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복음관, 회심관, 중생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피터 마스터스의 '영혼의 의사'에서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개혁주의 복음관, 회심관, 중생관 이해하기
- 영혼의 의사 2장, 4장, 7장을 중심으로
2장 복음의 개념에 대한 바른 정의
(p.27)
복음은 ‘성경의 모든 내용’과 동의어가 아니다
저는 25년 전 북미의 한 유명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 취임식에 방문해서 크게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새로 취임한 목사는 교회당 가득 들어찬 회중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복음’이 구원을 주제로 설교하는 것만을 뜻한다는 생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는, 복음이란 ‘하나님의 모든 뜻’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믿음과 관련된 모든 교리들을 설명함으로써 곧 ‘복음’을 설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매우 유능한 이 설교자가 복음전도에만 맞춘 특별설교를 이제는 자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교회는 줄곧 전도설교가 강점이었기 때문에, 그가 사역하는 동안 그 크던 교회가 엄청난 침체를 겪고 말았습니다. 중요하게 쓰임 받던 하나님의 종이 ‘복음’이란 단순히 ‘성경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동의어일 뿐이라는 철학에 굴복하고 만 것입니다.
(p.28)
복음은 영혼구원을 위해 선포되는 특정한 내용이다
4장 회심에 대한 바른 이해
(pp.48~49)
회심은 하나의 과정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최초의 동인이 되셔서 그 사람이 복음을 듣거나 생각하는 중에 그 사람을 중생시켜, 그 사람의 죽은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나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며, 역사적인 여러 신앙고백서들은 이것을 ‘효과적인 부르심’이라 부릅니다. ‘중생(regeneration)’은 성경과 신자들의 일상용어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생이나 새로운 출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성경구절들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첫째, 중생은 죄인의 회심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critical moment)을 의미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에 영적 생명의 씨를 심으셔서(복음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지성과 감성과 의지에 깊은 영향을 미치시고 회심에 뒤따르게 되는 모든 일들을 가능케 하십니다. 이런 의미의 중생은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새 생명의 조성자이심을 강조합니다.
둘째, 중생은 시작단계에서부터 새 생명이 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회심의 전 과정(whole process)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중생을 생명이 영혼에 들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회심을 중생 이후에 발생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새로운 출생의 비유를 사고의 모델로 삼는다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자연적 출생은 회심의 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 주는 예화입니다. 실제로 생명이란 수태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생명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의 발전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중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시점에 맞춰 각 부분이 발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회개와 믿음과 같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그러고 나서야 영적 생명을 의식하며 누릴 수 있게 됩니다.
(pp.57~58)
회심의 5단계 과정
한 개인의 구원은 참으로 중요한 사건인데, 여기에는 다섯 개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단계들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회심의 주도적 역할을 하신다는 성경구절들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초기(initial) 중생의 관점에서 회심의 과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회심에 대한 묘사는 수태에서 시작해서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출생의 사건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초기중생을 ‘수태(conception)'라고 부릅니다.
회심단계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동시적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는 기독교의 복음에 대한 분명한 빛과 죄에 대한 확신을 얻은 후에도 상당 기간 구도와 분투를 체험했다고 간증합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개의 단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단계 모두를 분명히 이해할 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 설교자의 결정적인 임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언제 구원을 제시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영적 수태: 초기 중생
2. 각성과 죄에 대한 확신: 동시 사건
3. 회개와 믿음: 동시 사건
4. 칭의와 (의식적인) 새 출생: 동시 사건
5. 확신
(p.68)
회심 과정에 있어 시간이 걸리는 단계들
예수님은 한 사람을 구원하실 때, 외과의사가 골절수술을 하는 것처럼 하지는 않습니다. 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마취에서 깨어나면 본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수술이 끝나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의 수술과정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은혜의 수술과정은 죄인이 완전히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참여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자기의 의지를 녹이실 때, 그는 분명하게 가르침을 받아서 지적으로 확신을 하게 되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전적으로 맡기면서 복음의 약속들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구원의 다섯 단계 중에서 3단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 수태는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입니다. 네 번째 단계인 칭의와, 의식적이며 가시적인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네 번째 단계 사이의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는 지속적일 수도 있습니다. 각성과 죄에 대한 확신의 경험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회개와 믿음을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지체가 되는 것은 언제나 죄인의 책임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즉각성을 내포하고 있는 ‘구하라-찾으라-두드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섯 번째 단계인 구원의 확신도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권면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7장 중생은 순간적인가, 연속적인가?
(pp.116~117)
전통적인 칼빈주의 중생관은 연속적 중생관이다
칼빈주의자들이 가졌던 전통적이면서 관습적이던 중생의 개념은 더 탄력적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 장에서 ‘연속적(elongated)' 관점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칼빈이 이러한 입장을 취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중생이나 새로운 출생을 다소 넓은 의미로 사용’했고, 그 용어를 ‘사람이 새로워지는 전체 과정을 나타내는 매우 포괄적인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새로운 생명을 출발케 하는 신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회심 (즉, 회개와 믿음)과 성화까지도 포함’ 시켰습니다.
