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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필미학 원문보기 글쓴이: 여세주
제19차 수필쓰기
(1) 깨어진 유리창
아파트 앞의 못 둑은 길이가 500m나 된다. 둑의 폭도 30~40m는 족히 된다. 못둑은 철따라 풀과 꽃과 억새가 어우러져 푸른 녹지대가 펼쳐진다. 둑 아래의 녹지공간도 제법 넓다. 그곳은 자생한 돼지감자와 아카시, 미루나무가 숲을 이루고 우거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풍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튼부터 열어젖힌다. 펼쳐지는 풍경을 보노라면 행복감을 느낀다. 경치 좋고 공기 맑고 조용한 분위기의 전원생활을 동경하던 내 꿈이 실현된 셈이다.
지난 해, 못둑 아래 빈 공간에 누군가가 밭을 일구었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였다. 그 옆에 다른 이가 또 밭을 일구었다. 삽시간에 밭이 늘어갔다. 가히 의지의 한국인이란 말이 실감났다. 급기야는 나무들도 다 베어내고 밭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비닐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통들이 나뒹굴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괭이질 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다.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해 못 둑으로 수 갈래 길이 생겼다. 못 둑은 주름이 지고 흉물스러워졌다. 퇴비를 뿌리니 악취도 진동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관리기관인 농어촌공사에 진정을 넣었다. 경작금지 안내문과 현수막까지 붙었지만 집단의 힘을 믿고 막무가내로 버티었다. 마침내 관리기관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애써 일군 텃밭을 갈아엎었다.
둘레에 울타리가 쳐졌다. 일정 간격의 통나무 기둥에 굵은 동아줄이 이어졌다. 그래도 고집불통의 일부 사람들은 못 둑 중간에 난 길로 다녔다. 동아줄을 타 넘거나 사이로 지나다녔다. 급기야는 누군가가 동아줄을 끊었다. 입구에 이곳은 길이 아니니 둘러 가라는 통행금지 표지판을 세웠다. 줄어들기는 해도 그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엊그제 등산길에 못 둑을 지나가는데 한 사람이 그 길로 올라왔다. 입구에 통행금지 표지판이 없더냐고 완곡하게 물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적의가 가득한 표정으로 대들듯이 대답했다. 아내가 그냥 가자고 잡아끄는 통에 더 말을 섞지 않았지만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
저수지 옆에는 낚시금지구역이란 안내문이 세워져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엄청 크게 자란 잉어들이 노니는 걸 볼 수 있다. 이사 오던 해 등산 다녀오는 길에 약수터 앞에서 파는 다슬기를 한 되 사왔다. 밤새 수돗물에 담가두었는데도 해초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먹기가 꺼려져서 저수지에 방생했다. 다슬기가 이끼를 먹고사니 못이 정화되리라 기대해서였다. 어느 날 아침 운동을 갔더니 긴 장화를 신은 사내가 버킷을 들고 못가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금어구역이니 잡지 말라고 했더니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며 코웃음을 쳤다. 마침 순찰중인 경찰관이 오기에 일러바쳤다. 그들 역시 뭘 그러냐며 내 말을 무시했다.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니까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 했다. 그날이후 사람들이 삼삼오오 비닐봉지를 들고 못 가장자리의 돌에 붙은 다슬기들을 잡아댔다. 가끔씩 낚시꾼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TV뉴스에서 농민대회에 참석하려 상경하던 농민들이 경찰에 저지당하자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장면을 보았다. 불법으로 지도부가 검거대상이 된 철도노조원들의 파업 농성장에 야당 국회의원들이 동참하여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경찰관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도 방영되었다. 이런 장면들은 국민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한다.
1969년에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자인 짐 바르도는 실험을 통해 “깨어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상태가 비슷한 차량 두 대를 보닛만 열어놓고 동일한 조건의 허술한 골목에 세워 놓았다. 그중 한 대는 유리창이 깨진 채 두었다. 일주일 뒤 유리창이 깨진 차는 고철더미로 변해 있었고 보닛만 열어 놓은 차는 그대로 멀쩡했다고 한다. 1994년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과 브레턴 경찰국장이 이 이론을 실행에 옮겼다. 고성방가, 쓰레기 무단투기, 도로무단횡단 등 사소한 경범죄를 철저히 단속했다. 연간 2,200여건이던 뉴욕시의 범죄율이 1,000여건으로 54%나 줄고 중범죄까지도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깨어진 유리창 이론과 뉴욕시장과 경찰국장의 경범죄 단속 화소의 연관성이나 단락의 주제가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 됨)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입장이 있겠지만 엄연히 법이 있고 그 법을 집행하는 공권력이 있어 우리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을 영위하고 있을진대 난무하는 탈법 불법에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나만일까? 법에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야 누가 막고 불편해 할까? 떼거리의 힘을 믿고 자신들의 탈법적인 행위로 인해 피해를 봐야하는 애꿎은 사람들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수갑을 찬 채 끌려가던 미국 하원의원의 모습이 오히려 신선해 보이는 요즘이다.(12)
준법정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수필이다. 채택된 소재가 저수지, 시위 및 파업(농민대회 및 철도노조), 뉴욕시의 법질서 유지를 위한 노력이 소재로 선택되었다. 병렬적 구성을 취하려 하였는데, 이 경우 각 화소에 부여된 분량에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 문장에선 1인 시위? 한국에서는 합법이다.
시사적인 문제나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소재를 다룰 경우, 어느 한 쪽 입장에서가 아니라 양쪽의 입장을 다 고려하여 사안의 진실이 무엇이며, 이슈화되고 있는 근본요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통찰해야 할 것이다. 법이란 것에도 성문법보다 관습법이 더 중요할 때도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과거에 준법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을 만큼 준법이 때로는 사회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 감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완성시키기 위해서 집 앞의 저수지만을 제재로 삼아, 좀 더 깊은 사색이 깃들인 퇴고가 요구된다. 예컨대, 밭을 일구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 둑길로 다니는 사람들 등은 오직 실용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고, 풍경으로 즐기거나 훼손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나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대상을 비판할 때에는 대상을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그 모순성을 드러내여 비판하고 나아가서 대안을 제시하여야 개관적인 설득력을 확득할 수 있다.
(2) 모를 일이다
서울을 다녀왔다. 막냇동생이 사는 곳이라 가끔 가는데도 갈 때마다 교통편 안내를 다시 철저히 받는다.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택시까지 타야 도착하는 그곳은 내게 늘 미로다. 한번씩 갔다 오면 그 복잡함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구가 그리 작은 도시는 아니다. 사람도 붐빌 만큼 붐빈다고 생각하며 조용한 곳 타령을 심심찮게 해 왔다. 그런데 서울은 사람이든 차든 거대한 물결처럼 흐른다. 잘못 끼어들면 빠져나올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절대 못산다고 잡는 이도 없는데 진저리를 치며 도망치듯 돌아오곤 한다. 왔다.
푸념처럼 늘어놓는 상경기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귀가 번쩍 뜨이는 제안을 한다. “둘이 겨울여행 갈래?” 동해 쪽에 예쁜 펜션이 있는데 비수기라 가격도 싸고 붐비지 않아서 쉬다 오기는 정말 좋은 곳이라 한다. ‘그래 가자. 가족들과 가면 무수리 신세 절대 못 면한다. 둘이 호젓이 낭만도 즐기고 밀린 글 숙제 몇 편도 건져오자.’ 그동안의 지친 심신을 쉬고 오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이박삼일 자유를 선언하고 길을 떠났다. 겨울이라지만 그리 차지 않은 날씨 탓인지 아직 남아서 흔들리는 억새가 한껏 낭만스러워 보인다. 텅 빈 들녘도 비움의 너그러움으로 보인다.
