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만엽집은 백제·고구려·신라 세(勢의) 혈투 드라마
8세기 일본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20권 4,516수)인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만요슈)은 그러한 기록물이 남아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역사적 유산이다.
이 만엽집에 대한 작가 이영희씨의 논리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다.
만엽집은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詩歌가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졌다.
이 시기는 중국을 통일한 당나라가 세력을 넓히던 시기로, 한반도의 신라와 손잡고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리하여 외형상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모양이었지만, 현실은 당나라에 시달리는 형편이었다.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였던 이때, 일본은 가야계를 거쳐 백제계가 패권을 누렸고, 고구려 패망 후에는 무력에 뛰어난 고구려 도래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통일신라와 더불어 당나라의 세력을 견제한다.
그러나 곧 백제계가 다시 반전드라마를 전개한다.
이와 같이 7세기 후반의 일본은 피를 피로 갚는 처절한 동족 간의 권력 투쟁이 있던 시기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읊어진 노래가 바로 만엽집이라는 것이다.
그 노래의 작가들은 대부분 권력의 핵심에 있거나, 몰락한 정치인이거나, 반격할 기회를 엿보는 심각한 무리였다고 추정한다.
즉 신천지 일본에서 한반도 도래인끼리 벌인 치열한 갈등의 기록이라는 대전제를 하고 있다.
따라서 만엽집에는 정치적인 노래가 엄청나게 많고, 그것도 고대 한국어로 읊어져 있어, 고대 한국어로 읽으면 그 당시의 정치사가 생생하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한자로 쓰여있으나 한시(漢詩)가 아니고, 신라의 향가처럼 이두체로 쓰여 있는 이 노래들을 고대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 사람들이 중세 이후의 일본어로 읽으려 하니 뒤죽박죽의 해독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가가 천왕이거나 왕후, 왕세자 등 왕족과 고관들 같은 그 당시 지배집단이었으니,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로 읊어진 노래라면, 고대 일본은 한반도 도래인이 지배했다는 이야기 된다.
그러니 당연히 일본학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작가는 1988년(글 쓴 시기가 1993년인데, 5년 전이라고 했으므로)에 일본에서 일본학자들과 대토론회를 가지면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작가는 일본말의 뿌리는 한국말이라고 단정한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일본식 풀이의 예를 들었다.
시가에서 표현한 한문 ‘馬聲(마성)’은 말 울음소리를 뜻하니 일본어 표기 ‘이히잉(いひひ-ん)’에서 ‘이(い)’를 따와 해석하였고, 또 ‘蜂聲(봉성)’은 벌이 날아다니는 소리의 일본어 표기 ‘부-웅붕(ぶ-んぶん)’에서 ‘부(ぶ)’를 따와 해석하니 일본에서 해석한 전체 내용이 이러하단다.
젖이 넉넉하니
어머니가 치는 누에의 누에고치 숨기
숨이 막힐 것도 같아라
그 여자애를 만나지 못해
누에가 고치속에 들어가 박히는 것이 숨이 막힐 것 같다.
작가는 이러한 해석이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고 실소한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자동차 10부제 운행 캠페인 광고
광고 문구가 참 간결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캠페인 2년 뒤인 1995년에 10부제가 시행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