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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침을 열며] 영어 열풍을 잠재우려면 -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교육
2007/11/21 21:18 |
세상에서 가장 영어 열풍이 드센 나라 대한민국. 이 나라에서 영어는 권력이고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영어를 못하여 커다란 국가적 재난을 겪었을까? 영어를 못하여 기업들이 중요한 사업 기회를 놓쳤을까? 영어를 못하여 문화 생활도 못하는 야만인이 되었을까? 영어 못한다고 세상의 놀림거리가 되었을까? 아니다. 모두 아니다.
● 영어 수요는 실수요 아닌 가수요
영어가 국가 경쟁력이라고 영어 전도사들은 떠들어대지만 최근 몇 십 년 동안 가장 모범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영어를 가장 못한다는 한국과 일본임을 명심하라. 영어는 잘하면 좋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할 필요가 없다.
세계화 시대 아니라 우주화 시대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정부는, 기업은, 언론은 이렇게 영어를 외치고 사람들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회는 이렇게 불필요한 낭비에 시달리며 국어는 이렇게 병들어 가는가?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영어 열풍은 모든 사람들이 얼마간의 영어 능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영어는 모든 사람의 얼마간의 영어 능력이 아니라 '소수의 높은 영어 능력'이다.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주기 위한 모두의 초보 영어가 아니라, 자기 전문 분야에서 외국인과 소통할 고급 영어 능력이다. 이런 영어 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국민의 소수이다. 아니 극소수이다.
생각해 보자. <한국일보> 직원 가운데 영어를 반드시 잘 해야 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한림대학교 졸업생 가운데 영어가 꼭 필요한 직종에 종사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많이 잡아야 10%도 안 될 것이다. 이런 명확한 진리를 무시한 채 온 국민이 영어에 매달리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낭비다. 영어 교육의 기본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
한 마디로, 우리의 영어 수요는 실수요가 아니라 가수요이다. 가수요가 또 다른 가수요를 낳고 그것이 또 가수요를 낳고 하는 악순환이 바로 우리 영어 열풍의 참모습이다.
이런 가수요는 영어가 가진 막강한 힘 때문에 일어났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항구적 위기 의식, 정신적 사대주의, 휩쓸리기 쉬운 문화, 지나친 경쟁 이데올로기와 상업주의, 그리고 학벌주의와 못 말리는 교육열 때문에 급기야 '정신 나간'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교육부나 대선 주자들이 영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공교육에서 이를 흡수하겠다는 구상들을 내놓는데, 이것은 사태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영어 교육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가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영어 공교육을 늘리면 우선 그에 따라 다른 과목들이 피해를 볼 것이니 교육 과정의 파행을 가져올 수 있다.
● 정치권력이 영어교육 철학 혁파해야
더 큰 문제는 공교육의 확대가 사교육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이를 더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과학 과목도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 몰입 교육'을 실시하면 아이들이 영어 학원 다니기를 그만둘까?
참 어리석은 가정이다. 오히려 몰입 교육에 따라가기 위해, 1학년 영어 수업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또 다른 학원 수업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의 영어 열풍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고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그 맹목성은 영어가 가진 권력에서 나오지만, 그것에 기대어 세력을 확대하는 기업, 언론, 정부, 사교육계와 상류층 전반이 이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을 전혀 보지 못하고 그저 시류에 편승하여 영어 교육 확대만을 얘기하는 대선 주자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영어 교육의 기본 철학을 혁파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와 권력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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