로이고 앱에서 코스 이탈음도 안 울린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짖는다" 는 말이 생각난다.
리본 따라 잘 가다가 사유지라 길이 막혔는데 귀농하신 분이 우회길을 알려주며
가라고 하여 산길로 올라가보니 폭설에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엔 길도 전혀 알아 볼 수가
없고 죽은 나무들이 이리저리 스러져있고 길이 없고 동물들 발자욱만 어지럽다.
산속 눈밭에서 겁이 덜컥 났지만 아내가 불안해 할까봐 표현도 못하고...ㅋㅋㅋ
뒤 돌아 나오기엔 이미 너무 멀리 내려와 버렸다. 아내는 눈 길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엉덩이 썰매를 타며 억지로 한 시간 이상을 산속에 없는길을 찾아 이렇게 알바를 하고
처음 출발한 금산리 버스정류장으로 한바퀴 돌아 2시간여만에 5km 산속을
헤매고 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류장에서 커피와 간식을 먹으며 긴장을 풀어 본다.
지인이 알려준 길을 코 앞에 놔 두고 반대편인 하산전 마을로 진입해 묵밥집을 지나는
어처구니 없는 길을 모두 정리하고, 금산 감리교회 옆을 지나 짧은겨울해 3시가
다 되어 새로운 각오로 죽산 터미널을 마음속에 그리며 9길을 출발한다.
알바를 안했으면 9길 반을 갔을 텐데 두 시간, 5km를 까먹고 늦은 시간에 걸으려니
빨리 걷지 못하는 아내가 걱정이다. 잘 걸어줄지 의문이며 자주 쉬면서 걸어야 하는데
눈이 내려 어디 앉아 쉴 만한 곳도 없다.
청풍 편의점에서 친절한 여사장님의 환대에 간단히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한우 농장이 많은 이천과 안성 지역을 넘나들며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지나고
들길을 걸어 죽산 성지에 도착하여 순교자 묘역에 기도를 올리고 잠시 둘러보고
나와 문이 잠긴 화장실앞 스탬프함을 지나 성지를 빠져 나온다.
노을이 붉게 물들이며 점점 기울어져 가는 짧은 겨울해는 마음은 바빠지고
기온이 떨어져 길바닥의 물이 살짝 얼기 시작하니 아이젠을 신을 수도 없고
조심해서 걸을수 밖에 없고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멀리 전등 불빛이 보이는 죽산 시내를 바라보며 죽산 천변을 걸어 죽산교에 다달으니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다.
오늘 눈속에 긴 알바를 하며 약 25km가 넘는 길을 무사히 걸을수 있었음에
감사 하고,손목 부상이 다 회복 되기도 전인데 무사히 잘 따라와 준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마음을 전하며,거리와 교통편이 관건이라 쉬 마음먹지 못하고 늦게 시작한 영남길인데
제일 먼 10/9길을 무사히 끝냄에 마음 한켠 후련하게 생각하며 잘 못든 길로 생에 최고의
긴 알바를 기록한 영남길 9길은 불평보다는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잊지못할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 멋진 하루의 여정을 모두 마무리하며 생각지 못한 고생이지만 모처럼
심설 산행의 묘미 행복이었다.
여기까지....
2023.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