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음악칼럼니스트
우수가 지나고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며 온갖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다. 그래도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아직은 매서운 북서풍의 칼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지난 겨울은 길고 긴 인내의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눈이라도 내린 다음날은 온종일 거북이 걸음으로 운전을 하며 바쁜 일정에 쫓겨 다니던 기억뿐이다.
'이젠 봄이 오겠지, 조금씩 천천히라도 ...' 간절히 기다리는 맘은 아마 나뿐이 아닐 것 같다.
봄은 우리 곁에 어떻게 다가오는 걸까. 형형색색 하루가 다르게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 거리의 가로수와 꽃들의 모습으로, 아니면 뺨을 스치는 바람의 따스함과 햇살, 그리고 향기로운 봄내음으로 봄이 왔음을 느끼는 걸까.
아니다. 봄은 밝고 희망찬, 아름답고 경쾌한 음악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지난주 내내 라디오를 통해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에서 op. 8-1 '봄', 멘델스존의 무언가 op. 62-2 '봄노래'를,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에서 op. 37-3 '3월-종달새'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모두가 이젠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봄을 마중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나는 흰 나리 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봄이 되면 누구나 노래 한 곡쯤 부르고 싶은 마음이, 아니면 자신만의 봄노래를 듣고 싶을 마음이 든다. 겨우내 움츠리고 억눌려 있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봄의 생기를, 희망을 즐기고 싶은 것이다.
이런 우리 모두의 마음을 노래한 가곡 '동무생각-사우(思友)' 속의 청라 언덕이 바로 대구에 있다.
1922년 노산 이은상이 시를 쓰고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 제1세대의 대표적인 가곡 작곡가이자 우리나라 교회음악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박태준이 곡을 붙인 '동무생각'은 한국 최초의 가곡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가 고향이었던 박태준 선생이 평양 숭실학교를 마치고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던 중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기도 하다.
현재 동산의료원 사택지 안에 있는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선교사 사택이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있는데 푸른 담쟁이를 '청라(靑蘿)'라고 쓴다.
대구 계성학교를 마친 박태준 선생이 노산과 마산 창신학교에서 만나 교류를 하다가 학창시절의 추억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박태준 선생의 '동무생각'을 기념하는 '청라언덕' 비가 세워져 있는 동산 의료원 사택지 안에는 이외에도 여러 대구의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제일교회 앞 오르막 길에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3·1운동길'이라는 운치 있는 90개의 계단길이 있으며 사택지 안에는 1900년대 초반 대구에 도착한 선교사들의 의료 및 선교 활동을 기리는 여러 기념관들도 마련되어 있어 좋은 역사교육도 함께 할 수 있다.
대구하면 사과를 떠올리는데 대구 사과가 1900년대 선교사들이 처음 가져와 심기 시작한 것이라는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동무생각'은 수많은 아름다운 한국가곡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음악교과서에 단 한 번도 누락된 적 없이 계속 실린 유일한 가곡이라고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청라 언덕에 올라 잊었던 옛동무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