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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조영은 자기 신상에 대한 의문이 요즘 최대로 증폭되고 있었다. 모레는 그의 스무 번째 생일이다. 스무 살 남아가 자신의 출신이나 혈통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대장부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철이 들기 전에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도, 할아버지에게서도 자신의 출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은, 이십 년 전 나라가 망하는 난리 통에, 모친과 함께 이리로 피난 온 고려(고구려) 왕가 혈통의 한 유민遺民이며 후고구려의 왕실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부친에 대해 할아버지에게 물으면, 할아버지는 훗날 때가 이르러 저절로 알게 될 터이니, 그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일렀다.
다만, 망해버린 고려의 남아로서 장차 큰일을 하려면 심령과 학문과 무예를 잘 닦아야 한다고 조부는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모레 여러 손님이 올 것이다.”
“네? 제 생일에 손님이요?”
“아니다. 너의 생일 때문이 아니다. 마음 준비 단단히 하고, 어떤 일이 네 신상에 일어나더라도 너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고승이 그를 잠깐 빤히 응시했다.
“영아야, 너는 왕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뜬금없는 질문에 조영은 다소 놀랐다. 조영이 생각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네. 왕은 백성을 평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조부의 가르침이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을 평안하게 해 줄 수 있느냐?”
“왕이 사리사욕을 버릴 뿐만 아니라, 스스로 낮아져서 백성의 종이 되어 백성을 섬길 때 백성이 평안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왕의 위엄이 서겠느냐? 어떻게 백성을 복종시킬 수 있겠느냐?”
“왕의 권위와 위엄은, 백성을 사랑하는 인자함과 백성을 섬기는 낮아짐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왕이 그렇게 행동할 때 모든 백성이 왕을 존경하고 따르고 섬기고, 왕에게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조부가 머리를 끄덕이며 영특하고 준수한 손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인마人馬는 어느덧 장성의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태양의 볕은 이른 봄의 찬바람을 제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한참 후에 고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에 말이다. 네가 군대도 땅도 다 잃고 이곳에 숨어 사는 왕이라면, 너는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조영은 묵묵히 생각에 잠기다가 대답했다.
“군대와 땅을 되찾을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군대는 백성 중에서 나오고 땅은 백성이 사는 곳이니, 곧 백성을 얻기만 하면 군대도 땅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백성을 어떻게 얻지?”
“백성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넌 지금까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느냐?”
“······.”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았노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염려하지 말거라. 넌 왕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 한 가지는 명심해라. 누구든지 남의 종처럼 남을 돕고 섬기면서 사는 자는, 나라의 왕이 아니라도 실제로는 그 백성의 왕이라는 사실을.”
“할아버지, 그 사람이 그렇게 산다 하더라도 왕의 권력도 군대도 그에게는 없는데, 누가 그 사람을 왕처럼 보아줍니까?”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지 않겠느냐? 그것이 실제적인 왕이니라. 설사 수천만, 수억의 백성을 거느린 군주라 하더라도, 신하들과 백성이 그 군주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가 어서 죽기를 바란다면, 그를 진정한 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왕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차라리 평민으로 사는 편이 나을 거예요.”
“네 말이 맞다. 백성의 신망과 애정과 존경을 얻는 자가 참된 왕이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왕들은 왕의 지위와 권세만을 중요시하지. 왕의 참된 영광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그 가운데 거의 없단다.”
그 말은 좀 어려웠다.
“왕의 참된 영광이 무엇인가요?”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왕의 참된 영광이다.”
조영은 조부의 말씀을 묵묵히 곱씹어 보았다. 그 때 조부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너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다물 임금의 <행심록幸心錄>을 읽었는지 모르겠구나.”
그 때서야 조영은 얼핏 그런 구절을 <행심록>에서 읽은 게 상기되었다. 그 책에서 조영이 큰 관심을 기울인 것은 무예와 병법을 다룬 제 이권 “연심鍊心”이었다.