연속적 중생관은 중생을 ‘발생’과 ‘출산’의 두 요소로 구분한다
연속적 관점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중생을 보통 두 개의 주된 요소로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서, 벌코프는 그것을 ‘재출생(begetting again)’과 ‘새출생(new birth)’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둘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발생(generation), 혹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 그리고 ‘출산(bearing), 혹은 해산함’ 이라고 해서 둘 사이의 유사점을 구별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처음에 영적 생명이 심겨진다고 해서 완전한 영적 깨달음과 모든 은혜를 얻게 된느 것은 아닙니다. ‘초기’의 중생은 일반적으로 순간적인 것이며, 이후에 출산 과정이 따라옵니다.
벌코프의 묘사에 의하면, 중생의 처음단계는 의식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은밀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통해 죽었던 죄인이 생명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어 자발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죄인은 수동적입니다. 하지만 전체 회심의 과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초기중생이 지속적으로 효과를 발휘함에 따라, 회심자는 지적이고 의식적으로 설득되어 자신의 죄를 완전히 깨닫고 회개와 믿음에 이릅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을 때에만 중생의 완전한 축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벌코프는 두 번째 단계를 ‘새로운 생명이 그 은밀한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드디어 밖으로 드러나게 되는 때’라고 부릅니다.
이런 연속적인 중생의 입장을 견지하는 칼빈주의 저자들은, ‘중생은 회심으로 끝난다’ 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중생은 일종의 과정입니다. 초기중생이 혜성의 머리와 같다면, 혜성의 꼬리는 회심에까지 이른다는 것입니다. 초기중생은 회심의 모든 측면들을 한순간에 드러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회심의 모든 것에 이르게 됩니다.
(pp.126~129)
순간적 중생관의 원조는 존 머리 교수다
지난 50여 년 동안 이 순간적 중생관을 주장해 온 주요 인물은 고 존 머리 교수입니다. 그의 신학적 업적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36년 동안 강사로, 또한 교수로서 조직신학을 강의했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중생에 대한 접근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표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개혁주의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광범위한 저작물들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가치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로마서 주석은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에 가장 심오하고 만족스러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존 머리 교수는 개혁주의 전통의 시금석으로 볼 때 변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그런 견해는,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방어하고 있는, 설득적인 전도와 같은 것을 한순간에 파괴해 버립니다. 존 머리 교수의 책인 ‘구속과 성취의 적용(Redemption-Accomplished and Applied)’ 은 3대에 걸쳐 설교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순간적 중생에 대한 견해가 바로 이 책에서 강력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대부분의 입장에 대해서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뛰어난 관찰과 놀라운 논증들이 풍부합니다. 단지 순갅거 중생을 개진시키는 구절들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순간적 중생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대활르 나누면서 발견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을 ‘구속과 성취의 적용’에서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 저명한 저자는 무엇보다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모든 회심의 저자이시고 주도자가 되신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한 개인의 구원은 일련의 행위이며 과정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간상 일어나는 일련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행위들이 순간적입니다. 부르심, 중생, 칭의 그리고 양자 됨 등은 일련의 계속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머리 교수는, 그것들이 ‘한 순간적인’ 행위라고 주장합니다.(Banner of Truth, 1995, p.87) 이 전면적이고 순간적인 행위가 회개와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장에 우리는 이것이 대륙의 개혁주의자들의 입장도, 영국 청교도들의 입장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위대한 신앙고백서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도 아닙니다. 이전의 견해들은 모두 다 갈등, 의심, 가책, 확신의 시작, 심지어는 죄인이라는 확신을 어느 정도 거부하려는 것들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독자들은 퍼킨스의 황금사슬에 나오는, 중생 이후에도 남아 있는 ‘전투’라는 단계에 익숙할 것입니다.)
머리 교수는 초기의 중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중생이 회심에 이르게 한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중생할 때 전적으로 수동적이 되며, 그 중생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전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합니다. 회개와 믿음은 단지 그 결과이거나 열매일 뿐입니다. 그는 성경에서는 ‘중생과 다른 생명의 열매들이 언제나 동시적으로 등장하거나 동등한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그가 조명, 죄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부르심, 중생, 칭의 그리고 양자 됨 등이 절대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믿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머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믿는 것은 우리가 이미 중생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우리가 말하는 초기중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온전하게 구원을 받았고 전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죄의 권세에서부터 이미 구원함을 받은, 모든 중생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더 이상 죄의 노예도 악한 자의 종도 아니다. 이것은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중생한 사람은 회심한 사람이고 믿음과 회개를 실행하게 된다는 뜻이다.”
머리 교수는 믿음과 회개가 이미 마음과 생명이 전적으로 변화된 즉각적인 열매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지체되는 것은 없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도, 추구하면서 씨름하는 기간도 없습니다. 중생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것인데, 한 순간에 모든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인간적인 수준에서 말할 때, 설득과 의식적인 반응은 불필요합니다.
머리 교수는 중생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전의 저자들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않은 채, 그들의 입장을 자기가 왜 거부하고 있는지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제5장의 회심단계에서 다룬 구원의 수많은 단계들에 대한 구절들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회개와 믿음 이후에 구도자들을 위해 어떤 크신 일을 행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많은 성경구절들과 자신의 순간적 중생에 대한 견해를 조화시켜 보려고도 애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