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군사 교육단(RNTC)
“전체 차렷”
빠짝 긴장하고 숨 소리도 멎은채 부동자세다.
“눈깔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 상태가 썩어 빠졌다”
지휘봉으로 가슴을 쿡 찌른다. “귀관”
“예 310번 이건표 후보생”
“소리가 작다. 쪼그려 뛰기 30회 실시”
“예, 실시. 하나, 둘......”
점호 시간, 여기 저기서 온 내무반이 난리다. 모두의 혼이 쏙 빠져나가 허둥댄다.
남자 일생에 한 번은 겪는 36개월 군대 생활을 대신해 받는 군사훈련.
교대에 지원하는 남자들이 적으니까 국가에서 실시한 유인책이 수업료 탕감과 군대 면제였다. 학교 졸업과 동시에 예비역 하사로 임관되어 군대여 안녕 한다. 일명 ‘물하사’. 없는 집 장남, 교대생 남자는 모두 몰려들었다.
각자 내 가정의 재건을 두 어깨에 짊어진 역군들.
그러나 국가는 그냥 군대를 면제해 준 것은 아니었다.
교대 2년 간, 주 8시간의 군사교육, 매년 여름 방학 3주간 군대 입소 훈련을 받아야 했고, 교사 발령 후 5년 간 의무 복무를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기면 그대로 군대로 징집이 된다.
입단을 하면 교련복과 M1 소총을 한 자루씩 배정해 준다. 내 총이다.
교련복에는 이름 대신 각자의 고유 번호가 붙는다.
그 때부터 내 이름은 ‘이건표’ 대신 ‘310번’ 이다. 310번 후보생.
M1 소총.
2차 대전 때 이름을 날린 반자동 소총. 구경 7.62mm. 길이 1,100mm. 중량 4.2kg. 최대 사거리 3,200m.
총기번호 34709175번 외워야 한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어려서부터 장난감 총이나 칼을 좋아했지만 그 옛날에는 흔치 않았다.
진짜 내 총이 생기니 괜히 좋았다. 잠깐 뿐이었지만.
훈련을 받을 때면 언제나 총을 지녀야 했다.
모든 훈련이 총을 가지고 이루어지는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어깨에 메고 제식훈련, 사격 훈련, 손에 들고 총검술 훈련, 앞에 끼고 포복훈련, 받들어 총하며 경례를 하고, 두 손으로 들고 구보 훈련, 거의 모든 훈련이 총과 함께 이루어 진다.
앞에 들고 뛸 때는 팔이 떨어져 나간다.
집어 던지고 싶지만 군대에서 총은 생명과 동격으로 취급된다.
분실 시에는 영창을 각오해야 한다.
금방 천덕꾸러기가 됐다. 그 뿐인가 ?
훈련 후 항상 기름으로 깨끗이 닦아 검열을 받고 무기고에 반납을 해야 한다.
그리고 녹슨 총구는 꽂을대로 수 백번 닦아서 반짝반짝 빛내야 반납을 받아준다. 게다가 1분 내로 완전 분해했다 조립해야 하는 분해 결합 훈련도 골치가 아프다. 좌우지간 군인의 목숨과 같다는 총은 징그러운 존재가 되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4시간씩 실시되는 군사훈련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몇 번 빠지면 그대로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
강의는 땡땡이 쳐도 훈련만은 꼼짝 못한다,
뙤약 볕에서 받는 훈련, 찬 바람 부는 겨울 날의 훈련은 정말 힘들었다. 날씨가 서늘한 날에도 받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였고. 언제고 친해질 수 없는 군사 훈련. 누구의 눈에서도 맥이 풀려 있고 행동이 굼뜬다.
그러니, 교관님, 구대장님들도 입만 벌리면 욕이고 기합이다.
사실 그래야 군사 훈련 집단이 사고 없이 유지될 것 같기도 했다.
또,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지기 마련, 훈련생 누구나 시간만 가라 기다린다. ‘○뺑이를 쳐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 간다.’ 훈련생의 신조 제1조다.
육군 중령 학군단장님은 제일 무서운 존재였다. 모두가 슬슬 피했다.
학군단 실 근처는 서로에게 기피지역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받는 군사 훈련은 사실 천국에서의 오락이었다.
여름 방학이면 조치원 31사단에 가서 3주 동안 받는 입소 훈련.
이 건 완전 죽음이다.
멋 모르고 들어갔다가 다 죽어서 나온다.
입소 첫날부터 완전 뺑뺑이인데 사람을 반쯤 죽인다.
하나하나가 시비 거리고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첫 날, 밥이 밥 같지 않아서 대부분이 남겼더니 사제 기름기 뺀다고 죽사리치게 돌려 댄다. 일반 세상과 격리된 완전 다른 세계다. 정신이 번쩍 난다.
모든 게 다 기합거리가 된다.
툭 하면 선착순, “선착순 세 명” “선착순 두 명” “선착순 한 명” 한번이라도 덜 뛰려면 정말 죽어라 뛰어야 한다. 친구고 뭐고 없다.
그래도 평소 운동을 하던 나는 견딜 만 했지만, 몸이 뚱뚱한 영우는 매 번 꼴찌라서, 너 댓 번은 더 뛰어야 한다. 도대체 땀이 마를 날이 없다.
원산폭격은 어떻고 ! 철모를 놓고 그 위에 머리를 박으란다.
