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묵은 밀라노 시내 코스모 호텔은 현대적이고 깨끗한 숙소였다. 아침에는 늘 맑고 고운 해가 떠 오른다.
시기적으로 여행하기게 가장 좋은 계절같다. 이제 로마로 향하여 내겨가는 길에 피사를 들러 볼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제 그 로마의 법에 따라 로마로 통하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타는 기분이다. 11시경 휴게소에 들렀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화장실, 물이 될 것이다.
석회석이 가득한 물은 늘 사 먹어야 한다. 그래도 이태리는 휴게소에서는 화장실 가는데 돈을 받지는 않고 매장을 쭉 둘러보게 만들었다.
올리부 피클이나 모든 것이 이 휴게소는 너무나 싸다. 땅콩 한봉지에 1유로 50이다. 2000원 가량이 큰 봉지에 가득이다.
돌아 오면서 까지 먹을 수 있었다. 다른 휴게소도 그런줄 알고 올리부 피클이나 다른 것을 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탈리아는 산이 많다. 그리고 산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그 꼭대기에 성이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마도 늘 전쟁을 가까이 한 이들의
습성인듯하고 전염병이나 습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피사를 거의 가다가 보면 까라라(Carrara)지방을 지난다. 이탈리아는 대리석이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거의 모든 집 바닥이나 공공기관은
대리석을 많이 이용했다. '대리석을 깔아라(까라라)라'는 말과 같이 지방 이름이 우리나라 말과 상통한다. 까라라 지방의 산은 온통 파헤쳐
있고 골목마다 대리석 공장이다. 우리나라도 이곳에서 수입이 비앙코(Bianaco) - 이탈리아어로 흰색 이란뜻-대리석은 수입이 된단다.
이 비앙코 대리석 석산이 이곳에 있다.
피사에 도착하여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 여행객 단골인 모양인데 역시나 중국 음식은 그렇다. 하기야 싼 여행비를 맞출려면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정말 못 먹을 정도다. 늘 대만에서 먹던 그 맛있는 중국식들이 생각난다.
자그맣고 아름다운 시골동네 같은 피사(Pisa)는 토스카나주에 있는 도시이다. 피사현의 현청 소재지이고 인구는 9만명 정도이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고,
예로 부터 문예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갈리레오 갈릴에도 이곳의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피사의 사탑까지 걸어서 갔다. 예쁜 샤틀여행차가 시내와 피사의 사탑을 돌고 있다.
피사 시내에서 이곳으로 관광버스가 진입이 안되기 때문에 시내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왔다.
피사는13세기 후반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구 정치 질서가 해체되면서 도시국가들이 나타났다.
밀라노, 피사, 루카, 파르마, 제노아, 아레초에 뒤이어 베로나, 볼로냐, 시에나, 피렌체등 로마 이북의
도시국가들이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된다. 피사는 피사 시내를 가로 지르는 아르노(Arno)강을 따라
해상무역을 통하여 막강한 도시국가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282년 제노바 함대가 아르노 강 근처의
피사인의 무역을 막자 양측은 1282년 제노바 120척의 갤리와 피사의 72척이 티레니아해의 멜로니아
섬 근처에서 해전을 치루어 패하게 되고, 이후 쇠퇴하여 1406년 피렌체에 정복 당하게 된다. 한 때
해상무역의 꽃을 피우고 제노바와 베네치아와 라이벌 이었던 피사는 걸어보니 정말 조용한 도시가
되었고, 다만 피사의 사탑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찿는 도시가 되었다.
피사의 사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안내자로 부터 설명을 듣고 들어갔다.
출입문에서 보니 푸른 초원의 미라골리 광장(Campo dei Miracoli, 기적의 광장)안에 우람한 두우모 옆으로
기울어진 사탑이 인사를 하고 있다. 많은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다.
광장으로 들어서니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록된 이곳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빨간점이 현재 위치이고 중앙에 세례당과 두우모 성당, 사탑이 자리잡고, 그 윗쪽의 오른쪽으로 안내소(티켓판매소, 화장실)
와 박물관, 왼쪽으로 광장과 옛날 건축물(병사숙소, 무기고?)이 있던 곳이다.
아랫쪽 길 건너편에는 시노피 박물관, 그 오른쪽으로 오페라/두우모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Lonely Planet은 미라꼴리 광장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광장중에 하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카톨릭 신자에게는 마치 테마파크 같은 연두빛 광장은 대성당인 두오모 와 세례당, 그리고 피사의 사탑을
둘러싸고 있다.
미라꼴리 광장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과 더불어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광장을 두고 라이벌인 관계다.
산마르코 광장이 조각과 건축물, 그리고 더욱 더 붐비는 광장이라면 이곳은 끝없이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는 광장
인 것 같았다.
이탈리아의 주교 대성당 두우모에 가면 그 지역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이곳 세례당 (Baptistery)은 기와로 만든아름다운 돔 세례당이다.
