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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부산,경남 에베레스트 원정대와 함께 트레킹을 마치고
일자;2006년03월24일-4월13일
코스및 일정
1.3월24일(부산-인천-방콕) 출발
2.3월25일(방콕-카트만두) 도착
3.3월25일-28일
ㄱ>원정대 행정 신청및 장비 구매및 주부식 준비
ㄴ>셀파대원및 포타 베이스 캠프 구축및 장비 이동
4.3월29일(카트만두-루클라공항-박딩롯지)
5.3월30일-31일(박딩-남체)
ㄱ>남체-굼중 순회 고소 적응차 2박
6.4월1일(남체-텡보체-팡보체)
7.4월2일-3일(팡보체-딩보체)
ㄱ>딩보체-낭카투상 콤페 고소 적응차 등반
8.4월4일(딩보체-로부체)
9.4월5일(로부체- 고락셉-베이스캠프)
10.4월6일(철수:베이스캠프-고락셉)
11.4월7일(고락셉-페르체)
12.4월8일(페르체-남체)
13.4월9일(남체-루클라)
14.4월10일(루크라-카트만두)
15.4월11일-12일(카투만두-방콕-인천)
작년 봄에 낙동 김정호회장님,양산 이상배 대장님과 안나프라나 베이스 캠프까지 트레킹을 하고 난 이후
한마디로 뽀~응가서 지난 일년 내내 히말리야의 설봉들이 눈앞에 가물가물거렸읍니다.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풍경과 너무나도 네팔인들의 순수한 표정과 이름있는 설봉들이 보이는
전망 좋은 롯지들이 너무나 아늑하고 멋져서 내마음을 사로 잡아버려 다시 가고픈 그곳이 있었읍니다.
이번엔 이상배대장님은 양산시 10주년 기념 등반및 21세기로 도약하는 양산시의혁신,개척 도전의
진취적인 기상및 국위선양으로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리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등정 하신다고 한다.
이상배,곽정혜양은 에베레스트 등정 이승사장님은 로체에 등정하여 부산,양산의 산악인으로써
힘든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고령에 나이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정열과 집념으로 무엇가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유난히 강하게 엿볼 수가 있었읍니다.
그들의 깊은의지에 비해 내가 무슨 힘이 되겠읍니까?만은 베이스 켐프까지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짧은 일정이지만 함께 동행하고 격려하며 필히 무사등정.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셨읍니다.
원정대의 많은 짐땜에 인천 공항에서 유여곡절을 겪고 넘기고 협동 단결하여 카투만두에 도착하니
예전에도 느꼈지만은 그곳 상큼한 공기에 내내 찌들은 마음마저 날아가듯 합니다.
늘 삶에 찌는듯하고 갑갑하고 답답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고산국인 카트만두 공항에 몸을 내리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듯하였으며 마치 감옥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인이 된 듯 합니다.
현지 아시안 트레킹 본사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행운의 스카프와 생꽃다발을 목에 걸어 줍니다.
그들의 소박한 친절에 우리들 감사의 마음은 마치 에베레스트 고봉만큼 느껴집니다.
이상배대장님을 위시로하여 함께 공항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타멜 시가지로 왔읍니다.
타멜의 시가지에 들어오니 이곳이 고산분지라 빠싹한 흙먼지와 매연에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목요일날 양산 목요일 산악회에서 거나하게 전송식을 베풀어 주셔서 무리하게 밤늦게까지 과음을 한 뒤라
이것 저것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오지 못한 처지라 마스크 될만하게 없어 매우 아쉬운 마음이었읍니다.
노블링카 호텔에 여정을 풀고 우리들은 찬찬히 등정을 위한 준비를 했읍니다.
다음날 천안 에베레스트 원정팀들과 합류하여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주,부식을 현지에서 구매하며
우리들의 쿡인 현지 믹마와 함께 김장 아닌 김장을 했읍니다.
작년에 함께한 현지 준가이드겸 쿡인 믹마를 만나니 나로썬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배추,갓김치,무우 김치를 담기 위해 아시안트레킹 옥상에서 다듬고 소금에 쩔리니 더욱 더 정감이 갑니다.
그리 카트만두에서 여독과 숙취를 풀며 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등산 장비와 아이쇼핑을 했읍니다.
타멜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몇군데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의 그곳에서 해결하니 다들 여기가 네팔인지? 한국인지 구별이 안된다고 합니다.
작년에 비해 장사가 더욱 더 잘 되는듯 합니다.
이곳 네팔은 정치가 어수선하여 작년에 비해 몹시 불경기라 합니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 식당은 잘 되는듯 합니다.
그런데 아쉬운것은 3,4,5월 삼개월만 반짝이라 합니다.
그리고 한국 식품들이 반입이 되지 않아 애로 사항이 많다고 주인들이 귀뜸을 합니다.
그리 연 삼일 지나니 하루라도 빨리 이곳 타멜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길바닥에서 일어나는 흙먼지땜에 하루라고 빨리 고산의 롯지에서 자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맑은 공기가 그립고 하얀 히말리야 고산의 주봉들을 바라보며 걷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습니다.
3월29일(카트만두-루클라공항-박딩롯지)
이윽고 우리들은 준비의 과정을 마치고 루크라 공항으로 가는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읍니다.
울 이상배대장님 "왼쪽 창가에 앉아야 히말리야 주능성들을 볼수 있다"고 귀뜸을 합니다.
작고 흔들리는 경비행기에 몸을 실은지 15분쯤 지나니 그림같은 히말리야 주능성들이
설산의 파로나마처럼 펼쳐집니다.
구름인지? 설산인지? 구별이 잘 안될만큼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다들 조그만한 함성을 울리며 제나름대로 진지하게 샷타를 눌려 됩니다.
비행기 날개 밑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코발트 하늘색과 잘 어울리는듯 합니다.
제법 긴 시간인듯 하였지만 아쉬운 장면들이 사라짐에 여간 서운한 마음이 아닙니다.
루크라 공항에 도착한다는 기장의 멘트가 울리더니 짧고 경사진 활주로에 아쓸아쓸하게 도착합니다.
좀 들떤 기분으로 내리니 공항의 풍경이 아주 매록적입니다.
앞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설봉과 루크라 공항이 이루는 풍경이 한장의 사진에 담은 그림 갔읍니다.
롯지에 도착하여 따뜻한 밀티 한잔하니 비행기 멀미인가? 고소증인지? 좀 어찔어찔한 기분이 듭니다.
울 대장님! 이곳에서는 필히 알아야 할 단어가 "따도파니"라 합니다.
"그 뜻이 뜨꺼운 물이라 일러주며 자주 시켜 먹어라" 합니다.
한꺼번에 많을것을 알면 용량 오바하고 고소가 쉽게오니 하루에 조금씩 일러 준다 하십니다.
울 대장님!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듯한 둘째 롯지에 들러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니
필히 등정 성공을 바라는 듯으로 신의 가호를 빌어 주듯 그 여주인장은 간단한 예식을 우리들에게 올려줍니다.
특히, 곽정혜양에게는 자기 딸이라며 긴 표응을 해주며 따뜻하게 격려까지 합니다.
그리 루클라를 지나며 우리들은 본격적인 등정의 발길을 힘차게 내 디딨읍니다.
조그만한 동네 어귀를 지나니 과수원이 나옵니다.
대장님 발길을 멈추고 과수원 내력을 설명 합니다.
일본 산악인 로구찌인가? 누구인가하고 아주 친분이 있는데……….그가 이곳에 사과 과수원을
만들었다하며 일전에 마카루인가? 마나슬루인가?에서 함께 쓰레기 청소 등반을 했다고 설명 하신다.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좋은듯 합니다.
