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essay
금禁줄을 넘다
김용삼
벼르던 아이스케키를 드디어 성공했다. 그 일 때문인지 아이가 이튿날부터 학교에 오지 않았다. 하루에 서넛씩 결석을 해도 그러려니 하던 때니 한 명쯤 보이지 않는다고 달라질 건 없었는데 나에겐 큰 걱정이었다.
잔주름 치마를 입고 철봉 근처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에게, 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내 속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도망쳤다. 그동안 숱하게 머릿속에서 뱅뱅 돌던 엉큼한 마음이 실제로 드러난 것이 오히려 나를 편하게 했다. 교실에 숨어 운동장을 살폈더니, 아이는 쪼그려 앉은 채 머리를 묻곤 한참을 울고 있었다.
그 일은 복도에서 한 시간 벌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사흘째 나타나지 않으면서 점점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다시는 아는 척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읽은 선생님께서 나를 붙들곤 아이 집 방문을 나섰다.
학교에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인지라 선생님의 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목적지 ‘용호농장’이 가까울수록 내 걸음도 무거워졌다. 하지만 길을 안다는 것은 고작 농장 입구의 보리밭까지일 뿐, 알고 보면 그 이상은 나도 초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집은 농장 안에 있었다. 그곳은 양성 나환자들이 소록도로 떠나고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음성 환자들이 터전을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오륙도 너머 오가는 배들의 고동 소리가 이웃이었고, 깊은 밤엔 해안을 덮쳤다 돌아가는 파도 소리만이 조근조근 말을 걸어주는 외로움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안과 밖의 경계엔 바깥사람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금禁줄이 둘러져 있었다.
아이가 언제 우리 학교에 왔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용호농장에서 따로 세운 보육원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보육원 애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며 다른 애들과는 잘 섞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말수는 적었지만 바깥세상이 보육원 아이들에게 갖는 경계심 따윈 상관없다는 듯 늘 당당했다.
농장표지판이 보였다.
능선을 오르면 농장까지는 넓은 보리밭이었다. 보통 시골의 보리밭과는 달랐다. 주인의 손이 닿지 않은 듯, 밭에는 보리가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다.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바깥세상과 구분 짓는 금禁줄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능선 아래의 바다는 금禁줄의 바깥이라 눈에 꽤 익었지만 보리밭 너머까지는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능선을 넘어서니 농장이 나타났다. 나는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선생님도 긴장을 하셨는지 내 손을 꽉 잡았다. 마을은 돼지, 닭들의 분뇨 냄새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집들은 수용소 같았고 크기는 엇비슷했다. 그 속에서 그 아이의집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겉보기와 달리 집안은 정갈했다. 배앓이로 며칠째 누워있다는 아이는 선생님과 나를 보곤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과 말을 나눌 땐 바닥으로 고개 숙인 아이가 내 눈과 마주칠 땐 애써 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아이의 부모 모습이 흉측스러웠다. 뭉뚝뭉뚝한 손은 장갑으로 가렸고, 눈썹은 면도칼로 민 듯 듬성듬성 몇 올만 남아 있었다. 한쪽이 일그러진 입술로는 말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손님치레로 건네는 먹을거리에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어색한 방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는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이가 뒤를 따라 나왔다. 우선 분뇨 냄새 가득한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도 내 낌새를 알았다는 듯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농장 뒤 보리밭에 이를 때까지 아이는 말이 없었고 나는 심장에 박동기를 단 듯 가슴이 쿵쿵거려 잠시 숨을 참아야 했다. <출입금지> 따위의 눈에 띄는 경고는 없었지만 금禁줄 속으로 아이와 함께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마치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적절한 기회를 노리던 그때 같았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오륙도 등대섬에서 유영하듯 날아와 내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보리밭 어딘가에서 들쥐를 찾은 듯했다.
나보다 앞서 걸으며 보리 수염을 쓰다듬는 아이의 모습에서 한 폭의 그림이 떠올랐다. 보리밭엔 얼씬도 말라던 동네 어른들의 경고는, 공연히 지어낸 말 같았다. 아이가 보릿대에서 뽑은 보리잎으로 풀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어색함을 덜어내려는 것일 게다. 마땅히 놀거리는 없고 온통 보리뿐이니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삐리릭 삐리릭, 풀피리 소리가 제법 가락을 타는 듯했다.
반쯤 쓰러져 있던 보릿대 하나가 바지 틈 사이로 들어왔다. 하지만 깔깔한 보리 수염이 내 사타구니를 찔러도 아프다는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며칠 전 들켜버린 내 행동 탓에, 보리 수염 따위에 남자가 스스로 바지를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보릿대를 훑고 지날 때마다 보리밭은 출렁거리며 일제히 군무를 추곤 했다. 덩달아 포수가 사냥매 부르는 소리 같은, 바람의 노랫소리가 뒤를 따랐다.
“야, 이제 가자.”
선생님의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너 왜 그날 나에게 아이스케키를 했니?”
아이의 집으로 급히 발길을 돌리는데 그 애가 물었다. 하지만 농장을 떠날 때까지 시원한 대답은 하지 못했다.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아이도 학교로 돌아온 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금禁줄을 넘은 것도, 거기에서 풀피리 소리와 바람의 노래를 들은 것은 그 아이 덕이었는데 다시는 금禁줄을 넘을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 더 이상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그 아이가 선생님이 되었다고 하고, 농장 안의 하나뿐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한다고도 했다. 간혹 나는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 봄날을 불러온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낸다.
한참 후 농장은 해체되고 고층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농장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보리밭도, 그 바람의 노래도 농장과 함께 사라졌다. 변하지 않은 건 병풍처럼 버티고 선 오륙도 등대섬뿐이었다.
김용삼 | 201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신라문학상에 수필이 당선되었다. 에세이집으로 『그녀 모산댁』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