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부원관광, 3404, 김학성, 일등기사님
북한산 숨은 벽 능선
북한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어디인가? 사기막골 입구언저리에서 바라본 북한산이 그곳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어제 사기막골로 들어가 숨은벽능선을 타고 오다가 숨은벽 대슬랩에서 골짜기로 내려와 백운대로 올라갔다. 정식으로 암벽을 타본일이 없는 필자가 숨은벽을 오르려고 한 것은 아니고 엊그제 만난 친구하나가 그곳이 제일 한적하고 경치도 좋아 언제나 즐겨 산행하는 곳으로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면서 자랑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계룡산에 가기로 작정하고 있다가 의상봉에 갔다온지도 얼마되지 않으면서도 다시 북한산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일요일 8시경인데도 사기막골에서 차를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사기막골과 북한산 대서문길 사이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 듯했다. 서낭당코스가 그쪽인지도 모른다. ("산과의 대화"에 있는 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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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벽 능선의 지능선 봉우리를 넘자말자 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었고 그리로 한떼의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계곡도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데 정확하게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그 계곡으로 갔더라면 사기막골 매표소에서 낸 1300원은 절약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사기막골에서 바라본 북한산이 너무 좋았다. 개천은 이게 북한산 계곡인가 싶을 정도로 넓고 계류는 수량이 풍부하여 엊그제까지 노상 듣던 가뭄타령을 옛이야기로 만들어주었다. 개천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가 있어서 맑은 개울을 건너가 벚꽃 나무 아래 서서 꽃구름 뒤에 높이 솟은 북한산을 바라본다. 산모양이 이렇게 호쾌하고 장대하게 생긴 산은 설악산의 어느부분이나 월출산의 몇개 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사기막골 입구 부근에서 북한산은 삼각산이 아니라 사각산으로 보인다. 인수봉과 백운대는 물론이고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의 작은 봉우리와 더불어 인수봉 왼쪽에 또하나의 암봉이 솟아있다. 이 암봉은 숨은벽 능선의 첫봉우리인 듯하다. 골짜기로 들어가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계곡 바닥이 넓은데도 골안이 너무나 호젓하다는 것이었다. 개울가 숲은 이제 새잎이 돋아나는 활엽수들의 가지로 하여 수채화물감을 엷게 칠한 듯 투명하다. 숲 아래는 대부분 공터가 되어 있어서 여름엔 시원한 그늘이 될 것이나 집들이 들어서지 않는 것은 딴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점이 이곳일대를 때묻지 않은 자연상태를 유자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개발의 삽도 이곳 땅을 아직 뒤집어 발기고 있지는 않다. 이런 곳이 영구히 보존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결국 수도시민이나 경기도민의 소중한 자연이 될 것이다. 큰길을 버리고 우측 숲안으로 등산로임을 알리는 나무화살표가 나무에 박혀 있다. 부근 민가의 아저씨가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길을 따라 계속 들어갈 뻔 했다. 만일에 GPS를 가진 분이 있다면 이곳 좌표가 북위37도 40분 21.5 동경126도 58분 08.9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로 보아 이곳 코스를 애용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숲은 활엽수가 울창한데 벌써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간다. 군데군데 소나무도 보이지만 소나무는 적은 편이다. 큰 나무아래 피어있는 철쭉 꽃이 지나가는 산나그네를 반긴다. 띄엄 띄엄 피어있지만 수줍은 처자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화사한 봄옷으로 성장한 곱고 살결 희디흰 아가씨가 연상되는 철쭉 꽃. 개인적으로는 바래봉이나 황매산의 철쭉이 아무리 좋다해도 이곳 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숲속에 피는, 연한 분홍 색이 약간 스치다말다 하는 철쭉꽃이 더욱 예쁘다. 철쭉도 남방계와 북방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연인산의 철쭉도 연분홍이나 흰색에 가까운 꽃들이어서 유난히 화사하고 청초해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키가 큰 교목숲아래 그늘을 밝히고 있는 철쭉 꽃은 아무리 보아도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안부를 지나 가면 급경사가 되고 능선은 점점 암릉으로 변한다. 암릉으로 올라가면서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가 사기막골과 북한산계곡사이의 계곡이다. 사실 숨은벽능선의 암릉에 접근하면서부터는 부근의 경관이 북한산의 통상적인 경관으로 변하고 있어서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능선의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깊은 협곡은 깎아지른 단애와 함께 엄청나게 역동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대충 머리속에 남아 있는 기억으로 쓴 글이다. 그러나 기억을 돕기위해 어제 찍어온 테잎(동영상)을 보니 상투적이니 뭐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어마어마한 능선의 모습이 찍혀있다.그랬다. 역광으로 비치는 숨은벽 능선의 끝은 마치 페르샤의 왕자의 단검처럼 끝이 하늘로 치켜세워지듯 꼬부라져 있었고 무디게 시작된 칼날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바뀌고 있었다. 사실 필자는 숨은벽 능선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다. 누군가 올라가는 사람이 있으면 옛날 염초봉에서 쩔쩔매다 구원의 등산객이 와서 무사히 넘었듯이 이번에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거의 쓰지 않던 30미터짜리 자일을 꺼내어 배낭에 넣고 오는 등 신경을 쓴 것은 사실이다.
