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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장 1절-11절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나다. 향년 1백 칠십 오세
성경 아카데미(창세기) 2006.1.26
저자는 모세이다.
모든 것의 시작과 기원을 다루고 있다.
창세기 1-11장은 초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12장부터는 선민의 역사를 다루는데 특히 족장의 역사가 나온다.
A. 개요
1-11장 초기의 역사
창조-타락-메시야의 약속-노아홍수-바벨탑
12장 아브라함을 부르심
12-50장까지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을 다룬다.
B.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비교해보자/성경의 탐구 책에서
에덴에서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 주님이시며, 역사를 마지막에 끝내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1)낙원이 범죄로 닫히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계시록에서는 낙원이 열려졌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계21:25)
2)범죄로 에덴 동산을 잃음. 소유를 빼앗김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다시 소유를 되찾음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계21:24)
3)저주가 부여됨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계22:3)
4)생명나무에로의 접근이 금지됨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생명 나무에 나아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22:14)
5)창세기에서 슬픔과 죽음의 시작을 본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6-19)
슬픔과 죽음이 제거됨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6)창세기에서 더렵혀진 동산을 본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더러운 자는 들어오지 못하는 동산을 본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21:27)
7)인간의 타락 속에서 지배권 상실을 본다.
계시록에서 지배권의 회복을 본다. 주님과 더불어 세세토록 왕노릇한다.
8)창세기에서 우리는 뱀의 악한 승리를 본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어린양의 궁극적 승리를 본다.
9)창세기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중단을 본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하나님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계신다.
C. 창세기의 중요 사건
1.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이 말씀으로 무신론, 다신론, 범신론, 진화론, 허무주의 등등이 반박된다.
2. 인간의 타락
뱀의 유혹 경로
<마귀의 하는 일>
1)마귀는 뱀을 통하여 역사함
①마귀는 매개체와 통로를 사용한다.
옛뱀 마귀는 지금도 살아있으므로 옛날의 방식을 사용하며, 동시에 더많은 수단과 방법을 개발하여왔다.
②“참으로”-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마귀는 불화의 조장자이다. 말씀에 대한 의심, 하나님에 대한 의심, 구원에 대한 의심, 신앙생활에 대한 의심, 교회에 대한 의심, 가정 생활 속에서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사이에 의심의 싹을 심어놓아 불화를 조장한다.
③“너희더러”----단수를 복수로 만듦. 말씀을 변질시킨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변질시킨다.
단수 복수, 시제는 중요하다.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
마가복음 16장의 단수와 복수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게 한다.
④“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나님을 나쁜 분으로 몰아간다.
마귀는 항상 하나님을 괴팍하고 이상한 분으로 몰아간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좋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옳다는 것을 고수해야 한다.
-욥기에서 욥에게 허락하신 재앙에서도 하나님은 옳았다.
-하나님에게 불의가 있으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을 것이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욥에게 하나님이 물으신 질문을 생각해보라.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이시다.”
<하와의 말>
하와는 말씀을 불확실하게 앎으로 넘어졌다.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①너희는----복수로 받음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지 않았으면 나는 모르겠다고 하여야 한다. 그런데 하와는 주제넘게 나섰다.
②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덧붙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에 덧붙여서 멸망하고 있는가.
복음에 다른 것을 덧붙이는 일은 지금도 있는 것이다.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한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에 뿌리지 말지니라.”
“너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③죽을까 하노라----불확실하게 만듦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이 확고하게 말씀하신 것을 흐리면 안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으라.
주 안에 거하라.
< 뱀의 말>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마귀는 작은 것 하나라도 받아들이게 한 후에는 완전히 사실을 둘러엎는다.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듯이, 작은 것이 모이면 큰 것이 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용납하면 나중에 화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진멸하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①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거짓말(진리를 뒤엎음)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둘러엎음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하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는 결코 없다. 금세 뿐이다.
-영혼의 구원이 결코 필요치 않다.
-주 안에 꼭 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②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
엉뚱하게 부추킨다. 소쿠리 비행기를 태워준다.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마귀는 자기가 마치 좋은 것, 미처 알지 못한 굉장한 것을 줄 것처럼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다.
“사단의 깊은 것에 연루되게 한다.”