따스한 햇살에 유난히 목덜미가 따가울 정도입니다.
길가에 어린 소년가 우리들에게 꽃 한송이씩 선물 하며 "나마스테"라 소리친다.
그놈 속셈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읍니다.
버릇이고 지랄이고 아무튼간에 기분이 좋았읍니다.
소액 루피 한장 답례로 주니 그 소년도 입가에 미소 도는듯 했읍니다.
길가에 큰 고목 뒤로 아까 공항에서 본 설봉이 빼콤히 보이는듯 합니다.
산 봉우리 이름이 매우 궁금한지라 대장님께 물어보니 "콩데"라 합니다.
"콩데 콩데"라고 몇번인가 외우도…. 돌아서면 그 산이름이 가무치 코구멍입니다
내머리도 연식이 오래되어 엎그레이드 안된다 싶은 마음에 머리를 때리봅니다..
그리 천천히 걸으며 작은 언덕길을 돌아서며 내러서고 다리 하나 건너니 롯지가 나옵니다.
그런대로 조망이 좋았읍니다.
이곳에서 첫휴식입니다.
대장님! 차 한잔 하자하신다.
고소 적응에 휴식과 차가 필수다 하신다.
협곡 사이로 또 설봉이 아련히 보입니다.
그곳에 아직도 아무도 오른이가 없다 하신다.
일본님이 도전을 하였는데 정상이 날카로와 발 디딜 틈이 없어 정상 몇미터 남켜두고 돌아섰다 한다.
그 산 이름은 "담세루크"라 일러 줍니다.
"담세루크"라는 이름도 얼른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읍니다.
천안팀 고동제 사장님과 한참을 외우다가 "그 산이름은 아직도 아무도 오르지 못하게 담을 세우다"하니
그말이 맞는것 같다며 한참을 웃었읍니다.
새콤하며 따뜻한 레몬차 한잔씩 시켜 마시니 카트만두에서 루클라로 올 데 경비행기에 동승한
미국에서 홀로 온 여성인 "젤버지"가 도착한다.
홀로 셀파 없이 포타없이 트레킹하는 젤보지인가? 젤버지인가?하는여성이 대단하고 생각이 듭니다.
어쩐가는 나도 그렇게 홀로 편안하게 트레킹 하고픈 생각이 문뜩 듭니다.
그런 정서가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우 더 부럽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듭니다.
난 얼른 차 한잔 건내주며 울 대장님이 쏘았다고 전하니 대장님께 직접 찾아가 고맙다고 합니다.
지나 내나 객지에 나오며 문화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어느정도 자유 분망한듯 합니다.
그리 한참이나 쉬고 오름길 오르며 능성길 돌아서니 계곡이 나옵니다.
다리 건너 롯지에서 대장님과 한참을 쉬며 요기하니 천안 에베레스트 팀들이 옵니다.
울 대장님보고 유난히 속도가 빨라 함께 갈 수가 없다 합니다.
"박딩"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일박을 준비 했읍니다.
오늘은 짧은 코스에 여유로운 마음이 입니다.
간단히 점심을 하고 이승 사장님과 뒷 동산 오르니 학교가 나온다.
콩데 산능성이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아이들이 울 보고 우르르 몰려 온다.
껌 하나씩 나누어 주며 그들에게 이 학교에 다니는냐? 물으니 그렇다 한다.
학교의 규모를 보아하니 국민학교 같은것 같습니다.
밑으로 계곡이 흐르며 뒤로는 콩데라는 산으로 둘러쌓여 아담한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연출 되는듯 합니다.
어느정도 고소적응 하려고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니 대장님 오늘 저녁 메뉴는 백숙이라 합니다.
초촐하고 시장기가 돌아 그런지 유난히 백숙맛이 기가 막혔읍니다.
이 사람 저사람 눈치 볼것 없이 정신없이 소주와 결들어 먹어되니 내 앞 식탁위에 닭뼈가지가
수북히 쌓여 있읍니다.
입맛이 없어서 많이 못 먹겠다하니 천안팀 눈이 훼둥래집니다.
그리 볼록 먹고 롯지에서 긴긴 첫날밤을 보냈읍니다.
3월30일-31일(박딩-남체)
ㄱ>남체-굼중 순회 고소 적응차 2박
다음날 아침 07시30분에 아침을 하고 08시쯤 남체로 출발합니다.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이며 켠디션을 좋은듯 합니다.
오늘은 고도차 좀 있는 남체로 올라가야 하니 견디션 조절이 필요하다고 대장님 일러줍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걸으며 간간히 물이나 차를 많이 마셔야 된다고 덧붙히십니다.
잘 꾸며진 박딩 롯지에 잔디밭으로 잘 꾸며진 정원에의 휴식과 배구장의 추억들의 아쉬움을 안고
우리들의 줄줄이 자연스럽게 대열을 만들며 걸었읍니다.
이제는 천안 에베레스트 등정팀과 자연스레 얼굴들이 익어져 이제는 다들 식구같은 마음이 생켜집니다.
이래저래 부끄러움 없이 농담을 주고 받으며 고즈넉한 계곡 능성을 발을 맞추며 걸으니
한층 더 우리들 발걸음은 가볍게 느껴집니다.
한시간쯤 걸었을까? 아침 햋살이 떠오르는듯한 산능성를 마주하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축축한 돌
오름길 오르니 조그만하고 전망 좋은 예쁜 롯지에 도착합니다.
이곳 롯지 지붕 뒤로 설봉이 자연스레 삼각 구도를 이루며 보기 좋게 보입니다.
이곳에서 다들 자동으로 휴식을 취합니다.
빨갛게 핀 정원꽃을 바라보며 따뜻한 햋살을 받으며 뜨개질하고 계시는
할머니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롭게 보입니다.
이상배대장님은 양지 바른 중앙자리에 자리 잡고 의자에 앉아 있으니
낯선 포타 둘 대장님 주변을 기웃 기웃거리더니 대장님께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한다.
울 대장님! 네팔에서는 유명인사라 간간히 현지 사람들이 "미스타 리"하며 인사를 하곤 하였는데………….
이곳에서도 남루하게 옷차림하고 깨째째한 얼굴을 가진 티벳족인 남정네 둘이 햐얀 이를 드리내며
대장님께 깍듯이 인사를 하는 표정이 오늘따라 새롭다.
아항!…….이 친구들! "둘 일전에 베이스 켐프에서 맥주 팔던 님들이라"며
"티벳에서 남체까지 장 보러 간다" 하시며 대단한 님들이라며 매우 반갑게 포응을 한다.
그리 재회의 기쁨을 나누며 함께 디카 한방 박고 남체로 또 다시 발걸음을 내디디였다.
몬주다 싶은 롯지에 도달하여 이곳에는 달밥이 유명하다하여 현지식 점심이다.
즉석에서 고추장과 현지 배추와 곁들어 함께 비벼 먹으니 그런대로 맛이 좋았읍니다.
특히 녹두을 비져 만던 스프도 우리 입맛에 맞는듯 합니다.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점심을 마치고 동네 어귀 끝자락에 도달하니 관리 사무실이 나옵니다.
그곳은 대충 등정대 쓰레기 횟수 금액 예치하는 곳이라 합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제법 금액이 제법 큰 듯 합니다.
일단 수속을 마치고 내리서니 본격적인 계곡길입니다.
곳곳히 아름다운 풍경이 나옵니다.
저멀리 협곡 끝자리로 그림같은 담세루크 봉우리가 보입니다.
