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나의 초등학교-겨울방학
겨울방학이다. 아이들은 신나서 일제히 소릴 지르며 교문을 나섰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겨울방학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찼다. 아무리 바쁜 농촌이라도 겨울만큼은 할 일이 없었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안에서 얼마든지 작물을 재배할 수 있지만 그 시절 겨울은 농한기라 해서 그저 놀고먹고 지내는 게 제일이었다. 다만 양식이 부족해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배고픔까지도 잊고 지낼 만큼의 각가지 놀잇감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 어릴 적엔 눈이 유난히도 많이 내렸다. 한 번 내린 눈은 추운 날씨로 잘 녹지를 않았다. 녹는다 해도 그 위로 또 눈이 내려 겨울방학 내내 응달엔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 겨울이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눈이 펑펑 내렸다. 아직 마을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텔레비전은 구경도 못하였다. 방학숙제는 그저 허울 좋은 과제였다. 일기 쓰기, 산수문제 풀기, 글짓기, 그림 그리기, 방학 책 풀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등한시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숙제를 했다. 그것도 한 번에 며칠씩 몰아서 거짓으로 일기를 쓰고 밀린 문제를 베끼듯 풀었다.
밤새 또 눈이 내렸다.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많은 눈이 천지를 덮었다. 이런 날엔 밖에 나가 놀기도 뭐 해 방구석에 처박혀서 이웃집에서 빌려온 만화책을 읽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그것도 싫증 나면 어떡하든지 밖에서 놀 궁리를 하였다. 거기에 딱 맞는 놀잇감이 하나 있다. 바로 새를 잡는 것이다. 그렇다고 총이나 그물로 새를 잡는 건 아니다. 새를 잡기 위해 덫을 사용하였다. 어른들이 산짐승을 잡을 때 쓰는 철제로 제작된 무서운 덫은 아니다.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빳빳하고 깨끗한 볏짚으로 초가지붕의 영을 엮듯이 폭 두 자 남짓 되게 엮는다. 다음은 질기고 탄력이 좋은 물푸레나무로 활을 만든다. 활줄은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로 활대가 반달모양이 되도록 잡아당겨 양쪽 끝에 묶되 최소 네 줄 이상이 반복되게 감아서 활대에 단단히 고정한다. 활대가 이삭이 붙었던 쪽을 향하도록 영위에 올려놓고 부드러운 이삭을 한 뭉치로 움켜잡아 꽁지머리 묶듯 활대에 묶는다. 이번엔 새를 덮칠 수 있는 새 망을 제작해야 한다. 말하자면 새가 잡혔을 때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는 장치다. 활대보다 가는 물푸레나무로 폭 약 25cm, 높이 약 30cm 정도가 되도록 ‘U’ 자형 틀을 만든다. 이 작업은 나무의 성질을 잘 알지 못하면 실패한다. ‘U’ 자가 되었다 해도 좌우 대칭이 되지 않으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 모양을 정확히 만들려면 나무가 잘 휘어지도록 뜨거운 불에 적당히 쬐어주는 게 관건이다. 틀이 완성되면 ’U’ 자 모양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하부에 나무를 일자로 대어 고정하거나 새끼줄로 적당히 잡아맨다. 틀의 하부는 활대에 꽂기 좋게 약 5cm 정도 길게 내민다. 이제부터는 아주 정교한 손재주가 필요하다. 우선 가늘게 꼰 새끼줄이 대여섯 발 정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길게 만들지 않는다. 약 1m 정도 길이가 되는 새끼줄로 망의 오른쪽 또는 외쪽 구석 하단부터 마치 뜨개질을 하듯 엮어 나간다. 시작 간격은 약 5cm 정도로 출발한다. 한 바퀴 돌면 앞서 엮은 구멍에 새끼줄을 끼워 같은 방법으로 또 한 바퀴, 또 한 바퀴... 이렇게 엮다가 줄이 짧으면 준비해 둔 지푸라기로 새끼를 이어서 꼰다. 망을 꼼꼼하게 엮지 않으면 모양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구멍으로 새가 빠져나갈 수도 있다. 어느새 망이 마지막 중심점에 도달했다. 끝은 새끼를 망의 뒤로 빼내어 머리카락을 동여매듯 질끈 하고 묶어준다. 이제 새를 유혹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새가 닿을 만한 망의 아랫부분에 볼펜 굵기 만한 대나무를 길이 약 3cm 정도로 자른다. 대나무의 중간에 ’V’ 모양이 되게 홈을 만들되 한쪽 면은 대나무 길이방향의 구십 도가 되도록 한다. 두 겹의 명주실을 반으로 접어 고리가 될 부분을 대나무 구멍에 살살 끼워 밖으로 잡아 뺀다. 구멍으로 삐져나온 고리엔 먹음직스러운 벼이삭을 끼우고 뒤에서 줄을 잡아당겨 반대 구멍으로 나온 두 가닥의 줄을 망에 끼워 뒤쪽에서 고정한다. 이제 새 망을 활대의 새끼줄 중앙에 꽂고 탕개를 틀듯 뒤로 여러 번 감아준다. 꼬인 활줄로 새 망이 반대방향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이때 활대를 잡고 있는 영 밑으로 긴 막대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끼워 넣는다. 