육신으로 깊이 끌고 가서 결국 지옥으로 끌고간다.
③뱀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의 타락>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은 마귀의 꾀임을 보지 않고 하와의 인정에 넘어졌다.
인정은 마귀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이다.
3. 세계적인 홍수-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의 차이점
4. 바벨탑 사건
5.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
D. 창세기의 중요 인물
1. 아벨-의롭다 함을 얻음
2. 에녹-동행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3. 노아-하나님의 역사를 이룸
4. 아브라함-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아브라함과 롯)
5. 이삭-아들됨의 특권
6. 야곱-하나님의 단련하심
7. 요셉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요셉이다.
요셉이 위대하게 된 것에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다. 이 이유들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도 지침과 모델로 삼아야 한다.
한 사람이 위대하게 되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비범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비범하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범한 것이다.
①요셉은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창37:5-11).
요셉의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허락하신 것이었다. 요셉은 장차 위대하게 될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꿈을 주셨는데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한다는 꿈이 주어져 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코스는 사람마다 다르다.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세계에 산다는 꿈이 있다.
이 소망의 꿈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
“소망의 인내.” 소망의 닻이 있어야 한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바울 사도의 꿈. 우리 시대는 꿈이 없는 시대이다. 세상에서 큰 일을 할 꿈도 없다.
그저 육체의 소욕을 채우는 것만 생각한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꿈, 사람을 인도하는 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
꿈의 사람이 되라.
②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 고통은 있었으나 원망하지 않았다.
애굽에 형들이 팔 때에도 보디발의 아내가 감옥에 들어가게 할 때에도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았다.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겼다(시141:1-10)
③ 요셉은 어디로 이끌려가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창39:1-6)
감옥에 들어가서도 성실하게 일하였다.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요셉이다.
모든 것에 부지런하였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결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④ 요셉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였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창39:2).
두 사람이 의합해야 동행할 수 있는 것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게 행동하였으며,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였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주님께 깊게 심기어져 있었다.
외로운 외국 땅에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하는데는 장소는 관계가 없다.
감옥에서도 주님은 동행해주셨다.
주님은 안계신 곳이 없으므로 주님이 함께 하시면 염려할 것이 없다.
⑤요셉은 시험을 이긴 사람이다.
정욕을 이김-룻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창39:7-10)
요셉은 유혹에 대하여 단호하였다. 반면에 삼손은 유혹에 넘어갔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뇨 당신이 이 세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삼손이 진정을 토하여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우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하여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삿16:15-17)
삼손은 이로 인해 눈이 빠졌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유다는 돈의 유혹에 넘어졌다.
어떤 사람의 술의 유혹에 넘어지고 이성의 유혹에 넘어진다.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⑥인생의 슬픔을 겪은 사람이다.
요셉은 열명의 형들의 시기과 분노와 핍박을 겪은 사람이다.
억울한 누명을 겪어본 사람이다.
다윗도 억울하게 죽임당할 위험을 겪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56:8)
억울한 소리를 들을 것을 각오하라. 애매한 고난을 기꺼이 받을 각오를 하라.
슬픔을 받을 각오를 하고 진리 속에 살라.
⑦요셉은 단련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쓰시고자 하시는 사람을 단련시키신다.
아브라함도 단련과 시련을 받았으며, 모세도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요셉도 여러 가지로 단련을 받았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주님은 단련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⑧ 요셉은 단련 후에 치리자가 되었다.
그는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본 사람이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창41:42-43)
그는 자식을 낳은 후에 이름을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지었다. 이 이름은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 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창41:51-52)
요셉은 요셉의 고난과 요셉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므로 므낫세라고 이름을 지었고 그 후에 자신이 수고한 애굽 땅에서 창성케 하였으므로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지었다.
하나님은 고통을 계속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시고 그 고난을 창성으로 바꾸신다. 낮춤을 받는 사람은 그 낮춤을 높이심으로 잊어버리게 하시고 낮춤받는 것을 창성으로 바꾸신다.
⑨ 요셉은 용서의 사람이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보디발의 아내를 용서하였을 뿐 아니라 요셉의 형들과 자녀들의 봉양자가 되었다. 악을 오히려 선을 갚았다.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8-21). (창45:5-8)
악을 선으로 갚았다. 야곱을 봉양하였다.