바다 쪽으로 창을 낸 통나무집이 더없이 정겹다. 짐을 풀기 바쁘게 바깥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봤다. 산비탈을 깎아 지어놨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인지 인가가 거의 없다. 바다까지도 한참 거리가 있다. 친구는 인터넷으로 펜션만 살펴봤다며 주변이 너무 설렁하다고 조금 실망하는 눈치다. 나는 이런 곳을 간절히 원했노라고 손뼉치며 환호했다. 준비해온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할로겐 등이 예쁘게 켜진 펜션주위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왈칵 들어 친구를 바라보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아 날 살리라고 부리나케 뛰어들어와 마주 보며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낭만은 무슨. . .
이튿날 늦은 아침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을 나섰다. 하러 나갔다. 한참을 걸어 당도한 곳은 차도를 낀 해안일 뿐 그리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는 곳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만에 찾은 바다라 철석이는 파도와 갯내음만으로도 마음은 한껏 설렜다. 둘이 찬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걷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 예쁜 돌멩이 몇 개 와 어쩌다 눈에 띄는 깨진 조개껍데기 몇 개 줍고는 마음마저 시려오는 것 같아 서둘러 돌아왔다.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다. 이십 년 지기 친구다. 모르는 것도 새로운 것도 전혀 없다. 심심함이 묻어난다.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한다. “사람은 참 이상해. 복작거리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심심해”
그랬다. 여름 바닷가, 사람들로 사태가 날 것 같은 그곳에서 나만의 작은 공간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언제든 어디든 매스컴에 이름나오기 무섭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며 움직일 꿈조차 꾸지 못했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서러운 일 생겨 마음이 허할 때는 주위를 가득 메운 그 사람들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도 못한다. 오히려 부대낌이 더 힘들고 외롭기까지 하다. 가끔 사람 사이의 냉랭한 한기를 느끼며 정처없는 걸음을 얼마나 동경했던가. 모두 개인의 권리 속에 들어앉아 철창을 치고 있는 것 같고 다가가면 상처가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편안하기만 할 것 같은 자연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TV를 통해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동경심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모두를 피해 자연속에 들어와 호젓하게 있는데 별로 좋지가 않다. 심심하고 무섭고 생각나는건 북적대던 그 사람들이고 같이 살던 그곳이다. 어느 도인이 세속의 삶으로 돌아와 고백한 말이 생각난다. 전국은 물론 세계를 떠돌며 겪은 여러 가지 일 중에 제일 무서웠던 게 뭐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고독이라 했다. 산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때, 해 질 녘 낯선 들길을 혼자 걸을 때 밀려드는 그 고독을 이겨내지 못해 속세로 내려왔노라고 했다. 시원찮은 도인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게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거창하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러하다 결론지어 제쳐 놓기에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참으로 많다. 어우러져 살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꿈꾸고 혼자 두면 어느새 어울릴 거리를 찾는 그 심사가 정말 모를 일이다. 복잡하다고 아우성치고 옆 사람이 어떻게 돼도 별 관심 두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한곳에 모여 살아야 안심이 되는 우리들의 생활은 그냥 습관인 걸까. 이렇게 변화를 꿈꾸는 사람의 심리가 사회를 발전시키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며 삶이 풍요로워졌겠지만 어디에도 온전히 안주하지 못하고 어떤 것에도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아 숨이 턱에 차기도 한다.
이틀 밤을 지내고 새벽같이 일어나 짐을 꾸려 떠나오면서 바닷가 시장에 들르자는 친구가 어쩌면 그렇게도 내 맘에 쏙 드는지. 둘이 각종 해산물을 한 보따리씩 싸 들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얼굴빛은 지난 이틀동안 휴식의 열배쯤 밝다. 돌아가면 또 다시 북적대며 살아내야 될텐데 그 곳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반갑다. 멀리서 비치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내 모를 일이다. 요 변덕은 정말 모를 일이다. 얼마 정도 견디고 또 다시 오늘의 이 여행을 꿈꾸게 될까.
인간의 모순 심리를 잘 엮어내었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이 한적한 곳에서의 고독보다는 낫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뛰어넘어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적인 문제에까지 천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3)하얀색이 물들다
눈뜨기가 힘이 든다. 아이들이 방학이라 늦잠을 청하고 싶지만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밥을 위해 따뜻한 이불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세탁기를 돌리는 일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하다 보니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다. 수건을 삶아야 했기에 빨랫거리를 세탁기에 넣고 삶기 버튼을 누른다. 그 속에 빨간색 수건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채였다.
흐트러진 모습을 가다듬고 세수를 한다. 정신이 맑아진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국거리를 준비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하루를 시작하는 남편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아침밥을 차려 먹고 남편 출근시키고 나니 빨래가 끝났다는 신호음이 들린다. 신혼 초만 해도 세탁기가 빨랫거리를 삶아 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가스 불에 올려 세제가 넘치도록 삶아야 빨래가 마무리되는 시절이었다. 격세지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세탁기 문을 여니 하얀 수건이 분홍색으로 변해 있다. 깜짝 놀라 수건을 뒤적여 보니 빨간색 수건이 밉살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이럴 어쩐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일단 끄집어내어 건조대로 가져간다. 다행히 색깔 있는 수건은 봐줄 만 했으나 본래의 색깔은 이미 잃었고 다시 수습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이들한테 조그마한 실수에도 잔소리를 해댔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며 나는 완벽한 척 떠들었다. 이렇게 헛똑똑이인 내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얼마나 속웃음을 지을까.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빨래를 다시 하기로 했다. 분홍빛으로 물든 하얀 수건은 세제에 담갔다가 다시 삶았다. 처음보다 더 깨끗하게 되었다. 오래되어 너덜너덜한 수건은 이번 기회에 걸레로 쓰기로 했다. 나의 실수로 수건의 운명이 달라졌다. 다시 삶은 수건을 널면서 실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를 통해 정리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는가.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잔소리로 덧칠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아침에 있었던 일이 아주 의미 없지는 않았다.
얼마 전 작은 아이가 체험학습을 갔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왔다. 매사 칠칠치 못한 작은 아이를 꾸짖었다. 이제 휴대폰은 꿈도 꾸지 말라며 대리점에 가서 해지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 나의 해결 방법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사실은 나를 많이 닮았다. 어쩌면 나를 닮은 모습이 싫어서 더 나무랐는지 모른다.
나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상대방은 완벽하기를 바랐다. 라고 내 잘못에는 은 쉬이 타협하면서 남의 잘못에는 은 핏대를 세우며 질책했다. 아이들 성적이 내려가면 인생 운운하며 마치 공부를 못하면 인생이 끝나버리는 것처럼 말했다. 나도 학창시절 성적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아이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부모가 아닌 학부모로만 아이 앞에 서 있었다. 말대답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야속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한해가 저물어 간다.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기운으로 사람을 대하고 잘못을 감싸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늘 손가락은 타인을 향하고 있다. 설익은 내 모습의 단면이다. 내년에는 말의 해다. 활동적이고 기운이 넘쳐나는 말처럼 나도 좋은 기운으로 충만하려면 내 안의 묵은 찌꺼기를 걸러내야 할 것이다.
