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차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백토재 - 원전고개 : 약9km)
2018년 3월 17일(토요일)
아름다운 동행(5인) : 김형곤, 조규철, 조시현, 정찬호, 황부호
10시, 우리는 낙남정맥 4회차의 산행을 위하여 백토재 고갯마루에 섰다.
백토재는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와 옥종면 정수리를 잇는 고갯길로 1005번 지방도가 관통하고 있다.
이 고갯마루를 중심으로 남사면으로 흐르는 물은 곤양천을 거쳐 남해바다 광포만에 이르고, 북사면의 물은 덕천강, 진양호, 남강을 거쳐 낙동강에 이르는 분수계가 된다.
예로부터 이 고개의 인근에는 고령토가 많이 생산되었다.
그리하여 고령토를 실은 트럭들이 줄을 지어 이 고개를 넘나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고령토를 백토라 하는데 그래서 이곳의 고개 이름이 백토재였던 것이다.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이 고개를 베토재라 명기하고 있다.
아마도 이곳 사람들이 부르는 백토재를 잘못 듣고 표기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변형되어진 베토재가 원래의 이름인양 부르고 있다.
하루빨리 원래의 이름으로 환원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고갯마루 길가에는 고향옥종이라 새겨진 커다란 빗돌이 이곳이 옥종의 관문임을 표시하는데 길 건너편의 시멘트임도 오름길이 오늘의 출발점이다.
된비알의 오름길은 짧지만 힘든 길이었다.
아득한 현기증이 인다.
앞서가는 일행들의 발걸음은 가뿐한데 뒤따르는 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아무래도 오늘의 산행은 힘들 것 같다.
한소끔 가쁜 숨을 내쉬게 한 오름의 마루금은 228m봉이다.
이곳은 남쪽으로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인곡마을을 막고 있는 야트막한 둔덕으로 이 능선의 북쪽은 하동군의 영역을 벗어나는 시점으로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가 된다.
이곳에서부터는 능선의 고즈넉한 숲길이지만 길섶에 이는 바람이 차갑다.
오늘 아침 출발 전에 넥워머를 만지작거리다 소용이 없을 것 같아 두고 온 것이 후회스럽고 아쉽다.
아무튼 길은 임도를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구릉같은 야산을 오르고 내린다.
어쩌다 능선의 봉우리를 놓치고 임도를 따르다 농장의 개들에게 쫓겨 원래의 길을 찾기도 했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옥산과 천왕봉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우리 정맥꾼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우리는 237m봉을 거치고 잘 조성된 묘역지를 지나 임도를 만나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였다.
▼ 들머리의 오름길
▼ 인곡리 앞들
▼ 임도
▼ 지난 구간의 천왕봉
▼ 오늘도 변함없이 조시현, 정찬호는 낙남정맥의 건객이 된다
▼ 고즈넉한 솔숲길
▼ 농장의 개들에게 쫓겨
▼ 천왕봉과 옥산이 우리를 배웅하는 듯
▼ 잠깐의 휴식
이곳이 안남골재이다.
고개의 바로 밑에 안남골이 있다하여 유래된 것으로 남쪽의 안남골과 북쪽의 음달마을을 잇는 고갯길이다.
안남골은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 남포마을로 연결되는데 남포의 안쪽 골짜기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리고 음달마을에서 고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옥동마을이다.
옥동마을의 원래 이름은 구시골이었다고 하는데 풍수상 소가 밥그릇(구시)을 안고 배부르게 누운 형세를 이루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일제 때 마을이름을 한자로 바꾸면서 구시(槽)는 구슬(玉)로 변형되었고 이를 그대로 훈차(訓借)한 것이 오늘날 옥동(玉洞)으로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마을에는 두 곳의 태실지가 있는데 마을 초입의 세종대왕 태실지와 마을 앞의 단종 태실지가 그것이다.
두 곳 모두 파괴되어 태실이 있던 곳에 민가의 사설 묘지가 들어섰으며 1975년 경상남도기념물(제31호, 제32호)로 지정되면서 현재는 주변에 흩어져있던 석물들을 수습하여 한 곳에 모아둔 상태이다.
길은 212m봉과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다 임도를 만나고 전망 좋은 조경수 농장을 거슬러 오른다.
조망이 탁월하다.
건너편 봉명산이 머리를 내밀고 수명산과 이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정겹게 다가선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마루금 뒤에 천왕봉과 옥산이 겹쳐지고 그 뒤에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농장 오름길은 솔밭의 235m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솔숲의 내림길이다.
우리는 능선 안부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준비하였다.
오찬의 오프닝 메뉴는 삼겹살 버섯구이를 안주로 한 반주인데 항상 그랬듯이 어른들에겐 주 메뉴인 떡라면보다 더 비중 있는 메뉴가 되었다.
