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아동문학17소백산물푸레나무2007(여자다리를 찾던 아이)

[여영 김영애]

여자다리를 찾던 아이 

선구가전학을 간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빈자리다. 그런데 나는 선구의 교과서랑 학습 결과물을 내 손으로 싸서 숙모의 손에 건네주고도 아직 선구의 전학을 믿지 않고 등교를 기다린다. 오늘처럼 빈 책상 위에서 얼굴을 내밀고 쌔액 웃고 사라지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선구는작은 몸과 까만 피부로 결코 이목을 끄는 외모는 아니지만 털털한 성격과 헤벌어지게 웃는 맑은 얼굴로 교실을 일렁거리게 하는 대단한 아이였다. 

선구는수업 분위기를 깨는 선수이기도 했다. 늘 수업 분위기를 간신히 잡아 놓으면 이놈은 ‘내가 좀 깨면 어때요?’라는 듯이 제 맘대로 하고는 앞니가 다 빠진 잇몸을 들어 내놓고 쌔액 웃어 버리는 거다. 그러면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애들도 킥킥 따라 웃고 그만 우리 교실은 출렁이는 물위에서 까딱거리는 돛단배가 되는 것이다. 

우리반 아이들은 만들기, 꾸미기를 곧 잘 한다. 빈 사발면 그릇이나 컵라면 겉면에 색종이를 오려 붙여 코와 입을 만들고 단추를 붙여 눈을 만들고 털실을 붙여 머리를 꾸민 솜씨는 대단하다. 진열해두고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있어도 사방에 둘러 선 사발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 든다. 특히 털실로 만들어 낸 머리카락 표현 솜씨는 정말 놀랍다. 단발머리, 파마머리, 쫑쫑 땋은 머리, 긴 생머리, 굽실굽실 휘날리는 멋쟁이 머리. 뽀글 머리 등 너무도 다양하여 조용한 시간에 보고 있노라면 기특한 생각이 들어 웃음을 머금는다. 

그날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즐거운 생활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준비 해온 신문, 잡지 등의 자료 들을 책상위에 잔뜩 늘어놓고 이것저것 골라가며 손길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위를사용하는 시간이니 조심해서 다루라는 말과 몇 가지 주의를 주고 작업을 시작했다. 도란도란 주고받는 말소리에 사각사각 가위질 하는 소리가 어울려 교실이 경쾌하다. 이렇게 무엇인가 꾸미기 하는 시간이 좋아 연신 재잘대는 소리가 날 뿐 제각각 부지런히 열중하고 있어 그 날도 아마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여자다리! 여자 다리 이!” 

하고선구가 분위기를 깨면서 소리쳤다. 

그러나그날은 반응이 좀 달랐다. 모두들 제 일에 열심이니 선구가 찾는 ‘여자 다리’에 관심이 없어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그러자 선구는 엉덩이를 들었다. 가벼운 몸을 세우고 폴짝거리며 이 모둠 저 모둠을 기웃거리더니만 그래도 목적 달성을 못한 모양이다. 급기야 까맣고 바짝 마른 얼굴에 웃음을 얹어서 깡마른 다리로 개다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ꡒ여자다리! 나, 여자 다리가 필요해. 여자 다리가.ꡓ하고 강중거리며 모둠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생각해보면감기라며 결석한 이틀과 무단결석이 수상했다. 

선구는아프다며 두 번 결석을 한 적이 있지만 그 때마다 전화로 아프다고 알려 왔기 때문에 걱정은 안했는데 며칠 계속된 무단결석은 좀 이상했다. 결석 이틀 째 선구네 집으로,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수없이 전화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선구 아버지의 직장에 까지 전화해 ‘지금 자리에 없으니 전해 주겠다.’ 는 말을 들었으나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분명 선구의 결석에 문제가 있다는 감이 잡혔다. 

선구의소재를 밝히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나갔다. 지난 두 번의 병결까지 의심이 갔다. 

‘어쩐다?분명 선구는 학교에 오고 싶을 텐데.’ 

선구에게학교는 신나는 곳이었다. 내가 특별히 신경 써 주지 않아도 항상 웃고 활기차며 재미있어 했고 다른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기도 했다. 남들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선구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선구의무단결석 닷새 째 뜻밖에도 할아버지 음성의 전화를 받았다. 