“제이권보다 삼권이 훨씬 더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일권이니라.”
할아버지는 조영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조영의 폐부를 마치 검처럼 깊이 찔렀다.
<행심록>은 천 년 전 단군조선 말기의 임금이자 성현으로 불릴 만했던 다물의 저작이었다.
이 책은 일권 “혜심慧心”에서 하나님과의 교통법, 심령을 수련하는 법에 대해 서술하고, 이권 “연심”에서 무예와 병법, 삼권 “전심傳心”에서 통치법을 다루고 있었다.
조영은 어릴 적에 조부에게 이 책을 한 부 선사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태 전 태항산에서 스승에게 <행심록의해>까지 얻어서 공부했으나, 그의 관심은 오로지 무예와 병법뿐이었으므로 자기 심령을 평안하게 하는 법이나, 심령을 남에게 전수해주는 나라 통치법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읽지 않았던 것이다.
조영이 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조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영아, 명심하고 명심해라. 무예도 통치도 심령의 평안과 지혜, 심령의 거룩함에 토대를 두고 있느니라. ‘혜심’이 없이는 ‘연심’도 ‘전심’도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단다.”
그것은 조부로부터 일상적으로 듣던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그 말이 처음 듣는 것처럼 아주 새롭게 느껴졌다.
“다물 임금이 혜심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단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혜심, 마음을 지혜롭게 하고 평안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법은, 어디에서 얻는 것이냐?”
“네, 삼신일체 상제 하나님과의 교통에서 얻습니다.”
“그럼 넌?”
조영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찍이 다물 임금께서도 평생에 하나님과의 교통에 전념했고, 고려의 원 시조이신, 대부여의 해모수 임금께서도 석실 속에서 삼년 이상 상제님과의 교통을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다물 임금을 본받아 일평생 하나님과의 사귐에 힘을 썼단다. 해모수 임금도 여러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책들이 다 멸실되고 겨우 한 권만 전해지고 있지.”
“할아버지, 이십년 전 당나라 군사들이 우리 고려를 멸망시킬 때 국립 장서각을 모두 불태워버렸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단다. 우리 조상들이나 동방 민족들은 화하華夏(중국)를 정복하고 경영할 때 문헌을 소중히 여겨 서적들만은 불태우지 않았는데, 저 진나라의 왕 정政이 분서갱유를 저지른 후부터는, 마치 이것이 관례라도 된 듯 저들이 동방민족을 칠 때마다 모든 문헌들을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말았단다.”
“그들은 왜 그토록 모질게도 책들을 불태워버렸을까요?”
조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승은 하늘을 향해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대답했다.
“우리 고려 사람들은 자고로 책을 좋아하고 종과 노예라도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느냐? 동방민족이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들이 그토록 책을 미워했는지도 모르지.”
중국의 <신구당서>는 고구려인들이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승은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자고로 책을 읽는 민족이 흥하고 책을 쓰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단다. 모든 얼과 사상과 문명은 책을 통해 전수되기 때문이지. 책을 잃으면 나라 글을 잃고 글을 잃으면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나라를 잃었더라도 자국의 역사책과 글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단다.”
할아버지 고승은 조영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저들이 이미 우리나라의 많은 사서와 책을 불태워버렸는데, 어떻게 나라를 찾을 수 있나요?”
“남은 책을 잘 보존하고, 성현들이 남긴 그런 책들을 익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역사를 잊지 않고 있으면, 하늘이 어여삐 여겨 살 길을 열어주신단다.”
조부는 잠시 숨을 돌린 후 조영에게 물었다.
“너는 나와 네 스승이 준 책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지?”
“네, 할아버지.”
“네가 비록 무예에만 관심이 많아 다른 책들을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라도 다물 임금의 <행심록>을 비롯해 성현들의 책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허구한 날, 해모수 임금의 유작 <삼극팔괘무학三極八卦武學>만 껴안고 있으면 안 된다. 알겠느냐?”
