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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흥동(大興洞),
근심 있는 마을에서 크게 일어나는 마을로
개관
수성구 고산2동의 법정동인 대흥동은 대덕산(603.7m)에서 유건산(453m)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쪽(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은 구릉지, 북쪽은 평지인 남고북저형(南高北低形) 지형이며, 북쪽 경계지로 매호천이 흐른다. 대흥동은 동서남북으로 유니버시아드로, 월드컵로, 미술관로, 알파시티로, 달구벌대로, 대구도시철도2호선, 대구·부산고속도로 등이 통과해 접근성이 매우 좋다. 현재 대흥동 일대는 미래 디지털산업 핵심거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수도권 최대 ICT/SW 집적단지, SW융합산업 인프라 조성, 디지털 혁신 생태계 구축을 통한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 메카인 수성알파시티 등을 조성 중이다.
주요 공공시설로는 대구스타디움, 대구광역시체육회관,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등이 있다. 주요 유적·유물로는 삼국시대 고분군과 조선시대 고분군이 발굴됐다. 대흥동의 자연부락으로는 대밭각단, 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 꿩지(꽁지마을) 등이 있다. 1990년대 초까지도 대흥동 일대에는 양계장이 많았다.
지명 유래
과거 대흥동은 곡계(曲溪·谷溪), 곡기(谷己) 혹은 내곶(內串), 내관(內串)이라 적고 주민들은 ‘안곶이·안괵기·안곡계·안국기’라 불렀다. 동시에 대흥동 서쪽에 있는 지금의 삼덕동은 ‘외곶(外串)’ 혹은 ‘밧곶’이라 불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곶(串)’ 자가 ‘환(患)’ 자로 바뀌면서 내환동(內患洞)·외환동(外患洞)이 됐다. 이후 주민들은 내환동이란 마을 이름이 ‘내우외환(內憂外患)’을 연상시킨다며 개명을 요청했다. 2001년 주민 윤재길 씨가 제안한 ‘부자가 되라’, ‘크게 일어나라’는 뜻의 대흥동(大興洞)으로 지명이 바꿨다.
내곶(內串)은 대구스타디움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내곶이란 지명은 청계사가 있는 심천(深泉)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섯 마을(대밭각단-웃각단-아랫각단-숲골각단-꽁지)을 마치 꼬치를 꿰듯 언덕과 마을을 지나는 것에서 유래됐다. 경산현읍지(1785)에는 외곶계리(外串界里)와 내곶계리(內串界里)로 등재되어 있다. 곶계(串界)는 우리말 ‘고개’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대구간송미술관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낮은 산줄기를 경계로 서쪽을 외곶계리, 동쪽을 내곶계리로 표기한 것이다. 그 후 외곶계리와 내곶계리는 마을 이름을 두 글자로 줄이면서 각종 지리지에 외곶리(外串里)와 내곶리(內串里)로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는 내마리(內亇里)와 곶계리(串界里)로 표기되어 있다. 내마리(內亇里)는 ‘안쪽 마을’의 차자 표기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내환동에 대해 “인가가 있는 마을 가운데를 대덕산맥의 북방 돌출부가 관통하고 있어 마치 꼬치를 꿴 것 같아, 약 300년 전 동편을 내관(內串), 서편을 외관(外串)이라 칭하게 되었는데, 발음이 와전해 내환동이라 불리게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흥동은 대구무형문화유산인 ‘고산농악’이 전승되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도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고산농악을 중심으로 마을 당제를 지내고 있다. 대구스타디움 종합안내소 서편 월드컵로 너머 길가에 보호수로 지정된 대흥동 하당(숲골각단) 당산나무가 있다.
