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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의 빌드업’은 건국대학교에서 3학년까지 활약을 하다 이번에 K리그 클래식 우승팀인 전북현대에 입단하게 된 조석재 선수를 만나봤다.
(사진 출처: 본인 제공)
프로구단에서는 자신의 유스 시스템 속에서 키워낸 선수들을 중용하는 추세인 요즘에 학원축구에 몸 담고 있는 선수가 프로에 가기는 쉽지 않다. “전북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축구를 잘하는 구단(팀)에 입단을 하게 됐는데 그 누가 행복하고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까요. 소집 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고 하루하루 배우는 것이 저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로 보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최곱니다. 자유선발로 입단하게 되었지만 전북에서는 그런 것들이 무의미 할 정도로 형들이 너무너무 대단하고 유명한 선수이기 때문에 그저 저는 신인 선수로써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사실 프로구단 중에서도 이름값이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기업구단에서 신인 선수가 살아남긴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전북현대하면 ‘닥공’이라는 이미지여서 신인 공격수가 주전 선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전북하면 닥공이기 때문에 제가 전북에 가고 싶어 했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일단 닥공을 하는 전북에서 저를 강력히 원했고 그래서인지 다른 구단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어요. 물론 주전경쟁도 쉽지 않겠지만 다른 구단도 분명 마찬가지고 경쟁이 없으면 저 자신도 발전이 없기에 경쟁 중에 제일 빡센(?) 전북을 선택한 거 같아요 많이 배우고 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계속 보여주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프로 1년차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 물어봤다. “처음에는 막연히 30경기 이상이였는데 정말 30경기 뛴다는 거 자체가 어려운 거란 걸 알게 됐어요. 1경기 1경기가 정말 중요한 프로기 때문에 목표를 조금 낮췄어요. 그리고 마음도 비웠어요. 배운다고 생각하고 절대 상처 받지 않고 버티자 이 생각 뿐이에요. 그래도 10경기 이상은 뛰고 싶어요.(웃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게다가 보통 신인 선수들은 뒷 번호를 받는데 조석재 선수는 앞 번호를 받았다. 작년 시즌 이재성 선수가 큰 활약을 해줘서 전북 팬들에 이번 시즌 신인에게도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부담이 커보였다. “저도 제 번호가 15번이라 진짜 깜짝 놀랐어요. 재성이형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 저에게도 많은 기대 하실텐데 그만큼 제가 보여드리면 되는거고 부담은 없어요! 낮은 번호라 기분은 좋고 제가 실력으로 보여드리는게 먼저 인 거 같아요. 아무튼 낮은 번호를 받게 돼서 너무 기분 좋아요.” 그렇다면 전북 팬들에게는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지 물었다. “루니 같은 선수로 인정 받고 싶어요. 저돌적이고 한방도 있고 스피드 하고 항상 열심히 뛰고 팀에서 없어선 안 될 선수로 기억 해주시면 좋겠어요. 팀이 위기 일 때 단비 같은 골을 넣어 주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감독과 선수간의 관계가 굉장히 어려운데, 반면에 최강희 감독님은 팬, 선수 모두에게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이다. “최강희 감독님이랑은 딱히 말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운동 시간에 선수들과 같이 장난치고 유쾌하신 거 같아요. 스페인 연수를 다녀와서 두바이 때 처음 봤는데 아직은 서먹서먹해요.”