1152년 Diotisalvi라는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세례당은 후에 '아버지와 아들' 건축가인 Nicola와 Giovanni Pisano에 의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내부에는 고딕조각의 최초의 작품인 설교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지만 비싼 입장료 5유로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단체 여행은 시간에 쫓기어 못들어가고 외부의 아름다운 기둥과 피사노의
조각이 있는 4개의 문을 구경하고,아쉽지만 입구에서 문안을 살짝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두우모 성당 옆에서 바라본 세례당
세례당과 사탑 사이의 중심에 있는 두우모 성당.
1063년 팔레르모해에서 사라센 함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대성당의 건축은 1068년부터 5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건축가 Buscheto 에 의해 건축 되었고,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건축물 중에서 가장 정교한 것으로 손꼽힌다.
위에서 바라보면 라틴 십자의 형태를 한 이 대성당은 깊이 95m, 폭 32m에 이르는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고 있다.
라이나르드의 설계에 의한 최하층부에는 블라인드 아케이드가 서있는데 이는 피사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기도 한 능형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외관 전면에는 무수한 아치가 5계단에
걸쳐서 나란히 서있고 2 계단째부터 위로는 그 아치와 아치를 지지하는 것 같이 우아한 기둥이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기둥은 장식이며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무수한
기둥이 건물 전체에 경쾌함을 주어 건물 전체에 레이스를 펼친 것 같은 우아함을 주고 있다.
햇빛에 빛나는 흰 대리석으로 된 두오모 내부는 68개의 원형기둥과 다섯개의 회랑으로 되어 있다
지만 문밖에서 정교한 대리석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성당의 내부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장식되어 다른 성당과 달리 밝은 분위기나 간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정면의 대벽화와 제단 천정의 구리램프가 눈에 띄는데,
이 구리 램프는 갈릴레이가 '진자의 법칙' 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금은 램프 대신 전구가
달려 있을 뿐이란다.
이제 피사의 사탑쪽으로 가본다.
피사의 사탑(斜塔, :Torre di Pisa, )은 두우모의 종루(鐘樓)로 기울어진 탑(Leaning Tower)으로
유명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이유이다.
1173년 8월 9일 착공 시에는 수직이었으나, 13세기에 들어 탑의 기울어짐이 발견되었다.
탑의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55m, 계단은 297개로 이루어졌으며, 무게는 14,453t이다.
지반에 가해지는 평균 응력은 50.7tf/㎡이 나왔다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현재의 기울기의 각도는 약 5.5도이고 기울기의 진행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로 멈추었다고 한다.
1964년 이탈리아 정부는 피사의 사탑 붕괴를 막기 위해 세계에 지원을 요청하고 1990년 안전상의 문제로
공개는 금지되고, 경사각을 수정하기 위해 재공사가 진행된후 2001년 6월 16일 10년간에 이르는 작업이
종료되었고,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수퍼맨이 살짝 밀어서 기울어졌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지금은 제한된 인원이 상층으로 올라가서 조망을 할 수도 있다. 나선형 계단 294개를 올라 종루(鐘樓)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풍광은 정말 아름답다고 한다.
어느 여행지든지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그래서 자유여행이 좋은 것인데...
사탑에서 바라본 두우모와 세례당.
사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시노피 박물관과 오페라/두우모 박물관 안내문등 여러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이런 동상도 있고, 정말 한가롭고 천진스런 여행객들을 보면 마음이 푸근하다.
티켓 판매소 앞에서 바라본 사탑, 위에 사람들이 보였다.
갈리레오 갈릴레이가 물체가 자유 낙하하는 시간은 낙하하는 물체의 질량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인증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크고 작은 두 종류의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
양쪽이 동시에 땅에 닿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이 일화는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비비아니(Viviani)가 지어낸 것으로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단다. 실제로 이 실험은 1586년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인 시몬 스테빈(Simon Stevin)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켓 판매소 앞 잔디밭에서. 자상한 아빠가 남매의 사진의 찍어 주고 있다. 승민이, 수민이가 보고 싶다.
티켓 판매와 안내소.
사탑에는 지금도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 뒷쪽 건물이 오페라/두우모 박물관이다.
대성당을 옆을 지나오면서.
이곳은 옛날 건축물(병사숙소, 무기고?)이 있던 장소이다.
푸른 마르꼴리 광장 밖으로 아름다운 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밖으로 나오니 마켓이 나를 맞이한다. 이제 걸어서 또 피사 시내까지 가야한다.
걸어서 나오다 보니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중 한 곳인 피사 대학교 (Università di Pisa)
건물이 담장 너머로 보인다. 피사 대학교는 공식적으로 1343년 9월 3일 교황 클레멘스 6세의 칙령에
의해 설립되었고, 11세기 부터 법률에 관한 강의가 피사에 있어왔다. 대학은 유럽의 1544년 준공된
가장 오래된 대학 정원이 있단다. 피사 대학교는 피사 대학교 시스템의 일부로 다른 여러 학교와 묶여
있는데 특히 과학과 공학 계열로 유명하고 학생수가 57,000명이나 된단다.
피사 시내로 나와서 이제 이탈리아의 본거지인 로마로 이동한다.
로마에 도착하여 오랫만에 초원의 집이라는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빅토리아 호텔에 투숙하였다.
내일은 바티칸 시국과 로마 시내를 관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