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도 다 끝나갈 무렵, 나는 외고 진학을 앞두고 외고에서의 제3외국어가 '중국어'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의 권유를 따라 미리 중국어를 익혀두어야겠다는 생각에 동네 인근의 대규모 입시학원 중국어반에 들어갔다. 그때 중국어를 가르치시던 나OO 선생님은 대만으로 유학을 가서 중국어를 배우셨다고 했다. 수업 중에 교재 지문에서 중국 음식 이야기가 나왔는지라 선생님은 그와 관련해서 중국의 먹거리에 대해 설명을 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만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매우 입에 안맞고 기름지고 느끼했던 기억이 나요. 먹었던 것 중에 제일 쇼킹했던 건 삼겹살 기름 같은 데에다가 허연 국수를 말아주는 거였는데, 정말 토할 뻔할 정도로 느끼해요."
난 그 말을 들은 이래로 대만 음식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눈에는 기름에 말아놓은 국수가 어른거렸다. 과연 대만의 먹거리는 그런 것들 뿐인 걸까?
사실 꼭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상당히 느끼해 보이는 음식이 분명히 있긴 한데 담백한 것도 더러 있고 맛도 좋다. 대만으로는 먹으러 여행을 떠난다고 할 정도로 이런저런 다양한 음식들이 많다는 걸 명심하시라규yo~ 게다가 음식들의 가격도 대부분 다 싸다. 물론 만한전석이라든지 고급 레스토랑으로 가면 꽤 비싸집니다만 일반 가게에서 사먹는 거라면 꽤 저렴한 값에 식사가 가능하다.
대만에는 중국 음식들이 총집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국 각지의 다양한 음식들이 존재한다. 복건, 광동 일대에서 건너온 내성인은 물론이요, 상해, 홍콩을 비롯 중국 대륙 각지에서 건너온 외성인들로 인해 대만에 다양한 음식문화가 함께 옮겨왔다. 북경 요리, 광동 요리, 사천 요리, 상해 요리, 운남 요리, 거기에 객가 요리까지, '중국에 건너가지 않아도 대만에서 맛있는 중국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음식점들의 모토이기도 하다.
위 사진은 대만대학 근처에 있는 사천[川], 호남[湘]요리집 '아미식당(峨嵋餐廳)'에서 먹은 궁바오지딩(궁보계정, 宮保鷄定)이라는 음식의 사진이다. 닭고기를 깍뚝썰듯 잘라 튀겨낸 뒤 야채, 고추, 땅콩 등과 매콤하게 볶아놓은 이 요리는 중국어 교재에도 곧잘 등장하는 요리인지라 필자에게는 친숙한 요리였다. 고추가 저리도 무식하게 들어있어서 엄청 맵지는 않은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매우 맛있었고, 약간 알싸하게 매운 정도, 자꾸 먹고 싶어지는 정도로 매웠다. 매우 만족스럽게 먹은 기억이 있다.
오오 동파육 오오, 하앍하앍! 꽃빵, 청경채와 함께 나온 아름다우신 동파육님은 타이베이 역 앞 신광삼월 백화점 식당가의 중화요리 음식점에서 주문한 것이다. 입에 넣자마자 살살 녹는 것이 꽃빵과 어우러지면 천하일품이다. 위의 아미식당에서의 식사와 여기서의 동파육이 대만에서 제일 맛있게 먹고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고 필자의 어머니는 말해주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대만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딘타이펑! 그곳에서 맛본 샤오롱바오(소롱포, 小籠包)이다. 숟가락에 얹어놓고 살짝 만두피를 찢은 뒤 국물을 자아내 먼저 마신 다음, 간장과 생강채를 곁들여 입에 넣는 그 맛. 아아 맛있었다.
이 요리는 지우펀에 갔을 때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장소였다는 음식점 '페이칭청스(비정성시, 悲情城市)'에 가서 먹은 요리 중 하나인 '객가식 볶음국수'. 해물과 돼지고기, 야채가 적절히 버무려진 맛, 역시나 맛있었다. 객가 요리는 처음 먹어보아서 신기했다.
대만에는 한인들이 가져온 중국 음식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는데, 또 대만의 독특한 '대만 요리(臺菜)'도 존재한다. 농어촌의 가정요리에서 발전했다고 하는 대만 요리는 그래서 그런지 가정식 느낌의 담백한 요리가 많은 편인 것 같다. 소박한 느낌이랄까.
응 이게 뭐지, 싶으시겠지만, 이 요리는 대만 요리 중 하나인 차이푸단(채복단, 菜蔔蛋)이다. 蔔은 '무'란 뜻이고, 蛋은 '달걀'. 즉 짭짤한 무말랭이를 넣고 부친 달걀 부침인 것이다. 소박하지 아니한가. 이 요리도 페이칭청스에서 시켰는데, 먹다보니 무 부분이 너무 짜서 무를 좀 발라내야 했다;;;
또한 지방마다 그 동네의 특색있는 먹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시먼딩에는 아종면선이라는 곳에서 파는 곱창 국수가 맛이 있으며, 단수이는 항구도시인 관계로 위완탕(어환탕, 魚丸湯)이라는 하얀 어묵경단이 든 탕, 그리고 튀긴 두부 속을 파내고 당면, 고기 등을 채운 아게이(아급, 阿給)이 유명하다. 지우펀에서는 위위엔(芋圓)이라는 타로토란과 밀가루로 빚은 경단이 많이 팔린다.
