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나의 집짓기 계획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추진되었다.
집터를 어떤 조건을 갖춘 곳에 어떤 규모로 마련해야지 하는 머릿속 구상 단계는 5년 전인 2003년부터였을 것이다.
2003년 후반기에는 척추디스크로 고생을 하다가 그해 12월에 수술을 하였고 다음해인 2004년 전반기까지는 수술 후유증으로 바깥나들이가 원만하지 못했다.
실제로 강진과 해남군으로 답사를 통해 집터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 2004년 여름부터였고, 2년여의 탐색 끝에 2006년 말에 지금의 월출산방 터를 구할 수 있었다.
터는 매입하였지만 농작물의 수확을 위해 다음해 여름까지는 주택의 건축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막상 집터가 정해지자 머릿속 구상은 더욱 구체화되어갔다.
이 곳을 집터로 작정하기까지 가장 매력적인 점은 터의 북쪽에 펼쳐진 월출산의 아름다운 경관이었고, 그 점이 나의 마음을 결정하게 한 가장 큰 요소였다.
우선 테마를 ‘빼어나 월출산 배경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살림집+작업실+전시장이 갖춰진 전원주택’으로 설정하였다.
좀더 좋은 전망을 위하여 주택 구조를 2층으로 정한 것도 이러한 테마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였다. 그런 의도는 주택이 완성되자 또 다른 효과를 낳았는데 그것은 2층 건물이 주는 외관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살림집의 공간은 청소 등을 고려하여 최소한으로 줄여 20 평 정도로 한다.
작업실은 테라코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내부 장식을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며 15평 정도를 확보한다. 전시장은 실내와 실외로 나누는 데 실내는 작업실의 이층에 15평 정도의 다락방을 만들어 석고 작품과 테라코타 작품을 전시하고, 실외에는 석조 작품 15점을 정원에 설치한다. 전시장인 이층 공간은 앞뒤의 전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테마에 부합하고 내 경제적 능력에 맞는 설계방침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도면 설계로 구체화되면서 다소 변경되었다.
결과적으로 살림 공간 약 25평, 작업실 13평, 2층 전시실 16평, 그밖에 현관 및 보일러실, 외부 화장실이 5평, 도합 58평 규모의 제법 규모가 큰 주택이 되고 말았다.
주택이 완공되고 얼마 후에 추가로 스티로품 패널로 시공한 5평 규모의 허드레 물건 보관 창고까지 합하면 60평이 넘는 면적이 되었다.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건평을 35-40평 정도로 잡았었는데,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60평을 초과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비용의 측면에서 예상보다 추가 부담이 컸었고, 그 부담은 쉬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건축 규모가 큰 만큼 장점도 없지 않아 많았다.
우선 건물이 주는 장엄함이나, 실내에 들어섰을 때 확 트인 듯 한 시원한 느낌, 여느 보통 농촌 주택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차별감 등이 그것이다.
집이란 물건을 사듯 그렇게 쉽게 사고팔거나 찰흙으로 빚듯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시각으로 여러 여건을 고려하여 주택을 건축하는 것보다도 5년이나 10년 후의 미래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 판단해 볼 때 예상보다 초과된 규모의 주택 건설은 옳은 결정인지도 모르겠다.
도면 설계과정으로 들어가서 건물의 뒤편으로 펼쳐진 월출산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창문의 배치에 신경을 썼는데, 창문의 크기나 수효가 건물의 앞쪽인 남쪽과 건물의 뒤편인 북쪽에 충분하게 많이 배치하였다.
그래서 건물의 내부에서 밖을 볼 때 특히 월출산 쪽 창문이 있는 2층 전시장, 1층 작업실, 살림 공간의 서재, 주방, 화장실의 다섯 군데에서 그 기기묘묘한 산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중 자랑할 만한 곳이라면 2층 전시장에서 바라보는 월출산의 모습이 가장 장관이다.
처음 본 사람들은 마치 액자 속의 그림같이 아름답다고들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음으로 내세울 곳은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월출산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과 화장실 변기에 앉아 창틀로 올려다 보이는 모습 또한 자랑할 만 하다.
농담인지 모르지만 화장실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우면 그 풍경에 심취하여 오랫동안 변기에 앉아 있게 되고 그러면 변비에 걸리기 쉽다고 웃기는 이도 있었다.
전체적으로 내부 벽면은 목재 루버를 부착하는 데, 가능하면 편백나무 루버를 많이 쓴다.
외부는 장기간 보수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시멘트 슬라이딩 몰딩이라는 목재 느낌이 드는 합성재를 사용한다.
가능하면 인체에 해롭지 않은 건축자재를 이용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베니어합판 대신에 OSB합판을, 스티로품 대신에 인슐레이션이라는 목조주택 전용 단열재를, 접착제나 도료도 새집 증후군을 일으키지 않는 제품을 쓰도록 했다.
살림집은 수납공간을 많이 만들어 바닥에 물건을 놓지 않도록 설계하였다.
서재에는 붙박이장과 서가를 설계에 포함하였으며, 전시실의 선반, TV 받침대, 신장까지도
설계에 삽입하였다.
