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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댐과 섬진강수력발전소
순창의 유풍교에서 섬진강 상류로 올라가지 않고 U턴하여 영산강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섬진댐까지 48km쯤이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 숙제를 추석산소길에 풀었으며 영산강에 들어가기 전에 마무리하는
것이 순리(순서)일 것 같다.
섬진댐까지는 칠보면(井邑市七寶) 소재지 버스터미널에서 지방버스편으로 갔다.
정읍시 산내면(山內面) 용두봉자락(종성리)과 임실군 강진면(任實郡江津) 필봉산 자락
(옥정리? 용수리?) 사이를 막은 댐이며 이로 따라 생긴 호수가 옥정호(玉井湖)다.
일제는 이 댐을 축조해(1926년) 옥정호에 물을 가두고 서쪽 산을 뚫어(호남정맥 왕자산
~성옥산 사이?) 만든 6.2km가 넘는 압력수로를 통해 칠보쪽으로 물을 내려보냈다.
동진강으로 유역을 변경해 정읍과 김제,부안 등지의 평야지 농업용수로 충당하기 전에
152m의 고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그 물로 농사도 짓는 다목적 댐이며 수로다.
댐으로 인한 수몰민과 영농인 간의 상반된 애환사가 여기 섬진댐 주변에도 켜켜이 쌓여
있겠지만 내 기억에 생생히 살아있는 것은 칠보(現섬진강)발전소의 노출된 수로관이다.
일제는 총 길이 200m가 넘는 길고 큰 수로관의 위장도색에 여념이 없었다.
수로관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색(色)이 수시로 변했는데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공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
발전소 옆의 높지 않은 구절재도 오르지 못해 사람이 내려서 밀어야 하는 목탄연료차로
미국을 이기겠다는 망상증 환자 일본이었으니까.
섬진강 자전거길의 시종점은 여기 댐에서 6km쯤 남하와 동진을 해야 있다.
팔공산(1,151/진안군백운면신암리) 북기슭을 흐르는 상추막이골의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백운, 마령, 성수면을 거쳐 임실까지 이동하는 동안 몇개의 지천을 흡수한다.
4신선과 선녀의 전설을 지닌 사선대(四仙臺/임실館村)에서는 가마귀가 놀던 강 오원천
(烏院)이 되어 신평, 운암을 지나며 지천들을 모은 후 옥정호에서 대장정을 준비한다.
마침내 장도에 오른 섬진강물과 함께 자전거 마니아들의 첫 인증센터가 있는 임실 생활
체육공원 앞까지 30번국도 6km를 내려갔다.
섬진강댐을 내려서면 바로 정읍시 산내면에서 임실군 덕치면(德峙)으로 바뀌어.
자전거길 표지마저 없지만 섬진강자전거길 밖이므로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는 길이다.
섬진강의 첫 보인 설보(雪洑)를 지났다.
1639년 운학 조평(雲壑趙平/1569∼1647)이 보를 쌓고 8km의 긴 수로를 개척,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는데 한 노인의 현몽대로 쌓았다 해서 설보라 명명했다는 보다.
이 수로가 회문리의 유일한 젖줄이란다.
착공과 준공식을 동시에 하는 것이 이즈음의 유행인가.
섬진강생활체육공원 앞이라 해서 잘 조성된 공원이려니 했는데 착공단계에 불과하니.
한가위 대명절 직전이라 해이해졌나.
유인(有人) 안내소에 아무도 없다면 무인 안내소 아닌가.
체육공원도 공사를 중단한 것인지 벌써 명절 기분에 젖었는지 황량했으며 마을(덕치면
망월) 분위기도 쓸쓸하고 마치 먼 타국의 어느 변방에 방금 내려진 기분이었다.
섬진강으로 강진면과 나뉜 덕치면에 속해 있는 회문산 자락의 조용한 강변마을, 망월리
(望月)가 한참 몸살을 앓을 것 같다.