⑩ 항상 가나안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애굽에 살고 있었지만 애굽이 자기의 본향이 아님을 깊이 생각했으며, 살아있을 때 가나안에서 죽을 수 없지만 죽은 후에라도 가나안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애굽에 살지만 그의 사모의 대상은 가나안이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50:24-26).
요셉의 임종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 십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50:22-26).
요셉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고통의 삶을 통과한 후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으며, 말년은 평안한 삶을 살았으며 그 후에 주님 품으로 들어갔다. 요셉은 일백 십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다.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보는 것만큼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길은 후일에 웃게 하신다.
요셉의 임종을 통해서 몇가지 교훈을 받아보자.
말년은 평온하게 해 주셨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시37:37)
요셉은 애굽에 살았지만 항상 가나안 땅을 사모하고 살았었다.
자기의 시체를 가나안에 묻어주기를 바랐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확실히 믿었다.
요셉이 맹세시킨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애굽의 실권자로 있던 요셉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자되었음이 확실하며, 이스라엘이 애굽에 나갈 때 유골을 가지고 갈 것을 맹세시킨 것을 상기하면서 출애굽을 소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셉은 살았을 때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죽은 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언은 대대로 전해졌다.
죽음 후에도 사람의 삶과 유언은 영향을 미친다.
⑪ 요셉의 삶은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요셉이 맹세시킨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애굽의 실권자로 있던 요셉의 이야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자되었음이 확실하며, 이스라엘이 애굽에 나갈 때 유골을 가지고 갈 것을 맹세시킨 것을 상기하면서 출애굽을 소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요셉은 살았을 때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죽은 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언은 대대로 전해졌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히11:22)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 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출13:19)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 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수24:32).
⑫ 요셉의 삶은 야곱이 유언한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49:22-26)
<요셉의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
①애굽에 팔려감
②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감
③구덩이에 내려가고 특별히 감옥에 있던 기간이 그에게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주님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가 삶을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의미있는 시간들이 감옥 안이었음을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욥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들이 언제였을 것인가.
시련을 통과하는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들이 낭비가 아니었다.
④형들을 만났을 때의 처신
E. 창세기의 모형
1. 아담 하와-예수님과 교회의 모형
2. 노아방주-예수님의 모형
3. 에녹-들림받는 성도의 모형
4.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마22:23-33)
a)아브라함
갈데아 우르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자녀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에서 성부 하나님의 모형을 볼 수 있다.
1)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모형이다.
2)이삭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①이삭과 그리스도는 모두 약속의 씨였다.
②두 사람 모두 탄생이 미리 알려졌다.
③두 사람 모두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있었다.
④두 사람의 탄생은 모두 초자연적인 출생이었다.
⑤두 사람 모두 독자로 불렸다.
⑥이삭이 자신을 태울 나무를 지고 갔듯이 그리스도도 자신의 나무 십자가를 지셨다.
⑦이삭이 기꺼이 제단으로 갔던 것처럼 그리스도도 기꺼이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⑧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아버지께 버림을 받았다.
⑨두 사람 모두 죽음에서 부활하였다.
이삭은 예수님의 예표였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 드린 것은 예수님이 갈보리 산에서 죽으실 것을 보여주신 것이며, 이삭의 순종하고 복종하는 모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맞이할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삭이 리브가를 사랑한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해주시는 것이다.
3)엘리에셀은 성령의 모형이다.
①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종이었던 것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종이다.
②엘리에셀이 하란에 가서 이삭을 위해 신부를 데려오라는 사명을 받았듯이 성령께서도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를 데려오도록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
③엘리에셀이 이삭의 신부를 데려오도록 보냄을 받은 때는 하나님께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려오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④엘리에셀은 자신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 그 주인의 아들에 관해 증거했다. 성령께서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고 계신다.
⑤엘리에셀의 임무가 급박했던 것처럼 성령의 임무도 급박하다.
⑥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어 그 주인 이삭의 부요함을 나타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
⑦엘리에셀은 리브가로부터 이삭의 아내가 되겠다는 승낙을 받아낸 후 자신이 직접 그녀를 데리고 이삭에게로 왔듯이 성령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주님께로 이끌어 주님 앞에서 만나게 하신다.