"여기는 죽여주는 철쭉산록"
암릉부분이 시작되면서 여러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나같은 사람도 저기 칼날처럼 보이는 숨은벽 릿지를 갈 수 있겠느냐고. 들려오는 대답은 전문가들도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었다. 수락산에서 혼자 15미터쯤 되는 직벽을 내려온 것과 장산에서 옥동천가 단애를 내려온 것이 고작인 터에 왜 숨은벽 능선을 낙관적으로 생각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상적인 릿지산행중 어려운 곳은 슬링을 잡고 슬랩으로 올라서는 곳이다. 팔힘이 꽤 들어 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슬링 매듭사이에 발을 끼어야 올라 설 수 있다. 이 부근의 바위중 기억에 남는 것은 빗물이 괴일 수 있게 함지박처럼 패인 홈이 여러개 있는 바위가 보였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30대후반의 등산객은 "꽃이 아직 덜 피었지요?"한다. 그리고는 내주가 돼야 철쭉이 제대로 필것같다고 덧붙인다. 조금 뒤에 만난 어떤 이는 내주에도 다 피지는 않겠다고 진단한다. 내가 북한산 북록의 철쭉을 찍으러 온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북한산 북록의 철쭉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던 터라 여기 철쭉이 많으냐고 되물었더니 "여기가 죽여주는 곳이에요"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북한산 북록은 이제야 겨울잠에서 깨어난 모습이다. 역광으로 진달래 꽃떨기가 여기저기 보일 뿐이고 나무들도 이제야 부시시 잎들의 눈을 틔운 듯하다. 어쨌거나 평상적인 암릉이 끝나고 장대한 슬랩이 눈앞에 다가온다. 정말 대단한 슬랩이다. 슬랩은 경사가 꽤 심하여 찰싹 달라붙는 암벽화를 신고도 그냥 올라가기는 힘들 정도로 보인다. 슬랩이 시작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계곡으로 백운대로 갈 수 있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인수봉쪽으로 갈 수 있다. 전문가 스타일의 릿지 산행이 시작될 무렵 자일을 풀어 선등자가 슬랩을 오르기 시작하는 젊은 팀들에게 좀 데려가 달라는 얘기를 하자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출발지점에서 올려다보니 첫부분의 슬랩은 어마어마했다. 하기야 지난 해에 올랐던 원효봉의 슬랩도 보기에는 그러했을 것이다.슬랩은 약 60도의 경사에 거리도 60여미터는 돼 보인다. 자일을 깔아준다면 그것을 잡으며 올라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그러나 카메라 두대를 덜렁거리며 무언가 쉴새없이 찍어대고 릿지화도 아닌 둔중한 등산화를 신고 혼자 다니는 조금 헐렁해 보이는 사람에게 그들이 덥썩 자일을 내줄 것 같지가 않았고 그런 식으로 군색한 산행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인상으로 그들은 내가 손을 내밀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물어보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바위하는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대한 비위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들 워킹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을 마치 차를 타고 다니는 장교신분으로 새카맣게 흙먼지를 쓰고 다니는 보병졸병을 보듯이 보는 것이 영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바위욕심이 없었던 나는 계곡으로 내려왔고 그 계곡에 길이 있을 줄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 길이 숨은벽능선과 염초봉 능선사이의 계곡을 타고 인수-백운대 중간봉우리옆으로 나오는 길이다. 백운대뒤 여우굴 코스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코스로서 작년에 정말 희한한 구경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한술 더뜬 코스로 주능선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뿐인가 주능선에 올라오면 백운대로 올라가는 길은 바로 옆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 길은 있었지만 위험한 길이었다. 여기서도 자일을 꺼내어 걸어 달라면 됐을 터인데 이번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의 비위 때문만은 아니고 혼자 다니는 사람의 타성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냥 내려가고 있다. 