운암 - 순창 사이 국도30번과 27번의 이 지역 확장공사에서 유적이 발굴되었다니까.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주거지(址), 고려시대 석곽묘(石槨墓)와 수혈
(竪穴)을 비롯해 다량이라니까 계속해서 일대를 분탕질할 것 아닌가.
물 걱정 없는 물우리에 당산할매가 건재
강진교 입구, 회문삼거리 인증센터 앞에서 시작되는 덕치면의 자전거길 또한 면소재지
한하고 단 1치도 늘리지 않고 파란 페인트칠만 했다.
섬진강과도 거리가 있어서 지루함이 더하는 길이다.
상류의 시종점(임실)과 준공식을 가진 하류의 시종점(광양)이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다.
회문삼거리 이후 27번 국도 섬진천교 밑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덕치면소재지를 지난 후
평상시 노선과 침수시 노선이 갈리는 지점에서 첫 침수교를 건넜다.
물우리로 가는 새마을교다.
마을이 강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물 걱정이 끊이지 않아서 물우리(勿憂里)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에 근심우(憂)자가 포함된 전국 유일의 마을이란다.
지금은 물우교가 높이 놓여서 걱정이 없다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나쁜 조건인
데도 취락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지리(地理)와 생리(生利), 인심(人心)과 산수(山水)가 취락형성의 기본임은 이중환의 말
(擇里志卜居總論)과 무관하게 옛 선인들이 익히 알고 꼼꼼히 따졌거늘.
물 걱정 때문이었을까.
우람한 당산목 아래에 당산할매의 형상을 만들어 묻고 봉분을 했으며(가묘) 마을인들이
각기 그녀에게 매달렸다니.
정월 보름에 제물을 차려놓고 당신제(堂神祭)를 지내며 마을의 풍년과 마을민의 안녕을
비는 한바탕 굿이 마을의 연례행사였는데 아직도 진행형이란다.
물에서 살아야 하는 어촌민의 해신제처럼.
잘 지은 2채의 대형 정자가 부촌 분위기를 풍기는데 당신제 효과일까.
교회와 구세군 군영이 입성했는데도 성과를 올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인가.
침수교들을 지그재그해 순창 구림쪽에서 달려온 치천을 받아들이는 지점(물우리)에서
자전거 둑길로 올라서게 된다.
침수시 노선이 일중교를 건너와서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8.3km 섬진강(덕치)생태테마마을길이 막 시작된 위치다.
섬진강과 함께 걷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둑길이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한데, 자전거길에 웬 자동자 주차장?
화장실 옆에 자전거 주차대 수보다 더 많은 차량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이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니고 자동차 병용도로?
그래서 차량 1대면 꽉 찰 좁은 길에 이따금 교행지역을 조성했나.
고조되어 가던 기분이 일시에 가라앉는 듯 했는데 정자나무까지 거들고 나섰다.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아니고 당치 않은 상을 받고 뽐내는 듯한 고목이.
새나 돌에게 준다는 '풀꽃상'이 왜 새도 돌도 아닌 거목 정자에게 돌아갔나?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단체는 줏대 없이 상을 남발하는 단체?
제주도가 세계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고 떠들어댄 요란법석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스위스의 '뉴 세븐 원더스(New 7 Wonders of the World)’ 라는 말도 탈도 많은 황당한
단체에 놀아나 엄청난 혈세를 낭비한 일이.
이 무명단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코모도섬을 세계7대 자연경관 후보에서 공식
철회한 인도네시아 만도 못한 대한민국이다.
단체도 상도 하도 많아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 우마돈(牛馬豚)에 이르기 까지 너나 없이
수상자라면 장차 무관자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군부독재때 일이다.
위트(wit)가 풍부한 내 양모 J여사는 훈장을 받으라는 제의를 정중히 사양한 후 말했다.
"개도 소도 다 받는 훈장 받고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되겠느냐"고.
