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우총 이야기
서영화
젖은 풀잎이 발밑에서 조용히 눌렸다. 몇 걸음 더 다가서자 낮은 비석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석에는 ‘의우총’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뒤편에는 돌로 새긴 여덟 장의 의우도가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다. 무덤은 작고 소박했지만, 그 앞에서자 이상하게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이미 이 이야기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두 달 전이었다. 한여름의 기운이 조금씩 물러가던 무렵, 성리학의 자취를 찾아 구미 금오산 자락의 성리학 역사관을 찾았다.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고 영남 성리학의 발자취를 모아 놓은 곳이었다.
전시실은 고요했다. 벽에 걸린 성현들의 글귀 하나하나가 마음을 다독이었다. 그러다 한쪽 벽에 걸린 화판 하나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무덤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성현의 묘인 줄 알았다. 다가가 보니 ‘목숨 바쳐 주인을 구한 소, 의우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소의 무덤 사진이 있었다. 사진 밑에는 이런 사연이 이어져 있었다.
해평 베틀산 근처 문수점에 살던 농부 김기년이 밭을 갈던 중 숲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와 그를 덮쳤다. 농부는 괭이를 휘두르며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곁에 있던 소가 달려들어 뿔로 호랑이를 들이받았다. 치명상을 입은 호랑이는 달아나다 죽었고, 농부는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으나 스무날 만에 숨을 거두었다. 주인을 잃은 소는 먹이를 거부한 채 눈물만 흘리다 사흘 뒤 주인의 뒤를 따랐다. 이 소식을 들은 부사 조찬한이 소의 충절에 감동하여 비석을 세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성현들의 글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었지만, 소의 이야기는 가슴 한쪽을 조용히 눌렀다. 전시실을 나와서도 그 사진이 자꾸만 떠올랐다. ‘언젠가 저 무덤에 가봐야겠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일상은 쉽게 약속을 흐리게 만든다. 그 다짐은 며칠 지나지 않아 흐릿해졌고, 그렇게 두 달이 흘렸다. 그러다가 집 앞 길가에 걸린 소싸움 현수막을 보는 순간, 잊고 있던 의우 이야기가 불쑥 떠올랐다.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이른 아침, 아직 공기가 차가운 구미로 향했다. 안내판 하나가 길가에 서 있었다. 큼직한 글씨로 ‘의우총’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민속자료 제106호’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무덤 앞에 서자 전시실의 사진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의 땅 위에 남아 있는 기억처럼 느껴졌다. 400년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가까워진 것 같았다.
의우도 가운데 한 장에는 호랑이가 덮쳐 김기년이 쓰러지는 순간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소가 땅을 박차며 달려들어 뿔로 호랑이를 들이받았다. 돌에 새겨진 소뿔이 호랑이 허리에 깊이 박힌 모습은 생생했다. 그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치 내가 그 당시를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숨이 막혔다. 나는 무덤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저세상에서는 주인을 만나 편히 지내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흘렀다.
현장에서 안내문을 읽다가 한 가지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 소는 우람한 황소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에 고개를 비비는 온순한 암소였다. 제 몸 하나 지키기에도 힘들었을 암소가 주인을 위해 몸을 던졌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소라고 해서 생각이 없고 감정이 없겠는가, 어지간한 짐승이었다면 주인을 두고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소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한 걸음 나아갔다. 그것은 본능을 넘어선 숭고함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지금까지 나에게 고마움을 준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답한 적이 없었다. 내가 소보다 못한 인간이 아닌지 자책이 밀려왔다. 말없이 주인을 따라 죽은 소 앞에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농업학교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자연스럽게 가축들과 가까이 지냈다. 닭과 오리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어 귀를 어지럽혔지만, 소는 늘 조용했다. 실습시간마다 친구들과 손수레를 끌고 베어 온 풀을 내밀면, 소는 천천히 다가와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그 눈빛에는 서두름도 욕심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씹고 또 씹을 뿐이었다.
예전 농촌에서는 들판에서 쟁기를 멘 소가 밭을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농부는 고삐를 쥐고 “어허이~” 소리를 내며 걸음을 맞췄다. 소는 그 뜻을 알아차린 듯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소는 농부에게 충직한 식구였고, 농부는 소에게 유일한 세계였다.
사람들은 흔히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말을 쉽게 한다. 겉으로는 도덕을 말하면서도, 욕심 앞에서는 쉽게 태도를 바꾸는 이를 흔히 보기 때문이다. 이해타산이 앞서는 세상에서, 주인을 위해 죽음을 택한 소의 선택은 오히려 사람인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한동안 무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덤은 작고 조용했지만,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오래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소처럼 무엇이든 잘 먹었고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했다. 친구들은 나를 ‘소야’라고 불렀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다른 감정 하나가 조용히 남아있다.
400년 전 이름조차 남지 않은 암소 한 마리가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눌러 놓고 있다.
* 2026 제8회 경상북도 이야기 보따리 공모전 (입상)
첫댓글 소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의우총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서영화 부회장님, 행사에 힘을 보태주어 든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