조석재 선수는 공격수로 최전방 공격수, 윙 등 두 포지션에서 뛸 수 있지만 본인은 최전방 공격수의 자리를 더 선호한다. 전북 현대 연습 경기에서는 주로 윙 포지션에서 뛰는 경우가 늘었다. “너무 낯설어요. 윙이랑 저랑은 안맞나봐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진 거 같은데 아직도 너무 어렵네요. 윙이란 포지션이 수비까지도 같이 해야 하는 자린데 처음에는 진짜 미친듯이 수비만 했어요. 저 때문에 골을 먹게 되면 안되니까요. 근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막 뛰면 안된다고... 수비를 100%로 하니깐 공격할 힘이 없는 거예요. 근데 전북에 와서 사이드백 형들에게 저를 조종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형들이 뒤에서 저를 진짜 조종 하더라고요? 근데 힘이 하나도 안들어요. 수비하는 위치 누굴 잡아야 하는지 다 얘기해주는데 공격할 힘이 남드라고요. 그래서 그나마 요즘은 윙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 그래도 저는 스트라이커 자리가 아직은 편하고 잘할 수 있는 자리 인 거 같아요.” 프로에 와서 한 경기 한 경기를 뛰어가면서 조석재 선수가 배우고 점점 더 성장하는게 느껴졌다. “전북하면 닥공이라 공격만 하는 줄 아실텐데 절대 아니더라고요. 공격부터 수비를 하시는 걸 강요 하시더라고요. 평소 대학교 때는 공을 뺏기면 한숨만 쉬고 천천히 내려갔는데 전북은 뺏기는 그 자리에서 바로 수비를 하는 선수를 경기를 내보내시는 거 같아요. 그러긴 위해서 체력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까 자동으로 뺏기면 바로 수비가 되더라구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90분 내내 뺏기면 바로 수비를 할 수 있는 박지성 체력이 생기겠죠?”
조석재 선수는 아직 프로 공식 경기를 뛰어보지는 못했지만 두바이에서 여러 클럽팀과 연습경기를 뛰면서 점차 프로선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마추어 선수들 중에 프로선수들 보다 기술은 더 좋은 선수들이 많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프로에 와보면 기술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실력은 한 끝 차인데 하나 다른게 있어요.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승부욕인 거 같아요. 근성 없는 선수들이 없어요. 다들 이기고 싶어서 훈련을 할 때도 정말 실전처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정말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하드라고요. 이기겠다는 그 마인드 하나가 프로와 아마의 차이 같아요.”
올해 한국 나이로 23살 93년생이다. 2013년 U20 터키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같이 뛰던 동료 선수들은 대부분이 프로에 바로 진출했다. 축구선수는 직업 수명이 짧아 하루 하루가 급할텐데 조석재 선수는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1년을 더 대학에서 보냈다. “건국대에 처음 들어갈 때 감독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해야 하나? 감독님이 3학년은 하고 나가라 하셔서 그랬던 거 같아요. 물론 저도 당장이고 친구들처럼 돈 받으면서 팬들이랑 소통하고 그런 멋진 일들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 준비가 안됐다고도 생각했어요. 대학에서도 뛰어나진 않은 선순데 프로에 막 간다면 분명 살아남지도 못했을거예요. 주위에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차라리 1년 더 하고 좋은 대우 받고 가라고 그래서 3학년까지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최고의 대우 받으면서 전북이라는 팀에 올 수 있게 되었네요.”