겨울 햇살에 빨래가 잘 말랐다. 아침에 요란을 떨었지만 하얀 수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건조대에 누워있다. 아이들도 제 그릇만큼 잘 자라줄 것이다. 나쁜 길로 가지 않게 잘 지켜봐 준다면 믿음에 꼭 보답해 주리라. 믿는 만큼 아이는 자라준다지 않는가. 급한 마음에 잔소리가 나올 때마다 오늘 하얀색이 물든 일을 생각하며 나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까슬까슬하게 마른 수건을 걷으며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본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건조대를 접어 제자리에 둔다. 어느새 내린 어둠이 저녁을 재촉한다. 내년에는 좀 더 마음의 평수를 넓히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베란다 문을 조용히 닫는다.
작은 실수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다짐을 쓰고 있다. 고백적인 어조가 글의 의도나 주제와 잘 어울린다. 전체적인 구성의 흐름에 있어서도 걸림이 없는 작품이다.
(4) 오이지와 단무지가 살아가는 법
혈액형별 성격은 맞건 맞지 않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아가서는 오이지(오로지 이기적인 지랄), 소세지(소심하고 세심한 지랄), 지지지(지랄, 지랄, 지랄),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로 분류하는 작업에까지 이르렀다. 참 기발하고 재미있다.
우리 집에는 오이지 세 사람과 단무지인 내가 좌충우돌하며 산다. 3대 1이다 보니 힘이 부칠 때가 많다. 내가 소세지였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라고 딸아이가 한술 뜬다. 단무지이기 때문에 오이지 하고 살아도 큰소리치면서 산다고 했다. 난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될 수 있으면 참는 유형이다. 내가 손해를 보면 봤지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도 노력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희생적이어서 몸이 망가지는 편이다.
내가 단무지이긴 하지만 강한 면보다 한없이 여린 구석이 더 많다는 걸 가족은 모른다. 가족 앞에서는 눈물도 참고 아파도 표내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 감정을 추스른다. 정의감이 강해서 불의를 못 참고 무시당하면 꼭지가 도는 일이 가끔 있다. 그땐 여지없이 물불 안 가리는 단무지가 된다. 가족들은 어쩌다 폭발한 화산을 보고 드센 것으로 여긴다.
오이지 서열 1위는 아들이다. 마른 편에 신경질적이고 혼자 노는 걸 즐긴다. 입맛이 까다로워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삼일 정도만 집에 와있어도 음식 걱정하다 몸살이 난다. 가족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귀차니즘에 빠져 있어서 대통령 보기보다 더 힘들다. 우리는 그 아이를 ‘왕자’라고 부른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웬만하면 아들에게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버릇없는 행동을 해도 야단치기가 두려워서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그냥 넘기고 만다.
돈 좀 번다고 대중교통 이용도 안 한다. 꼭 택시를 타고 다닌다. 건국대학교 입구에서 직장까지는 한강 다리만 건너면 된다. 20분 정도의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멀어서 힘들다며 직장 근처인 강남에 방을 얻겠다고 한다. 자기 돈으로 얻겠다는데 말릴 방법은 없지만 불편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옷도 싫증을 잘 내서 옷값도 만만찮다. 나이도 어린 것이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 돈 개념 경제관념이 없는 것과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 입맛이나 옷에 싫증을 잘 느끼는 것이 모두 나를 꼭 똑 닮았다. 아이를 탓하기보다 유전자가 무섭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기념일은 잊지 않고 누나 용돈까지 챙겨준다. 성질부리는 것을 생각하면 밉다가도 그런 맛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 다음 오이지는 남편이다. 매사가 독단적이라 타협이 없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이든지 “안 돼”라고 시작하고 허세를 부린다. 판사 앞에서 “예, 아니오.”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것과 같다. 듣기 싫은 말은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혈기가 있을 땐 그 방으로 쳐들어갔지만 지금은 문자로 전달하거나 딸아이를 통해서 한다. 매일 본다면 숨이 꼴각 했을지도 모르지만 한 달에 두 번 정도 보니 참고 산다.
집안일은 관심 밖이다. 금전감각도 없고 기분파여서 지갑관리도 안 된다. 남의 말은 들어도 내 말은 듣지 않는다. 적성에 맞는 회사 일 처리는 잘 하지만 다른 일은 맹할 정도다. 다른 사람이 불편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다. 배려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가족에게만 이기적이면 다행인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부족하다. 주차공간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꼭 이중주차를 해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예사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주도권을 쥐고 사는 것 같으나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남편은 인상으로 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보인다. 나의 까칠해 보이는 인상보다 한 점 따고 들어간다. 난 인상 때문에 늘 손해를 보는 편이다. 차가운 이미지의 나를 보면 모르는 사람은 도 남편 손을 들어준다. “남편에게 잘 해줘라.”는 소리를 못이 박히도록 듣고 또 듣는다. 정작 피해자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인상 하나로 가해자가 된다.
공은 남편에게 돌아가고 잘못한 것 하나 없어도 욕을 먹는 건 나다. 시댁식구들이나 친구들은 내 기가 드세서 남편이 기죽어 산다지만 정작 난 골골거리는 편이다. 남편은 죽은 척 지내는 것 같지만, 뒤로 할 건 다하고 사는 걸 다른 사람들이 어찌 알까. 단무지의 대범한 성격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잘한 것 따지지 않고 별 탈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오이지라서 모르는 것 같다.
오이지 중에서는 인정도 많고 배려심이 많은 것은 딸아이다. 밝은 성격과 입담이 좋아서 사람들이 잘 따른다. 친구들 간에 의리도 있고 잘 베푸는 편이다.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시키면 대꾸 없이 잘하는 면도 있다. 정리 정돈을 못하는 버릇이나 준비성 없는 것이 흠이랄까.
우리 집은 한 지붕 네 가족이다. 각자 잘난 맛에 산다. 같은 오이지라도 뭉치는 일이 없다. 서로 자기 팔 흔들고 산다. 말이 가족이지 어쩌다 한번 모여도 각자 방에서 놀고 밥 먹을 때나 겨우 볼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책상 위나 침대 위는 옷가지와 코 풀고 버린 휴지 등, 잡다한 것들로 차있다. 처음엔 참을 수 없어서 화도 내고 치워주기도 했다. 이젠 체력이 따라주질 않아서 대충 살기로 했다.
오이지 세 사람은 겁도 많다. 남편은 겁이 많아서 운전도 배우지 않겠다고 해서 내 맘대로 등록하고 감시 하에 겨우 면허증을 땄다. 차를 사도 운전은 못한다고 버텨서 목숨 걸고 연수를 시켜주었다. 딸아이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마자 면허를 땄다. 틈나는 대로 연수를 시켜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장롱 면허로 칠 년째다.
지병이 도져서 잠을 자다가도 응급실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딸아이가 운전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운전석 옆에 타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한다. 손발이 마비가 올 땐, 한 손으로 봉지호흡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 운전을 한다. 그런 걸 보면서도 운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 딸아이가 야속하고 밉다. 그런데 한술 더 뜬다. 그런 엄마를 보니 자신도 그런 증상이 오는 것 같다며 남같이 말한다. 그 말이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힌 후론 응급실 갈 일이 있어도 혼자 간다. 가족이라도 믿을 사람 없고 홀로 서야 한다는 걸 뼈아프게 느낀다. 가족이 남만 못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슬프다.