고산농악
고산농악(대구무형문화유산)은 ‘대밭각단·웃각단·아랫각단·숲골각단·꽁지’ 등 수성구 대흥동 옛 다섯 마을을 배경으로 자생 전승되고 있는 농악이다. 고산농악은 1990년대 고산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맥이 끊어지지 않고 현재까지 잘 유지 전승되고 있다. 마을 당제와 함께 행해진 고산농악은 크게 ‘당산제굿’, ‘지신밟기’, ‘판굿’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산제굿(천왕내림굿)은 풍농·안택·가축무사 등 지역민들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례다. 상당산제굿(성짓골), 중당산제굿(대밭 뒤), 거리굿, 하당산제굿(숲골각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신밟기는 당산제굿을 통해 내린 신을 모시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신을 달래고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문굿·성주굿·조왕풀이·장고방풀이·용왕풀이·고방풀이·방앗간풀이·마굿간풀이·마당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판굿은 고산농악의 마지막 절차로 주민 모두가 한데 어울려 대동제를 즐기는 자리다. 모두 12마당으로 ‘입장·인사·태극놀이·이열놀이·오열놀이·닭쫓기·오동놀이·멍석말이·농사굿·판굿·살풀이·인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산농악만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일반 고깔의 두 배 크기인 큰 고깔을 들 수 있다. 고산2동커뮤니티센터 지하 1층에 ‘고산농악보존회’가 있다.
꽁지·꿩지·꿩정 마을
꽁지 마을은 대흥동 자연부락으로 지금의 수성 TG와 달구벌대로 사이에 있었던 작은 마을이다. 꽁지마을은 원래 ‘꿩지(雉地) 마을’이었는데, 발음상 꽁지 마을이 됐다. 꽁지 마을에는 흥미로운 지명 유래가 전한다. 옛날 사월동에 살던 정씨(鄭氏)가 묏자리를 쓰려고 땅을 팠는데 땅속에서 돌판이 하나 나왔다. 이 돌판을 들추니 꿩 한 마리가 나와 날아갔다고 한다. 정씨는 꿩이 날아가 앉은 곳에 묘를 썼고, 꿩이 날아가 앉았다고 해서 ‘꿩정’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다.41) 꿩정이 곧 꽁지마을이다. 당시 일곱 묏자리를 썼는데 오랜 세월 꽁지마을에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이곳에 묘를 쓴 후손들은 모두 잘살게 됐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설로는 꽁지 마을이 대덕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북쪽 꽁지에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다. ‘꿩지(雉地)’라는 지명은 꽁지 마을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글자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1954년 항공사진에 들판 가운데 자리 잡은 10호 규모의 작은 꽁지마을이 보인다.
41) 조선지지자료 경산편 참조.
곡계서당(曲溪書堂)42)
곡계서당은 옛날 대흥동에 있었던 서당이다. 1905년 을사늑약 직후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참지 못해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6) 선생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송병선은 동생인 심석재 송병순과 함께 당시 이름난 유학자이자 독립유공자였다. 송병선은 곡계서당에 ‘원원심천수불절류(源源心川水不絶流)’란 글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훈장은 황갑성(黃甲性)이었다. 곡계서당은 대구스타디움 종합안내소에서 대구광역시체육회관 가는 길 중간쯤 오른쪽 산자락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42)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굴통바위·굴뚝바위43)
대덕산 정상 부근에 굴통바위라는 작은 바위굴이 있다. 전하는 말로는 옛날 이곳 굴통바위에 대덕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44) 굴통바위에는 몇 가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약 50년 전, 산 아랫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가 가뭄이 심하면 굴통바위에서 초를 켜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새벽에 굴통바위에 올라갔는데 항상 호랑이가 앞장서 길 안내를 해주었다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내호댁’이라 불리는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어 아들 점지를 위해 새벽마다 굴통바위에 올라 기도를 했다. 그때마다 호랑이가 할머니 앞에서 길 안내를 했다고 한다. 또 전하는 이야기로는 약 45년 전 굴통바위 인근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굴통바위 안에는 작은 샘이 있다. 옛날에는 대덕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굴통바위로 가 이 샘물을 먹었다고 한다. 1980-90년대에는 무속인들이 굴통바위 앞에 움막을 짓고 기도처로 삼기도 했다.
43) 고산2동 주민자치회·행정복지센터, 고산마을계획연구소, 고산2동 마을이야기, 2020, 14쪽.
