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 꿈에라도.. (고양이 장례) / 바나바
‘여름 장마를 울게 한 가을장마’라더니 연일 찌푸린 날씨에 밝은 얼굴을 내밀고 인사할 줄 모른다. 게다가 태풍 ‘마니’님이 칼날 세우고 춤을 추면서 기어-올라온다니 선한 농심에 멍들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기도 하다.
근래 지하실 주차장에 여름이라 그런지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퀴퀴한 냄새가? 아무래도 심상찮아서 개 코를 세우고 추적 60분이나 하듯이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런데 구석진 곳에 합판 토막 뒤에 웬 고양이가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아~ 아무도 장례 치러 줄 사람도 없고 이 어려운 때 비용이 없어 여기서 조용하고 편안한 죽음을 선택했는가? 인생도 이러한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니던가?
현기증 나는 세상, 한참 상념에 잠겨 배배꼬인 등나무처럼 희비(喜悲)의 쌍곡선을 그린다
며칠 전에도 지하 창고에 갔다가 문을 여는 순간에 얼마나 놀랐는지?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 온갖 추리를 혼자서 해본다.
몰래 들어왔다가 갇혀서 먹지도 못하고 굶어 죽었는가? 누가 죽은 고양이를 이 여름날에 지하 창고에 갖다 버렸을까? 어느 누가 나를 골탕을 먹이려고.. 내가 무슨 전생에 남에게 원수 살만한 일을 했던가?
그렇다면 이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두 마리나 죽어 냄새가 등천(騰踐)을 하는데도..?
부패하여 구더기가 벅신거리는 것을 보았으니 이날따라 밥상도 내밀치고 말았다
차라리 안 봤으면 모르는 게 약인데, 먼저 본 게 죄가 되어 홀로 감당을 해야지..?
자루에 넣고는, 쓰레기통에 넣자니 미화원의 고충이 생각나 이것도 안 되겠고
하수구에 버리자니 환경오염 주범이 될 것 같아 여간 고민이 아니다
그래서 중대한 결딴을 내려 일단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조문객도 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객사를 하였으니 가는 마당에 좋은 일이라도.. ^*^“
겹겹이 비닐로 잘 염을 해서 차에 싣고는 뒷산으로 올라가 홀로 상주가 되어 꼭꼭 묻어 주었다
돌아와 보니 허전한 지하 창고에도, 자동차 안에도, 임이 남기신 향취가 여전히 진동을 했다.
몇 번이고 물로 씻고 닦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 임이 나에게 무슨 철천지원수였던가?
일복 많은 팔자소관이던가? 남모른 고양이를 두 마리를 장례를 치뤄야 했던
운명을 탓하랴!
운동 삼아서 자주 황령산을 올라가는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났다
아니, 여기가 고양이 무덤이 있는 곳인데, 그 자리에 ‘소나무재선충’ 방제 작업을 하는 구청인부들이 작업한 나무를 쌓으려고 곡괭이 들고 하필이면 그 자리를 파고 있는가? 참! 세상은 아이러니(irony) 하다. 오늘도 묻고 파고 묻고 파고 되풀이를 하고 있으니..
자연 훼손을 하는 인간들! 그들이 한 맺혀 이를 갈고 있으니, 보복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