건물 건축을 건축업자에게 일괄 도급으로 의뢰하였으므로 이러한 자질구레한 일까지 모두 건축업자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심지어는 코너장이라든가, 작업실의 나무 판재로 선반을 만든 일까지 맡겼다.
거실 창문의 햇볕 차단용 접이 식 차양 설치, 야외 식탁, 빨래건조대까지 건축업자에게 일괄 맡겼다.
건물에는 내가 더 이상 추가로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꼼꼼하게 일을 시켰다.
다행스럽게도 건축업자는 나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해주었다.
젊은 사람인데 매우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두고두고 그 고마움을 되새긴다.
이전의 두 번의 주택 건축 경험을 통해 건실한 건축업자를 만나지 못해 애먹은 일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더욱 그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나치리만치 세세한 것까지 건축업자에게 요구한다는 주위의 반발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나의 요구를 묵묵히 들어준 우리 집 건축업자 채양수 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주택의 건축은 전형적인 캐나다 목조 주택 건축방법을 이용했다.
모든 창호는 시스템 창호를 사용했는데, 이 시스템 창호라는 것은 창호 공장에서 창호를 생산해 낼 때 규격화된 크기로 창틀과 창문이 완성되어 생산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건축현장의 요구대로 창호의 크기를 늘리거나 줄일 수 없게 되어있다.
즉 쉽게 표현하면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는 벽체 쌓기는 벽을 먼저 만들고, 그 벽의 빈 공간에 맞추어 창틀을 조립하여 끼워 넣는 방법인데 반하여, 이 기법은 창틀에 맞추어 벽을 쌓거나 조립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목조주택 건축에서만 사용되는 게 시스템 창호라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상당히 낯선 시공법이다.
이 창호를 시공하면 이점이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건축업자는 복층 유리 한 겹만 사용하는 시스템 창호의 단열이 일반적으로 유리가 복층과 단층 유리로 된 아파트 창호보다도 단열이 잘된다고 설명하여 주었다.
비용도 시스템창호가 더 고가라는 말에 당시에는 반신반의하였으나 정작 주택이 완성되어 한 겨울을 지내보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겨울의 바깥 온도가 영하 6도일 때 난방하지 않은 실내온도가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을 보고 그 뛰어난 단열 효과를 벽체와 창호의 우수한 단열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12월 하순에 입주하여 올 5월까지 보일러 가동에 들어간 등유의 양이 세 드럼통이었으니 상당히 저렴한 유지비용이라 자랑할 만도 할 정도이다.
기대 이상으로 목조주택은 주택 외관의 수려한 자태, 내부의 단열이라든가, 편백나무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 새집 증후군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점 등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9월 말부터 시작한 집짓기는 두 달이 채 못 되어 끝났다.
실제 시공기간은 한 달쯤 걸렸으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목조주택의 시공기간은 짧다.
기초 공사를 통 콘크리트로 시공한 이후에는 콘크리트는 사용하지 않았고, 방바닥 보일러 시공과 화장실과 다용도실 타일 작업 외에는 시멘트 모르타르도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시공과정이 목재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철에 비해 목재는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쉽고, 시멘트 벽돌이나 콘크리트 시공에 비해 굳어지는 시간이 절약되는 등 인력과 시간 면에서 상당한 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목조 주택은 규격화된 목재만을 사용하여 건축하기 때문에 마름질이나 대패질이 되어있는 반 가공된 상태의 자재 사용으로 건축비의 절감 효과도 가질 수 있었다.
제재소에서 구입한 목재를 자르고 대패질하여 집을 짓는 전통적인 목재 구조 가옥 건축과는 판이한 방법의 건축 방식이 이용된다.
기둥이나 벽체, 내부 장식용 루버 등 모든 목재는 일정한 너비와 길이, 두께로 마름질되고 대패질되어 있어서 건축 현장에서 설계도면에 맞추어 기계톱으로 길이를 자르고 압축공기로 못 박는 기계로 총을 쏘듯 빠른 속도로 조립해나가는 과정이 전부다.
마치 어린이들이 블록을 맞추듯 벽체는 바닥에서 조립해서 일으켜 세우면 되고, 그 위에 석고보드나 OSB합판, 목재 루버를 부착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과정을 보고, 그 속도감이나 중량의 가벼움으로 인해 강풍에 약해 보인다는 우려도 해주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지진 등으로부터 가장 뛰어난 내진성을 가진 건축방식이라는 것이 이민 선진 외국에서 증명된 바가 있다.
사실은 나도 우리 집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목조주택에 대해 잘 모른 상태였다.
전원주택 전문 잡지나 인터넷 등을 통해 얼추로 안 지식이 전부였다.
실제로 제대로 지어진 목조주택을 구경조차 못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목조주택의 장점이 다른 주택 건축 방식보다 돋보였고, 나의 필요에 부합하였던 것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한 전부였다.
다행히도 무모하리만치 과감하게 한 목조주택으로의 결정은 나의 선택 중 가장 현명한 것이었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