임실은 청출어람 불모지인가
이 정자가 있는 장산 마을(長山/진뫼)이 임실의 인물 김용택시인의 생가마을이란다.
(진메, 진뫼는 장산을 풀이한 긴뫼의 전라도식 발음일 것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 뿐이겠지만 찜찜한 데가 있다.
나는 김용택에 대해서는 그가 시인이라는 것 외에는 백지다.
그의 시 한 줄도 읽지 않은 내가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의 시뿐 아니라 나는 시를 거의 읽지 않는다.
친구 시인들이 보내주는 신간 시집들도 읽어야 하는 의무감이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내가 너무 건조한가.
다만, 바윗돌에 새긴 단 한 사람 특정인의 시들이 간단없이 서있는 섬진강변 길을 걸을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섬진강에서, 임실에서 김용택은 과연 불세출(不世出)의 인물인가.
이 지역은 청출어람(靑出於藍) 불모지인가.
온통 그 한 사람 뿐인데 서남동길에서 벌교를 지나며 한 말을 다시 해야겠다.
"벌교는 조정래와 태백산맥에서 벗어냐야 한다"고 한 말을.
임실 역시 김용택의 비중을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걸어가면서 도열하듯 길에 서있는 그의 시를 처음으로 이따금 읽어보았다.
"천부의 재담을 시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출중한 분.
그래서 난해하지 않고 평이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팬이 많겠다"고 생각되었다.
내 생각은 코끼리 만진 장님의 느낌에 불과할 것이므로 그에게 누가 된다면 다사(多謝)
하거니와 시인 본인도 사려가 깊지 못한 느낌이다.
자기 시가 섬진강변을 독점하는 것이 단지 열혈 팬들의 열의라 하여 방관하는가.
더 우뚝할 나중 난 뿔(出藍)을 배려하는 아량이 부족한 것 아닌가.
사족(蛇足)이 된다 해도 하고픈 한 마디가 더 있다.
익을 수록 머리를 숙이는 곡식의 진리에 둔하다면 시재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릇은 작은
접시에 불과하다.
진뫼, 덕치, 임실의 주민들이 고장시인의 작품을 애호하는 정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특정인의 시만을 접하게 하는 것은 편식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늙은 길손의 코끝을 찡하게 한 것은 유명 시인의 시가 아니라 그 마을 7자식의 '사랑비'.
"부모님 손발톱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다는 지식들이 세운 사랑비다.
'용'자 돌림 김씨인 것으로 보아 김용택 시인과 동기간이 아닌지.
시적 자질이 있는 가계인가.
강가의 전망데크가 한가로워 강렬한 햇볕도 아랑곳없이 잠시 머물렀다.
저 아래에 보가 설치되어 있는지 물이 많이 고여있고 보드도 하나 잠자고 있다.
조금 후에 보를 지나고 자전거길은 차로를 벗어난다.
천담교 까지는 홍수시 우회해야 하는 길이다.
자전거전용도로 같으나 물우리~진뫼처럼 차량과 공용 관계인 듯.
잘 지은 정자를 지나고 천담권역 농촌마을 개발사업장 끝에는 차량통행 저지용 말뚝이
있으나 유명무실한 것을 왜 박아놓았는지.
천담교 앞 매점에서 오늘 처음으로 쭈쭈바 하나를 사먹었다.
서남동길 장흥 매생이마을 정자에서 최초로 맛본 이후 메로나를 물리친 더위 식품이다.
도중에 매점이 있었다면 아마 매번 사먹었을 것이다.
낮기온이 그만큼 더운 날이다.
천담마을(川潭), 천담교에 왜 정자만 남강정(南江亭)일까.
천담을 지나 차로를 따라서 구담마을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임실군에서 순창군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한 봉고버스가 저만치 앞에서 멎더니 후진해 내게 다가왔다.
늙은이를 위한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타기는 했지만 200m도 가지 못해 내려야 했다.