젊은 외국여인들 한쌍이 계곡길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누듯 쉬고 있읍니다.
여성 옷차림이 특이 한듯 합니다.
아마도 타멜 시장에서 하나 사서 입어듯 합니다.
바지와 치마가 아주 매력적이며 그 젊은 여성에게 잘 째이는듯 합니다.
계곡으로 흐르는 비취색의 물색체와 잘 어울리는듯 합니다.
저멀리 협곡사이로 남체로 이어지는 길다란 철다리가 보입니다.
제법 높게 보입니다. 본격적인 고도 상승길인듯 느껴집니다.
조그만 언덕 고개길을 오르니 아니라 다를까? 또 다시 숨이 찹니다.
몇 자국 디고나면 이내 숨이 찹니다. 다리 근육도 뭉치는듯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몇자국 디고 쉬고 몇 자국 디고 쉬기를 하며 철다리 입구로 올랐읍니다.
출렁거리는 철다리 아찔 아찔하게 현기증을 느낄만큼 스릴을 느끼면서 긴다리 지나니 짜릿한 느낌마저 옵니다.
이곳 철다리를 지나니 본격적인 오름길입니다.
정신이 없는 듯 멍한 느낌이 옵니다.
아마도 고소증세인듯 합니다.
죽었다 생각하고 찬찬히 오르고 쉬고 그리 하기를 몇번이나 해도 남체는 멀기만 한듯 느껴집니다.
까고막 길이라 그리 힘들이 오르는데도………. 그 와중에도 담배 한모금 생각이 납니다.
담배가 고소에 안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루하고 힘든 길에 어쩔 수 없다는 심사인듯 합니다.
염치 불구하고 포타들 쉼자리에 걸터 앉아 한모금하니 지나는 다른 외국인들 어아하는 얼굴로 날 쳐다 봅니다.
분지 같은 능성을 오르고 넘어서니 남체의 집들이 아주 가까이 보입니다.
말꿉같이 휘어진 능성자락에 계단식 건물들로 자연스레 남향으로 지워진 동네가 이색적으로 느껴집니다.
앞쪽으론 "콩데" 산자락이 아주 멋지게 펼쳐져있는것이 아름답다 못해 경이스럽게 느껴집니다.
드디어 남체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다소 긴장이 풀립니다.
에베레스 롯지에 여장을 풀고 조금 쉬고 있으니 울 대장님! 가만히 있으면
고소적응이 어렵다며 부지런히 움직이라 합니다.
저녁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지라 짬을 내어 남체 거리를 다 함께 돌아 봅니다.
조그만 상가지역이지만 이곳은 알찬 거리라 생각이 듭니다.
타멜거리에는 상품들이 산발적 것에 비해 이곳은 등산장비및 필수적인 생활품들이 함축되어 있는 곳이라 느껴집니다.
특히 이곳에는 인테넷장,세탁소,유명한 빵집도 있다고 곽정혜대원이 귀뜸을 해줍니다.
이리저리 남체의 상점들을 구경하고 부족한 등산용품 몇점 사고 고소적응하듯 시간을 보냈읍니다.
그리 남체의 밤거리를 배회하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오늘도 청명하게 날이 밝았읍니다.
구름 한점없이 화창한 늦가을 날씨인듯 합니다.
티 없이 깨끗한 날씨에 하얗게 눈 쌓인 산자락 콩데의 자태가 너무나도 보기가 좋읍니다.
다시 한번 히말리야 신에게 감사드리며 그런 풍경들을 몇장 찍어보며 상괘한 마음으로 아침 일과를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가볍게 남체의 뒤능성을 올라 쿰중까지 도보하여 원점 회기 한다 하신다.
이곳에서 남체능성에서 바라보는 조망들도 굉장히 운치가 있다고 대장님 귀뜸을 하신다.
남체 동네를 휘감고 있는 뒤 능성을 올라서니 남체의 동네가 한눈에 들어 온다.
능성 안부에 흰 건물로 지원진 사원과 오색 찬란하게 나뿌끼는 긴 깃발들이 이색적이다.
능성에 올라서니 제법 넓은 능성길이 펼쳐진다.
콩데의 산자락이 마치 손에 닿을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좌우 설봉들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더욱 더 빛을 발함니다.
특히 능성평지에 돌 담 담으로 잘 짜여진 경계벽이 자연스레 주변의 산들과 조화를 이루는듯합니다.
높은 고지 넓은 들에는 산골 농부들이 분주하게 밭을 일구고 있읍니다.
아마도 감자 농사를 짖는듯 한 느낌이 옵니다.
이 동네 감자 윤난히 맛이 있는듯 했읍니다.
넓은 능성길 또다시 넘으니 상보체라는 비행장이 나온다.
루클라와 비슷한 지형으로 닦아진 미완성 활주로 입니다.
이곳도 비행장으론 안성맟춤이였지만 비행장이 운행되면 아랫 마을 남체 사람들 다 굶어 죽는다고
남체 현주민들 원성이 높아 보류 상태라 일러 준다.
이곳에 원정대 짐이 헬기로 공수되어 재차 야크로 베이스켐프까지 운행 한다고 한다.
이미 먼저 도착한 전문 셀파들 및 포타들이 짐을 챙켜 베이스로 출발이다.
돌탑이 있는 안부에 올라서니 뒤편으로 히말리야 설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울 대장님 산 이름 자세히 가르쳐 주시는데 하나도 머리에 들어 오지 않는다.
고소증인지 듣고 돌아서면 까마귀다.
천안팀과 함께 기념촬영 해본다.
그 이후 쿰중마을까지 들어가 원점회기 하라는 대장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은 쿰중 마을로 들어섰다.
"쿰비울하"라는 산 아래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쿰중 마을의 풍경도 아늑하게만 느껴진다.
한적한 마을길을 내러서니 큰 학교가 나온다.
뉴지랜드인으로써 53년에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라든 사람이라 이승 사장님이 귀뜸을 해주신다.
"힐러리경" 동상이 멋있게 보인다.
꼭 이루겠다는 집념으로 한걸음 한걸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그에 이바구를 들은것 같다는 기억이 났다.
이 학교를 기부하여 지었다고 하는것 같았는데…….
그에 말이나 행동에 무척이나 산악인으로써 존경 스럽게 느껴졌다.
힐러리경을 뒤로 하고 동네 끝자락까지 걸으니 야생길이 나온다.
길만 보면 미치는 난 대충 산세를 훝어보니 이 능성을 타고 올라서서 돌아서면
남체 끝 능성인것 같아서 겁도없이 잔디길을 올라서니 이승 사장님이 길이 없다며 "백하자" 하신다.
정상적인 길이리 아니고 야크길이라 위험하니 무리 하지 말자는 의도이시다.
나도 미친 놈이지? 이승사장님 말씀대로 그냥 백하면 될테데……….
고소증인지? 살쭉 돌아서 그런지? 뿌득뿌득 홀로 우켜 끝까지 가겠다고하며 경솔한 행동을 했읍니다.
그리 서로 헤여져 10분쯤 야생길을 이슬아슬하게 홀로 올라서니 빤듯한 능성길이 나온다.
전망좋은 롯지도 있다.
그 길따라 쭈욱 내러서니 상보체 활주로 끝길인듯 합니다.
이길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홀로 입가에 웃음이 나옵니다.
남체 능성을 다 둘러보는 듯한 기분에 황홀한 기분마저 듭니다.
오늘도 오후 햇살이 무척이나 따까웠읍니다.
콧등이 따꼼한 기분마저 느껴집니다.