오이지들의 이기심 때문에 비참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정작 본인들은 불편을 느끼지 못하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성격이나 살아온 틀은 바꿀 수 없어서 내가 변하기로 했다. 말을 해도 그때뿐이니 답답한 내가 움직인다. 말을 많이 하면 잔소리쯤으로 여기니 말수가 줄고 행동은 늘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피곤하고 울화가 쌓인다. 나도 한 성격하는데 오이지들과 오래 살다 보니 기가 다 빠졌다. 그저 포기하고 산다. 그나마 정신력이 강해서 오이지 속에서도 살아가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들의 개성(장단점)을 통찰하고 그것 가운데서 자신의 역할을 되돌아보려는 방식의 발상으로 스여진 글인 것 같다. 그러나 가족구성원들의 단점이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보듬어주려는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우월 내지 독존적 자의식을 가지고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감정이 아직 정제되지 못하고 관조적이지 않다. 그러다 보니, 문장도 거칠다. 작가가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섬세한 감정과 문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따라서 이 글은 세월의 힘으로 좀 더 곰삭인 다음에 다시 써보는 게 좋을 듯하다. 나에 대한 성찰을 한다는 생각에서.
(5) 열정 없는 여자
화장대 앞에 앉는다. 온 얼굴이 주름살과 기미와 잡티로 덮여 있다. 피부는 중력을 거스르지 못해 축 처졌다. 모두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모습으로 인정한다면 맨 얼굴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내면이 비어있는 탓에 그것들을 감히 드러내고 민낯으로 다닐 용기가 없다. 세월의 흔적이 마구 흩어져 있는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도포해 한 겹 씌운다. 컨실러를 덧발라 감추려 애를 쓴다.
매끈하고 팽팽한 피부로 되돌리는 시술을 잠깐 생각해 보다 이내 고개를 가로 젓는다. 탐탁찮지만 다 뜯어 고치면 내가 아닐 성싶어진다. 한참 얼굴을 뜯어보다 이젠 머리카락을 살핀다. 서리 맞은 까마귀 꼴이다. 흰머리나 검게 물들여야겠다.
‘천연 머리 염색 체험 방’ 이란 이색간판을 단 곳에 들어섰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는 원장과 머리를 맡기고 있는 사십 대 쯤으로 뵈는 여성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곳은 종종 옛 여인네들의 빨래터 같은 데가 되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자유로운 곳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훤히 꿰뚫고 있는 그곳보다 낯선 이들 끼리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맘껏 풀어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재미에 내 차례를 기다리는 지루함도 잊는다.
원장은, 원래 집안에서 조용히 살림만 했다.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을 때 잘나가는 듯이 보였던 남편이 그만 실직을 하게 돼 이 일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하필 그 시기에 자궁을 적출하는 일을 겪었고 그 수술 때문에 당뇨가 발생해 힘들다며 찡그린다. 과문한 탓인지 내가 생각하기로는 전혀 근거가 없어 보이는 논리를 편다. 그녀는 현재 가임기를 훌쩍 지나 이미 폐경기에 들어섰을 것으로 여겨지나 그 땐 마흔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잃은 것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무척 깊었나보다.
그녀는 잘 마른 수건을 머리를 감긴 사십대에게 건넨다. 창백한 겨울 햇살에도 보송보송 잘 마른 것 같다. 여성이 미소를 지으며 타월을 칭찬하자 감사하다며 표정이 밝아진다. 바깥에 널어 건조시킨 다음 실내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거듭해서 말렸다며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이럴 땐 그녀의 사라진 자궁은 일에 대한 열정과 자긍심에는 아무런 반란도 일으키지 못하고 얌전한 듯하다.
손님인 여성은 발레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합창단에서 활동 중이라 말한다. 알고 보니 나와 그리 많이 차이나지 않는 오십 대 중반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듯 군살 없이 시원스레 쭉 뻗은 몸매를 가졌다. 주름 없이 탱글탱글한 얼굴이 제 나이보다 열 살쯤 젊게 보이게 한다. 남편은 의사이고 어디를 가든지 자신과 함께 한다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딸은 예쁘고 늘씬하며 유명 탤런트의 모교에 재학 중이라 연기자가 될 것이라고 자랑한다. 모녀간에 함께 다니면 둘을 자매로 본다는 둥 젊음을 과신하며 아무런 고민 없이 들떠있다.
줄곧 듣기만 하던 나는, 조금 떨떠름해져 그들 대화에 예의 없이 불쑥 끼어들었다. 발레를 전공했다면서 새해부터 우리나라 국립발레단의 단장이 되고 공연도 계속 할 것이라는 강수진 씨가 부럽지 않느냐며 심술궂게 물어 보았다. 여성은, 아직 무용을 하느라 결혼도 않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동창생 이야기를 꺼낸다. 그 동창생은 친구는 모임에도 오지 않고 우정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도 모르며 세상과 고립 돼 산다. 산단다. 반면에, 그녀는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더불어 부지런히 살아간다. 지인들도 만나고 취미생활도 즐긴다. 그런 자신이 그 벗에 비해 훨씬 행복한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여성은, 아는 사람들 여럿이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날마다 병문안을 왔다는 얘기를 한다. 어디가 아팠을까. 오래 궁금할 사이도 없이 쓸개에 종양이 생겼는데 혹이 그 작은 장기만큼 커져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마치 무용담마냥 씩씩하게 늘어놓는다. 염색이 끝나자 바람이 불면 드러나곤 했던 흰 머리카락이 없어지니 자존감이 살아나는 것 같다며 흡족해한다. 제 자랑을 하고 철은 좀 없어 보여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주관도 꽤 뚜렷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제게 주어진 생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예순 넘어까지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직장을 마흔 초반에 그만 두었다. 경쟁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것도 잠시 왠지 세상 밖으로 밀려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편과 자식, 집안 살림에 인생 전부를 건 것도 아니어서 무엇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그 무렵부터 삶을 낯 선 세계에 관광 온 구경꾼 같은 심정으로 살아오는 일이 더 많아졌다. 신체의 장기를 하나씩 잃고도 자신의 일에서 혹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들이, 모든 내장의 기관들을 고스란히 다 움켜쥐고 살면서도 맹물처럼 미지근하게 사는 ‘열정 없는 여자’인 나보단 나은 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아닐까 싶어졌다.
흔히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마음의 소리, 머리와 뇌와는 상관없는 내면의 울림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 결과는 마음을 관장하는 것은 심장이 아닌 뇌라고 한다. 열정 없이 여행자나 방관자같이 사는 나는 머릿속의 치열한 불꽃을 관장하는 어떤 기관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싶게 지나온 세월을 헤집어 보아도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일 것이다. 한 때 무엇에든 불타오르는 듯 하는 세찬 감정을 갖고 살았던 적도 아주 없진 않았으리라. 오늘따라 소리 없이 가버린 내 젊음보단 가뭇없이 스러진 내 열정이 더 아쉽다. 오래 전 드물게 내 것이었던 적도 있었을 그 감정을 안타깝게 부른다.
언젠가 내 머릿속을 빠져나간 열정이 되돌아오면 나의 허한 내면도 채워질 것이다. 그 땐 내 앞에 놓인 생을 참 열심히 살 수 있을 성싶다. 분칠하지 않는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염색 않은 흰 머리카락도 바람에 내 맡기며 걸어가게 될 것 같다.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화자의 외모에서 시작한 자기성찰이 내면의 문제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타인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의 삶과 자신의 인생살이를 대비시키면서 외적인 관찰에서 내적인 성찰로 나아가는 데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삶에 대한 열정이 삶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다는 주제도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문장은 좀더 섬세하고 조밀하게 기워야 할 것이다.
(6) 꽃자리 투정
근무지 이동 명령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회사가 정한 기준을 정확히 적용하면 난 이동 대상이 아니다. 현 근무지 유임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간단히 묵살 당했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조직의 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순환근무라고 하는 제도는 한 지역에서 일정기간동안 근무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되어 있는 회사의 내부 규칙에 의한 것이다. 감원을 목적으로 하는 구조조정이나 업무 처리 능력 부족을 빌미로 원거리 근무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자의에 반하여 생활 근거지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결코 아니다.