제멋대로인 자전거길 이정표
세월교(침수교)를 건너 순창땅에 당도했다.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淳昌郡東界面於峙里) 회룡마을이다.
옥정호에 이를 때까지 오원천이었던 섬진강이 이제부터 얼마동안 '적성강'이라는 이름
하나를 더 달고 남하한다.
강물을 피로 물들여 적성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나 통일신라 경덕
왕 16년부터 적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 것으로 보아 터무니 없는 것 같다.
아무튼, 550여리 길에 기구하게도 지역마다 다른 5개 이름으로 행세하느라 고달프겠다.
오원천, 적성강, 순자강, 잔수강, 섬진강 등.
추석을 준비하는 중인지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을 주문했다.
냉장고에 이상이 있나 예스럽게 내온 물이 차지 않아 버릴 수도 없고 마시기는 했으나
벌쓰는 기분이었는데 커피도 마시며 편히 쉬었다 가시란다.
이즈음의 시골에서 가장 후한 인심은 커피라 하겠다.
이 사람들도 커피를 못마신다는 늙은이가 기이하게 보이는지 갸우뚱한 표정이었다.
카페인중독에 걸렸을 만큼 커피광이었던 내 과거를 알 리 없으니까.
공가 폐가와 새 집이 대조되는 산만한 마을 끝 고개가 싸리재인가.
섬진강은 물우리 이후 마치 U자를 뒤집은 형국으로 돌아서 남하한다.
어치리 마을을 외곽으로 돌아 드무소골에서 다시 직각으로 꺽어 현수교 밑을 흐른다.
마을 고개를 넘어 드무소 쉼터를 지나면 현수교다.
내룡마을의 장군목유원지 3km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어치리의 용궐산과 무량산 사이의 산세가 장군대좌형 명당이라 해서 '장군목'이라 이름
지었다는 여기 유원지는 섬진강물이 다듬어놓은 기기묘묘한 돌들의 전시장이다.
득남의 영험이라는 공통된 전설이 담긴 '요강바위' 는 도굴꾼에 의해 사라진 후 전국에
수배해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 말이 믿어지겠는가.
강 건너 용궐산 자락은 공사중이다.
중장비들이 동원된 이 공사 이름은 '용궐산 산림테라픽 밸리'조성사업.
순창군이 60억을 투자해 산림치유길, 향기수목원, 허브원, 스토리가 있는 구구팔팔치유
구곡 등 치유시설과 힐링센터, 청소년과 가족단위 이용객을 위한 장수음식촌, 모험놀이
동산 등 산림레포츠 시설을 다양하게 조성한다나.
장군목 인증센터와 섬진강 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에 당도했다.
동계면에서 적성면(赤城石山里)으로 옮겨온 것이다.
인증센터는 당연히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해 있지만 숙박시설은?
쓸쓸하기 그지없으며 외출딱지가 붙은 황당한 매점.
오픈한지 일천하기 때문인가 추석 명절 영향인가 위치 선정에 문제가 있는가.
건너편에 산림테라픽밸리가 조성되면 공급 과잉으로 고전하게 되지 않을까.
건건사사 낭패하는 것은 일을 성사하기 위해 수요 예측을 터무니 없이 끌어올리기 때문
인데 부디 전철을 밟지 않기를 빌며 단지를 떠났다.
적성면 지역의 자전거길도 지금 공사중이다.
벌동산 자락을 절개해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다.
언제 끝날지 기약없이 진행중인 이곳은 차량의 위험보다 낙석의 위험이 더 큰 구간이고
야간에는 더욱 위험할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예방해야 하겠건만.
적성면과 동계면을 잇는 섬진강 구미교에 이르는 동안 자전거길 이정표는 제멋대로다.
방향을 거꾸로 가리키며 마냥 걸었는데도 직전 이정표가 안내한 남은 거리보다 더 남는
일이 빈번하며 이정표들의 거리가 제각각이다.
이정표의 사명은 정확한 방향과 거리의 제시다.