(사진 출처: 전북 현대 모터스 홈페이지)
전북 현대 홈페이지에서 선수단 프로필 중 ‘팬들에게 한마디’를 보면 “비난이라도 달게 받고 훌륭한 선수 되겠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사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설레는 마음으로 U20 터키월드컵에 임했지만 본인 마음대로 플레이가 잘 풀리지 않았고 지켜보는 팬들에게 질타도 많이 받아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의 댓글을 봤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연예인들처럼 많은 댓글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사람들이 저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악플은 정말 무서운 거 같아요. 근데 더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그런 비판과 비난은 정말 달고 가야하는 거 같아요. 공격수는 골로 얘기 하는거라는 말도 있듯이 제가 골로 답해드리면 분명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실거라고 믿어요. 팬들에게 한마디를 “비난이라도 달게 받고 훌륭한 선수 되겠습니다.”라고 했던 이유는 이제 비난이라도 저는 신경쓰지 않고 무조건 훌륭한 선수 되겠다는 의미로 적은거예요. 부담은 없어요. 제 실력은 변함 없고 평가는 밖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보여드리면 되는거예요. 파이팅(웃음)”
프로필에서 스크롤을 내려 마지막을 보면 선수 사인이 있는데 본인 이름인 ‘조석재’가 그대로 적혀있다. ‘본인 이름=사인’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물어봤다. “터키 월드컵 때 외국인들에게 사인을 해주는데 제 이름을 그냥 적어줬어요 근데 제 사인을 보더니 Korean? 이러면서 엄지손가락을 뙇! 너무 기분 좋았어요. 나만 애국자가 된 기분? 그때 그 Korean?을 잊지 못하고 계속 한글로 제 이름을 썼던 거 같아요. 멋은 없지만 저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싸인이 된거죠. 외국인들이 보면 슈퍼간지입니다.(웃음)”
보통 축구선수들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때 축구를 시작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조금은 늦은 시기인 중학교 2학년때 시작했다. “축구를 중 2때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축구부(?) 라는 자체를 몰랐어요. 그냥 동네에서 축구 하다보면 국가대표 감독님이 너 잘한다 해서 데려가시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축구부에 대한 지식도 없었는데 축구선수가 되려면 축구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반항을 하게 시작됐어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쪽지를 써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나름 가출이였는데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마음을 부모님이 아셨던지 태성중학교에 테스트를 보러 가게 됐어요. 그 때부터 축구를 했죠.” 주변 선수들에게 “조석재 선수는 어떤 선수입니까?”라고 물어봤을 때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 한만큼 노력을 정말 많이 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석재는 타고난 천재형보다는 꾸준하고 말 없이 묵묵하고 겸손하며 노력형이예요.”라고들 평을 했다. “항상 저는 작심삼일 이였어요. 모든지 3일만 지나면 포기했죠. 축구도 마찬가지 였어요. 합숙 3일 만에 부모님이 경기를 보러 오셨는데 저도 집에 너무 가고 싶은거예요.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은 집으로 가시는데 제가 화장실에 숨어서 나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면서 데려가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번도 그런 말 하신 적 없던 아빠가 “너는 뭐만 하면 3일밖에 못하냐!”라고 끝까지 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달라졌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더 기본기를 갈고 닦아야 했어요. 저녁마다 친구들 티비 볼 때 나가서 기본기 훈련을 했어요. 저는 분명 천재는 아닌 거 같아요. 축구의 천재면 축구가 엄청 쉽겠죠? 하지만 저는 노력형인 거 같아요. 듣기에도 저는 천재보다 노력하는 선수가 더 듣기 좋네요! 축구를 그만 둘 때까지 노력할거예요(웃음)”
건국대학교 공문배 감독은 “석재는 특이한 기술을 많이 갖고 있다. 스피드와 지구력도 모두 갖췄다. 특히 드리블은 상당히 독특하다. 드리블을 하는데 있어 다른 선수들보다 템포가 빠르다. 잔발로 드리블을 시도하니 수비수들이 붙지 못하고 자꾸 뒤로 물러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건국대학교때의 경기를 보면 꾸준한 기본기 연습 덕분인지 다른 선수와는 다른 선수와는 차별화가 되어 있는 듯 했다. “제 드리블이 특이한가요? 드리블을 연습해 본적은 없고 음 수비수와 가까이에 있을 때는 순간적으로 팍! 치고 수비수와 멀리 있고 제가 탄력을 붙여서 뛸 수 있으면 멀리서 치달? 이라고 하죠. 치달을 하고 딱히 드리블이 특이하고 그런 건 없는 거 같아요. 가장 기본적인 드리블 일 거예요. 저는 화려한 거 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서운 거 같아요. 원래 오리지날이 진리잖아요(웃음)”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장점은 무엇인지, 단점은 무엇인지 물어봤다. “제 장점은 슈팅과 스피드? 이 정도 인 것 같아요. 슈팅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 있고 스피드는 뭐 항상 자신있어요. 단점이라고 하면 수비력과 침착성 여유 그런 부분 인 거 같아요. 단점을 보완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침착성과 여유 그런 부분은 정말 경험이 중요한 거 같아요. 분명 좋아질거라 생각하고 있어서 크게 생각은 안해요.”