말하자면 활대가 되바라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이렇게 해서 새 망은 영에 밀착된다. 이 상태에서 망을 살그머니 들어 올려 영과 구십 도가 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새 망을 고정할 꼬챙이를 만든다. 꼬챙이는 질긴 싸릿대가 좋다. 끝을 뾰족하게 깎되 한쪽 면은 수직이 되도록 하고 한쪽 면은 경사지게 깎는다. 꼬챙이 머리에 실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앞서 만든 대나무 고둥에 꼬챙이를 걸고 끈을 잡아당겨 활대에 단단히 고정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을 우린 일명 ‘새착이’라 불렀다. 새를 잡는 덫이란 뜻이다. 사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새착이를 만들 줄 알았다. 모르면 형이나 아버질 졸라 기어코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함박눈이 수북이 쌓이면 겨울을 나야 할 새들에겐 아주 치명적인 날이다. 먹이가 될 만한 것들이 온통 눈 속에 파묻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때를 노려 새가 모여들만한 곳을 싸리비로 박박 쓸어내고 적당히 지푸라기를 깔아준다. 새들에겐 저기에 가면 먹이가 있을 것이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 새착이를 살그머니 설치하고 담장 너머나 나뭇짐 뒤에서 숨어서 새들이 날아오기만 애타게 기다린다. 드디어 새들이 날아들었다. 대개는 낱알을 주 먹이로 삼는 노랑턱멧새이거나 박새 종류가 많았다. 가끔 직박구리도 날아왔다. 참새는 워낙 영악해서 어지간해선 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속셈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닥을 돌아다니던 새가 드디어 벼이삭이 매달린 망 아래로 다가갔다. 한두 번 벼 이삭을 쪼아 먹는 순간 고둥에서 꼬챙이가 위로 튕겨져 나가며 망이 고꾸라지듯 새를 덮친다. “잡았다” 신나게 외마딜 지르고 새착이로 달려간다. 망 속에 갇힌 새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어림도 없다. 새가 날아가지 못하게 한 손으로 망 위에서 새를 누르고 한 손으론 망을 살짝 들어서 손을 집어넣어 새를 끄집어낸다. 놀란 새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다. 손안에 잡힌 새에게서 따듯한 체온이 전해져 온다. 미리 만들어 놓은 상자에 새를 넣고 쌀알을 갖다 주고 한쪽엔 물까지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놀란 새는 먹는 덴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상자 안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푸드덕 거린다. 새 털이 빠져 날아가고 쌀알이 바람에 날려 밖으로 튀어나갔다. 물은 엎질러졌다. 새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내겐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한 삼사일 푸드덕 대던 새는 지쳤는지 그만 얌전해진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새의 여린 눈망울이 어찌나 예쁜지 털은 또 얼마나 포근하고 따듯해 뵈는지 모른다. 배가 고파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나머지 쌀알을 콕콕 쪼아 먹는 장면을 보면서 그제야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 새장 속의 새는 나만의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잡아들인 새는 새장 속에서 날뛰었다. 달아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어떤 새는 이틀이 안 되어 죽었다. 차갑게 굳어버린 새의 모습은 처참했다. 나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자 더는 새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야생의 새를 조그만 상자 안에 가두어 키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엔 제법 잘 적응하는가 싶다가도 밤새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밥도 곧잘 먹었는데 왜 죽었을까 궁금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답답해서 울화병이 나서 죽은 것인데 난 그걸 몰랐다.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었는데 죽다니 죽는 새가 많아질수록 내가 새를 죽인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 새가 너무 불쌍했다.
새착이를 아궁이 속에 집어넣었다. 다시는 새 같은 건 잡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사내아이들은 자신이 잡은 새의 숫자를 부풀려 말하며 자랑을 하였다. 나는 그런 자리가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피하곤 하였다.
“새들아 그땐 몰랐어, 정말 미안해 날 용서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