내일 가야 할 텡보체 가는길이 발아래로 있었으며 끝없이 낭떠러지 밑으론 계곡입니다.
지도를 펼쳐보며 그나름대로 독도하니 저멀리 텡보체 언덕도 보이는듯 했읍니다.
그리 볼록하게 낯선 남체 능성길을 훑어보며 내러서니 피곤이 겹치는듯 했읍니다.
울 대장님! 무리하지 마라는 당부에 말씀을 무시한 체 까분다고 찌락걸린 탓인지?
피로함께 멍한 고소증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늘 밤을 잘 넘겨야 된다는 생각에 다소 긴장이 되며 사뭇 걱정도 되는듯 했읍니다.
4월1일(남체-텡보체-팡보체)
아침에 자고 나니 그런대로 켠디션이 좋은듯 했읍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고양이 세수하고 텡보체로 나섰읍니다.
높은 능성길로 쭈욱 이어져 있는 길이라 그런대로 수월다는 느낌으로 걸었읍니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그리 청명하지 못했읍니다.
연일 좋은 조망을 보았지라 조금도 애석한 마음이 들지 않는것 같았읍니다.
그리 그리 올망졸망 걸으며 첫 안부 탑 밑에 도달하니 현주민들 몇몇이 길공사한다고
기부 좀 해다라는 뜻으로 기부함이 서 있다.
울 대장님 응쾌이 많은 루피 기부하신다.
멋잇게 싸인도 하시며 "나마스테"라고 인사말까지 덧 붙히신다.
진정으로 히말리야를 사랑하시며 진심으로 우려나서 하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윽코 첫롯지가 나온다.
길가에 펼쳐진 기념품 진열장이 다체롭다.
따뜻한 밀티 한잔으로 몸과 마음을 녹이며 한참을 기념품을 보며 한참을 노딱거려 본다.
"칸주마"라는 곳인것 같다.
간간히 텡보체로 짐을 나르는 야크들이 방울소리를 은근히 울리며 지나갑니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아예 점심을 하자 하신다.
점심은 찐 계란에 감자다.
식성 좋은 천안팀 게눈 감추듯 해치웁니다.
그집 할매 이상배대장님을 잘 아시는듯 하다.
자기아들은 미국에 돈벌어 갔다 합니다.
울 대장님 유달실히 인정이 많은지라 이왕이면 할매집에 팔아주고 가자며 느끗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 점심 요기하고 협곡길 떨어져 다리건너 올라서니 텡보체 오름길이다. 일명 "아리랑 고개길"이라 한다.
텡보체도 높은 언덕같은 분지라 이제부터는 까고막이다.
들머리 작은 롯지에서 도착하여 이상배 대장님! 시원하게 발을 씻어며 고참다운 여유를 부리신다.
아리랑 고개길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오름길이 장난이 아니였읍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짐을 잔뜩 진 포타들이 죽을 지경 입니다.
열자국 가다가 쉬고 그리그리 쉬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며 오르고 올랐읍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와 남체에 장 볼러 왔다는 어린 아이가 산만한 붓짐을 머리에 메고
낑낑대며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니 애처롭다 못한 눈물이 날 정도였읍니다.
나이가 몇 몇살이냐? 물어니 열두살이라 합니다.
이제 겨우 국민학교 5학년 나이인데 불구하고……….
세상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잠시 말을 잃어 듯 합니다.
그 소년와 함께 텡보체까지 동행하며 초크렛도 주며 간간히 가다가 빵도 주고
며칠이나 아껴 놓았던 백도 통조림까지 흥쾌히 건너 주고 라리 클라스가 활짝핀 나뭇가까지 같이 왔읍니다.
울 일행중 한명은 그 소년이 든 붓짐을 한참이나 소년 대신 짊어지고 가는 이도 있었읍니다.
천안 등반대장 이세중대장님과 그리 동행하며 완전히 구름속인 텡보체에 도착하니
그래도 우리들은 선두대열인것 같았읍니다.
습기 가득찬 날씨라 이내 싸늘해집니다.
얼른 이세중대장님과 롯지에 들어가 밀티 한잔 시키며 난로 불에 몸을 녹이니
피곤과 추위가 이내 따뜻한 열기에 녹는듯 했읍니다.
텡보체에 들어서니 기온이 확실히 틀린다는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쿰부 에베레스 코스에서 텡보체가 분기점인것 같읍니다.
이윽코 천안팀과 합류하여 고동제사장,최상훈대원들과 담배 한모금 빠는 여유를 가져 봅니다.
이곳 스트레오에서 흘러가는 팝숑은 우리들 시대에 유행한 70/80 팝숑자락입니다.
난 신겁 지킨다고 그 리듬에 한춤하니 울 천안 에베레스트 원정팀 죽이 준다 합니다.
피로 풀고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좋은 행위라 생각하며 주책없이 한것이 그나름대로 효과가 있는듯 합니다.
그리 몸과 마음을 풀고 텡보체로 지나서며 10여분 떨어져 잇는 팡보체에 있는 롯지에 도착했읍니다.
이내 어둠이 갈립니다.
이곳 길가에는 제법 심설이 보입니다.
진흙길에 심설이 녹아 제법 질뻑거리며 미끄러운듯 합니다.
그리 그리 안개와 어듬을 안고 롯지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보냈읍니다.
오늘밤은 이상하게 실이 아무 생각이 없는듯 합니다.
회사일도……. 가족도……. 친구들도……. 생각도 나지 않는것이 이상하리만큼 신기하다는 생각만 듭니다.
4월2일-3일(팡보체-딩보체)
ㄱ>딩보체-낭카투상 콤페 고소 적응차 등반
아침에 눈을 뜨니 온통 설국으로 변해져 있읍니다.
밤새 눈이 내려나 봅니다.그런데도 신기하리만큼 아침날씨는 맑았읍니다.
너무나도 원색적인 색체에 원초적인 감탄사까지 나옵니다.
오늘은 딩보체로 가는 도중 설인의 머리털이 보관되어 있는 유명한 절에 들러 고승님을 뵙고
신의 영역인 에베레스트에 성공적으로 등정을 마치것을 기원하는 뜻으로 정성을 올리자는
대장님의 의견이시며 또한, 필연이다는 강력한 의지가 내표 되어 있었읍니다.
가는 도중에 장엄하며 아름다운 아마다블람의 자태를 내내 바라보며 가는 오름길이 귀가 막혔다.
아마다블람의 자태를 몇번이고 찍고 또 찍으며 넋을 놓고 봉우리를 바라보는 희열감에
강열하게 내리쬐이는 햇살과 고소증이고 지랄이고 안중에 없는듯 합니다.
갸파른 언덕을 지나 사천문 같은 곳을 지나 내러서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일전에 간간히 그림에서 본 장면인듯 합니다.
마을 지붕 뒤로 솟아 오른 아마다블람 산능성의 그림 풍경
아마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듯 싶었읍니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져다는 "아마다블람의 봉우리" 그자태를 바라보면 영락없이
우리가 쓰는 한자로 "산"(山)이라는 한자글 모양을 연상케 할만큼 똑 닮은 봉우리라 직감나게 합니다.
손을 뻗치면 마치 닿을듯하게 느껴지는 금방이라도 오를 수 있게 느껴지는 아마다브람의 봉우리!
그 자태를 직접 처음 보지만 새록 새록 정감이 가는듯 느껴집니다.
울 대장님! 곽정혜대원 함께 올랐다는 "아마다블람 정상"
나도 언제가는 한번쯤 오르고 싶다는 열념으로 도전하고픈 "아마다블람"
그런 생각에 아마다블람에 걸쳐있는 뭉게구름처럼 온갖 상념들이 머리 속에 떠 오르며 쓰칩니다.