화난목소리의 할아버지는 ‘어! 참.’ ‘어! 참.’을 연발하면서 난감해 했으며 혹시나 하는 예감을 역시나 하는 현실로 확인해 주었다. 선구는 엄마 없이 살아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아버지마저 없이도 살아야 할 것이다. 

ꡒ우째면되겠니껴?ꡓ할아버지가 한숨을 섞어 물어 오셨다. 

ꡒ우선거기서라도 학교에 보내세요. 어디서건 공부는 해야지요.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오면 데려오세요.ꡓ 

하루종일 할아버지의 빈 집을 지키게 할 수 없어 전학을 권하고는 참으로 답답했다. 당분간 엄마와 별거하는 아이로 자라 가야 할 선구가 안쓰러워 가슴이 아려 왔다. 선구는 멀리 간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려도 되는 걸까? 안되는 경우, 엄마가 없는 것 보다는 새엄마라도 생기는 게 나은 걸까? 어떤 경우이든 선구와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딱하기만 했다. 

그날 선구는 개다리 춤을 추어가며 결국 뜻하던 여자 다리를 얻었다. 꼬불랑 머리의 흑인 여자의 얼굴 밑에 넥타이가 멋지게 메어 진 잘 빠진 자켓을 받쳐 놓고 바지는 빼먹은 채 자켓 아래에 어렵게 구한, 날씬하고 길다란 여자 다리를 바로 붙이고는 워커를 신겨 놓은 익살스런 사람의 모습을 캔트지에 붙여서 검사를 받으러 나왔다. 우리 반은 선구가 꾸민 작품을 보고 모두 포복절도를 했다. 아이들이 웃는 게 좋았던지 저도 까만 얼굴에 주름이 일도록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웃어댔었다. 

아프다며오지 않은 그 날도 사실은 부모의 불화가 원인이었다고 짐을 가지러 온 숙모가 일러주었다. 빠진 앞니를 내 보이며 감기를 앓았다고 말 하더니……. 

부모의불화는 제 잘못이 아니란 걸 채 일러주기도 전에 그것을 저의 수치로 알고 남이 알세라 작은 몸짓으로 숨기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온종일 생글거리며 보낸 어린 가슴을 생각하니 새삼스레 안쓰러워지는데 아침마다 학교 가는 시간이면 집 뒤곁에서 훌쩍거리고 울었다는 말은 마침내 내 눈에 눈물이 핑 돌게 했다. 상황판단이 빠른 아이니 그랬을 것이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고 할아버지가 아시면 걱정하실 테니 우는 것도 숨어서 울었으리라. 

ꡒ금방적응할 겁니다. 영리하거든요.ꡓ 

선구의보따리를 손에 들려주며 숙모에게 말했다. 

듣기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선구는 싸우지 않고, 빼앗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웃음을 주고 마침내 목적하는 바를 얻어내는 슬기를 가진 아이다. 여자 다리를 얻어 낸 그 엄청난 능력이라면 예전 같은 가정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다리면서 할아버지 마음을 읽어 제 일 뿐 아니라 두 동생을 보살피는 생활까지도 잘 해낼 것이다. 

그렇잖아도이 빠진 얼굴로 입을 헤벌려 생글거리는 얼굴이 선구의 책상 위에서 맴돌고 여자 다리를 소리쳐 찾던 목소리가 들려 와 전학 서류를 하기 위해 출석 일수를 계산하는 마음이 산란스러운데 숙모는 그냥 가면 될 것을 선구가 꼭 우리 교실로 오려고 애를 쓴다는 말은 왜 하는가? 

선구가전학을 간지 보름이 넘어 좌석이 앞니 빠진 선구 이처럼 되었지만 왠지 ‘여자 다리’를 외치며 강중거리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 올 것만 같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와 이제 안심이 된다는 생글거리는 웃음으로 다시 우리 교실을 출렁거리게 해줄 것 같아서 좌석 정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빠진자리에 이가 돋아나 메워지듯이 선구가 돌아 와 다시 빈 좌석을 채워 주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