4)리브가는 성도의 모형이다.
①리브가가 엘리에셀의 말을 믿고 그의 요구에 자신을 맡겼듯이 교회도 성령을 의뢰하고 또 그분의 요구에 자신을 맡긴다.
②리브가가 이삭을 위하여 그녀의 친족을 떠났듯이 성도 역사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친족에게서 분리된다.
③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에셀이 리브가에게 그의 주인 이삭에 관한 모든 것과 그녀를 위해 예비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듯이 성령께서도 우리가 이 지상의 순례를 계속해 나가는 동안 우리가 우리의 이삭 곧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우리가 받게될 것들을 설명해 주고 계신다.
성도의 모습을 리브가를 통해서 볼 수 있다.
5)리브가=성도의 모형
창세기 24장에서 리브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① 리브가는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아내로 리브가를 연결시켜 주시려고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믿음의 사람이므로 이삭의 배필이 될 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리브가를 연결시켜주신 것이다.
리브가는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
주님은 “믿음”을 사용하신다.
그러면 리브가는 이 믿음이 어디서 생겼겠는가.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확실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② 정조를 지키는 여자였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 가지고 올라오는지라”(창24:16).
사람에게 있어서 정조는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우리 시대에 정조 관념이 없어진다. 정숙한 여자였다.
③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여자였다.
리브가는 자기 중심적인 여자가 아니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좀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에 한마디로 거절하였지만 리브가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자였다.
아브라함의 종 뿐 아니라 함께 있는 짐승도 배려할 줄 알았다.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을 돌아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12:10)
④ 희생할줄 아는 여자였다.
낙타가 물을 많이 먹는데 낙타에게도 물을 다 먹인 것으로 보아 리브가는 희생할줄 아는 여자였다.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창24:18-20).
물을 길어서 모든 약대에게 먹이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이것을 기꺼이 하였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여인들의 공통점이 바로 희생할줄 아는 사람이다.
⑤ 부지런한 여자였다.
리브가는 게으른 여자가 아니었다. 리브가는 부지런하였다.
그가 평상시에 부지런하였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종과 약대에 물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⑥ 선을 행하는데 신속한 여자였다.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창24:18-20).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신속하였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데 신속하였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3:27)
⑦ 리브가는 건강한 여자였다.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데 건강은 중요한 것이다.
리브가는 우물로 달려갔다. 모든 약대를 먹이는 이 일을 신속히 하는데는 건강이 따라야 한다.
⑧리브가는 결단의 여자였다.
혈육보다도 주님의 뜻이면 혈육을 떠나서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하였다.
리브가는 혈육을 이긴 여자이다.
자기의 정든 고향과 부모를 떠나 오직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 떠나는 것을 보라.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치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종자들을 보내며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창24:56-60)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난 것처럼, 리브가는 고향과 부모를 떠나서 하나님께 인생을 전적으로 의탁하였다.
룻도 고향과 부모를 떠나서 이스라엘 땅으로 왔다.
에스라도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 육신의 위치를 박차고 믿음의 길에 들어섰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아니하기를 결심하였으며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⑨ 리브가는 사랑받는 여인이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24:67)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창26:8)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고 복종한 것같이 리브가도 순종과 복종의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는 사람이었다.
6)야곱은 성령께서 삶 속에서 죄인을 어떻게 바꾸시는지가 잘 나타난다.
① 야곱의 원상태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의 상태와 너무 유사하다.
야곱은 차자로서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할 운명이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주님의 축복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곱이라는 말 뜻은 얍삽하다. 교활하다. 간사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죄인라는 말로 대표된다.
그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 것이 은혜이다. 은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였다. 그리고 줄곳 하나님의 사랑이 따라다녔다.
야곱이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축복을 강하게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영원한 축복을 사모함. 그 사모하는 사람에게 은혜가 내린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음(차지함)-장자의 축복을 받음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었고 아들의 축복을 받았다.
사닥다리에 근거해서 축복하심=예수님에 근거해서 축복하심
② 축복을 받은 야곱에게 당장 주어진 것은 광야의 길이었고 고생의 길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축복 구원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은 광야였다.
