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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하나님에 관하여, 그리고 삼위일체에 관하여 3절
마 3:16-17 하나님의 한 본질은 삼위로 존재하신다 찬송: 9(1-2절), 5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47) (본문 인용: 믿음의 고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입문, 성약출판사)
2장 하나님에 관하여, 그리고 삼위일체에 관하여
3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는 단일한 신성 안에 삼위로 계시며, 본질과 권능과 영원성이 하나이십니다(마 3:16-17; 28:19; 고후 13:13; 엡 2:18). 성부께서는 아무에게서도 말미암지 않고 나시지 않고 나오시지 않으며,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고(마 3:16-17; 28:19; 고후 13:13; 엡 2:18),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십니다(요 15:26; 갈 4:6).
우리를 구속하시고 당신의 백성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신 6:4)이시다. WCF 2장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1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고백을 들었다. 하나님은 존재와 완전성이 무한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순수한 영이시고,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다. 지극히 자유로우시고 절대적이시다. 이러한 속성은 유한한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에게만 속한 속성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이것은 당신의 성품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2절의 고백은 창조주, 구속주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가에 대하여 고백하게 하는데, 우리의 하나님은 생명과 영광과 선함과 복을 소유하신 분으로, 인간에게 이 복을 나누어 주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과는 달리 무한하시고, 무오하시고, 모든 경영과 행사에 있어서 당신의 계획대로 진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림이 마땅하다.
이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우고 고백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시는가? 많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 증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들은 결국 인간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사고이기 때문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을 입증할 수 없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모호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섬기는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의 내용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고백하는 것이 마땅할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배우고 고백해야 할 내용이다.
WCF 2.3의 고백은 단순하다. 하지만 이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학자들이 얼마나 고심하여 이 고백을 작성했는가를 살펴보면 간단하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우리의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시는가에 대해 고백하고 있음을 배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복을 받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우리를 백성 삼아주셨음에 대한 감사를 고백하는 성도는 마땅히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즉 그분의 존재하심에 대한 정확한 가르침을 알고 그 믿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 가르침은 바로 “하나님의 한 본질은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이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며, 이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것에 따라 성경적인지, 아니면 이단인지가 결정된다.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이단들이 발흥하고 사라졌는데, 그 가운데 아직도 남아 있는 이단의 형태는 양태론이라는 이단이다. 이 양태론은 한 분 하나님이 계신다는 주장이며,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고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이단에는 지금도 존재하는 여호와 증인이나 몰몬교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양태론의 주장이 무엇이기에, 이단으로 규정이 되었을까?
양태론(modalism)은 한 분 하나님께서 어느 때는 성부로, 어느 때는 아들로, 또 어느 때는 성령으로 나타나신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자가 아니라, 성부께서 아들로서 육신을 입으신 것이 된다. 또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는 부분도 성부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는 논리를 펼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하여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삼위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사역하고 계심을 가르치는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다시 한 번 읽어 보자.
마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선언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사역을 위하여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이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성육신을 요구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에게 순종하심으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아들의 사역을 위하여 당신의 능력으로 함께 하심을 이 구절에서 배울 수 있다. 이처럼 한 본질 안에 삼위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의 구원 사역을 위하여 협력하여 모든 계획을 진행하시고 완성하심을 깨닫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삼위로 존재하고 계심을 계속하여 증언한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우리에게 믿음의 고백으로 내려온 사도신경이나, 니케아 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우스신경을 보아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고백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오직 한 하나님이 계신다. (2) 성부는 하나님이시다. (3) 성자도 하나님이시다. (4)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5)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다. (6)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다. (7) 성령은 성부가 아니시다.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삼위 하나님,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각 위의 하나님,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그 위격에서 분명히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한 분 하나님이 되신다. 그래서 신 6:4의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라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두 가지 핵심 단어는 “본질”(essence)과 “위격”(person)이다. 본질은 하나님 됨, 즉 하나님의 신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존재는 오직 한 본질이시다. 하지만 이 한 본질 안에 삼위로 존재하신다. 삼위 각각의 명칭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이시다. 이 삼위일체에서 세 위격은 모두 똑같은 신성을 지니신다. 한 분이 다른 분보다 더 많은 신성을 지니시지 않으시고, 본질적으로 더 신적인 존재가 아니시다. 위격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성경의 증거에 의하면, 비록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서로 구별되시지만, 동시에 온전히 하나 됨을 이루신다. 따라서 세 위격은 하나님이 셋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 위격이라는 표현은 삼위 하나님이 완전한 신성을 지닌 채, 서로 완벽한 교제를 나누시며 존재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삼위 하나님은 서로 섞이시거나 혼동되시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서 고백하는 바는 성부, 성자, 성령의 각 위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여 영광과 권능이 동등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WCF 2.1-2에서 고백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에 관한 내용은 삼위 하나님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에게 동등한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어느 곳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용어 자체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를 가르치거나 지지하는 성경 구절들은 많이 있다.
먼저, 많은 구절들은 한 하나님이 계신다고 가르친다(신 6:4; 사 44:6; 딤전 1:17). 딤전 1:17은 이렇게 말한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아버지라 불린다(요 6:27; 딛 1:4). 딛 1:4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을 지닌 존재라고 증거한다(요 1:1; 8:58; 골 2:9; 히 1:3; 딛 2:13; 요 20:28). 딛 2:13은 이렇게 말한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죄를 용서해주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서 신성을 모독한다고 비난받았다(막 2:5-9). 또한 성경은 성령의 신성을 말한다. 그는 “영원하신 성령”(히 9:14)이라고 언급된다. 때때로 하나님이 단순히 성령으로 바뀌어서 사용되기도 한다(고전 3:16; 6:19; 행 5:3-4). 행 5:3은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복수로 암시하는 성경 구절들에 의해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었다(창 1:1-3, 26; 시 2:7; 단 7장). 창 1:1-3의 창조 사역에서 삼위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도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과 성부,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고전 8:6에서 “한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과 더불어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서 언급된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동시에 언급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참조. 마 28:19; 갈 4:6; 고전 12:4-6; 고후 1:21-22; 13:14; 엡 1:13-14; 2:18, 20-22; 6:10-18). 특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실 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삼위일체 교리는 정통 교회를 떠받치는 기초석이 됨을 알 수 있다. 많은 성경 구절들이 이 교리가 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또는 암시적으로 입증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며, 이 고백을 바르게 할 때에라야 성도의 신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도가 이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하게 고백해야 하는 이유는 삼위일체 교리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하심에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명령, 즉 말씀을 통해, 그리고 성령의 운행하심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 사역은 삼위 하나님의 공동 사역이었다. 다음으로 타락한 인생을 거듭나게 하는 데 있어서도 삼위 하나님은 공동으로 사역하셨다. 성부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완성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적용하셔서 한 사람이 거듭나게 하시고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가 왜곡된다면 우리의 구원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기본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WSC 1문과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준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분의 존재, 즉 본질을 알 때에 가능하다. 물론 WCF 2.1-2에서 배운 대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아는 것도 동일하게 중요하지만,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완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으로 이루시고 진행하시고 완성하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를 바르게 아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본질 안에 삼위로 존재하신다는 이 놀라운 선언과 함께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바르게 깨닫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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