인사이동 시기가 되면 누구나 자기의 고충을 토로하며 자기의 근무 희망지를 강하게 피력한다. 부모님 병구완을 해야 하는 효자들이 갑자기 넘쳐나고, 자상한 아빠와 남편 노릇을 하는 직원들이 많아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하지만 회사 전체적인 이동 희망자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다보면 개인의 그런 바램은 사사로운 의견으로 간단히 무시당하기도 한다.
이 명령지 한 장에 의해 개인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를 동반한다. 아니 종이 한 장도 아니다. 그저 한 줄도 채 못 되게 표현되는 소속과 이름과 사번 다음의 명. 이라는 차가운 글자 뒤에 근무지가 찍히는 단순하고 간결한 몇 글자 뿐이다. 그러나 이 몇 글자의 위력은 대단하다. 주변의 인간관계가 며칠 사이에 급변한다. 매일 만나던 얼굴들과 지금까지의 쌓아 온 미운 정 고운 정들은 이제 그냥 ‘지난 일’로 될 뿐이고, 매일 마주하던 얼굴들은 ‘한때 같이 근무하던 사람’이 되어 버린다. 같은 목표를 이루고자 서로가 함께 했던 많은 일들이 ‘과거의 일’로 한꺼번에 묶여 추억으로 저장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동기준 해석에 대한 내 주장은 비록 무시 되었지만 출퇴근 시간과 거리를 고려한 신임 근무지를 배려 받았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지난 세월 늘 그래 왔듯이 새로운 임지에 대한 호기심이 신선감으로 발동한다. 기까이에 위치하면서도 언젠가는 인연으로 다가와 근무 한번 해보리라고 기대했던 곳이다. 늘 먹는 사과를 계속 먹게 해 달라고 조르다 모두가 탐내는 곶감을 얻은 격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근무지에서 창밖을 본다. 한 무리의 새 떼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마주하며 질서있게 무리를 지어 비행을 시작한다. 새들은 추위를 피해 모두 따뜻한 이곳으로 오는 줄로만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구별하긴 힘들지만 이곳이 너무 추워 따뜻한 곳으로 가는 새들도 많다고 한다. 편협된 사고로 왜곡된 지식을 내 맘대로 왜곡하고 편집한 결과이다.
어쨌거나 저들은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자기들의 의지대로 가는 것 아닌가 생각하니 반 강제적으로 배치되는 우리보다는 훨씬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의 의중대로 움직이는 것은 확실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 형성된 뭇사람들과의 인연은 그 나름대로 소중하게 가슴에 담아 새기고, 이제 이곳에서는 처음 마주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어야 한다. 저들의 속내까지를 알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때로는 갈등과 반목도 있을 것이지만 지나온 날처럼 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찬다
다만 이 모든 것들-이동에 따른 적응-이 내 뜻대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서글플 뿐이다. 따뜻한 곳으로 가든 따뜻한 곳에서 오든 철새들은 그 긴 여정을 자기 의지대로 실행하고 있지 않은가. 한 군데 정착 못한다는 점에서는 우리 또한 철새일진대 명령대로 오가는 우리 처지가 저들만 못하구나 싶다.
쓸데없는 자책 끝에 나 자신을 위로 한다. 이 지방이 어디 낯선 곳이냐고.
수년 전, 논문 작성을 위해 찾았던 시인의 문학관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국책사업이랍시고 높이 올려 쌓아진 강둑은, 가고 없는 시인의 조망권 마저 박탈했지만 강을 내려다 보던 늙은 시인의 흥얼거림이 미끈한 비석에 묻어 강가로 흩날리고 있었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강둑에 올랐다. 넘실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깊은 산골짜기의 샘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물과, 구름으로 떠 있다가 비가 되어 내려앉은 물들이 모여 바다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어제 흐른 강물은 저만치 흘러 눈에 없는데 우리는 똑 같은 강물로 착각하고 있음을 알려준 시인의 치밀한 혜안을 느낀다.
누구의 명령도 아님이다. 그냥 자연의 법칙일 뿐. 강물이 낮은 곳으로만 흘러 가는 것은.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애당초 없었다는 말에 희미한 공감을 하며 흑백 사진 주인공의 가르침에서 깊은 위안을 받는다. (이 시구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늘 새로운 것과 만난다는 진실을 통해 근무지 이동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극복해가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통일성을 획득할 듯합니다.)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근무지 옮기라는 명령쯤이야 고맙고 감사해야 할 일.
저승으로 옮기라는 명령도 아니지 않은가. 앉은자리가 꽃자리라 했거늘.(14.0)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새로운 근무지로 이동하게 된 후의 불편한 심경을 차분하게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명령에 따라야 하는 한계를 철새와 비견하여 더욱 강조하고 구체화시켰다. 불편한 심경을 극복하는 데에 이르고자 하였다. 사색의 깊이도 지녔다. 부분적인 흠결이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글의 전개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7) 어무이
올해는 네가 끓여봐라. 시집살이 어언 삼십 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간 세월. 만날 천날 어무이 끓인 팥죽 맛나다 먹기만 했다. 이런 청천벽력. 지난가을 농사짓는 선배가 몸에 좋다며 준 검정팥. 물에 불렸다 피빅피빅 압력솥에서 삶겨질 동안 찹쌀가루로 새알을 빚는다. 계량에 약한 어무이, 쌀은 얼마나 담그면 좋겠냐는 며느리 질문에 대답을 못 한다. 한참 만에 하시는 말씀. ‘봐가면서 ...... ’
어무이 시키는 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적을 것이나 나 혼자 하게 될 때 요량이 안 설 게 뻔하다. 팥물에 쌀 익혀서 새알 동동 띄우면 끝이겠지. 중요한 것은 농도일 것 같다. 어무이 뒤에서 몇 년 뒤치다꺼리 해봤으니 생짜배기는 아닐 터. 나 자신을 믿어보자. 어무이를 방으로 모셔놓고 일단 인터넷 할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불린 팥 한소끔 끓으면 그 물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물을 넣어 푹 삶는다. 어무이는 안 버리고 그냥 삶던데. 믹서에 간다. 어무이는 손으로 주무르던데. 체에 밭쳐 거른다. 여기부터는 어무이 하는 거랑 같네. 팥물 중 윗물을 따로 담아 불린 쌀을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쌀이 다 퍼지면 앙금을 마저 부어 끓이다가 빚어둔 새알을 넣고 동동 뜰 때까지 끓인다. 소금 간을 한다. 여기까지 접수.
직접 팥을 팔아본 적도, 새알 만들 찹쌀가루 빻으러 방앗간에 가본 적도 없다. 동지가 되면 팥죽 먹는 줄이야 알지만, 그 과정은 모르쇠. 뒤란 독에서 익고 있는 동치미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 그저 팥 주무르고, 새알 빚고, 독에 배추/무 날라드렸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설거지 하나뿐인 천둥벌거숭이. 팥물과 쌀과 새알로 한참 씨름한 끝에 탄생한 팥죽. 삼십 년이란 세월이 그냥 흘러간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좀 묽다 싶어야 식고 나면 농도가 맞는 법인데 생각보다 되직했다. 색은 붉은 팥보다 못하나 시어른 두 분은 맛나다 잘 드셨다. 아이들은 그다지 반기는 눈치가 아니다. 일 년 액운을 물리치는 음식이라니 억지 몇 술 뜬다. 엄마가 쑨 생애 첫 팥죽인데 실패작은 아니야. 군소리 말고 먹어. 난 먹고 난 뒤 생목이 올라 괴로우니 황설탕 넣었어. 아마 첫물은 버려서 덜 할 거야. 나의 진심어린 이야기가 아이들에게는 거의 외계인의 언어가 된다. 몇 술 먹더니 양은 냄비를 찾는다. 몇 시간 애쓴 결과물이 라면의 기세에 바로 엎드려뻗쳐. 꾸덕해진 죽의 거죽을 따로 걷어먹는 재미, 적당히 굳은 새알의 쫀득함을 모르는 아이들.