구원받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고난과 어려움이다. 고난은 있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있었지만 거기에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있었다.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창28:10-15)
③야곱의 인격 형성과 훈련과정
라반의 집이 훈련장이었다.
라반은 야곱보다 단수가 높았다. 야곱도 잔꾀가 많았지만 라반은 더 단수가 높았다.
라반의 집에서 20년 봉사-두 딸을 위하서 14년+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창31:41)
인격은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것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일상적인 일을 열심히 함. 날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눈코 뜰새없이 열심히 함.
“내가 이 20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 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찟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서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여 눈붙일 겨를 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38-40)
처가살이 20년. 이것이 야곱의 훈련장이었고 인격 형성의 장이었다.
모세는 광야 40년
우리 각자는 자기의 일터가 자기의 훈련장이며 인격 형성의 장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주어진 일에 충실함.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잠18:8)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결코 천한 자 앞 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 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 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 은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다”(롬5:3-4)
야곱은 내가 왜 여기에서 고생하는가 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야곱의 육신 의 껍질을 벗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④야곱의 코스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광야로 내몰릴 때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심-곧 라반의 집에 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 리 속에 있음을 분명히 알려주심. 이 광야 생활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약속하심.
-라반의 집을 떠나게 될 때에도 하나님이 나타나서 알려주심.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창31:1-3)
-애굽에 내려갈 때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 을 드리니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창46:1-2)
-애굽에서 죽음-장사는 가나안에서 장사됨.
우리도 중대한 결정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 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 로다”(시32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뇨 그 택할 길을 저에게 가르치시리로다”(시25편)
⑤ 야곱은 줄곳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왔다.
야곱을 축복하심과 함께 하심. 라반의 집에서도 수고한 것을 잃지 않도록 하심. 기근 때에도 애 굽으로 내려가서 평안히 죽음. 에서는 육신적으로는 거대하였으나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다.
⑥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쪽으로 이긴 생애였다.
자신이 굴복되는 쪽으로 하나님이 이긴 생애였다. 하나님이 야곱을 꺽으시는 쪽으로 이기셨다.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
에서와 겨룸, 라반과 겨룸, 하나님과 겨룸.
우리는 육신과 겨룸, 세상과 겨룸, 마귀와 겨룸--이김. 결국 이김.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이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⑦ 야곱은 세상에 살았지만 영원을 바라고 산 사람이다.
그는 자기를 가리켜서 나그네라고 하였다.
“네 연세가 얼마뇨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네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족하게 여김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창33:11)
에서는 세상 것으로 만족함.시편 17장-주의 형상으로 만족함.
⑧야곱의 징계/삶 속에 하나님의 공의 임함.
아브라함-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⑨ 야곱의 하나님
지금도 하나님은 여전히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시다. 시몬 을 베드로로 바꾸심. 사래를 사라로 바꾸심.
죄인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바꾸심.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심.
야곱의 하나님은 동시에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지금도 그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지옥갈 죄인을 하늘에까지 끌어올리신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 시리라”(벧전5:10)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벧전1장)
야곱은 성령께서 어떻게 죄인을 변화시키시는 지를 잘 보여준다.
5. 요셉-예수님의 모형
F. 야곱의 열두 아들 중 두 사람(르우벤과 요셉)을 비교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49:3-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49:24-26).
야곱이 야곱의 자녀들에 관하여 예언한 내용이 창세기 49장에 나온다.
르우벤의 생애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으로 요약된다.
물의 끓음 같다는 것은 안정되지 못하고 항상 마음과 생각이 요동되는 것을 가리킨다. 마음과 생각이 불안정하고 천박한 것을 가리킨다.
물이 끓는 것처럼 정욕이 끓고 정욕에 끌리는대로 행동하였다.
반면 요셉은 안정된 것이 있었으며, 견고하였고 자신의 욕망을 잘 통제하였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르우벤은 장자요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였지만 물의 끓음 같았다. 물이 끓는 모습을 보면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자기의 힘을 컨드롤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욥41:31).
용은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한다. 솥의 물이 끓음 같이 깊은 바다를 요동시킨다. 용이 지나는 곳은 조용하지 못하다. 용은 마귀를 가리키며 마귀가 다니는 곳마다 문제가 일어난다.