“네,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는데,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해모수 임금의 삼극팔괘무예와 다물 임금의 팔괘검학八卦劍學에는 통달했겠지?”
“네, 어느 정도······.”
“좋다. 그 모든 무예의 기초가 하나님과의 교통인 선도仙道임을 명심해라.”
예로부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무리들은 산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므로 조영과 동시대 사람인 신라인 김대문은 그의 저서 <화랑세기花郞世記>에서, “옛날, 선도仙道의 무리들은 오로지 하나님 섬기기를 주된 일로 삼았다 古者仙徒只以奉神爲主”고 진술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둠이 몰려온다. 일행이 등불을 켜고 말을 재촉해 계성 북문 밖 본가에 당도했을 때는 그 다음 날 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좀 연구해보니, 요즘 당나라에서 한참 번성하고 있는 저 대진국大秦國(로마)과 파사波斯(페르샤)의 종교인 경교의 승려(기독교 성직자)들이 하나님과의 교통에 힘을 쏟는 것 같더라. 거란의 왕녀인 너의 어머니도 죽기 전까지 파사교의 신도로 살았단다. 너도 좀 공부해 보아라.”
“네, 할아버지.”
하루를 쉬고 그 다음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날이 밝았다. 조영은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상제 하나님께 삼배를 올린 후, 무릎을 꿇고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삼일신고>를 읽었다.
조반을 마친 후 집안이 말끔하게 정돈되고 조영의 조부 고승, 조영, 그리고 하인들은 손님을 기다렸다.
사시巳時(오전 열시 전후) 무렵에 과연 두 분의 특별 손님이 조영의 집에 도착한다. 조영이 보니 그들은 아주 깔끔한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쓴 고려인들이었다.
조영의 조부 고승은 매우 정중한 태도로 그들을 영접했다. 멀리서 온 듯한 흰옷 입은 두 사람은 조용하고 은밀하며 정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할아버지는 조영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후, 두 객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서로에게 정중한 인사가 오간 후, 고승은 두 사람에게 조영을 소개했다.
“내 손자이고, 자기 애비의 장남인데, 오늘 막 스무 번째 생일을 맞았소.”
“아, 그렇군요. 참 영특하고, 지혜롭게 생겼습니다.”
“고조영입니다.”
조영은 손님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의 조부 고승이 그들을 그에게 소개하고 입을 열었다.
“넌, 현재 고구려의 진국장군振國將軍 고중상이 고구려의 유민들을 모아 후고구려를 세우고 후고구려의 임금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진즉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고승이 두 손님을 바라다보았다. 그들이 말해주기를 기다린다는 표정이었다.
두 사람 가운데 연장자인 듯한 선비가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후고구려는 지금 동압록(압록강)과 백산(백두산) 이북에서 신라 세력을 몰아내고 속말수(송화강)의 동북과 서남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고려 황성이 불에 타던 해(668년)에 이미 정식으로 국호를 후고구려라 일컫고 건원建元을 중광重光이라 칭했습니다. 폐하의 성덕이 널리 미쳐 많은 성들이 속속 휘하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삼국유사>는 옛 <삼국사>를 인용해서, “의봉삼년儀鳳三年 고종무인高宗戊寅 고려잔얼高麗殘蘖 유취북의類聚北依 태백산하太伯山下 국호발해國號渤海”라고 적고 있다.
이는, “의봉(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고종 이치李治의 연호) 3년 고종 무인년(678년)에, 잘려버리고 남은 고구려 왕실의 그루터기 무리가 북쪽에 모여 백두산 아래를 의지하고 나라를 세운 다음, 국호를 발해라 했다”는 뜻이다.
국호에 대해 <태백일사/대진국본기>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나라를 후고구려라 칭하고 건원을 중광이라 했다稱國後高句麗建元重光.” 후고구려의 건국연도도 위의 책은, 고구려가 망하던 해인 668년으로 잡는다.