시먼딩 아종면선 앞에서 곱창국수를 열심히 먹고 있는 필자. 수저로 죽같은 느낌의 국수를 떠먹는다. 별도의 식사공간이 없이 저렇게 길가에서 서서 먹는다.
요거이 위완탕. 저 하얗게 떠있는 게 어묵경단이다.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거보다는 새우완탕이 더 맛있었다.
대만의 번화한 거리를 걸어가다보면 군것질거리가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정식으로 삼시 세끼를 먹는 것 이외에도 수시로 간식(小吃)을 먹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대만 사람들 중에 뚱뚱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어찌된 일인지 참... 여하튼 대만에는 일반 점포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군것질거리, 간식거리가 참 많다.
이건 과일 꼬치인 탕호로. 과일을 꼬치에 꽂아서 설탕칠을 했다고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다. 달달하니 먹기 좋은 군것질거리 중 하나.
지엔탄(검담, 劍潭) 역 근처에서 발견한 핫도그 판매대. 오리지날, 매운맛, 훈제치킨, 치즈의 네가지 맛이 있다. 핫도그를 튀겨주면 앞에 있는 소스를 취향껏 뿌려 먹을 수 있다.
그 옆에 있던 과일 좌판. 그런데 과일을 손질을 해서 판다. 우리는 그냥 과일을 원래 상태대로 사서 집에 가서 씻은 다음 먹는 것과는 달리, 대만의 과일 파는 곳들은 대부분이 손질을 다 해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해서 주는 것 같았다.
여기는 지엔탄 역 앞에 있는 스린(사림, 士林) 야시장. 여기의 포장마차 먹거리 시장이 규모도 커서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사람들도 많이 몰린다. 여기서 파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로는 비프스테이크인 니우파이(牛排), 굴 계란 부침인 커짜이첸, 토스트 빵 속에 스튜를 넣은 관차이반 등이 있다. 단수이의 해안가 거리에도 포장마차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거기서 메추리알을 살짝 구워 꼬치에 꿴 간식거리와, 고구마 같은 것을 볶은 맛탕 느낌의 음식, 레몬에이드 등을 먹었다. 그리고 대만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바로 '빙수'가 있다. 빙수의 종류도 토핑에 따라 각양각색이고, 빙수를 전문으로 파는 가판대나 포장마차, 점포도 많이 있다. 대만에 가면 이런 포장마차 먹거리를 꼭 체험해보시라.
이건 스린 야시장에서 파는 니우파이. 스테이크다!!! 빵과 스프, 음료수,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한 세트로 나온다. 뭐 물론 고기질이 최상급이라거나 이런 건 아니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최강이다. 무지 싸다는 말씀. 3, 4천원대이다.
대만에도 유명 패스트푸드점과 해외 체인점, 카페 등등은 당연히 존재한다. 맥도날드, KFC(肯德基), 스타벅스, 미스터 도넛 등. 그리고 대만 자체의 프랜차이즈점도 있다. 치킨을 파는 頂呱呱, 카페 85도씨 등등.
우왕! 미스도의 프렌치 크룰러!
대만의 맥도날드 매장에는 이렇게 맥카페를 겸하고 있는 매장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대만대학 근처의 맥도날드 매장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에스프레소, 모카, 카푸치노 등의 커피와 각종 케익류를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 옆에서 함께 팔고 있었다.
여기가 호텔 앞에 있던 카페 85도씨. 24시간 운영되는 커피 전문점. 굉장히 좋았다. 다른 곳에도 체인점이 있는 듯하다.
그 외의 여러 음식들을 이야기해 보자면, 대만에서 유명한 국수로는 단짜이몐이 있다. 소고기가 들어간 뉴로우몐도 맛있다.
이게 딘타이펑에서 파는 홍샤오뉴로우몐. 매콤한 국물에 야들야들하면서 두툼한 소고기가 들어간 소고기탕면이다. 맛있다.
그리고 대만에서 유명한 요리 중 하나가 바로 훠궈(火鍋). 훠궈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음식인데, 국물을 끓이고 거기에 생고기, 야채 등을 넣어 익혀 먹는 전골요리, 샤브샤브, 징기스칸 등으로 불리는 그 요리다. 대만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훠궈를 먹을 정도로 이 요리를 즐겨찾는다고 한다. 중국식과는 뭔가가 다른 모양인지 일본식 샤브샤브도 많이 팔리는데, 호텔에서 국부기념관으로 가는 길의 어떤 호텔에서도 일식 샤브샤브를 크게 광고하는 걸 본적이 있다. 최근에는 마라훠궈(매운 맛의 훠궈)도 유명하다고.
대만도 중국과 문화적 유사성을 많이 보이고 있다보니, 차를 마시는 문화에 있어서도 유사함이 있다. 식당에 들어가면 우리처럼 찬물을 주는 곳은 거의 없고 따스한 차를 내온다. 차와 함께 먹는 간식류인 얌차(飮茶)도 발달하여 찻집에서 맛있는 간식들을 맛볼 수 있다.
(김현경 님-옆 사진-의 글 중에서 퍼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