르우벤은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는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안정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심지어 아비의 침상에까지 올랐던 것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데 용감하였다.
첫째로 언급된 위광(威光)은 특별히 장자가 누릴 수 있는 제사장직의 수행과 관계된 말이다. 즉 족장시대에는 한 가족의 가장이 제사장직을 수행하였고 장자가 그 제사장직을 물려받았다(출 29:9). 둘째로 언급된 권능은 가족들을 통솔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전시(戰時)에는 장자가 가족들을 지휘하는 권리를 가질 수있었다. 그런데 르우벤은 그의 범죄로 인하여 이 모든 권리를 상실하였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 르우벤이 조급하고 정욕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성경에는 르우벤과 그의 후손들이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암시가 여러곳에 나온다. 르우벤은 애굽에 곡식을 구입하러 갈 때 베냐민을 데려가기 위하여 그의 두 아들을 볼모로 내어 놓겠다는 제의를 한 적이 있다(42:37). 또한 그의 후손인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며(민 16장; 신 11:6;시106:17), 땅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갓지파와 더불어 먼저 정복한 요단강 동편땅을 유업으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민 32 :-5). 그 외에도 르우벤 지파와 다른 지파가 요단강 동편으로 이동하면서 조급하게 단을 쌓다가 내란이 일어날 뻔한 적도 있다(수 22장). 탁월치 못하리니 - 르우벤이 장자로서의 위광과 권능을 상실할 것을 보여 주는 말이다. 장자권적 주도권은 유다에게로 옮겨졌으며(8절), 장자가 마땅히 상속받아야 할두 몫의 상속은 요셉이 받게 되었다(48 : 22 ; 대상 5 : 1, 2).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 아버지의 첩 빌하와 통간한 것을 은근히 표현한 말이다(35 : 22). 이러한 범죄가 그로 하여금 장자권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가 더럽힌 것은 자신, 관계한 빌하 그리고 부친 야곱및 가족의 명예등이다. 또한 야곱은 르우벤을 호칭하는 데 있어, 3인칭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분노와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Aalders).
1. 물의 끓음 같았은즉
조급하고 정욕적이며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지속적이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정욕으로 충동적으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르우벤은 끓는 물과 같다고 하였으나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나무 가지라고 하였다.
소용돌이 치는 물, 안정되지 못한 물, 거친 파도 같은 물, 항상 출렁이는 물 같다. 끓는 물 같다. 항상 요동하는 거친 바다 물결 같았다.
이것은 불신자의 모습인데 르우벤은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불신자는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닷 물결 같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요동하는 바닷 물결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견고한 것이 있어야 한다.
물과 같이 항상 넘실대고, 불안정한 모습이어서는 안된다. 바위 같은 견고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
2.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요동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신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4).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5:10).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살전3:3).
3. 기도에 있어서 요동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4. 위치를 지킴에 있어서 요동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신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간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갈려고 할 때 막으셨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명백히 위치 이탈이며, 요동한 것이다.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삼하23:11-12).
5. 받은 직분에서 이탈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신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행1:20)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행1:25)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골4:17).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4:10).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은 끝까지 해내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6. 외적인 상황으로 마음이 변하거나 요동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실 것이다.
결혼하고 난 후에 주님을 향한 마음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노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7:29-35).
환난과 역경이 온다고 하여 주님을 향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욥은 결국 모든 역경을 견뎠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5:7-11).
7. 변덕스러운 마음은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다.
일편단심인 마음을 원하실 것이다.
주님을 향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실 것이다.
이방원의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을 누리리라.
정몽주의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직업을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다.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도 변덕스러운 마음이 합당치 않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내게 까다롭게 하는 사람에게는 까다롭게 하는 것도 옳은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대하려고 해야 한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3-48).
8. 세상의 유혹으로 마음이 요동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신다.
돈에 유혹되거나 세상의 잘못된 교훈이나 풍조에 요동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돈 때문에 신앙을 버리고 세상에 가는 것을 원하실 것인가.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여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탈하는 것을 원하실 것인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이 교회 저 교회를 기웃거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것이다.
8. 요동하는 물결과 같았던 사람
르우벤은 끓는 물, 요동하는 물, 안정되지 못한 물과 같아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다.