건국연도와 국호, 이 두 가지를 통해 <태백일사>는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천명한 것이다.
“발해”는 훗날 당나라에서 부른 국호다.
한편,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대진발해국의 건국연도를 684년으로 기술하고 있다.
후고구려의 나라이름이 대진국大震國으로 정착한 건 나중 일일 것이다.
그러나 대진발해국의 4세 황제인 문황제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자신을 “고려국왕,” “천손”이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서, 후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고구려의 후신이자 천자국天子國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잠시 여기서 “왕王”과 “황제皇帝”에 대해 언급해 둔다.
중국의 하, 은, 주에서는 나라의 최고 통치자를 “왕”이라 칭했으나 진秦나라 왕 영정은 전국시대 말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를 참칭하게 된다.
“황제”는 원래, 중국 고전에서 “하늘의 임금” 즉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 후 중국의 통일 제국뿐만 아니라 작은 나라들의 임금들까지 모두 황제를 자칭했다. 그 때부터 중국에서 “왕王”이라는 칭호는 황제국에 예속된 제후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거나,
"공후백자남"보다 높은 단순한 관작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중국보다 한술을 더 떠, 자국 임금에 대해 지금까지 “천황天皇”(=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한편, 우리민족이 사용한, 단군조선 이래의 최고 통치자 명칭 "단군"은,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의 "카이사르," 중국의 "황제" 등과 유사한, 최고통치권자의 통칭이었다.
그 밖에도 "임금"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며,
이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동시대 중국의 하, 은, 주나라처럼 “왕”을 사용했을 것이다.
열국시대 이후 우리 민족은, 고구려 같이 여러 제후국을 거느린 나라도 자기 임금에 대해 “태왕太王” 혹은 “왕”이라는 호칭을 썼다.
하늘의 임금,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감히 “하늘의 임금” 그 자신을 가리키는 “황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력이 약해질 때는 중국의 황제국가들 눈치를 보느라 또한 “황제”를 자칭할 수 없었다.
단지 대진발해국만은 자기 왕에 대해 “황상皇上” 같은 호칭을 사용했음이 발해유물로 밝혀졌다.
현대인들이, 그리고 필자의 이 소설이, 고구려 임금들과 발해 임금들에 대해 “황제”라는 호칭을 간혹 붙인 것은, 그 나라 자체가 쓴 용어를 차용했다기보다, 그 나라들의 성격 때문, 즉 그 나라들이 중국의 황제국가처럼 여러 제후국(왕국)들을 거느린 나라였기 때문이다.
두 손님들 가운데 나이든 객이 품속에서 봉함이 된 짤막하고 가느다란 두루마리를 꺼내면서 말했다.
“저희들은 후고구려의 황성으로부터 폐하의 밀지를 가져왔습니다.”
그가 불안한 듯, 방문 밖을 바라다보았다. 조영의 조부 고승이 그를 안심시켰다.
“모든 하인들은 멀리 물러가고 이곳은 은밀한 방이니, 마음 놓고 말씀하시오.”
고려객은 조영을 바라보며 엄숙히 선언했다.
“후고구려의 아들 조영은 삼가 어명을 받으시오.”
조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승이 눈짓을 하자, 얼른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이든 고려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두루마리를 펴서 낭랑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후고구려의 태자太子 조영에게 후고구려 진국振國장군, 고리군왕高麗郡王 겸 발해군왕을 제수하노라.
부황父皇은 가전家傳 보물 일점을 신물信物로 아울러 하사하노라.
중광重光 십구 년
후고구려 임금 고중상 내림.
이 간단한 칙명은 조영의 신원과 지위를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고리군왕 겸 발해군왕을 제수함으로써 후구고려가 황제국임을 선포하고 있었다.