예전에는 집 음식만 고집하던 어무이가 싫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면 땡인걸. 당신 아들도 사 먹는 것을 그리 좋아하건만 꼭 집에서 칼국수시를 밀었다, 그것도 콩가루 넣어서. 우리 세대에 홍두깨로 국수를 밀어본 사람 몇이나 될까. 며느리가 밀가루 뿌려가며 쓱쓱 국수 미는 걸 보고 대견해 하시던 두 어른. 중간에 찢어지는 거 억지로 이어 붙여 반쯤 성공했다. 이마에 고인 땀을 훔치며 고마 사 먹고 말지 했었다.
그러던 어무이가 올해 들어 부쩍 당신 하던 일을 내게 미룬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도깨비 방망이라도 지닌 듯 김치도 뚝딱, 고추장도 뚝딱 만들어 놓았었는데 말이다. 당신 손이 제일이라며 틈만 나면 몸을 움직였다. 힘들다고 무슨 일이든 못하게 막는 것 보다 적당한 소일거리는 괜찮다 싶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힘에 부쳤나 보다. 팔이야 허리야 온몸을 접착 파스로 도배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저 간이나 보고 그릇에 옮겨 담기만 하던 며느리. 이제 발목 단단히 잡혔다.
발목 잡힌 김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그렇게 맛나던 밖 음식 이제 별 신통한 것도 없다. 어떤 날은 집에 있는 반찬으로 한술 먹는 게 더 편하다.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음식 ‘우리 집 아침 반찬이네’ 웃을 때가 많다. 김장철에 김치 담그고, 동지 되면 팥죽 끓이고. 이월에 장 담그고. 그렇게 사는 게지. 어른 안 계시면 다 사먹고 말겠다던 다짐이 어디론가 사라짐에 나 스스로 놀란다. 직접 담가 먹는 쪽으로 기우는 내가 이제 어무이 된 것인가. 밖 음식에 익숙한 아이들 붙들고 잔소리 늘어놓는 어무이가 된 것인가. (12.9)
며느리의 위치에서 머물다가 집안살림을 도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으로서, 자의식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잘 드러낸 수필이다. 생각을 전환시켜 가는 과정이 매끄럽게 전개되어 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어투이다. 이 작품의 어투가 작가의 시원스럽고 탁 트인 성격을 드러내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언어의 질감을 통해서 작가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드러내는 장점을 지니고는 있다. 그러나 진지하지 못하고 경박하다는 평가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경박하지 않으면서 화자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잘 드러낼 수는 없는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8) 일흔넷, 그녀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나나 무수 꾸리를 만나는 날, 저녁 바람은 시리지만 맑았다. 바람을 옷자락에 묻힌 채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공연장으로 들어간다. 공연장 로비에는 사오십대 남녀로 북적댔다. 수녀복장을 한 사람도 잿빛 옷을 입은 스님도 보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이 많은 사람을 제 발로 찾아오게 하다니. 부럽다.
일흔넷, ‘할머니’라는 호칭이 스스럼없이 붙는 나이다. 하지만 세기적 가수 나나 무수 꾸리에겐 ‘그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목소리 때문에 팬들에게 영원히 ‘그때 그녀’로 머물러 있다. 공연 관람 좌석이 무대에서 가장 먼 곳의 객석 한 자리를 겨우 차지한 처지임에도 이지만 나는 그녀의 공연 티켓을 구입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나 무스 꾸리의 나이로 보아 아마 이 공연이 그녀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 그래서 남다른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까지 느꼈다.
공연 시간은 저녁 7시 30분. 공연이 10여 분 지연이 됐다. 청중은 더운 입김만 불어낼 뿐 볼멘소리를 내지 않았다. 건조한 바람이 부는 날, 자신의 마음에 훈훈한 해풍을 불어넣어 줄 가수를 위해서는 이런 것쯤은 참아줘야 한다는 듯 객석 확인만 한 번 더 할 뿐이다. 나는 객석을 훑어보았다. 특히 무대에서 가까운 곳을 샅샅이 살폈다. 어떤 급한 용무로 공연장에 오지 못한 이가 있지 않을까? 공연 시작 시각이 이미 지났으니 비어 있다면 채워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나의 얕은 생각에 찬물을 끼얹듯 빈 객석은 없었다. VIP석이 19만 원, 내가 앉은 자리는 7만 원. 만원 단위 앞에 숫자가 하나이다보니 무대에서 거리가 멀었다. 나나무스꾸리의 목소리를 같은 공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을 기회인데…… 가장 싼 객석만 찾는 내 선택이 서글펐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오늘 공연이 만족스러우면 아쉬움이 더 커질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귀를 한껏 열어두고 나나 무수 꾸리의 노래를 빨아들일 수밖에.
주홍 빛깔 옷을 입고 나나 무스 꾸리가 등장했다.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소리가 소리를 모으고 그 울림이 공연장 안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그녀는 가뭄에 단비처럼 청중들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네 명의 연주자 손이 움직였다. 피아노(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 연주에 맞춰 나나 무스 꾸리의 목소리가 성대 밖으로 흘러나왔다. ‘스카브로 페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목소리로 즐겨 듣던 노랜데 그녀가 첫 곡으로 불렀다. 그런데 내 귀를 의심해야 하는 순간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나이는 전성기 때의 목소리를 앗아가 버렸다. 가파르게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다 힘겹게 다시 오르는 소리였다. 객석에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나만 무색할 뿐이다. 서너 곡이 이어졌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녀의 무대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었다. 무대 매너 때문이다. 노래가 끝나면 청중들을 향해 인사말을 건넸다. 영어로 빠르게 구사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느리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처지) 온화하고 공손함이 담겨 있다. 매번 연주자의 수고로움을 청중에게 알리는 모습은 그녀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공연이 끝나면 청중은 무수한 말들을 쏟아낸다. 주관적으로 공연을 평가하기에 각자의 목소리가 다르다. 공연 내용에 만족하는 이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는 이는 목소리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나나 무스 꾸리의 현재 나이를 고정해 놓고 보면 찬사를 받을 만한 공연이었다. 2시간 동안 무대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대구 공연뿐 아니라 서울, 부산까지 일정을 소화해내는 걸 보면 자기 관리를 잘하는 가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가 부른 ‘스카브로 페어’를 불러보았다. 두 번째 소절에서 목소리가 꺽꺽거렸다. 나나무스꾸리가 내 나이 땐 노랫소리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였는데…… 동행한 친구와 우리가 일흔에 이르면 어떤 모습일까? 로 화제를 돌려 얘기를 나눴다. 허약해진 육신으로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모습, 노인정에 앉아 해 질 무렵까지 화투장을 들었다 놨다 하지나 않을는지, 몸이 일기예보나 되어있지나 않을까? 한숨을 섞어가며 다가올 미래를 허탈하게 내놓았다. 얘기 마무리엔 둘 다 이렇게 말했다.