데마는 요동하는 물결과 같아서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갔다.
물의 끓음 같이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안정되고 견고하게 변치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물의 특징-물은 그릇에 따라 모양이 언제든지 달라진다.
뚜렸한 목적과 단호한 결심으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확신이 없는 생활 태도는 그 마음의 비열함 때문에 생긴다. 르우벤의 성격이 가만히 정지해 있지 못하고 항상 흔들리고 있었다. 바다 물은 쉴새없이 흔들거린다. 바다의 빛깔도 수시로 달라진다. 물은 언제든지 분리될 수 있고 나누어질 수 있다. 물은 단지 후 하고 불기만해도 그 입김으로 인하여 움직인다. 물은 불안정하다.
물로 기둥을 만들 수 없다. 물은 홀로 설 수 없다.
무엇을 하든지 꾸준하게 하지 못한다. 책장을 넘기다가도 쉽게 포기한다.
생애가 불안정한 사람 구원을 계속 미루는 사람 물과 같이 행동해서는 안된다.
물은 어디든지 적응을 잘한다. 불신자와도 잘 어울리고 신자와도 잘 어울리고 이것이 옳은 것이냐. 그대로 닮게 행동한다.
주님을 향한 결심이 물처럼 변하지 않는가. 물처럼 불안정하면 탁월치 못하게 될 것이다. 마음은 물처럼 연약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붙들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설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변함없는 목표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61편)
우리가 연약함을 안다면 넘어질 수 있는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병약한 사람이 병균이 많은 곳으로 가서는 안될 것이다.
영혼의 닻이 있는 사람은 안정되고 견고하다.
우리는 변덕스러운 날씨보다 더 변덕스러운 자신을 보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가 죽는데까지 따라가겠다고 하였으나 부인하였다.
새로운 결심을 하지만 그 결심은 쉽게 불안정해지고 변한다.
교회 안에는 물처럼 불안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물의 끓음 같은 사람은 탁월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견고한 사람, 오직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탁월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며, 귀히 쓰임을 받을 것이다.
요셉은 가지에 불과했으나 그는 의지하는 쪽을 견고하였으므로 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G. 에서와 야곱을 비교함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 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니”(창25:27).
영역본에 종용한 사람을 조용한 사람, 온화한 사람, 평화로운 사람, 크게 두드러진 것이 없는 평이한, 수수한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이 되어 들 사람이라고 일컬어졌다. 에서는 주변의 산들에 대하여 들에 대하여 짐승에 대하여는 자세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는 짐승을 잡고 짐승의 생태를 아는데는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반면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으며, 자기의 내면 세계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하였고 리브가와 같이 거하면서 많은 대화 속에서 삶을 보낸 사람이었다.
우리 시대에 에서와 같이 외면의 세계에 대하여는 익숙하게 아는 들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며 야곱과 같이 종용한 사람, 자기의 내면의 세계, 영혼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 적어지고 있다. 외부의 활동은 당연히 필요하나 먼저 자기의 내면의 세계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a.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가 있다.
짐승은 영혼이 없으므로 외면의 세계, 자연의 세계와 더불어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은 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있으므로 외면의 세계와 내면의 세계라는 두 세계와 접하고 있다.
1.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좡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욥12:10).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2. 금세와 내세가 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3. 세계는 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고 천사와 마귀와 사람과 하나님이 공존하는 곳이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4:9).
우리는 구름과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는 곳에 들어서 있는 경기자인 것이다.
b. 외면의 세계를 추구할 때 그 속에서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식하고 찾도록 되어있다.
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 뒹구며 살았다. 그는 많은 동물들을 추적하였으며 많은 들꽃과 나무들을 항상 보았다. 그리고 이삭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들었지만 참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의사들이 사람의 몸에 대하여 배우고 그 신묘막측함을 보면서도 참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서는 동물을 잡는 것 자체로 만족했으며, 그 짐승을 먹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c. 두 종류의 만족
사람은 누구나 만족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다.
에서는 동물을 잡는데서 만족을 추구하였다. 반면 야곱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얻는데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두 사람은 각각 만족하였으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창33:9-11)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13-15)
d. 종용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들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종용한 사람이 되어 삶에 대하여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에서와 같이 되고 있다.