또한 이는, 옛 고리국 지역과 발해바다 서편의 발해군 땅이 후고구려의 영토임을 천명함과 동시, 고중상 자신이 고구려가 망하기 직전에 가지고 있었던 진국장군이라는 직함을 아들에게 하사함으로써,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 그가 이루지 못한 국토수복 과업을 그에게 위임한 글이기도 하다.
조영은 얼떨떨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하고 느닷없이 닥친 일이다.
“삼가 어명을 받들어라.”
당황한 조영의 귀에 할아버지의 조용한 음성이 들렸다.
“신臣 소자小子 조영은 삼가 어명을 받들어 부황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삼신일체 상제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맹약하나이다.”
당혹한 가운데서도 조영은 정신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했다.
조영의 대답에 흡족한 표정을 짓던 고중상의 사자는 봇짐 속에서 뭔가 길쭉한 물건이 든 보자기를 꺼냈다. 그는 매우 조심스런 태도로 보자기를 풀었다.
그 속에는 하나의 단검이 들어있었다. 단검의 누런 검집에서 찬연한 광채가 뻗어 나왔다.
“전하殿下! 이것은 성황聖皇 기하基下(‘폐하’를 뜻하는 대진발해국 언어)께서 내리신 신물이옵니다.”
그가 즉시로 조영에 대해 호칭을 바꿔 부르며, 조영 앞에 두 손으로 단검을 공손히 받쳐 들고 내밀었다.
조영은 얼떨결에 검을 받아들었다.
“그 검은 지금부터 약 이천년 전 조선의 이십이 세 색불루 임금께서 구리로 제작하신 명검이옵니다. 이른 바 ‘천명신검’이라 하옵니다.”
조영은 다물 임금의 <행심록>과 그의 자서전에서 읽어 그 검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
천명신검天命神劍과 천명영검天命靈劍.
이 한 쌍의 청동단검은 색불루 임금이 만든 전설상의 보검이었다.
검집에 제왕의 통치이념이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과 “三三五六七七삼삼오륙칠칠”이라는 신비로운 숫자가 입혀져 있다는 것도 조영은 기억하고 있었다.
조영은 머나먼 고대의 전설로만 알고 있던 그 검이 이 자리에 출현해 자기 손에 넘겨졌다는 게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순간 어리둥절했다.
비록 엉겁결에 어명을 받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조영은 검을 내려다보며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의 심사를 능히 짐작한다는 듯 조용히 일렀다.
“조영아! 모든 것을 극비에 붙이느라 너에게 사전에 충분한 언질을 주지 못했구나. 의심하지 말고, 검을 잘 간수해라. 그 검은 천고의 보배니라.”
조영은 아직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나라의 평범한 유민에서 후고구려 임금의 태자가 되다니.
그가 깊은 의문에 빠져있는 사이,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조부가 자신을 기르고 교육하며 주었던 교훈들이 순식간에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의문스런 일들이 오늘에야 어느 정도 풀리는 것 같았다.
불과 하루 전에 제왕의 일에 관해 조부와 나누던 얘기들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조영아, 속히 검을 간수하고 마음을 다잡아라. 넌, 후고구려의 태자로서 고리군왕 겸 발해군왕에 임명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이것은 극비에 붙여야 할 중대사이니, 근신하고 근신해라.”
조부가 조영에게 부탁한 후 고중상의 사자들에게 말했다.
“새로운 손님들이 올 시각이 다 되어가니, 사랑채로 나가야 할 것 같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조영은 후고구려의 사신에게서 받은 신물을 자신의 방에 은밀하게 감추고, 사랑채로 나왔다.
“조영아, 오늘 오찬에 이 두 분의 귀한 고려 손님들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오기로 되어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언행에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오늘의 만남은 너의 생일 축하연이기도 하지만, 매우 뜻 깊은 회합이 되기를 이 할아비는 기대하고 있단다.”
조부 고승이 엄숙하게 말했다.
