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심자를 위한 불교 안내(6)
윤회설(輪廻說)
나고 죽는 인간의 생사를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한다.
불교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설이다.
사실 불교적인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윤회설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순환적 사고방식의 배경이 되는 이론이다.
윤회란 바퀴가 굴러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지만, 여기서 죽었다가 저기서 태어나는 생사가 공간적으로 이동하여 옮겨진다는 뜻이 있다.
범어로 'samsara'인데 'sam'과 'sara'의 합성어이다.
원래 ‘sam’은 ‘함께’라는 뜻이고 'sara'는 ‘달려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중국에서 바퀴가 돈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중생들이 여러 세계를 바퀴가 돌 듯이 이리 저리 옮겨가면서 돌고 있다는 뜻이다.
한 존재가 죽으면 그가 살았던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다른 세상에 가서 태어나며 그곳에서 죽어 또 다른 세상으로 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여기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사는 경우처럼 나고 죽는 것이 여러 곳으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이 윤회설에서 특기할 사항은 일체 중생, 곧 모든 존재는 나고 죽는 생사를 거듭거듭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밤낮이 교차되면서 무한한 세월이 되듯이 생사가 교차되면서 무한한 윤회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사는 언제나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통과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윤회에서 벗어난 것을 다시 해탈(解脫, moksa)이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룬 후 “나는 해탈을 얻었다.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윤회 속에서 볼 때 생사, 즉 삶과 죽음은 언제나 똑같은 의미를 가진다.
반복되고 있는 한 과정인 점에서 둘 다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시간인 것처럼 태어남은 죽음을 의미하고 죽어 가는 것은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 윤회설에 있어서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생사를 거듭하는 윤회 속에서 몸을 받는 것이 업(業)에 따라 다르게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 언제나 사람 몸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어서 짐승의 몸을 받을 수도 있고, 짐승이 죽어 사람 몸을 받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생(轉生)이라 한다. 몸을 바꾸어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왜 이렇게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게 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업(業, karma)이다. 윤회의 원리는 업으로 설명된다.
업은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 행위가 윤리 ․ 도덕적으로 좋으면 선업이 되고 나쁘면 악업이 된다.
그리고 이 행위는 반드시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인연에 의해서 행위가 일어나면, 그 과보(果報)가 뒤따라 업으로 인한 인과의 법칙이 성립된다.
업이 종자가 되어 이것과 일치되는 결과의 과보가 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운회설은 업설과 인과설과 결부되어 있다.
중생의 업이 남아 있는 한 윤회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신앙에서 이 업을 소멸하자는 참회 신앙이 있는데 업이 소멸되면 윤회가 끝나고 윤회가 끝난 세계를 열반의 세계 혹은 앞서 말한 대로 해탈의 세계라 한다.
중생이 업을 지어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공간적 범위를 구분하여 삼계(三界), 또는 육도(六道)라 한다.
삼계는 세 세계라는 말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그것이다.
욕계란 욕망으로 생활하는 세계로 인간세상을 위시한 축생의 세계가 있고 천상에 사는 사람과 그 곁에 있는 아수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의 육도가 모두 욕계에 속한다.
이 세계는 모두 본능적 욕구가 있어 이것을 의지하여 업을 지으면서 생활하는 곳이다.
1) 천상 이야기
욕계에는 천상도 여섯 개가 들어 있다.
욕계육천이라고 말하는 천상은 사천왕천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미산 중턱에 있는 천상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지국천(持國天), 증장천(增長天), 광목천(廣目天), 다문천(多聞天)의 네 하늘에 각각 왕이 있어 천신들을 거느리고 있다하여 사천왕천이라 한다.
그 다음 제2천이 도리천(忉利天)인데 사천왕천의 바로 위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천상이다.
맨 가운데 선견성(善見城)이라는 성이 있고 사방에 각각 8개의 성이 있어 천인들이 살고 잇다.3
3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장 큰 중앙의 선견천에 제석천(帝釋天)이라는 왕이 있어 천상을 다스린다.
천상의 하루가 인간세상의 100년에 해당된다.
이 천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인간세상의 6살난 아이와 같으며 옷이 입혀진 채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1000세의 수명이 누려지는 곳이라 한다.