다들 맛나게 먹고 마시는데 유독 나만 입맛이 쓰다.
더불어 술맛까지 꽝이다.
아마도 오늘 나의 몸 상태 때문인가 싶다.
식후 다시 시작한 산행은 오늘 능선에서 두 번째로 높은 244m봉으로 이어진다.
누군가 옥정봉이라는 표지판을 나무에 걸어놓았다.
아마도 이곳의 남서측에 위치한 마을이름인 옥정리를 따서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아무튼 이곳은 하동군 북천면 옥정리와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그리고 곤명면 은사리의 경계가 되는데 낙남정맥은 이곳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했던 하동군과 이별을 하고 사천시 곤명면의 능선을 따른다.
197m봉을 거쳐 155m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완만한 경사의 고즈넉함이 잔잔하게 깔린 길이었지만 그러한 정취를 느끼기에 나의 발걸음은 너무 무거웠고 피부에 와 닿는 기운 역시 너무 싸늘하였다.
3월 중순의 봄날은 봄 같지 않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그러고 보니 오늘 왔던 길에는 봄꽃 한 떨기도 보이지 않았다.
낙남무화초(洛南無花草), 낙남정맥길에 꽃이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아니하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엔 화초가 없어)”라면서 왕소군의 심정을 춘래불사춘이라 읊은 싯귀를 차용해 본다.
대지에는 춘기(春氣) 대신 “봄이 왔으되 봄으로 생각되지 않는” 춘래불사(思)춘의 한기(寒氣)가 가득한 여정이다.
▼ 조경수 농장
▼ 조경수 농장 오름길
▼ 봉명산이 머리를 내밀고
▼ 이명산과 수명산 능선
▼ 옥산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아스라한 마루금을 이룬다
▼ 오찬
드디어 마곡고개이다.
여기서 한 등성이만 넘으면 오늘의 날머리 원전고개이다.
마곡고개는 사천시 곤명면 봉계리 원전마을에서 마곡리로 넘어가는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고갯길이다.
고개 북쪽의 마을인 마곡리(摩谷里)의 유래에 대하여 마을 뒷산이 매가 사는 응실(鷹室)형국이라 매봉산으로 불리었고 이에 연유하여 원래의 마을이름은 '매실' 또는 '마실'이었다고 하는데 구한말 이를 한자로 음차(音借)하면서 마곡(摩谷)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갈마음수(渴馬飮水)형국의 샘(井)이 마을 들 가운데 있었음으로 마곡(馬谷)으로 불리다가 마곡(摩谷)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곡고개에서 능선까지의 오름은 짧은 길이지만 된비알이다.
여기서부터는 150m도 아니 되는 구릉같은 능선의 완만한 내림길이 이어진다.
이 길에서 오늘 처음으로 꽃을 보았다. 진달래였다.
그런데 그 꽃은 화사한 봄꽃이라기보다 추위에 떨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의 꽃이었다.
춘래불춘화(春來不春花), 봄은 왔으나 꽃은 봄꽃이 아니더라,
춘래불사춘의 오늘 여정을 원전고개에서 마무리한다.
▼ 마곡고개
▼ 능선길
▼ 춘래불춘화(春來不春花)의 진달래
▼ 경전설 철길
▼ 날머리를 앞두고
▼ 날머리에서
왕소군(王昭君)과 춘래불사춘에 대한 부언
왕소군은 춘추시대의 서시(西施), 삼국시대의 초선(貂蟬), 당조(唐朝)의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녀이다.
그녀는 전한(前漢)의 원제(元帝) 때 궁녀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정책에 의해 흉노의 왕 호안아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불운의 여인이었다.
다른 궁녀들은 원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면서 화공에게 뇌물을 바쳤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앗다.
그리하여 화공은 그녀의 얼굴을 아주 못생기게 그리게 되었고 원제는 화첩에서 못생긴 궁녀를 골라 흉노왕에게 보내라고 하여 왕소군이 선택되었다.
막상 흉노왕에게 시집가게 된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절세의 미녀를 못생기게 그려서 흉노왕에게 궁녀를 빼앗겼다는 분노에 그 화공을 참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무튼 그녀는 머나먼 오랑캐 땅에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며 불운의 삶을 살았다.
후대에 이르러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오랑캐 땅에서의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질 만큼 야위어갔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었다”고 그녀의 애달픈 생애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다음은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 왕소군의 원망)’의 일부이다.
…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네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 저절로 옷에 맨 허리끈이 느슨해짐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 가느다란 허리를 가꾸려는 것 아니라네. …
첫댓글 멋지심니다
산행기 잘 봄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