“나나 무스 꾸리는 대단해. 그 나이에도 해외 공연까지 하다니. 멋진 인생이야.”
지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특징이 있다. 단단함, 부드러움, 날카로움, 차가움, 따뜻함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원래 지녔던 것들이 변화키도 한다. 백사장에 모래도 원래는 바위에서 돌로 돌에서 자갈로 또 수없이 파도에 씻겨 모래알이 되었다. 사람도 태어난 순간부터 시간의 굴레에서 변화를 반복한다.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어쩜 나나 무스 꾸리는 나이를 더 의식하면 살지 않았을까? 주름진 목, 성대 결절을 고민했을 것 같다. 대중은 과거 자신의 美聲을 기억할 거라는 부담감이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하지 않은 목소리였기에 소리에 대한 예민함이 남보다 더했을 것이다. 비록 ‘천상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느낌이 없지만, 공연에 몰입하는 그녀가 아름답다. 소품을 챙겨주는 무대 준비자까지 청중들의 박수를 받도록 배려하는 일흔넷의 나나 무스 꾸리가 매력적이다.
해가 바뀌어 나잇살이 더 붙었다.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이 나이보다 몇 곱절 더 많다. 나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닦달하고, 체면을 세운답시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러기를 반복해서 내 나이 일흔넷이 되면? 주름골에 심술이 잔뜩 든 이를 누가 반길 것인가. 그녀의 나이에 닿으려면 숫자로는 넉넉한 것 같지만, 사람의 본성이 하루아침에 뚝딱 바뀌는 것이 아니니 조바심이 난다. 일흔넷, 그녀의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에 공연을 무난히 마친 유명가수의 삶을 통해, 작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반성한 수필이다. 주제의 형상화를 향한 글의 전개에 무리가 없다.
(9) 이름 값
소나무에 흰 꽃이 피었다. 가까이 가 보니 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무에 명함을 꽂아 둔 것이었다. 나무가 글자를 알아서 신비한 소나무일까?
경북 군위군 학암리에는 구부정한 허리춤에 명함을 덕지덕지 달고 서있는 소나무가 있다. 500년의 수령 쯤 추정 되는 노거수다. 이 소나무를 손으로 만지고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 시켜 준다고 한다. 몸이 아프거나, 집안의 우환, 그리고 아기가 없어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무를 만지고 기도를 하여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금도 이 마을에서는 음력 7월 김매기를 마칠 때쯤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냈다고 한다.
늦은 가을 소나무는 누런 낙엽을 달고, 풍경화처럼 몇 안남은 감을 이고선 감나무와 낮은 산등선을 끼고 서 있다.
소나무 가지들은 구불구불 서로 뒤엉키어있고 한 가지는 땅을 향해 길게 뻗어 균형이 잡히지 않아 불안하게 서있다. 뿌리들도 땅 속이 아닌 땅 위로 울퉁불퉁 솟아 있었다. 스스로 지탱하기가 어려운지 군데군데 쇠막대기에 의지하고 서 있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잎을 단 잔가지는 하늘을 향한 푸른 기상이 역역하다. 몸은 세월과 함께 늙어 가지만 정신은 소나무임을 명명백배 알리고 있다. 아마도 그런 기상 때문에 온갖 고민들을 나무에게 털어 놓고 기도를 하는가 보다. ‘신비한 소나무’라는 이름까지 명명해 놓고서.
‘이름값’이란 말을 한다. 맏이라는 이름표는 꽤나 무거웠다. 내 행동거지는 부모님의 위신이고 동생들에게는 표본이 되어야 했다. 지나는 동네 어른들은 내 이름보다 누구네 집 맏이네 라고 했다.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다. 남 앞에서 큰소리로 웃거나 말하지도 못한다. 내 의견을 주장할 줄도 모르는 우유부단한 성격이 되었다.
신비한 소나무도 사람들이 부여한 이름에 값을 하느라고 마디마다 굳은 옹이가 박힌 건 아닐까, 병든 사람이 와서 낫게 해 달라고 하면 하늘의 기를 그에게 전해주고,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울부짖으면 외면 할 수가 없어 삼신할미에게 빌어 주었을 것이다. 시험에 붙게 해 달라면 하늘과 땅의 기운을 그에게 불어 넣어 주었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몸에는 옹이가 하나씩 박혀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이름값 하기에 급급해 스스로를 돌볼 여유를 못 내었다. 몸은 쇠약해지고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전하느라 나뭇가지는 휘어질 대로 휘어지고 뿌리는 땅 위로 솟아올랐을 것이다. 그렇게 애쓴걸 알기에 동네 사람들은 쇠막대기로 나무의 몸을 보호해 주고 해마다 진수성찬으로 동제를 지내 주는 것일까?
해를 거듭 할수록 나무의 이름은 더 알려져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사업번창하게 해달라고 한다. 나무는 할 일이 늘었다. 사람들과의 동거에서 필요한 문자까지 익혀야 되는 건 아닐까, 파랗던 머리칼이 노랗게 내려 앉는다. 가을볕에 어슬어슬 추위를 느낀다. 염치없는 사람들이 슬슬 겁이 난다. 이름값하기가 참 어렵다. 신비한 소나무란 이름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으리라. 다. 옛날 푸른 소나무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가끔씩 시험에 합격했다고 고맙다며 오는 이, 잘 생긴 아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모자 등, 그 이름으로 사는 동안 좋았던 일과 보람 된 날들도 많았으므로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름. 질풍노도 같던 사춘기에 빗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맏이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와 동생들의 눈빛을 보면서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름 탓에 바른 길로 갈수 있었다. 소나무도 남들의 고통과 아픔을 보았기에 스스로가 대견하고, 또 고마워할 줄도 알았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세상만물에 대한 위대함을 느꼈다. 고통과 아픔도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면 이겨내기가 더 쉽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해서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이 살아 갈수 있는 인내를 배웠다. 이름값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인간에 의해 신격화된 소나무의 사명감에 대한 사색을 전달하고 있는 수필이다. 소나무를 의인화하여 전달하든지, 아니면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소나무의 속마음을 추측하며 이야기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소나무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듯이 전지적인 시각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화법은 어딘가 어색하다.
노거수에 견주어 맏이로서 살아가야 하는 작가의 삶을 이끌어내어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이 작품의 소재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10) 크레인에 걸린 노을
추석에 자식들 맞이하고 보내느라 몸살이 나신 걸까. 점심은 드셨냐는 전화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당신은 괜찮다지만 목소리를 듣고도 컨디션을 짐작할 만큼 나도 이제는 반 의사가 되었다. 홀로 지내는 팔순 노모의 밤이 길고도 길 성싶다. 간단한 몸살 약을 사고 호박죽을 준비해 친정으로 향했다.
집에서 나와 성북교에서 좌회전을 하면 바로 신천대로다. 곧장 이삼십 분 달리면 친정동네가 나온다. 걱정도 잠시 북 대구 IC를 지날 즈음이면 바람결부터 다르다. 강 건너 사는 친구는 여름에 에어컨 없이도 산다고 했다. 금방이라도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석양과 역광을 받아 반짝이는 금호강,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끝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팔달교가 가까워지자 하늘을 찌를 듯한 크레인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친정을 오가며 마주치는 그곳은 도시철도 3호선과 4대강 공사가 한창이다. 마치 수륙 공중전을 방불케 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강의 몸부림이 요란하다. 거대한 콘크리트 빔 위로 정거장이 생기고 전철이 다닐 괘도가 형체를 드러냈다. 영화에서 본 장면처럼 머잖아 모노레일을 타고 도시를 횡단할 수 있다니 걱정과 함께 기대도 크다.