일찍이 석사모니 부처님이 천상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석달동안 설법을 했다 하며 그 내용이 수록된 경이 지장경이다.
다음 제3천은 야마천이다.
이 천상은 시간을 따라 쾌락을 누리는 것이 달라지므로 시분천(時分天)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낮과 밤이 연꽃의 꽃잎이 열리고 닫히는 것으로서 구분된다고 한다.
이 천상의 하루는 인간의 200년이라 한다.
다음 제4천이 도솔천으로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누어져 있다.
외원은 일반 천인들이 욕락(欲樂)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라 한다.
미륵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 : 한 생을 지나면 부처가 될 자) 보살로 이 천상의 내원에 있으면서 천인들을 교화하며 다음에 남섬부주에 하생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도솔천의 하루가 인간세상의 200년이며, 아래의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이 욕정(欲情)에 잠기어 있는 반면, 이 천상 위에 있는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욕정이 들떠 있는데 이 천상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고 오욕락에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명이 4000세라 하며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항상 이 천상에 계시다가 성불하여 사바로 온다고 한다.
다음 제5천의 이름은 화락천(化樂天)이다.
이 천상은 자기가 대하는 모든 경계를 즐거운 욕락의 경계로 변화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루가 인간세상의 800년이며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성교(性交)의 쾌감이 느껴지며 남녀가 마주하여 서로 웃는 것이 인간의 섹스(sex) 행위와 같다고 한다.
아기를 낳을 때 남녀의 무릎 위에서 태어나며 인간의 12살쯤 되는 아기가 화생하여 나온다고 한다.
욕계육천의 마지막 하늘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욕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로 마왕(魔王)이 있는 곳이다.
이 하늘은 남의 욕락을 마음대로 자기의 쾌락으로 삼는 까닭에 타화자재라 한다.
어떤 생각을 일으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아무런 장애 없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령 이 천상의 남녀는 서로 마주보기만 하면 성교가 이루어진다.
육체적인 쾌락이 남을 마음대로 지배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루가 인간세상의 1600년이고 수명은 16000세에 달한다고 한다.
이상의 욕계 여섯 하늘은 모두 욕락이 최고인 곳으로 욕계에서 가장 좋다.
원래 천상은 천(天)은 범어 'deva'를 번역한 말로 신(神)이란 뜻에 해당된다.
그러나 서양에서 말하는 유일신인 'God'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스러운 존재 혹은 귀신의 무리 등의 뜻이 들어있는 말이다. 이 천상에 있는 존재들도 중생의 범주에 속해 있는 무리들로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해 복(福)을 누리다 그 복이 다하면 하계(下界)로 떨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삼계(三界)에 오르내리는 것이 우물에 물을 길을 때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넣어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 같아고 하였다.
욕계의 하늘 위로 올라가면 색계의 천상이 다시 전재된다.
이곳은 욕계천과 같은 욕망이 없어지고 깨끗하고 미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고요한 선정의 수련을 성취한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그리하여 이 천상을 네 개의 선천(禪天)으로 구분한다.
선(禪)이란 이름을 붙여 맨 밑에 있는 곳을 초선천(初禪天)이라 하고 다음 이선천(二禪天), 삼선천(三禪天), 사선천(四禪天)이라 한다. 초선천에는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의 세 하늘이 있고 이선천에는 소광천(少光天), 무량광천(無量光天), 극광정천(極光淨天)의 3천이 있다.
삼선천에도 역시 소정천(少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변정천(便淨天)의 3천이 있으며, 사선천에는 무운천(無雲天), 복생천(福生天), 광과천(廣果天), 무상천(無想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의 아홉 하늘이 있어 색계천 안에는 모두 18천이 있다.
이상의 삼선천까지는 언제나 즐거운 낙을 일으키는 하늘이므로 낙생천(樂生天)이라 부르기도 한다.
욕계의 사천왕천과 도리천은 수미산의 중상턱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하고 야마천 이상은 허공 가운데 층을 이루고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한다.
이 여러 천상세계는 위로 올라갈수록 천인들의 신체가 크며 수명도 더 길어진다. 이 색계천 위에 다시 무색계의 네 하늘이 있다.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네 하늘이다.
비상비비상처천은 삼계 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하늘이라 하여 유정천(有頂天)이라고 한다.