44) 대덕산을 끼고 있는 고산은 인근 범물동과 더불어 호랑이 전설이 많이 전한다.
대닥골45)
박봉연(밀양 박씨)이란 인물이 임진왜란 때 피신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의 대구체육공원 암벽등반장이 있는 골짜기쯤 된다.
45)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대밭각단46), 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 꽁지
대흥동은 대덕산 심천골에서 발원한 실개천이 북쪽으로 다섯 마을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이 마치 꼬치를 꿰는 모습을 닮아 ‘내관동·내곶동(內串洞)’이라 했다. 과거 대흥동에는 다섯 자연부락이 있었다. 실개천 흐름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대밭각단, 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 꽁지가 있었다. 대밭각단은 대구스타디움 종합안내소와 대구광역시체육회관 사이에 있었다. 1954년 항공사진에 25호 정도 민가가 보인다. 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은 현재 대구스타디움 서쪽에 있는 마을로 남에서 북으로 차례대로 형성되어 있었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웃각단에 35호, 아랫각단에 20호, 숲골각단에 15호 정도 민가가 보인다. 꽁지는 수성 TG와 달구벌대로 사이에 있었는데, 1954년 항공사진에는 10호 정도 민가가 보인다. 현 대구스타디움에서 달구벌대로에 이르는 넓은 들을 내환들이라 불렀고, 동쪽은 논농사, 서쪽은 밭농사를 주로 했다.
한편 과거 대흥동에는 민속신앙으로 ‘섣달그믐 우물 불 서기’, ‘당산나무 비손’, ‘상당 기자 신앙’ 등이 있었다. ‘우물 불 서기’는 섣달그믐날 밤에 마을 공동 우물 두레박에 작은 불씨를 담았다가 다음 날 새벽에 제거하는 풍습이었다. 이는 한 해 동안 우물이 맑기를 기원하고 마을에 흉사가 없기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이었다. ‘비손’은 당산나무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고, ‘상당 기자 신앙’은 상당47)에서 아들 점지를 바라는 민속신앙이었다.
46) ‘각단’은 특정한 야산이나 강을 경계로 몇 집씩 드문드문 모여 있는 마을을 뜻한다. ‘깍단·듬·덤·뜸’이라고도 한다.
47) 과거 대흥동에는 상당, 중당, 하당 세 곳의 동제당이 있었다. 상당은 성짓골, 중당은 대밭각단, 하당은 숲골각단에 있었다. 이중 하당은 유니버시아드로 조성으로 사라졌다. 현재는 옛 중당을 하당으로 삼고, 새로운 중당을 점지 받아 활용하고 있다.
대진지(大眞池)
대진지는 대구스타디움 북쪽에 있는 못이다. 과거에는 인근에 있었던 외지와 더불어 내환들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원이었으나, 대흥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지금은 수변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대진지에 대해 “예부터 마을에 2개의 저수지가 있었는데 본 저수지가 크므로 대지라고 불렀다가, 26년 전에 확장 개수하여 크고 완벽한 저수지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대진지라 칭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석은딤48)
청계사 뒤편(남쪽) 골짜기 안이다. 이곳에 옛 절터가 있고 맞은편에 탑골이 있다. 사라진 옛 절에는 전설이 하나 전한다. 이 절 스님이 고기 생각이 나서 하루는 마을에 내려가 쇠고기를 먹고 절에 돌아가 잤다. 그때 하늘에서 “상좌야, 상좌야” 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천둥소리와 함께 절은 무너지고 3층 석탑만 남았다고 한다. 3층 석탑은 광복 이후까지도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 곳으로 옮겼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절의 흔적이 남아 있다.
48)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봉화로49)
대흥동 남쪽에는 대덕산-병풍산-안산-성암산 등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데 옛날 이 능선이 봉화를 놓아 통신하던 곳이란 뜻에서 봉화로라 불렀다고 한다.
