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하지 마라
子曰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자왈 “견현사제언, 견불현이내자성야.”
(제4편 이인里仁)
공자가 말하기를 “어진 자를 보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자를 보면 스스로를 반성하라.”
어진 이를 질투한 방연
재능 있는 인물을 시기하는 사람은 큰일을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재능은커녕 도량마저 좁기 때문에 일단 질투에 불이 붙으면 이성을 잃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자멸의 길로 빠지기 일쑤다.
전국시대, 한, 조, 위나라 중에서 위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뛰어난 야심가였던 위나라 혜왕은 인재를 받아들였던 진나라를 본받아 방연을 위나라로 초청했다.
당대 최고의 학자 귀곡자의 제자였으며 소진, 장의, 손빈의 동문이었던 방연은 혜왕을 만난 자리에서 만약 자신이 대장군이 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함부로 위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며 호기 있게 말했다.
방연이 대장군에 오르자 그의 아들 방영, 조카 방총과 방모 역시 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위나라, 송나라, 노나라를 차례로 공격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동쪽의 대국 제나라 역시 병사들을 보내 위나라를 공격했지만 방연에게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혜왕은 더욱더 방연을 신임하게 되었다.
방연의 동문이었던 손빈은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후손이었다. 덕과 재능을 모두 겸비한 그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로, 병법까지 전수받았기에 지략이 더욱 뛰어났다.
어느 날 묵자의 문하에 있던 금활리가 귀곡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손빈을 만난 금활리는 그의 재능에 큰 감명을 받고 산에서 내려가 각국의 군왕을 보좌할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방연이 생각난 손빈이 말했다.
“저의 동문 방연이 하산하면서 제게 한 말이 있습니다. 관직에 오를 길이 생기면 반드시 저를 찾는다고 했지요.”
손빈의 말에 금활리가 대꾸했다.
“듣자 하니 방연은 이미 위나라의 중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대를 찾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라도 그를 찾아가는 게 어떻겠소?”
금활리의 제안대로 위나라로 온 손빈은 먼저 방연을 만난 뒤 혜왕을 알현했다. 혜왕은 손빈의 재주를 곧바로 알아채고 그를 부군사로 임명해 방연을 돕게 하려 했다. 그러자 방연이 황급히 나서며 말했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형제나 다름없는 손빈의 재주는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런 그를 어찌 제 아래에 둘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그에게 먼저 객경의 자리를 주시고, 훗날 그가 세운 공에 따라 마땅한 관직을 내리시는 게 마땅하옵니다.”
당시 객경은 아무런 권력을 가지지 못하지만 높은 지위에 속했다. 손빈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하는 방연의 마음에 매우 감격했다.
사실 방연은 손빈의 가족이 모두 제나라에 있다고 생각해 손빈이 위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연이 손빈을 떠보기 위해 넌지시 물었다.
“가족들을 데려와 함께 살지 그러나?”
그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손빈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가족들은 모두 제나라 왕에게 죽임을 당했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네. 어디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 말을 들은 방연의 안색이 순간 확 바뀌었다. 손빈이 위나라에 정착하면 자기 자리를 그에게 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년 후 제나라 사람이 손빈의 형이 보낸 서신을 가져왔다. 제나라 왕이 다시 한 번 국위를 떨치기 위해 손씨 가문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손빈은 편지를 가져온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위나라에서 객경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함부로 떠날 수 없는 처지다.”
그리고는 편지 한 통을 써 형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편지는 위나라 혜왕의 손에 먼저 들어갔다. 편지를 읽은 왕이 방연을 불러 물었다.
“손빈이 제나라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방연이 짐짓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재능이 탁월한 손빈이 제나라로 돌아간다면 분명 우리에게 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먼저 그를 설득하겠습니다. 이곳에 머무르길 원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고, 만약 원치 않는다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혜왕은 방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방연은 손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제나라에 있는 친척들을 보고 오라고 부추겼다.
다음 날, 아무것도 모르는 손빈은 혜왕에게 두 달간의 휴가를 간청했다. 그가 몰래 제나라와 연락해 도망가려 한다고 생각한 왕은 즉시 손빈을 잡아들여 방연에게 넘겨주었다.
방연은 짐짓 놀란 척하며 먼저 손빈을 풀어준 후 왕에게 달려가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나서 손빈을 다시 찾은 방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화가 매우 많이 나셨네. 하지만 내가 재차 삼차 용서를 빌어 겨우 자네의 목숨은 살려준다는 약속을 받아냈네. 그래도 경형(문신을 새기는 형벌)과 빈형(무릎 뼈를 제거하는 형벌)을 면하기는 어려울걸세.”
