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은 편협적이다.
목화토금수 5행중에서 한부분인 20%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이해하면서 살게된다.
丁 癸
위 둘은 모닥불과 비의 관계이다.
둘이는 사이가 나쁘다.
양과 음의 관계이다.
서로 극하는 관계라서 사이가 좋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편협적이게 된다.
모닥불이 자신이라 비오는 날이 싫다. 안개끼는 날도 싫다.
비만 보면 다 싫어한다. 내 불이 최고가 된다.
그러나 가운데에 산이 있을때는 완전 달라진다.
丁戊癸
둘사이에 산(戊土)가 관여를 함으로 조화를 이루는 격이 된다.
이렇게 되면 성격이나 성향이 모두 달라진다.
모닥불은 수완이 있어지고 비가 싫지가 않다.
충분히 자신이 다루는 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비를 싫어할 리가 없다.
이처럼 한 글자에 따라서 기운이 달라진다.
이와 같이 사람은 많은 부분을 이해하면서 살아야 한다.
한 부분만을 이해하면 편협적이기 딱 좋다.
허리통증을 앓아본 사람들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프다고 말한다.
요로결석을 앓아본 사람들은 그 병이 가장 아프다고 말한다.
두통이오고 어지럼증이 심한 사람들은 그것이 가장 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병을 이해해줄 아무런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이 바로 편협적이며 목화토금수 중에 木만을 이해하는 부분에 해당한다.
이해는 목화토금수 5행의 이해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음양오행기운의 방대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때 원리의술 저자인 저는 선도의술 몸공부를 하면서 기고만장한 때가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병을 고치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무서울게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기양양하던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 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분명 아무게는 중풍에 걸릴 사람인데 선도기법을 하면
반드시 좋아지는데 체험을 하지않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중풍을 맞는 사람을 보고, 또한 중증진단을 했음에도 암에 걸린 사람을 보고,
죽어버린 동창을 보며, 뭔가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
인연이란 것과 삶이란 것에 대해서 뭔가 착오에 빠지게 되었다.
내 맘대로 안되는 본래의 위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를때 정신세계 공부는 낮은 개념이다.
지하철의 노숙자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심한 쓰레기들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의기양양 거리며 열심히 성공해서 되었다고 말한다.
그 성공하게 한 것은 다름아닌 정확한 원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몸이 건강이라는 것도 작은 부분에 속한다.
일단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모든 사물의 근본은 몸이지만 그 몸보다 큰 것은 깨달음이다.
아무리 선도기법이 우수하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영원히 살게 할수는 없다.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강도나 절도범을 건강하게 해줘봐야 의미없는 일이다.
정신이 그릇된 사람들의 건강은 별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사람이 건강해지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건강이라는 것도 환자는 미칠일이지만
정신이 맑고 건전해야 병을 고치는데 의미기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항상 편협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국 전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
그것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사상 대립이다.
도심주를 심어야 한다. 도심주란 도(道)란 태극을 의미한다.
태극은 음양이 없는 단계이다. 무심이다. 무심이란 음양의 없으므로
편가르기를 하지 않는 단계를 말한다.
기독교, 불교, 통일교, 이슬람교, 증산도, 대순진리교, 원불교,.
각종 교파가 바로 자기종교만을 주장하는
음양오행의 한 부분만을 이해하는 무서운 집단이 된다.
예수님이 창녀에게 손을 내밀수 있었던 것은 음양오행의 전체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자기안에 음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된 음양오행 공부의 이해이다.
만물은 조화로 돌아감을 바로 알아야 진정한 공부가 된다.
큰우주의 작은 우주의 연속적인 집합체이다.
관상도 맞고, 손금도 맞고, 홍채도 맞고, 성명학도 맞고,
지문도 맞고, DNA만 보아도 사람을 알수 있는 것이다.
손톱을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귀를 보아도 병을 알수 있으며
얼굴을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사주를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관상을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홍채를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발을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손금을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뼈를 보아도 병을 알수 있고
유전자 구조를 보아도 병을 알수 있는 것은
인체는 무수한 소우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며 큰 것이 큰 것이 아니다.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치이다.
세상을 조화로 바라봄이 가장 원리에 근접한 것이다.
병고치는 사람이 있고
목욕탕 때밀이가 있고
우리가 맨날 욕하는 정치인이 있고
장인정신을 가진 목공인이 있고
시골에서 뙤약볕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고
몸을 팔면서 술집으로 가는 여자가 있으며
연예인이 있고
영등포, 서울역의 노숙자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사랑하던 부인이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와 떠나갈때
그것을 이해해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음양오행의 역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적어도
많은 부부을 이해를 한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인줄 알지만
서로 원수가되고 죽이네 살리네하고 욕하지만
그 원인이 내 안에 내 사주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런이야기를 할수가 없는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모든 원인이 내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신공부가 바로 사주역학인 것이다. 근본공부인 것이다.
이것에 비해 인체의 원리학 공부는 빈 껍대기 공부인 것이다.
대부분의 득도한 성인들은 역학에 매우 밝았다.
무엇이든지 대충 공부하면 무서운 사람이 된다.
인체도 대충 알면 사기꾼이 되며
역학도 대충알면 사기치기 딱 좋으며
농사법도 대충알면 망쳐 버리기 딱 좋은 것이다.
쇠를 가공하는데 대충하면 불량품이 나오는 것이듯이
인체도 대충공부하는 사람은 안하는 이만 못하다.
말만 살게 되면 안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신농법 사주학은 자연의 원리학이고 대한민국 사주학이다.
출처: 원리역학(신농법사주학) http://www.tdmc.co.kr 글 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