짓궂은 사람이 방향을 틀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를 방지하는 것은 설치상의 문제
지만 거리는 이정표의 제작시 정확을 기해야 한다.
이정표를 제작, 설치하는 기관 간의 긴밀한 협조로만 가능한데도 왜 따로따로일까.
예산의 집행에 따른 이해관계 때문?
우계리는 천상마을인가
석산리 강경마을(江景),구미교 이후의 자전거길은 동계면쪽에서 구미교를 건너온 21번
국도를 한동안 이용해야 한다.
10시 반에 섬진댐을 떠나 25km쯤 걸어온 구미교의 시각은 18시.
진행을 멈추려 했으나 정자가 있는 마을이 없기 때문에 계속 걸어야 했다.
내월삼거리까지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섬진강을 떠나게 된다.
히치하이크 2번이 쉽게 이뤄졌으나 섬진강과 멀어져 되레 화가 되었고 이미 어두워진
시각, 내월삼거리 고개마루에서 근래 최악의 상뢍에 봉착했음을 알았다.
절대불가결의 손전등을 숙소에 두고 온 것.
밤눈을 빼놓고 온 것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더 걸어야 마을이 있으며 정자는 어디에 있는지 미지의 칧흑 밤길에 이정표마저
볼 수 없다면 난감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이미 겪었던 백두대간 입망치 사건(메뉴 '백두대간과 아홉정맥' 8번글참조)의
판박이라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20도로 꺾는 고개마루 삼거리에서는 달려오는 차량의 전조등을 이용해 갈길을 찾았다.
도로에서는 만월에 근사한 달빛 도움을 받고 마을의 위치는 냉수 동냥을 구실로 불켜진
집에 들어가 설명 듣고.
4km 이상을 이렇게 해서 우계마을(적성면 내월리)에 도착했다.
역시 불밝은 집에서 정자를 안내받았다.
전라도에서 정자는 정자나무를 의미하며 다각형 쉼터는'모정'인 것을 깜빡해서 거목 곁
으로 안내될 뻔한 해프닝 끝에.
마을회관 앞, 유리창과 모기장이 설치되어 주택의 거실과 다름 없는 너른 정자.
탈 없이 1박 하려면 이장의 허락을 받는 것이 예의라 생각되었다.
마을 따라서는 실제로 그러기를 바라기도 하니까.
이장집을 찾다가 만난 초로남은 밤 공기가 차므로 경노당에서 유하시라며 앞장섰다.
경로당은 마을회관 안에 있는데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모멸감을 느끼도록 도둑 운운하며 얼씬도 못하게 하는 외지인의 성역을 마구 개방하면
서도 아무 절차도 필요없다는 별난(?) 마을 우계리.
우계리는 천상(天上) 마을인가.
외눈 세계에서는 양눈이 장애인인 것처럼 당연하고 정상인 마을이 이상한 마을로 분류
되는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게 하는 우계마을.
늙은 길손도 비정상에 순치되었는지 경로당보다 정자가 편할 것 같아 후자를 택했다.
잠시 후 초로남은 냉녹차가 가득 담긴 물병과 소주병을 들고 다시 왔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産)이 13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그는 강용문.
다른 어느 지방보다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우계리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닌 전입자.
논밭에는 곡식이, 앞강(섬진)에는 물고기가 잘 자라주고 인심좋고 공기좋아 달리 바랄
것이 없는 마을이란다.
강용문이 간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섬진강에서 고기잡다(낚시로) 돌아온다는 마을회관
관리인(?)이 또 찾아와 경로당에서 주무시란다.
우계리(愚溪)는 어리석은 마을이 아니라 진실한 마을인가 보다.
우(愚)자는 어리석음을 뜻하지만 고지식하다는 뜻도 있으며 예전에는 진실함을 뜻하는
말로 고지식할 愚자를 사용했다니까.
나그네도 진실한 마을에서 진실로 편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