손빈은 억울하기는 해도 자신을 위해 힘써준 방연에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곧 얼굴에 문신이 새겨지고 무릎 뼈가 부서진 손빈은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했다.
방연은 손빈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의 배려에 감동한 손빈은 자진해서 방연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방연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네 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병법을 써주지 않겠나 우리 두 사람이 그것을 부지런히 공부해 후대에 전한다면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겠나?”
잠시 생각에 잠긴 손빈은 방연의 청을 승낙했다. 하지만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데다, 대나무에 칼로 글자를 새겨야 했기 때문에 하루에 고작 열너덧 자밖에 쓸 수가 없었다.
잔뜩 조바심이 난 방연은 시종을 시켜 손빈을 재촉하도록 했다. 하지만 시종은 손빈이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손빈을 돌보고 있던 하인에게 물었다.
“방 군사께서는 왜 그토록 손 선생을 재촉하시는 겁니까?”
“아직도 그걸 모른단 말인가? 방 군사가 손 선생을 살려둔 것은 모두 그 병법 때문일세. 병법을 다 옮겨 적고 나면 손 선생을 살려두지 않을걸세.”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손빈은 무언가 깨달은듯한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기절해버렸다.
잠시 후 깨어난 손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가슴을 치는가 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애써 쓴 병법을 불 속에 던져 넣었으며, 더러운 것을 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손빈을 돌보던 하인들은 황급히 방연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달려온 방연을 향해 손빈은 이마를 받으며 소리쳤다.
“스승님, 스승님,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도 의심을 거두지 못한 방연은 손빈을 돼지우리에 가두고 사람을 보내 지켜보도록 했다.
어느 날, 누군가가 술과 안주를 손빈이 있는 돼지우리로 가져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선생께서 얼마나 많은 치욕을 당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술과 음식을 조금 가져왔으니 드시지요. 기회를 봐서 제가 선생을 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그럴싸하게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손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맛없는 음식을 누가 먹기나 한 대? 난 더 맛있는 걸 먹을테다!”
손빈은 술과 안주를 바닥에 쏟고 돼지똥을 주위 입 안 가득 쑤셔넣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방연은 손빈이 가혹한 형벌을 받아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때부터 그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내가 손빈을 찾아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활리요. 알아보시겠소?”
깜짝 놀란 손빈은 정말로 그가 금활리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다.
“꼼짝없이 이곳에서 죽는다고 생각했을 뿐, 그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금활리 역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그대의 억울함을 제나라 왕에게 알렸소. 왕이 순우곤을 위나라로 보내 모든 것을 준비해놓았으니 그대는 순우곤의 마차에 숨어 이곳을 빠져나오면 됩니다. 그대와 생김새가 비슷한 이 사람을 이곳에 이틀 동안 머물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가 위나라를 안전하게 빠져나가면 나도 곧 뒤따르겠소.”
말을 마친 금활리는 재빨리 손빈의 옷을 벗겨 그와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에게 입히고는 손빈이 마차에 숨을 수 있도록 인도했다.
다음 날, 위 왕은 방연을 불러 제나라의 사자 순우곤을 국경까지 호송하도록 했다.
이틀 후 돼지우리에 누워 있던 손빈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연락이 왔다. 방연은 우물 안과 강물 아래까지 뒤졌지만 손빈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왕의 추궁이 두려웠던 그는 손빈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편 제나라에 도착한 손빈은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 군사로 임명되었다. 얼마 후, 아무리 수소문해도 제나라에 있다던 형제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손빈은 그제야 편지를 가져온 사람 역시 방연이 보낸 자임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방연은 병사를 이끌고 송과 노, 위, 조나라 등을 공격했다. 이때 조나라가 도움을 요청하자 제나라는 전기를 대장으로 삼고 손빈을 군사로 임명해 방연에게 맞서도록 했다.
싸움이 길어지자 손빈은 아군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후퇴를 거듭하며 밥을 짓는 화덕의 수를 일부러 줄여버렸다. 적의 진영에 남아 있는 화덕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본 방연은 적의 군사들이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진영을 이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손빈은 이렇게 방연의 경계심이 풀어진 틈을 노려 급습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방연은 마릉도에서 전사했고, 이때부터 쇠약해진 위나라는 결국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인생지침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질투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멸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태도가 과연 자신에게 도움이 될까?
진정 똑똑한 사람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고 배우며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 힘쓴다. 그리고 결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보고 자신을 반성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스스로의 인격을 높이는 것이자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