몇번이고 한참이나 바라보며 쿰바 절에 들어서니 울 대장님 벌써 고승님과 제를 올린다.
다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2006년 부산,경남 에베레스 등정 성공과 2006년 천안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완등을 기원한다는 염원으로 다들 부처님께 머리 숙여 본다.
히말리야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누구든 신의 허락없이는 오르지 못한다 말도 있듯이 그런 신의 너그러움을 빌어보며
그런 신에게 진지한 예우를 갖추는것은 신과 자신의 믿음을 가지며 생과 사의 역경을 초월하자는
깊은 의지를 각자 마음 속으로 다지며 새키자는 이상배대장님의 의도이신것 같다.
누구 못지 않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내 엄숙하고 진진한 표정이다.
그런 대장님과 대원들의 모습들을 바라보니 그저 나로썬 할 말이 없다.
필히 "무사히 완등하소소"라고 말없이 속으로 빌 뿐이다.
그리 제를 마치고 소모리 끝에 있는 아담한 롯지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배가 고프다.
쌂은 계란에 찐 감자다.
먹기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어야 할 점심이다.
이제는 계란 냄새가 지겹다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입에 맞는것이 이만한 음식도 없다 하신다.
그리 막간을 이용하여 조금전에 우리들이 함께 등정 성공의 기원한 제를 올린것에 관하여
함축한 내용의 글을 적은 "천안일보 이훈제님의 메시지"를 한번쯤 공개적으로 읽어 달라고 부탁하니
낙낭한 목소리로 읽어 줍니다.
히말리야! 그 여신의 품으로
사천미터 하늘 아래서
히말리야 텡보체 큰 사원 콤바
경건하게 비워 낸 가슴으로 소망을 비오니
부디 신의 품속에서 모든것을 바라보고
무언가 일깨우고 그 품속에서 무사히 돌아 갈수 있기를……….
하늘이 가까운것 만큼
우리의 마음도 가까이 읽으실 수 있으니
굽히 헤아리소서 대지의 신이시여!
-천안 에베레스 대원 이훈제-
다들 이 글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다 함께 "파이팅"하며 밖으로 나오니 찌뿌등한 날씨다.
밉다고 우박까지 떨어진다.
첨차적으로 고도가 높아 짐에 따라 모든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껴진다.
이제부터 본격적인것 같다.
그리 그리 우박 섞인 눈발을 맞으며 능성길 오르니 딩보체 마을이 보입니다.
딩보체에 도착하여 이상배 대장님! 노련하게 이집 저집 시설 좋은 롯지 고려신다.
이제부터는 고소증세 심하게 나타난다며 세심하게 주의해야 하신다 귀뜸 하신다.
남에게 불필요한 이야기 불필요한 행동 삼가하라 하신다.
"각자 켠디션이 철철히 관리하라" 하시며 몇번이고 당부 하신다.
그리고 내일은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더 이곳에서 머문다고 하신다.
아니라 다를까? 저녁 식사시간이 되니 머리가 아파 왔읍니다.
식탁에 앉으니 구역질이 나온다. 아이고!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고소증이구나! 싶은 마음에
얼른 숱가락 놓고 침상에 누워니 다소 진정이 되는듯 싶었다.
이승 사장님이 가져온 고소 처방약을 먹고 한시간쯤 지나니 다소 거짓말 같이 나은듯 했읍니다.
시간 반 지나니 새로히 허기가 돈다.
믹마에게 라면 한 개 끓히 달라고 부탁하여 골방에서 쭈그리 앉아 라면 한그릇하니 속이 시원듯 했읍니다.
톡 쏘우는듯하며 매콤한 우리 라면 따뜻한 국물을 숨도 안시고 마시니 온몸을 녹이는듯 했읍니다.
가능하면 잠을 많이 자지 말고 밤 늦게까지 노딱거리다 자라는 대장님 말씀에
천안 단장님과 등반대장님,이상배대장님,난 밤 늦게까지 훌라 한판 했읍니다.
고소 때문인지 비몽사몽이라 30불 잃고나니 그것도 게임이라고 울아가 치올라 고소증을 가중시키는듯 했읍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그런대로 켠디션이 돌아오는듯 했읍니다.
오늘은 낭가트생 언덕까지 고소적응차 운행한다고 합니다.
이곳도 경치가 아주 뛰어 난 곳이라 전망이 좋다고 합니다.
밑에서 바라보니 별것 아닌듯 가깝게 보였는데 제법 1차 능성까지도 힘이 듭니다.
그리 헥헥거리며 1차 능성에 올라서니 두눈이 그리진 흰불탑이 나옵니다.
불탑 뒤쪽으로 촐라체능성과 피라체로 흐르는 계곡길이 한폭의 그림 같읍니다.
앞쪽으론 아마다블람과 담세룩크 능성들이 이루는 광경에 저절로 무아지경이 됩니다.
찬기온의 체감감과 깨끗하게 펼쳐지는 조망땜에 몸과 마음이 다 상쾌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히말리야 맛은 "와! 이런 맛이야"라고 속으로 소리쳐 보니 두 주먹과 두발에 힘이 저절로 들어 갑니다.
이리저리 양쪽 산능성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어 본다.
마지막 안부 오르길을 오르니 피리부는 셀파 한명이 내려온다.
외국인 몇몇 가이드하며 우리들과 마주친다.
그이의 피리 소리만큼 폼도 좋았읍니다.
그를 세워 다울라기리,라셈빌리지 가락을 한번 들리 달라니 흥쾌히 불러 준다.
그 가락 장단에 네팔 민속춤 흉내내니 그도 나의 춤을 보고 "베리 굿"이라고 엄지를 세운다.
능성 안부끝자락에 도달하니 조금전부다 더욱 더 조망이 좋습니다.
올라 선것 만큼이나 양쪽 주봉들이 더 선명하며 가깝게 느껴집니다.
좀 아쉬운것 역광이였지만 그런대로 천안 에베레스 원정대팀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기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읍니다.
그리 그리 또 찍고 찍으며 이폼, 저품, 개폼 다 잡았보고 내러서니 하루시간이 훌쩍 가는듯 싶습니다.
좋은 설산의 풍경에 도취가 되어 황홀하였지만 한편으론 무척이나 피곤함이 느껴집니다.
4월4일(딩보체-로부체)
연일 이어지는 운행이라 이제는 제법 피로감이 겹침을 느껴집니다.
어제 무리한 운행으로 인해 오늘 아침은 정말로 눈 뜨기조차 싫어집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고양이 세수하듯 눈만 씻고 카고백에 구역 구역 짐을 챙기니
울 대장님! 켠디션 괜찮는냐?고 물어신다.
"머리가 좀 띵~하지만 그런대로 견딜만 하다"하니 우짜던 "켠디션 조심해라" 하신다.
딩보체 고지가 4410미터고 오늘 가야 할 로부체는 4910미터라 하신다.
"정말로 이 구간은 고소가 잘 오는 구간이니 몇번이고 조심하라"고 친절하게 일러 주신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행진이다.
이제는 차츰적으로 천안팀과 대열이 자연스레 모아진다.
촐라체 능성을 옆으로 두고 다들 로부체로 행진이다.
천안팀 배낭뒤에 붙혀진 "FAST 천안 에베레스트 2006년 원정대" 소형 현수막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잔디밭같은 협곡 능성길을 따라 걸으니 진행이 순조롭다.
양지 바른 곳에서 잠시 휴식이다.
