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F조를 분석하다
아르헨티나
축복받은 조 편성이다. ‘월드컵 처녀 출전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아시아 최약체’ 이란, 이미 여러 번 월드컵서 상대한 적 있는 나이지리아와 한 조로 묶였다.
총 이동 거리(1680km)도 가장 짧다. 조 2위 싸움을 펼치리라 예상되는 보스니아와 나이지리아는 각각 3490km와 2981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거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할 뿐만 아니라 E조 2위까지 꺾고 무난히 8강에 오르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르헨티나는 자국 출신 알레한드로 사베야 감독 부임 이후 다시 일어섰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항상 최고의 선수를 보유하고도 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불과 4년 전만 하더라도 리오넬 메시는 온전히 개인 능력만으로 월드컵을 들어 올릴 것만 같았으나 독일에 4-0으로 처참히 패했고, 이듬해 나선 코파 아메리카서도 8강에 머물며 자존심에 흠집을 냈다.
그러나 모두 옛이야기일 뿐이다. 사베야 감독은 리오넬 메시를 비롯한 몇몇 핵심 선수를 중심으로 빠르게 옛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경기운영과 상황에 따른 변화로 남미 예선서 9승 5무 2패 35득점 15실점이라는 강한 면모를 보였다.
포메이션은 4-2-1-3과 4-2-2-2, 5-3-2 주로 사용했다. 유리한 홈 경기서는 매서운 공격 축구로 상대를 밀어붙였고 껄끄러운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원정 등에선 수비적인 5-3-2 포메이션으로 체력 부담을 덜었다.
메시의 활약이 컸다. 예선서만 14경기 10골을 퍼부으며 유독 대표팀서 부진하다는 오명을 벗었다. 사베야 감독으로선 감지덕지하다. 훌륭한 공격진에 메시의 활약은 팀 전력을 크게 상승시켰다.
문제는 수비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페르난도 가고, 에베르 바네가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수비진을 보호하지만 측면 수비는 파블로 사발레타와 마르코스 로호를 제외하면 마땅한 백업 자원이 없고 중앙 수비는 평범한 수준의 선수로 그친다.
주전 중앙 수비수인 에세키엘 가라이와 페데리코 페르난데스는 분명 괜찮은 조합이지만 라인 유지와 느린 발이 여전히 지적된다. 큰 무대 경험이 많은 마르틴 데미첼리스와 니콜라스 부르디소를 기용하거나 중앙 수비수를 3명이나 기용한 5-3-2 포메이션이 방안일 수도 있으나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공격진의 수비 가담이 적어 최전방과 미드필더진 간격이 넓게 벌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과연 사베야 감독은 어떤 방법으로 아르헨티나의 약점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본선 무대는 처음이다. 보스니아는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G조서 그리스와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등을 꺾고 조 1위로 본선행을 확정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 후 21년 만이다.
비교적 쉬운 조에 속했지만 8승 1무 1패 30득점 6실점을 기록하며 이번 대회 복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화려한 공격진이 눈길을 끈다.
보스니아의 ‘축구 영웅’ 사페트 수시치 감독은 과거 자신이 맡았던 공격형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보스니아를 매력적인 팀으로 만들었다.
에딘 제코와 베다드 이비세비치로 이루어진 최전방 아래 세나드 룰리치와 즈비에즈단 미시모비치를 기용해 빠르고 세밀한 공격을 풀어간다. 또 아래서는 하리스 메두야닌과 미랄렘 피야니치가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기술을 선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앙 수비수의 수비력이다. 보스니아는 다른 동유럽 국가처럼 가볍고 빠르며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 이루어진 팀이지만, 크로아티아의 요십 시무니치나 세르비아의 네마냐 비디치 같은 건장하고 믿음직한 중앙 수비수는 없다.
가뜩이나 젊은 선수로 이루어진 선수단에 에미르 스파히치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유력한 파트너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활약하는 90년생 에르민 비차키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다.