한 참을 박고 나면 철모 모양으로 머리가 쑥 들어간다. 머리뼈가 단단한 줄만 알았는데 신축성이 있었다. 나중에는 푹 패였던 머리 뼈가 위로 솟아 오른다. 부어 오른 것이다.
인체의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을 거치면 머리 껍질이 붕 떠서 솟아 오른다. 한 여름에 몇 차례는 벗겨내야 끝난다. 뱀이 허물 벗듯이.
밤에 잠이라도 좀 재운다면 그래도 괜찮겠다.
야간 점호라는게 있다. 매일 밤 인원점검을 한다고 하는 것인데 기합으로 시작해서 기합으로 끝난다. 이 때는 극심한 공포심이 조성된다.
구대장이 맘 먹고 들어 온다. 반쯤 죽여 버리겠다고......
“오권득”, 육군 신삥 소위로 악명 높았던 우리 구대장이다.
머리 나쁜 내가 지금까지 그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정도라면 짐작할 것이다. 오늘은 무엇으로 우리를 괴롭힐까가 최대의 관심사다.
별별 기합을 다 받아 보았다. 판초(군용 우비)를 입게 하고, 방독면을 쓰고 쪼그려 뛰기를 시키면 가관이다. 판쵸 자락이 너울거리며 뛰는 모습을 보면 마치 달밤에 도깨비가 춤을 추는 것 같다. 기합 받다가도 그 광경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웃다가 얻어 터지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양쪽 침상 끝에 팔과 다리를 걸치고 엎드려 뻗쳐 하면 팔, 다리,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두드려 패기. 낙동강 철교, 원산폭격 등 등 등..... 한도 끝도 없다. 염체, 체면 가릴 것 없이 엉엉 울기도 한다.
혹독한 핸드볼 훈련을 받은 나만 빼고.....
매일 밤마다 내무반에서 땀을 흠뻑 빼고 닦을 새도 없이 골아 떨어진다.
산타클로스 훈련이 있다.
가족 면회날이 하루 있는데 그날 밤중 새벽 한 두시에 펼쳐 진다.
잘 먹어 뱃가죽에 끼인 사제 기름을 뺀다고 실시하는 훈련이다.
비상 벨이 울리면 전원이 자다 말고 일어나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자기 사물을 몽땅 담요에 싸서 들고 연병장에 선착순으로 모여야 한다. 거기다가 총까지 들고, 연병장을 몇 바퀴 돌린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보따리를 등에 지고 있는 뛰는 모습이 펼쳐진다. 컴컴한 연변장 반대 쪽에서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등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진채 뛰는 건지 기는 건지 꾸물대는 군상들의 모습이 볼만도 하다. 힘만 들지 않는다면 재미있는 훈련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운동장에는 여기저기 흘린 사물들이 줄줄이다. 수저, 칫솔, 양말, 팬티 등등...
훈련소에 입소할 때 지급된 사물을 퇴소할 때 반납해야 한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사서라도 채워 놓아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숟가락이다. 젓가락은 아예 처음부터 주지도 않았고....
그 날 잃어버린 숟가락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기간 사병들과 흥정이 벌어진다. 한 개 얼마씩. 그들이 주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돈 주고 사서 채워 넣었다.
먹는 것도 문제가 크다. 밥, 돈지국(돼지 기름을 넣고 끓인 국. 튀김 두부 몇 조각 들어 있을 때도 있다), 염장 무(소금에 절인 무), 물이 전부다.
밥은 몇 년 묵은 정부미인지 물에 말으면 2cm 이상 되는 쌀 벌레가 둥둥 뜬다. 쌀 반, 벌레 반이다. 국가에서 부족한 단백질 보충시키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지국 냄새도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는 구역질을 하는 등 기겁을 했지만 금방 익숙해지고, 배 고프면 꿀 맛이다.
가혹한 훈련으로 탈진한 뱃속에서 밥 달라 난리가 난다. 그 때면 밥 한 숟가락, 국건더기 하나 더 받으려고 눈이 번쩍 번쩍 빛난다. 밥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핥듯이 먹는다. 무 조각도 하나 남기지 않고 .......
일요일 점심에는 라면이 나오는데 퉁퉁 불어 연필 굵기만 하다. 맛을 떠나 한 가락이라도 더 먹으려는 욕망은 배고픈 자라면 누구나 지닌 본연의 욕구일 것이다.
좌우지간 몬도가네가 따로 없다.
퍼세식 화장실도 한 몫 한다. 온 바닥이 구더기로 덮여 있다. 매일 청소해도 마찬가지. 발 디딜 정도만 밀어내고 쭈그려 앉아 일을 볼 수 밖에.....
그 생각하면 지금도 온 몸이 스멀스멀 댄다.
“식사 시간 3분, 식사 실시” 교관의 고함이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복창을 하고 수저로 퍼 넣는다.
배도 고프지만 훈련생 시절에는 생각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다.
무조건 입에 퍼 넣고 목구멍으로 넘겨야 한다. 맛은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한 참을 먹어대는데 식당 저 쪽에서 학군단장님이 나타났다.
하나하나 어깨를 두드리며 다가 오신다.
“힘들지. 많이 먹어” 코 끝이 시큰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무서웠던 분인데 훈련소에서 만나니 친정어머니 같다.
아,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
그 때 참 고마웠다. 너무도 고마워 쏟아지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첫댓글 구비구비 애쓰셧네요ᆞ
남자들만의세계 ᆢ
군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