우뚝하게 당당하게 솟은 촐라체가 정상에 구름과 어우러져 바로 면전에 서 있다.
일전에 박정헌이와 강석이가 등정 후 하산길에 사고 난 곳 "촐라체" 라는 곳이라며 조용히 설명 하신다.
무척이나 아쉬웁고 패기 있는 젊은 그들이다.
젊은 나이로 최초로 코리아 루트를 개척하여 그나름대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곳인데……….
그 이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돌아온 후 그 격동기 사항을 "끈"이라는 책을 발간하였고
요즈음 강의로 제 2의 삶을 보내고 있다며 일전 국제 신문사에서 직접 강의를 들은 적이 있선지라
그런 촐라체 빙벽을 바라보니 더욱 더 새롭웠고 감회가 있는듯 했읍니다.
다들 기념 촬영하고 자리를 뜨자니 천안 이훈제대원 고소로 잠시 구토 하신다.
고도가 5000에 가까워지니 아주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증세라 하신다.
그리 그곳을 지나 두크라에서 우리들은 간단히 가볍게 점심을 했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양을 줄이며 가능하면 소식이 좋다고 대장님! 일러 주신다.
롯지를 지나니 제법 높은 언덕길이다.
오름길에 러시아에서 온듯한 청년 한명이 바닥에 넘어져 고소증으로 몸을 주체를 못한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가서 고소약과 물을 주니 대단히 고맙다고 몇번이고 인사를 한다.
넘의 일이 아니다라는 심사로 나도 은근히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다들 머리를 떨추고 아무말 없이 그저 땅만 보고 걷습니다.
저 멀리 심설 지역 보입니다.
뭔가가 여태것보다 확실히 다르게 보여지며 느껴집니다.
그 이후 언덕길 오르니 바위 앞에 돌탑으로 세워진 추모탑이 나옵니다.
92년 부산 산악인 형제 둘 퓨모리 정상에서 사고 나서 이를 추모하는 탑이라 합니다.
이상배대장님을 위시하여 이곳에서도 초졸히 몇몇이 정성 드러 제를 올립니다.
그때의 사항들을 자세히 설명하시며 지난 날의 아픈 추억들을 생생하게 재연하듯 하시며
그와 유사한 지난 아픈 추억땜에 눈시울 젖시는 대장님 눈가를 바라보니 무언가가……….
덩달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절려 오는듯한 찡한 느낌이 옵니다.
슬픈 마음을 진정시키고 또 다시 행진입니다.
슬픈 마음인지 고소증땜인지 다들 이제는 말이 없는듯 합니다.
조금 이른 오후라 그런지 이제는 체감 온도가 제법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앞쪽 고봉에서 심설된 바람을 몰고 와서 그런지? 에리한 느낌마저 옵니다.
가야 된다는 일념으로 한걸음 한걸음 몸 꼬부리고 정진 정진하니 로부체 롯지다.
안도감과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먼저 모닥불 난로가로 가서 몸을 녹입니다.
저녁을 뭘 먹어는지? 무얼 했는지 조차 기억이 없는 그런 긴긴 밤을 보냈읍니다.
4월5일(로부체- 고락셉-베이스캠프)
로부체를 떠나 또 다른 언덕을 오르니 이제부터는 완전히 다른 길의 그림이 펼쳐집니다.
완전 설원인듯한 황량한 길이 나옵니다.
일명 모랭이지역이라 일켜며 눈에 빤히 보이는 그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듯 합니다.
"퓨모리"와 "룹세"라는 산능성이 사이로 이어지는듯한 설봉들이 앞을 막고 있는듯 하였으며
그 밑으로 빙하같은 눈들이 쌓여 있는 그림이 펼쳐 보입니다.
"저곳이 우리들 눈에 들어오지만 그래도 까마득하게 멀다"며 "시나브로 가자" 합니다.
베이스쪽에서 내러서는 야크와 포타의 긴 행열들을 만납니다.
간간이 얼룩이 야크들도 보입니다.
야크떼를 모는 현지 아낙네의 맑고 힘찬 걸음걸이에 부러운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 센 바람은 없지만 체감이 제법 싸늘하며 저절로 몸이 오그라지는듯 합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저 멀리 빙하같은 산능성이를 쓰쳐 내려오는듯하며 마치 살을 에는듯하게
매우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리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고 걸으니 말로만 들어 왓던 "고락셉"지역에 도착 합니다.
울 대장님! 나더러 "가능하면 무리하지 말고 이곳 고락셉에서 하루 묵어라" 합니다.
일반인들은 모두 이곳에서 하루 묵고 카라파트라에 올라 에베레스트 정상 바라보고 철수 한다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베이스에 입성하여 한시라도 더 베이스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에 다함께 입성 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정말로 지루지루하게 느껴지는 빙하에 섞인 암반길을 걸으며 베이스에 입성을 시도 했읍니다.
그 와중에 이곳 퓨모리와 눕세 산능성이가 이루는 조망이 신기하리만큼 좋았읍니다.
눕세 정상뒤로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 정상 끝자락부위가 조그만하게 얼굴을 내밉니다.
저 곳이 에베레스트 정상이구나!라는 마음에 심장이 콩닥거립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꼭대기에는 검은 암반이 드리우져 있읍니다.
울 대장님 왈! "그곳 정상은 매우 높고 늘 바람이 세어 아예 눈들이 쌓이지 못한다"합니다.
힘들이 이곳까지 왔것만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전체의 자태를 보지 못 한 기분에
매우 안타갑다는 마음이 듭니다.
늘 그렇듯이 세상에 고귀한것은 항시 우리들 손에는 쉽게 미치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되는듯 합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나마 바라 볼수 없는 애타는 심정이라 생각하며 한편으론 그나마 위안되는 기분이였읍니다.
빙하같은 암반길에 헬기 한대 추락해 고철이 되어 나뚱거래져 있읍니다.
일전에 조난 시 비상 출동하여 강풍에 추락했다 합니다.
그 잔해들을 바라보며 걸으니 과연 이곳 날씨가 짐작이 갑니다.
모르면 무식하다고 그리 떼깔지기며 베이스에 도착하니 이미 셀파들이 텐트촌을 설치 해 놓았읍니다.
라마제를 오르는 제단이 눈에 들어 옵니다.
오색 찬란한 깃발이 강풍에 휘날리고 있읍니다.
갑자기 몹시 피곤한 마음에 어리벙벙한 기분이 갑자기 엄습하는듯 했읍니다.
드디어 입성 했다는 마음에 천안팀들이 건내주는 따뜻한 물 한잔하니 갑자기 뒤골이 아파왔읍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텐트에 기어 들어가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눕히니 띵하게 머리가 아파옵니다.
옛전하곤 틀리는듯한 두통에 속까지 미싱미싱한게 영 기분이 아니올시였읍니다.
오리털 파카를 두켭으로 껴입어도 두통은 쉽사리 가라 않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두통은 더해지고 아까 고락셉에서 대장님 말씀을 들을걸 하는 후회적인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고, 아무런 대책도 없고 오르지 자구력으로 견딜 수 밖에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경험 있었신 울 대장님,곽정혜,이승사장님 잘도 넘기는것 같았읍니다.
여태것 잘도 견뎌 온 나였지만 오늘따라 베이스의 고소는 장난이 아니였다.
모르긴 몰랐도 고소도 짠밥 순서가 있는듯 싶어 순응하려는 마음에
머리를 쥐 짜듯 웅켜지고 몸부림 쳐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이것 또한 자연의 순리라 생각하며 고통에 순응하려니 무척이나 괴로웠읍니다.