무색계는 물질적 요소를 초월한 하늘이므로 색에 걸리는 일이 없다 한다.
또한 천상에 사는 천인들이 장차 명이 마치려 할 때는 5가지 조짐이 나타난다고 한다.
첫째 의복에 때가 묻게 되고 둘째는 머리에 있는 화관(花冠)이 시들며, 셋째는 몸에서 냄새가 나며, 넷째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나며, 다섯째 천상의 즐거운 흥이 없어지는 것이다.
천상의 복이 훌륭하긴 해도 이곳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아니고 다시 다른 세계로 윤회전생(輪廻轉生)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 지옥 이야기
천상이 가장 좋은 복을 누리는 곳인 반면 지옥은 가장 극심한 고통이 있는 곳이다.
악업을 많이 지은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원래 땅 밑에 있는 감옥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어로는 나라카(naraka) 또는 나라야(naraya)라 하며 음역할 때는 ‘나락가(那落迦)’, 나락(奈落), 그리고 ‘니려야(泥犁耶)’, ‘니려(泥犁)’라 표기한다.
가장 나쁜 상태의 생을 받아 온통 괴로움만 당하는 곳으로 현세에 악업을 지은 자가 내세에 그 과보를 받아 이곳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인과의 법칙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나온 설이기도 하다.
경론(經論)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지옥을 설명하고 있으나 보통 팔열(八熱)지옥, 팔한(八寒)지옥, 고독(孤獨)지옥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또 십팔니려경(十八泥犁經)에는 18개의 지옥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구사론(俱舍論)의 설명이다.
팔열지옥은 여덟 곳의 뜨거운 고통이 있는 지옥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다.
① 무간(無間)지옥 : 고통을 잠시도 쉬지 않고 받음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아비(阿鼻)지옥이라고도 한다.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전혀 없는 곳이다.
② 극열(極熱)지옥 : 서로의 몸에서 사나운 불길이 뿜어져 나와 서로에게 화상을 입혀 그 고통이 극심한 곳이다.
③ 염열(炎熱)지옥 : 불이 몸에 닿아 돌고 그 불꽃에 몸이 타서 뜨거워 견딜 수 없는 곳이다.
④ 대규(大叫)지옥 : 극심한 고통에 못 이겨 고함을 지르고 울부짖는 곳이다.
⑤ 호규(號叫)지옥 : 고통에 못이겨 누구를 부르며 비명을 지르는 곳이다.
⑥ 중합(衆合)지옥 : 여러 가지 고통이 한꺼번에 몸에 와 닿음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⑦ 흑승(黑繩)지옥 : 검은 밧줄로 먼저 신체 수족을 묶어 놓고 뒤에 도려 파는 고통을 주는 지옥이다.
⑧ 등활(等活)지옥 :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몸에 와 닿으나 죽지는 않고 소생하여 다시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계속 되는 곳이다.
또 팔한(八寒)지옥은 추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여덟 곳의 지옥을 말한다.
① 마하발특마 지옥 : 마하 발특마란 큰 붉은 연꽃을 뜻하는 말이다. 극심한 추위 때문에 몸이 터져 찢어 벌어진 것이 큰 붉은 연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② 발특마 지옥 : 추위 때문에 몸이 터지고 찢어진 것이 붉은 연꽃과 같은 지옥이다.
③ 온발마 지옥 : 추위 때문에 몸이 터지고 짖긴 것이 푸른 연꽃과 같은 지옥이다.
④ 호호파 지옥 : 추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호호파라는 소리를 지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⑤ 학학파 지옥 : 하하바라는 소리를 지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⑥ 알석타 지옥 : 아타타라는 소르를 지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⑦ 니날부타 지옥 : 추위가 몸에 닥쳐 수포가 찢어짐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⑧ 알부타 지옥 : 극심한 추위가 몸에 닿아 물집이 생기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팔한지옥의 이름은 의성어(擬聲語)나 의태어(擬態語)로 되어 있다.
팔열지옥을 팔대(八大)지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 부수된 증(增)지옥이 16개나 있다.