U20 터키월드컵 이후 매번 대표팀에 발탁되었다가 이번 킹스컵에 출전하는 대표팀에는 합류하지 못했다.(인터뷰당시) 올림픽을 대비하는 대표팀인만큼 기대도 커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예상은 했던 결과 였습니다. 지난 소집 중국 우한에서 국제친선대회에서 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다음 소집 때는 다른 선수를 소집하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이번 소집은 ‘소속팀 동계 기간이랑 겹쳐서 안가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먼저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대표팀에도 다시 소집되기 때문에 뭐 속상하고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전북 동계에서 좋은 모습 보여서 소속팀에서 좋은 모습을 먼저 보여드려야겠다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조석재 선수를 멀리서 보면 얼핏 대한민국 간판 스트라이커인 박주영 선수를 닮았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상남자 같은데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참 해맑고 귀여운 남자라는게 느껴진다. “박주영 선수는 항상 저의 롤모델이죠. 제가 축구의 꿈을 키우게 된 것도 박주영선수의 청소년 시절의 모습 때문이였을거에요. 그때 정말 대단하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축구 실력은 몰라도 외모라도 닮았다니 기분이 좋아요 솔직히 많이 좋아요.(웃음) 근데 이제 긴머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서 그런 소리도 점점 줄어들겠죠?” 그렇다면 정말로 닮고 싶은 선수는 누구인지 물어봤다. “조성환 선수를 닮고 싶어요. 저의 프로 첫 룸메이트 형인데 경기장에서 정말 강하게 해요. 물론 공격수의 좋은 장점들을 닮고 싶기도 하지만 그전에 성환이형과 같은 근성과 투지 적극성 경기에 이기겠다는 그 의지를 먼저 배우고 싶어요. 경기장에서 또라이가 된다는데 저도 또라이가 같이 되고 싶어요.(웃음)”
(사진 출처: 본인 제공)
어느덧 23살, 20대 중반이 되었다. 축구인생 8~9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게 무엇인지 물었다. “2011년 고등 왕중왕전 우승 할 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였죠. 우승이란게 정말 쉽지 않은건데 제일 큰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그 순간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리고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프로에 입단 하시는 걸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셔서 가슴이 너무 아파요 하지만 하늘나라에서 정말 많이 그 누구보다 기뻐하실거에요.” 프로에서 뛰고 있는 조석재 선수를 하늘에서 보고 있는 아버지를 위한 세레머니를 할 의향은 없냐고 물었다. “아버지에게 세러머니 보다는 먼저 팬들에게 세레머니를 자주 하려고 노력 할꺼예요. 아버지는 분명 천국에서 골 넣으실 때마다 기분 좋아하실테니 괜찮아요. 팬들에게 먼저 하는게 맞는 거 같아요. 굳이 아버지한테 하지 않아도 기뻐하실테니깐 팬들에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제가 막 이미지 좋으려고 이런 말 하는게 아니라 진짜 굳이 아버지한테 할 필요는 없어요! 팬들이 먼저에요!”
마지막으로 선수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이를 안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제가 정말 컸네요. 꿈은 항상 있죠. 축구선수 누구라면 생각하고 꿈꿔오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정말 힘들꺼예요. 그런데 국가대표라는 꿈은 너무 식상하죠? 저의 진짜 꿈은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과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에요. 너무 행복할 거 같아요.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제 최종 꿈인 거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축구를 더 열심히 해야겠죠(웃음)”
축구선수로의 꿈일 줄 알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이 꿈이라는 대답이 나와서 놀랐다. 사적인 얘기를 할 때에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굉장히 긍정적이고 겸손한 선수라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았다. 아직은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지만 결국 마지막에 웃는 선수는 ‘조석재’ 선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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