이대로는 안된다 싶은 마음에 밖에 나오니 어찔어찔한게 삥삥도는듯 했읍니다.
5분도 채 못되어 아이고! 싶은 마음에 또다시 텐트에 들어가 누워니 이제는 배까지 아팠읍니다.
여태것 마른 빵귀가 잘도 나오더니 뭔가 이상한 느낌듭니다.
힘없는 빵귀에 뒤가 축축한 느낌마저든다.
아이고! 시팔 죽었다.
싶어 얼른 간이 화장실 가니 울 멍청한 셀파들이 만던 천막 간이 화장실 바닥폭이 얼마나 넓은지……….
가랭이 찢을질 만큼 간격이 넓다. 밉다고 힘마저 다 빠진 상태인데……….
한 일이분 쪼그리 앉아 있으니 그대로 몸 전체가 바로 똥통에 빠질것 같은 지경이다.
그리 힘들어 한번 오른발쪽으로 체중 이동하고 왼쪽으로 체중 이동하니 자동적으로 힘이 들어간다.
고소에, 설사에………. 장난이 아닌 몸 상태였다.
그리 힘들게 볼일 보고 일어서니 골이 띵하게 어지럽웠다.
자칫하면 뒤로 나자봐질 뻔하여 간간히 몸을 낮추니 옆으로 나오니 돌 부리에 걸쳐 바로 나자빠졌읍니다.
그리 비실 비실 일어나 시불시불거리며 베이스켐프 본부촌에 들어와 상황을 설명하니
대원들 다들 죽겠다고 웃으시며 내일 당장 셀파들에게 화장실 고치도록 하겠다 하신다.
천안 에베레스 PD 박주열인가? 이주일인가?하는 동상에게 내 상황을 자초지종 설명하니
친절하게 비상약이 많다며 조목 조목 약을 챙켜준다.
염치불구하고 주첨주첨 얻어 묵고나니 설사는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읍니다.
야휴~살았다! 싶은 마음이였지만 좀처럼 두통은 쉽사리 가라 안지 않고 더 가중 되는듯 합니다.
정말 밤새도록 그렇게 히말리야 산신에게 신고식 치루니 아이스폴이고 지랄이고 가내 만정이 떨어졌읍니다.
한편으론 ㅇㅇ병같은 고소증인지땜에 무지력해진 내자신이 너무나도 나약함을 느꼈읍니다.
밤새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새벽 빈속에 고소약 한알 털어 넣고 머리를 지뜯었며 홀로 나와
눈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속이 미싱거림을 달래기 위함인지? 그래도 담배 한모금 생각 났읍니다.
새벽 공기 안개 짙은 틈새로 뿌옇게 펴쳐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난 유독 일정이 없는지라 이곳에서 점차적으로 고소적응은 어렵고 내일 철수한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까지 동고동락하며 함께 한 이상배대장님을 비롯하여 천안 에베레스원정대 단장님 이하
원정,등반대장및 여러대원들의 얼굴들이 깜깜하게 어둠속에서도 주마등처럼 쓰친다
그들도 이 고통을 견디고 이켜내며 진진하게 받아드리며 임하는 자세에 등정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봐? 라는 걱정이 앞선 그런 마음에 매우 가슴이 쓰렸읍니다.
그저 당당한 모습으로 입성을 격려하며 헤어지는 장면을 연출하지 못할것을 생각하니
정말 내일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몸 둘바를 몰라 두려움이 앞섰읍니다.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에 연거푸 두어대 빨아대고 고통의 밥을 뜬 눈으로 차가운 밤을 보냈읍니다.
4월6일(철수:베이스캠프-고락셉)
비몽사몽으로 사경을 헤매며 날이 밝아지자 텐트속에서 나오니 밤새 내린 눈땜에 온통 설국이다.
아직까지 계속적으로 눈발이 휘날린다.
베이스 켐프 아침은 다들 조용한 분위기다.
모르긴 몰랐도 다들 밤새 고소와 전쟁을 치루듯 한 분위기다.
혼자 다람쥐 체바퀴 돌듯 5미터 주변의 텐트촌을 왔다 갔다해도 인기척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다시 들어가 겨우 눈을 부치니 "아침 먹어라"는 본부촌에서 소리가 난다.
골 짜매고 눈 비비며 오로지 살기위해 국물 조금 먹었는데 수제비인지? 돼지찌게 국물인지? 도통 기억이 없다.
겨우 정신 차려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점심 묵고 여러 대원에게 작별인사하니
"고락셉로 내려가 일박하고 일정대로 하산하라고" 대장님 일러 주신다.
천안 등반대장 이세중씨 한번쯤 베이스에서 고소다운 고소를 먹고 가야지 진정한 꾼이 된다며
격려 아닌 격려하시며 자신의 옛경험담을 들러 주시며 웃으신다.
천안 원정대장 황순광대장님은 베이스 켐프에서 훌라 복수전 못하여 매우 서운하시다며
다음에 천안에서 복수 혈전 꼭 하자 하신다.
이래저래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짧은 오전을 그리 보내며 두루두루 인사하며 다들 20여일 동안
베풀어 주신 배려에 감사 드리며 필히 어려운 역경들을 정열과 도전의 정신를 밑바탕으로 하여
2006년 부산,경남 에베레스 원정대와 2006년 천안 에베레스 원정대의 멋진 협동과 조화를 이루시어
반듯이, 필히, 꼭 무사등정,무사귀환를 기원드린다는 인사말을 전하며 작별의 시간을 마쳤읍니다.
끝으로 울 이상배대장님과의 짧은 포응이었지만 무직하고 조용하고 따뜻한 감을 느끼며
사나이의 눈물을 감추어만 했읍니다.
여러가지 묘한 기분을 안고 베이스를 돌아서는 발길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읍니다.
두통의 아픔과 더불어 인고의 아픔을 짊어지고 돌아서는 자신이 얼마나 서글프게 느껴졌는지……….
무척이나 괴로웠읍니다.
그리 한참이나 머리를 떨추고 걸으며 고개 마루에서 뒤돌아 보니 아직도 천안 대원님들 손을 흔들어됩니다.
나도 힘차게 양쪽 스틱을 흔들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힘없이 내러섰읍니다.
쌀쌀한 바람과 함께 아직까지도 눈발이 휘날립니다.
내림길이였지만 고락셉까지도 멀기만하게 느껴집니다.
입가에는 "아이고! 아이고 머리야!"라는 말을 내내 달고 내빧으며 고락셉에 도착 했읍니다.
"자고 나면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없이 죽음같은 깊은 잠을 잤읍니다.
4월7일(고락셉-페르체)
새벽에 눈을 뜨니 아직까지 두통기가 있었읍니다.
새벽에 빈속이지만 슝녕물로 두통약 한알 먹고 밖을 나오니 어제보단 날씨 좋은듯 했다.
유독 고락셉 카라파트하의 검은 언덕이 유혹하듯 빤히 눈앞에 보인다.
이곳이 유일하게 에베레스정상과 로체 정상이 보이는 전망대라 한다.
롯지벽 군데 군데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견디션이 다소 회복되는 기미가 보여 한발이 해볼까?라는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오늘 피라체까지 거리도 만만찮은 거리이고 연 삼일동안 다운 해야하는 일정도
그리 만만찮은 일정이라 불뚝 불뚝 카라파트하에 향한 마음을 억제를 했읍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제부터는 혼자다"라느 생각이 들었으며.
여태것 함께하며 보살펴 준 대장님도 없고 주변 대원들도 없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처신이 되었읍니다.