“내 나이 여든이 넘었으니,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바야흐로 너희들의 시대가 동터오고 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새로 오는 손님들과 잘 사귀어야 한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오가 다가올 무렵 화려한 마차 두 대가 고가장高家莊의 대문 밖에 와서 멈추었다.
앞의 마차에서 거란족의 복장을 한 세 인물이 점잖은 태도로 내렸다. 앞장서서 내린 이는, 사십여 세의, 얼굴이 넓적하고 진중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그 뒤를 이은 이는,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람이었는데, 얼굴에는 강건한 기운이 넘쳐흘렀고, 팔자 콧수염을 아주 멋지게 기르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준수한 청년이 마차에서 가볍게 뛰어 내렸는데, 그의 어깨에는 보라매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뒤의 마차에서는 고려인의 백의를 입은 한 어여쁜 아가씨가 하녀들과 함께 민첩하고 가벼운 신법으로 내려왔다.
대문 밖까지 마중 나온 고승과 고조영이 그들을 정중한 인사로 맞았다.
“이 대인, 어서 오시오.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고승이 허리를 굽혀 고려 말로 인사하자, 앞 마차에서 선두로 내린 마흔 살 정도의 손님도 허리를 숙여 역시 고려 말로 정중하게 안부를 물었다.
“자, 인사와 소개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안으로 드십시다.”
고승이 손님들에게 말했다.
옆으로 길게 뻗은 문간채를 좌우에 두고 삼태극 대문을 지나자, 정면으로 아주 넓은 정원이 보이고, 정원을 건너 또 하나의 대문을 통과하니 거대한 사랑채 건물이 나왔다. 주객이 모두 사랑채의 큰 방에 좌정한 후 고승은 멀리 후고구려 조정에서 보낸 사자들을 간략히 소개했다.
“이 분들은 후고구려 땅에서 온 이 늙은이의 친척들이오. 정부에서 요직을 맡고 있소.”
이어서 그는 조영을 그들에게 인사시켰다.
“이 아이는 제 손주올시다.”
다음으로 고승은 후고구려 사자들과 조영에게, 새로 온 거란의 손님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영아야, 인사 드려라. 이 분은 송막도독松漠都督 이진영李盡榮 어른이시다.”
거란 군장 굴가가 거란의 여덟 부족을 이끌고 당 태종 이세민의 세력에 투항한 것은 당태종 정관貞觀 22년(648년)의 일이다. 전술했듯이, 당나라는 그 부족들의 땅을 송막도독부라 칭하고, 굴가에게 이李씨 성을 하사했다.
이진영은 이굴가의 손자로서 송막도독을 승계했는데<구당서>, 작년 겨울의 납월, 그가 송막도독에 부임해왔으므로, 그 동안 그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자 그를 초청할 적당한 기회를 노려오던 고승은 이번에 이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의 신분에 깜짝 놀란 조영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고조영이라고 합니다.”
송막도독 이진영은 고조영의 헌헌한 기품과 영기 발랄한 표정, 준수하고 늠름한 얼굴에 다소 놀라는 기색이었다.
“호오! 대인께서 자랑하시던 손자가 바로 이 젊은이군요. 용 같은 기상과 범 같은 호기를 갖춘 게, 장차 큰 인물이 될 것 같소.”
“과찬의 말씀입니다.”
조영도 얼른 겸손하게 절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 때 조영은 속으로 많이 놀라고 있었다. 그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그들과 동행한 한 젊은이와 고려복 백의를 입은 소녀다.
송막도독 이진영은 그들을 일일이 고승과 후고구려 사자들에게 인사시켰다.
“이 아이는 제 딸년입니다. 올해로 열여덟인데, 성격이 천방지축, 안하무인이라 고대인의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이진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녀가 입이 약간 뾰루퉁하더니 이내 얼굴을 활짝 펴고 인사했다.
“또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루하라고 합니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대며 조영을 살짝 훑어보았는데, 그녀의 표정이 대단히 상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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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6. 10.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