증(增)이라는 말은 고통이 증가 되었다는 뜻으로 지옥의 처한 환경이 처참함을 설명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지옥 변상(變相)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나타내 놓은 것이다. 또 각 지옥에는 감옥을 지키는 옥졸(獄卒)이 있다 하며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이 옥졸을 거느리고 지옥을 다스린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본래 도교에서 불교로 흡수된 이야기이다.
천상이 선업의 과보인 반면 지옥이 악업의 과보라는 것은 이미 설명했지만 결국 이러한 이야기들은 인간의 행위를 문제 삼아서 한 것이다.
나의 행위가 남에게 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간단한 원칙이 선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천상과 지옥의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천상과 지옥은 인간이 한 생애에서 지은 업이 가장 좋게 나타나고 가장 나쁘게 나타나는 것을 상징해 놓은 세상이다.
윤회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인간이 죽고 난 후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의문에서이다.
또한 뭇 생명체들의 생명자체의 상호 상관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윤회설을 통해서 밝혀진다.
그런데 이 윤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의 업이다.
결국 인간의 업이 다른 도(道)의 생을 결정하므로 인간의 업에 의해서 육도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회 속에 여러 갈래의 세계가 있지만 그 중심은 인간세상이라는 말이다.
인간세상이 중심이 되어 그 과보의 극선(極善), 극악(極惡)이 천상과 지옥인데 이 외에 아수라(阿修羅, asura)와 아귀(餓鬼, preta), 축생(畜生, tiryak)을 합하여 육도(六道)라 하고 아수라를 빼어 오도(五道)라 하기도 한다.
또 중국 불교에서의 신선(神仙)을 넣어 칠취(七趣)라 하기도 했다. 취(趣)나 도(道 혹은 途)는 같은 뜻이다.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무리들로 원래 악도로 취급했는데, 천상과 투쟁을 벌리는 존재들로 불법을 들을 수 있는 인연이 있어 인간, 천상과 함께 선도 취급을 받기도 한다.
원래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다 하여 무단(無端)이라 번역하기도 하고 천상의 인간류가 아니라 해서 비인(非人)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아수라들도 도리천에 사는데 복은 하늘 무리와 같으나 못생기고 싸움을 좋아하는 점이 하늘 무리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쁜 여자는 곁에 있으나 좋은 음식이 없고 하늘 무리들은 좋은 음식은 있으나 미인이 부족하여 서로 부족한 것을 빼앗아 채우기 위하여 싸움을 한다고 한다.
난장판이 되었다는 말을 흔히 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수라는 아수라의 준말이다.
아귀(餓鬼)는 배고픈 귀신이란 뜻이다.
예로부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영(靈)이 되어 귀신이 된다는 설이 있었다.
불교에서 영혼을 천도(薦度)하는 풍습이 있다. 이를 천도재(薦度齋)라 하는데 이때 죽은 사람을 영가(靈駕)라 한다.
이 영가도 중생이다.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의 영가도 중생의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다.
마치 사람이 잠을 자다가 꿈을 꾸어 악몽에 시달릴 때는 꿈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처럼, 죽은 이의 영가가 괴로움에 시달리는데 그 괴로움을 소멸시켜 주는 것이 천도이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신통(神通)이 가장 빼어났던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해내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에 의하여 생긴 풍습이 우란분(盂蘭盆) 절의 조상 천도 풍습이다.
우란분이란 ‘ullambana'를 음역한 말로 죽은 영혼이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고 있는 것을 구해 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의역(意譯)할 때는 구도현(求倒懸)이라 한다.
이 아귀들은 항상 배고픈 고통에 시달리며 목이 말라 갈증을 느끼며 항상 물을 찾는데 아귀들의 눈에는 물이 불로 보인다고 한다.
축생은 짐승들의 세계를 말한다.
물론 새나 물고기 종류들도 이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제외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가 축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은 중생계라 이 세상의 참된 이치를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지옥, 아귀, 축생을 삼악도(三惡道)라 한다.
악업의 과보로 태어나는 곳이다.
예로부터 수행자들을 경책(警策)한 말에 사람몸[人身]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죽은 다음에 악도에 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가령 사람이 죽고 난 다음 생에 축생의 몸을 받든지 아귀의 몸 등을 받는다면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 된다.
사람이 죽어 짐승의 몸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여러 설화 속에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윤회설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는 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 본래의 자리(定處)를 잃어버리고 헤매고만 있다는 뜻이다.