항상 아쉬움이 있어야 미련이 남듯이 약간의 여운을 남기야 열정이 식지않는다는 마음에
고락셉 검은언덕 출정은 포기를 했읍니다.
그나마 어제 베이스 켐프 오르 때에 룹체 뒤로 빼꼼히 빛추는 에베레스트 정상부위를
조금이라도 본 지라 어느정도 나에겐 위안이 되었읍니다.
입맛이 없어 라면으로 아침을 하고 삐상이라는 포터를 앞 세우고 다운을 했읍니다.
내림길에서 바라다보는 아마다블람과 담세루크의 조망이 새롭게 보인다.
다소 뭉게 구름이 걸쳐져 있지만 그런대로 풍경이 좋게 보입니다.
오전 일정인 로부체까지도 제법 긴 거리듯 합니다.
로부체에 도착하니 로부체 롯지 부부인듯한 책임자 구면이라 제법 반갑게 맞이 해줍니다.
연이틀 밥 구경 못한지라 가져온 쌀로 밥을 지워 김치와 먹으니 눈이 뻔득 뜨이는 기분이 듭니다.
이제는 식욕도 돌아오고 오전 내 걸으니 완전히 곳에서 벗어난듯 합니다.
그리 로부체에서 푸끈하게 오전 휴식 취하고 간만해 볼록하게 점심을 먹고 페르체로 발길을 내렸읍니다.
두크라를 지나 페르체로 내러서니 계곡길이라 색다른 운치가 느껴집니다.
간간히 현지인 돌로 만던 집들과 담이 매우 눈에 익은듯하며 정답게 느껴집니다.
마치 제주도의 담부락같은 느낌이 왔으며 정깔하게 보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아마다블담의 경치도 매우 고무적이며 색다르게 보입니다.
4월8일(페르체-남체)
페르체는 올라 왔던 길과는 틀리고 처음 들런 롯지라 감회가 새롭웠읍니다.
제법 롯지 시설도 좋고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삐상(포타) 선택한 롯지가 엉망이라 내가 직접 골라 선택한 히말리야라는 롯지인데 괜찮은듯 했읍니다.
땅땅하고 조그만한 체구을 가진 젊은 사장님이 매우 친절하며 장사 수단이 좋은듯 했다.
이제는 머리도 몸도 날아갈듯 하였으며 또다시 내마음에 즐거움이 돌아 온듯 했읍니다.
연일 못했던 세수를 하고 음식을 시켰어며 그것도 못자라 서둘런 영어로 바디랭키지를 섞어
돼지고기 1킬로 구해 간만해 김치찌개 만들어 먹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리 풍요로운 저녁과 밤을 보냈으며 짧은 일정의 아쉬움을 안고 남체로 발길을 돌렸읍니다.
아침에 반짝 날씨 좋더니 이내 개스가 끼인다.
올 때보다 자주 구름이 끼여 별 조망들이 없었읍니다.
진흙탕길 오름길을 지나 텡보체에 올라 점심을 하고 아리랑고개길 내러오니 발바닥에 열이 난다.
올 때에 대장님 발 씻은 개울물에 발 담구니 시원함에 등골마저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
그리 철 다리를 지나 마을로 오르니 젊은 아지매 축담에서 어린아이 무릎에 안쳐 놓고 머리 손짓한다.
그런 한가로이 시간를 보내는 자테가 너무나 여유롭게 보이는 모습입니다.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지면서 어두워진다.
연일 계속적으로 일찍히 구름이 덮힌듯 했다.
베이스 켐프 상항이 다소 걱정이 됩니다.
저멀리 남체의 안부끝이 보입니다.
제법 늦은 시간에 남체에 도착하여 곧장 저녁을 먹었읍니다.
그곳은 사장님 무시하게 반갑게 맞이 해준다.
이상배대장님 별일 없는냐? 대원들 건강하냐?등등
매우 고무적인 말투로 찬찬히 영어도 잘하시는듯 합니다.
맥주 몇잔하며 이런 이바구 저런 이바구 주고 받으니 자기는 일전에 미국에 열한번 정도 다녀 왔다 합니다.
무슨 일로 가는냐?고 물으니 미국에 쿡 하려 갔다하신다.
요리전문가다 싶어 "닭 스테이크 하나 만들어 달라"하니 "문제없다"며 닭 다리 두개로 만던
스테이크 한접시 손수 만들어 가져 온다.
메뉴판에도 없는 "닭 스테이크" 맛이 기가 막힐 정도로 맛이 있었다.
얼마나 쇼스 냄새가 좋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내가 닭다리 다 먹을때까지
부러운 눈치로 쳐다봐서 민망 할 정도였읍니다.
이제는 고생 끝이다라는 생각에 오늘 밤은 간만해 마음껏 과음을 하며 편안한 남체의 밤을 보냈읍니다.
13.4월9일(남체-루클라)
오늘도 남체에서 아쉬웠던 어제밤의 기억을 안고 마지막 운행지인 루클라로 향했다.
아침부터 묘한 기분이 듭니다.
며칠전만해도 미지의세계를 향해 연일 힘찬 발걸음을 내딛디었으며
베이스 켐프에서 악몽같은 고소증에 시달려 죽겠다고 낑낑거리며 하산을 하였는데……….
하루만에 재생되어 째잘거리며 히뜩거리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니 이것이 어쩔 수없는 인간 심사다 싶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베이스에서 고통으로 고소를 극복하며 적응하고 라마제 지내고 난 후 15일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도한다는 이상배대장님을 비롯하여 곽정혜,이승사장님이하 천안 원정대 대원들을
생각하니 정말로 대단하게 느껴지며 한편으론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삶이란 늘 변화무상한 고통 속에서 산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한 그들이 겪는 고통들은
우리 비기니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고통속의 고통이라 생각이든다.
고소,추위,배고픔,갈증,좁은 텐트속에서 대기 구속,한없이 밀려드는 외로움과 그리움,
어느 하나 빼 놓지 않고 하고 싶고, 먹고 싶지만 오로지 등정 하기위해,살기 위한 자신과 싸움.
억제심을 발휘하여 사투하는 그들 자세………. 그 이후 댓가는 너무나 초라하고 적은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이 손과 발이 되어주는 셀파및 포타대원들
또한, 그들도 다 함께 고통을 감수하며 순응하듯 받아드리는 자세등을 바라볼때……….
그들은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들은 그들를 위해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봉황의 뜻을 참새가 알리가 있을라마는 오늘에 내내 울 대장님께 기원의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생각으로 남체에서 루크라까지 걸으니 지난 날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대장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 구간들이 눈에 아롱거립니다.
필히 등정하여 양산시를 빛내겠다고 하신 말씀! 양산시 한바퀴 카프레이드 순회하시겠다는 말씀!
등정 이후의 텁수록한 수염안으로 흰 이빨을 드리내시며 환희의 웃음을 지우실 이상배대장님의 얼굴이
자꾸만 자꾸만 발길에 아롱거려 눈물이 날 정도 입니다.
오늘은 온 종일 말없이 걷고 걸었읍니다.
어둠이 다가올듯한 시간에 루크라에 도착 했읍니다.
정말로 힘이 들었지만 힘이 들었다 소리조차 못할 기분입니다.
루크라 파라다이스롯지에서 먹은 만두는 정말로 맛이 좋았읍니다.
내일 카투만두에 가서 일박하고 귀국한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이나 아쉬웠고 이곳을 떠나기 싫은 마음입니다.
~2006년 이상배대장님과 함께 에베레스 베이스 켐프까지 카라반을 마치고 이문식~
첫댓글 백두 대간 마치고, 나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