세 번째 옵션인 보리스 판자는 비록 느려도 좋은 판단력과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힘 있는 경기를 펼쳐 감독의 신뢰를 받고 있고 이밖에도 수시치 감독은 벨기에 겡크 소속 에르빈 주카노비치와 최근 비디치의 후계자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이 거론되는 오그녠 브라녜스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서 한국을 잡으며 조 1위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국과 일본, 호주보다 먼저 이란을 떠올리진 않는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레바논과 한 조로 묶여 5승 1무 2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지만 8득점 2실점이라는 기록이 말하듯 그리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이란은 4-2-3-1 포메이션을 사용한다. 저돌적인 측면 오버랩을 바탕으로 중앙 미드필더의 긴 패스를 살린 공격과 강력한 압박 및 빠른 공수 전환이 특징이다.
특히 오른쪽 수비수인 쿄스로 헤이다리는 비록 ‘팀내 최고스타’ 자바드 네쿠남과 안드라닉 테이무리안, 마수드 쇼자에이에 가려졌지만 매 경기 매서운 공격 본능을 뽐내 자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또 이란은 보스니아에 강하다. 총 5번의 경기를 치러 4승 1무라는 압도적 상대 전적을 기록했다. 유력한 ‘조 2위 후보’ 보스니아와 나이지리아에 전력이 크게 뒤처지지 않는 점은 또 다른 변수다.
그러나 월드컵 경쟁력은 여전히 미지수다. 매번 최전방 공격수의 저조한 골 결정력이 발목을 잡았다. 예선 내내 공격 축구를 펼쳤음에도 6골을 기록한 미드필더 네쿠남이 팀내 최다득점자다.
네쿠남 다음으로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3골을 기록한 레자 쿠차네자드와 카림 안사리 파드, 모타바 자바리, 모함마드 칼라트바리가 있다. 하지만 자바리와 칼라트바리는 최전방 공격수로 적합하지 않다.
한때 ‘제2의 알리 다에이’로 불린 안사리 파드는 잠시 주춤한 사이 구차네자드와 골람레자 레자에이라는 경쟁자가 생겼다. 이중 구차네자드는 최종 예선 막바지 5경기서 3골을 넣으며 이목을 사로잡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케이로스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나이지리아
한동안 아프리카 최강자 자리와 거리가 멀었던 나이지리아는 스티븐 케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재도약했다.
90년대 후반 이후 마땅한 우승 트로피 하나 못 든 대표팀이었지만 케쉬 감독이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이끌어내면서 나이지리아를 아프리카 최정상 자리에 올려놨다.
월드컵 본선행 또한 무난했다. 그룹 예선서 말라위와 케냐, 나미비아를 만나 3승 3무를 거뒀고 최종 예선서는 에티오피아를 만나 합계 4-1 완승을 하며 브라질 월드컵 무대를 예약했다. 한편으로는 케쉬 감독이 여전히 축구 협회와 문제를 겪고 있지만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않는다면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만하다.
나이지리아는 4-3-3 포메이션을 사용한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처럼 선수단 대부분이 유럽파다 보니 조직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개인기량이 모두 뛰어나고 경기 이해가 빠르다. 최근 치른 이탈리아전만 봐도 주전 선수를 대거 제외하고도 무승부를 기록했듯 결코 무시 못 할 전력이다.
특히 공격진은 F조서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개인능력이 출중하다. 주전 공격수 엠마누엘 에메니케와 아메드 무사, 빅터 모제스를 제외하고도 빅 리그서 주로 활약하는 피터 오뎀윙기나 이케추쿠 우체 등이 있어 골 가뭄 걱정이 없다.
그렇다고 수비가 크게 흔들리지도 않는다. 지난 월드컵서 엄청난 선방쇼를 보여준 ‘수문장’ 빈센트 옌예야마가 건재하다. 소속팀 릴에서도 리그 최하 실점(16실점)을 기록하며 당당히 리그 3위에 올랐다.
그러나 굳이 걱정스러운 부분을 하나 꼽자면 미드필더다. 나이지리아가 전방에서부터 서서히 상대를 압박하는 축구를 펼치다 보니 자칫하다가는 쉽게 중원을 허용한다.
한 예로 지난 에티오피아전과 이탈리아전은 강제로 미드필더 능력을 점검하는 경기 같을 정도로 존 오비 미켈과 오그예니 오나지를 혹사했다. 전자는 너무 넓은 공간을 메우느라 고생했고 후자는 좁은 공간서 이탈리아의 압박을 견뎌내느라 진땀을 뺐다.
나이지리아의 성적은 핵심 선수 미켈이 공수 양면에서 얼마나 활약해주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