나고 죽는 생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결국 나쁜 업을 청산하지 못하여 잘못된 갈래의 길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윤회설에서는 업에 의해서 그 과보를 받는 상태가 윤회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업이 윤회의 주체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얼핏 생각하면 업이 바로 윤회의 주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법무아설(諸法無我說)을 내세우는 근본 교리의 입장에서 윤회의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서로 상충되는 이론이 되고 만다.
결론은 윤회를 거듭하되 윤회하는 주체는 없다는 것이다.
업 이론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因果)의 법칙을 밝히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윤리적 측면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과성과 윤리성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업 이론이다.
여기서 인과의 성질은 자연법칙과 같은 것으로 물이 얼면 얼음이 되고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논리와 같다.
다만 선악의 도덕적 기준은 인간의 윤리적 의식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사고다.
업 자체는 선악이 없지만 인간의 윤리의식에서 볼 때 선악으로 구분되어진다.
업이 행해지는 하나의 행위가 끝나면 행위자체는 없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행한 존재 안에 어떤 흔적이나 세력을 남겨 놓는다.
마치 향을 태우면 향 자체는 타서 없어지지만 향의 냄새가 옷이나 천 같은데에 배여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업이 남긴 세력을 업력(業力)이라 하는데, 이것이 잠재적인 에너지로 남아서 때를 기다려 업력의 성질과 일치성이 있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존재들은 업력을 싣고 다니는 활동체다.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동력이 모두 업력이다.
이것이 죽은 뒤에는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업의 존재하는 자의 현재 운명이나 미래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업으로 인해 모든 존재가 만들어진다. 가령 사람으로 태어날 업을 지었으면 사람으로 태어나고 짐승으로 태어날 업을 지었으면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업이 지어지고 나서 그 과보가 나타날 때까지 경과되는 시간은 일정하지가 않다.
마치 식물의 종자가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종자마다 다르듯, 업이 결과를 초래하는 과보를 받는 때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을 3가지로 구분하여 삼시업(三時業)이라 하는데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과보를 받는 업은 순현업(順現業)이라 하고 내생에 받는 것은 순생업(順生業), 그 다음 생에 가서 받는 업은 순후업(順後業)이라 한다.
또 과보를 받게 되는 때가 정해져 있는 업을 정업(定業)이라 하는 반면 정해지지 않는 업은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업은 지으면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되지만 결과가 항상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업을 지으면 어떤 과보를 받느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대체로 선업은 선도에 태어나고 악업은 악도에 태어난다고 말한다.
천상세계나 인간은 선도이고, 지옥, 아귀, 축생은 악도이다.
또 지극히 상식적인 견해로서 도덕율에 입각하여 과보를 예측해서 말하기도 한다.
가령 살생(殺生)업을 많이 지으면 병에 잘 걸리거나 수명이 짧아지며 투도(偸盜)업을 많이 지으면 가난하게 태어난다.
그리고 사음(邪淫)을 일삼으면 올바른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 등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계속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윤회를 한다면 바로 이 영혼의 존재가 다시 다른 몸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도의 힌두교나 자이나교에서는 어떤 존재가 죽어 육체가 없어지면 영혼과 같은 존재인 아뜨만(atman)이라는 자아(自我)나 지바(jiva)라는 생명원리가 있어 운회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아(anatman)를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윤회를 한다해서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영혼과 같은 어떤 것이 일정하게 옮겨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해서 계속하는 것이므로 고정된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난다고 할 때 죽은 자와 태어난 자 사이에 불가분리의 관계는 있으나, 천년 전에 땅에 심어졌던 밀알이 천년 후의 밀알로 이어질 수는 있지만, 천년 전에 밀밭에 심어졌던 밀알이 천년 후의 밀밭에서 수확한 밀알과 동일하지는 않으며, 없어지고 생겨나는 현상의 반복이 있다 하더라도 고정 불변의 실체가 이어지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없어지고 생겨나는 것은 변화의 과정이며 이 변화의 과정을 이어주는 것이 업력이다.
『밀린다 팡하』에서 나가세나 존자가 이런 말을 하였다. “다시 태어나는 자와 죽은 자는 다르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자는 죽은 자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자는 죽은 자가 지은 업의 과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지안(志安) 스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