에서는 들에서 사냥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그것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영혼에 관심이 없었다.
1. 어떤 사람은 옷 쇼핑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그 재미로 산다.
2. 어떤 사람은 컴퓨터로 사이버세계를 서핑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자기의 영혼을 신경쓰지 않는다.
3. 또 어떤 사람은 세계 여행을 하는 것으로, 관광하는 것으로 삶을 소일한다.
4. 어떤 사람은 다양한 취미를 위해 자기의 모든 정력과 에너지를 투여한다.
5. 어떤 사람은 영화광으로 있다. 어떤 사람은 텔레비전과 함께 산다.
6. 어떤 사람은 다양한 책을 보는 것으로 소일한다.
어떤 사람은 사업과 돈을 위해 분주히 다닌다. 돈이 된다면 어디든지 간다.
7.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종용한 사람이 되어서 자기의 인생을 신중히 생각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
1)먼저 구원의 문제를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
2)바른 터 위에 바르게 세우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3)상 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주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내가 어떤 생을 보낼 것인가를 성찰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내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때에는 엘리야처럼 굴 속에서 깊이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e. 에서는 외면의 세계에 집착했으므로 육신의 문제를 주된 관건으로 생각했으며 그 결과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팔았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의 큼을 알고 그것을 사모하여 결국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받았다.
육신적인 것을 추구함으로 영원한 축복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자.
(마10:1-4)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잠23:23)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히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세상에서 사고 파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며 팔아서도 안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사며, 팔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다.
성경은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산 사람들과 팔지 말아야 할 것을 판 사람들의 실례가 많다. 동시에 팔아야 할 것을 팔고 사야할 것을 산 사람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은 육신의 것을 팔고 예수님을 얻었으나 가룟 유다는 육신의 것을 위해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예수를 판 자에서 팔았다는 원어는 paradous이다.
paradidomi는 para(곁에, 가까이 옆에)+didomi(주다)의 합성어이다. 넘겨주다. 양도하다. 팔다.
비싼 거래를 한 사람들
에서-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창25:31-34)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에셀과 엘르앗-짐승과 목숨을 바꿈
(대상7:20-23) 에브라임의 아들은 수델라요 그 아들은 베렛이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엘르아다요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사밧이요 그 아들은 수델라며 저가 또 에셀과 엘르앗을 낳았더니 저희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내려가서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고자 하였음이라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 그 후에 에브라임이 그 아내와 동침하였더니 아내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 그 이름을 브리아라 하였더라
에셀과 엘르앗은 가드 사람의 짐승을 빼앗으려고 하다가 가드 토인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짐승을 빼앗으려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곧 짐승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에브라임은 여러날 슬퍼하였다.
에브라임의 집에 재앙이 왔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죽임을 당하였다거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죽임을 당하였다면 영광스러운 것이었겠으나 짐승을 빼앗고자 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이것은 옛날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하찮은 것에 건다.
1)쾌락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2)연예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3)스포츠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4)학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요상한 벌레 연구
하찮은 것을 위해 중요한 것을 버린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32:7-8) 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빈핍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어니와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데마-주님의 일 대신에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의 일을 떠남
우리의 힘과 시간과 우리의 재능을 어디에 투자하고 있는가.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지만, 우리는 불신자는 구원을 받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사용하여야 한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하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무엇을 하다가 임종을 맞이했는가. 그리스도인이 영화관 안에 있다가 싸움에 휩쓸려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이 놀러가다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된다. 전도하러 가다가 죽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리에서 죽으면 안되겠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야할 것-진리
옷을 팔아 검을 삼. 눅22;36
마13:44-45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진주를 삼
(잠23:23)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구원을 사라. 그리스도를 사라. 모임에서 진리를 사라. 진리를 얻으라. 신앙생활의 비결을 사라. 성경을 사라. 좋은 신앙 서적을 사라. 그것을 숙독하고 익히라.
신앙생활에 필요한 도구들도 사라.
(계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불로 연단한 금=연단받는 믿음, 흰옷=성결, 안약-주님 편으로 밝아짐
f. 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광야로 내몰았으며, 그는 처가살이 20년을 통해서 단련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후에 이긴 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