백운대로 바로 올라가는 암릉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백운대-인수봉 사이의 작은 봉우리에 올라와 점심을 먹으며 숨은벽 능선을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중년여성, 나이많은 등산객, 젊은 등산객등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그들의 얼굴에는 험한 코스를 올라온 사람들의 성취감이 그려져있다. 비단 숨은벽 능선뿐 아니라 염초봉능선, 망경대능선 가릴 것이 없이 모든 능선에 사람이 붙어있고 모든 능선을 사람들이 잘도 통과한다.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일요일의 북한산산행은 타기할만한 산행으로 나의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고 늘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반가운 사람으로 보인다. 주능선으로 내려와서 바위를 돌아가니 그쪽은 더 경사가 심해 보여 포기하고 백운산장으로 내려가서 백운대로 올라가야 겠다고 생각하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아까 몇명이 능선날등 북쪽 바위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 같다. 경사진 슬랩을 밟으며 접근하니 굳어진 채 포개어진 대형 인절미 사이에 공간이 생긴 것처럼 납작한 바위아래 넓고 긴 공간이 45도의 각도로 비스듬히 틔어있다. 위의 바위는 겉면은 유연하게 생긴 둥그스럼한 슬랩바위이건만 안은 칼로 도려낸 듯 절편의 한쪽 처럼 반듯한데 비스듬히 눕다시피하여 배낭을 밀면서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진행하다가 굴을 빠져 나오니 아까 자일없이는 못올라올 것 같은 바위 위쪽이 된다. 좌우간 북한산은 정말 여러모로 놀래키는 산이다. 그뿐인가 아이들이 어미 원숭이를 올라타고 구르고 매달리고 응석부리듯이 서울의 등산객이란 등산객은 다 모여 원효-염초릿지, 숨은벽, 인수봉, 망경봉, 계곡이란 계곡을 누비고 오르고 기고, 할퀴고, 쓰다듬고, 횡단하고 줄로 뛰어내리고 줄지어 오르고 줄지어 내려오고 ... 북한산은 원숭이들의 큰 어미가 아닌가. 이런 자애로운 어미는 어느 곳에도 없을 것 같다. 북한산은 일요일엔 절대로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려올 때는 백운대뒤로 여우굴을 지나 약수암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내려오는데 무릎이 옛날같지가 않다. 여우굴위에 도착하여 단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등산객 몇이 나보고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묻는다. 자세히 보니 이건 완전한 벼랑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낯이 익다. 바로 여우굴이다. 그제서야 황당한 얼굴로 올라오던 길을 내려가나 어쩌나 하고 당혹해 하는 사람들에게 굴을 찾아보라고 하고 이게 여우굴이라고 정보를 줬더니 그들은 5분뒤에 여우굴입구에서 차례로 머리를 내밀며 올라온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면 건폭이 나온다. 폭포가 나오기전에 바위틈새를 흐르는 물을 작은 쇠파이프를 박아 먹기 좋게 해 놓았는데 물맛이 정말 좋았다. 이 건폭은 전에 올라올 때는 맨손으로 올라왔지만 오늘은 만만찮을 것이라고 자일을 꺼내야 할 걸 하고 중얼거리며 내려오는데 폭포옆에 마디를 적절히 배분한 새 줄을 설치해놓았다. 그러고 보면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도 꽤 많은 모양이다. 폭포를 지나 내려오다 간식을 먹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백운대를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암괴의 중허리를 일단의 등산객이 횡단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꺾어야 눈에 들어오는 아찔한 고도에서 리더가 멤버들을 다독이며 엄청난 벼랑을 횡단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약간의 틈새같은 것이 시루떡 찌는 솟처럼 백운대 중간에 둘리워져 있기는 했다. 그러나 거기서 내려다보면 바닥은 까마득 할 터인데 ... 그렇다. 어머니의 어깨, 어머니의 등, 허리, 이마, 머리 어디엔들 못 오를까? 이들을 카메라로 잡으면서 참 인자하신 북한산이여! 하는 경탄이 나도 모르게 입술사이로 비져 나온다. 북한산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이날 약수암의 약수는 정말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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