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문화원 향토역사
(중동) 두꺼비 바위, 이득심 송덕비, 당산나무
송은석(수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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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동 마을공동체 신앙 대상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쯤, 지금의 수성구 중동시장 인근 삼거리에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마을 제사를 지냈던 마을 제단이다. 당시 제단에는 당산나무인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아래에 ‘두꺼비 바위’와 ‘정경부인 이득심 송덕비’가 있었다. 1990년대 초 이곳에 도로가 나면서 마을 제단은 사라졌다. 이때 회화나무는 베어졌고, 두꺼비 바위와 송덕비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오랜 세월 중동 주민들의 기도 대상이었던 두꺼비 바위와 송덕비.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중동 두꺼비 바위
대구시 수성구청 정문 옆에 작은 돌덩이 하나가 놓여 있다. 이 돌덩이가 과거 중동 주민들이 마을 수호신으로 섬겼던 바로 그 두꺼비 바위다. 크기는 대략 길이 80cm, 높이 50cm 정도다. 1990년대 초 도로개설 때 수성구청 뜰에다 옮겨놓았다가 2021년 현 위치로 옮겼다. 두꺼비 바위는 언제 누가 무슨 목적으로 조성했는지 알려진 내용이 없다. 추측건대 두꺼비가 흉을 물리치고 길을 불러온다거나, 재물을 불려주고, 수해를 막아준다는 등, 전통 민간신앙에 기원해 주민들이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은 신천변에 자리한 마을로 지금처럼 튼튼한 제방이 있기 전에는 수해가 제일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이 나서 마을 제단에다 마을 수호신으로 두꺼비 바위를 모셨던 것 같다.
정경부인 이득심 송덕비
중동행정복지센터 앞마당에 작은 비 2기가 서 있다. 조선 말 고종 임금 때 궁중에서 상궁을 지낸 이득심이란 여인의 덕을 기리는 송덕비다. 그녀는 조선 말 국운이 기울자 상궁직을 사직하고 고향 중동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주민들이 흉년과 조세 부담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재산을 털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이에 주민들은 그녀의 은혜에 보답하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1923년 두꺼비 바위 곁에다 이득심 송덕비를 세웠다. 이 비 역시 1990년대 초 도로개설로 처음에는 중동경로당 앞으로 옮겨졌다가, 201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2기의 비 중 하나는 1923년 세운 옛 비이고, 다른 하나는 옛 비의 글자가 마모되어 1980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회화나무는 사라졌지만···
옛 사진자료를 보면 중동 마을 제단은 흙돌담을 배경으로 뒤쪽에 회화나무가 있고, 앞쪽에 송덕비와 두꺼비 바위가 좌우로 나란히 놓여 있다. 참으로 적절하고도 절묘한 배치다. 하늘로 뻗어 있는 회화나무[天], 땅에서 나온 두꺼비 바위[地], 그 사이를 살다 간 한 어진 여인[人]. 도시화·산업화 물결이 세차게 몰아친 1990년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옛것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개발이 너무 시급했던 것이었을까? 그래도 중동은 다행이다. 회화나무는 잃어버렸지만 두꺼비 바위와 송덕비는 남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