49)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심천골(深泉谷)·심청(深靑)·심칭이골·모산들
심천골은 지금의 청계사가 자리한 깊은 산속 작은 샘으로부터 시작된 골짜기다. 심천골을 다른 말로 ‘심청(深靑)’이라고도 불렀다. 심천골 입구에 있는 내관지(內串池)는 2000년 준공된 저수지로 2023년 수면 위로 걸을 수 있는 데크를 설치하는 등 수변공원으로 지역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심천골 물은 북쪽으로 흘러 대흥동 다섯 마을인 대밭각단-웃각단-아랫각단-숲골각단-꽁지마을을 마치 꼬치 꿰듯 흘러 매호천에 합류한다. 대밭각단과 심천골 사이를 성지골(대구광역시체육회관 인근)이라 불렀다. 모산들은 현 대구스타디움 종합안내소-대구광역시체육회관-내관지로 이어지는 좁고 긴 골짜기에 있었던 들로 1990년대까지 주로 논으로 이용됐다.
원정지50)
대구스타디움 서쪽에 있는 못으로 외환동과 내환동 경계에 있다. 원정지란 이름은 옛날 이곳에 원(元) 정승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최근까지도 기와 파편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50)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외지(外池)와 개골못·계곡지·개골
외지는 과거 지금의 대구스타디움 제1주차장 자리에 있었던 못이다. 지금의 대구스타디움 북쪽에 있는 대진지와 비슷한 규모였는데, 매립 후 대구스타디움이 조성됐다. 개골못은 대구광역시체육회관 북쪽 언덕 너머 약 200m 지점에 있는 작은 못이다. 개골못 북쪽 골짜기를 개골이라 불렀다.
장군바위 전설51)
옛날 대덕산 청계사 밑에 있었던 집채만 한 크기의 바위다. 옛날 이름 모를 장군이 이 바위에 앉았다고 해서 장군바위라 불렀다. 장군이 앉았던 자리에는 바위가 의자처럼 푹 꺼진 모양이었는데 딱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고 한다. 또 인근 바위에는 장군이 탔던 말 발자국이 몇 개 찍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로 사라져 확인이 힘들다.
51) 고산2동 주민자치회·행정복지센터, 고산마을계획연구소, 고산2동 마을이야기, 2020, 13쪽.
진띠미·진디미52)·침지골
옛날 이곳에 진씨 부자가 살았는데 집을 찾는 손님이 많아 안주인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안주인이 한 노승에게 자기 집에 손님이 오지 않게 할 방법을 물었다. 노승은 지금 집 앞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산 반대편으로 돌리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안주인은 노승의 말대로 산자락을 끊어 물줄기를 돌렸다. 그때부터 진씨 부자는 살림이 기울어 가난해졌고 손님도 끊겼다. 사람들은 산의 혈맥을 끊어 운이 없어졌다고 했다. 진띠미 위치는 현 대구스타디움과 고산정수장 사이쯤이다. 1980-90년대 지도에는 이 지역을 ‘침지골’로 표기했다.
52)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터진못·퇴진못53)
대흥동 마을 위쪽(남쪽)에 옛날 큰 못이 있었는데 못물이 ‘지근바위’까지 찼고 못에 산갈치가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어느 때인가 못이 터져 못둑만 남아있었으며, 못둑 자리에 포도와 기타 작물을 재배했다. 1970년대 이 못둑 안쪽에 관정을 팔 때 나무로 만든 굴통(못물 통로)이 여러 개 나왔다고 한다. 당시 그 나무를 잘 관찰했다면 이곳에 있었던 못의 조성연대나 규모 등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기만 하다. 위치는 현 대구광역시체육회관 인근으로 추정된다.
53)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7쪽.
한질54)
대흥동 마을 아래쪽(북쪽)에 동서로 길게 난 길이었다. 이 길은 옛날 서울로 향하는 길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내왕하던 길이었다. 지금의 대구스타디움 북쪽 유니버시아드로에 해당한다.
54) 수성문화원, 대구수성지역 무형문화재의 원형보존연구, 2017,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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