개발의 바람은 조용하던 시골까지 불어 와 친정마을에도 대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곳곳에 보호막이 설치되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진입로는 갈 때마다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이맘때면 코스모스가 피어 가을정취를 더해주던 마을길도 덤프트럭 차지가 되었다. 마을 안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목이 좋은 대로변은 외지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큰길을 따라 상가와 가내공장이 자리 잡으면서 낯선 동네에 들어 선 느낌이다.
그에 비해 마을을 지키고 대를 이으어며 살아온 토박이들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다. 친정집 주변은 어르신 혼자 생활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환경도 사람도 노후가 되어 바람 불면 꺼질듯 불안하다. 홀로 사는 어른들이 많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 대문부터 확인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 진다.
지난봄, 마을회관에 딸려있던 경로당이 시야가 탁 트인 언덕으로 이전을 했다. 우리가 어릴 때 뛰어놀던 야산으로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청년회에서 뜻을 모아 전망 좋고 공기 좋은 곳에다 건물도 새로 지었다. 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경로당에 들러 시간을 때우곤 하던 어머니의 발길도 뜸해진 지 오래다.
지나가는 발자국소리에도 밖을 내다보던 어머니가 오늘은 기척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드셨나 보다. 머리맡에 쌓인 약봉지와 파스, 온갖 연고와 리모컨이 어머니에겐 더 절실해 보인다. 어머니의 긴 하루가 크레인에 걸린 노을처럼 애잔하다.
도시화 과정에 있는 고향마을의 애잔함을 드러내면서 그 가운데 늙어버린 어머니의 애잔한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있는 수필이다. 밀려오는 것과 밀려가는 것, 개발과 보존의 아이러니가 애잔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11) 지금
그 사람을 처음 본 건 3년 전 봄학기가 시작되던 날이다, 유난히 흰 얼굴에 미소년같은 남자가 둘째 줄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는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띄고 책과 나를 번갈아 볼뿐 말이 없었다. 출석을 부르며 알게 된 이름 박선유. 그는 여성으로 가득 채워진 강의실에 유일한 남자였다. 선유씨가 온 후로 교실은 즐거운 기운이 아지랑이로 피어났다. 책상 위에 두세 개의 귤을 올려놓아 주황색 불이 켜진 듯 얼굴가득 웃음을 주었고, 쥐눈이검정콩이 알알이 박힌 백설기를 돌려 학생들의 심장에 따끈한 씨앗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가 오기 전, 매시간 어김없이 나가던 작품 과제는 학생들은 받기만 할 뿐 제출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를 마지막 본 것은 지난 가을 학기 첫 시간이다. 그동안 습작한 시들이 빼곡이 담긴 손때 묻은 공책과 책 한권을 들고 나타났다. 등단작이 실린 문예지였다. 수업 시간에 제출하던 과제를 다듬고 다듬어 빛을 보게 된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오후에는 본인의 수술로 입원해야 한다며 종종종 사라졌다. 위장에 종양이 발견되어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한 달 보름씩이나 미루며 즐거운 소식을 전하고 싶어했던 그의 모습을 그 후로는 볼 수 없었다. 가끔 짧은 단상을 문자로 받았다.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늘 시를 소리내어 읽고 쓴다는 내용었다.
올 여름은 50년 만에 가장 무더웠다고 했던가. 불볕 같이 덥던 어느 날 전화기에 문자 한통이 날아들었다. 선유씨다. 얼른 열어보았다. ‘저의 부친이신 박자 성자 훈자(선유) 님께서...’ 뜻밖에 그의 아들이 전하는 부고였다. 가슴이 철컥 내려 앉았다. 이제 겨우 쉰을 넘긴 그가 이렇게 빨리 떠날 줄 예측하지 못했다. 할 말이 없다. 고통을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늘 시를 소리내어 읽고 쓴다던 그의 말이 귀에서 쟁쟁거렸다. 3차 방사선 치료 잘 견뎠으며, 다음 학기에는 꼭 수업하러 가기 위해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던 그의 목소리가 가슴을 쥐어뜯었다.
이번 가을 학기는 시작에 앞서 다 함께 일어나 묵념을 하고 ‘서시’를 낭송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며 살다가 저도 별이 된 선유씨를 추모하는 헌시였다. 삶은 만나고 헤어짐이라 했다. 그런데 죽은 그가 늘 나를 따라다닌다. 그가 남긴 말들이 유언처럼 새겨진다. 가끔 죽어가는 시간의 얼굴이 보여주기도 한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무거운 돌을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굴러 떨어질 것을 알고 늘 망설이는 나를 나무라기도 한다. 무엇을 망설이느냐고 소리친다.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갤러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학기가 끝나는 12월 한 주 동안 전시장을 예약했다. 제목은 육필시집 ‘삶이 가장 아름다운, 지금’이다. 계획대로 척척 진행될지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난 내가 아는 만큼만 그들 앞에서 떠들 뿐이고, 그들은 내 말을 비판 없이 듣고 있을 뿐 아니겠는가?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시를 읽으며 절망을 공감하고, 사랑과 희망을 부러워하고, 미움과 아픔에 동조하는 것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게 하고 싶다. 그들 자신 속에서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을 찾길 원한다. 결국은 더 나아가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진정, 삶의 아름다운 현재를 살아가게 하고 싶었다.
우여곡절이 어찌 없었겠는가. “철자법 다 틀려도 돼요, 길게 쓰지 않아도 돼요, 잘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용이 엉만진창이라도 괜찮아요.” 달래고 어루어도 한편도 내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나는 꿈에서까지 작품 교정을 하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전시회 당일, 취재 온 기자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지금’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번 전시회에는 회원 20여 명이 피를 찍어 쓰다 싶이 한 작품 200여 편이 선보였다. 각 시집에는 손 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옮겨 쓴 창작시로 채워져, 수강생들의 지난 1년간의 땀과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육필시집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는 영혼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던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자가 묻는 질문에 백유선(65) 씨는 “시를 쓰다 지우고, 쓰다 고치고 며칠을 씨름한 끝에 시 한 편을 완성했을 때 그 기분은 옥동자를 분만한 기분”이라고 했다. 이귀선(67) 씨는 “여학교 때 교내 백일장에도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는 문학소녀였다.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며 잊고 있다가 이제 나를 찾기 위해 시 창작반에 들어온 게 얼마나 다행이며 보람 있는지 모른다”고 수줍어했다. 윤순영(62) 씨는 “시를 쓰며 적절한 낱말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다”고 했고 김인순(78) 씨는 “아들딸 다 성혼시키고 공허한 마음을 시 창작에 쏟았다”고 밝혔으며 성영희(61) 씨는 “깊고 어두운 샘에 두레박을 내려 맑고 시원한 샘물을 길어올리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금, ‘내 삶이 가장 아름다운, 지금’을 다시 꿈꾼다. ‘많은 세월 속에 올 한해가 그래도 값진 것은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행복하고 감사’했다는 이태희 예비시인의 문자를 읽으며 거울을 본다. 갑오년 마지막 날에는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전하고 싶다.
시 공부를 하던 어떤 이의 삶과 죽음 이야기에서 문하생들의 창작시 발표회에 대한 소감으로 대상을 확대시켜 나아갔다. 시를 창작할 때의 힘겨움과 발표함으로써 얻는 성취감, 그런 과정들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순간들이라고 하는 주제에 이르고자 했다. 이름 뒤 ( ) 속의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며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