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지명은 아니지만 “모래구지”라는 그 말 자체가 조금은 특이하다보니 지명에 얽힌 어떤 유래가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나 역시도 그러하였다.
대략 50여년전 감만동 입향조의 9세손으로 내려오신 조부(1895고종32년-1981)님께 모래구지라는 지명에 대한 어떤 유래가 있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윗대부터 그냥 그렇게 불러 왔다고 했다. 당시 몇분 되지 않았던 1890년대 출생의 마을 고로(古老)분들 이야기 역시도 그러하였으니 조선시대부터 그렇게 불러 왔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후세에 와서 일본어의 입이나 말에 해당하는 구(口,구찌)자를 모래에 갖다 붙여 “모래구찌”라 불렀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어 왔으나 추론(推論)일뿐 그에 따른 어떠한 근거나 자료는 없다.
사하구 신평동에도 해변가에 모래가 쌓여 다져진 곳에 “모래구지”라는 마을이 있었다.
낙동강 하구 지역의 한적한 포구였지만 공단이 들어선 이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하여 모래구지 마을 전체가 매립되어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감만동과 마찬가지로 그 이름에 대한 별다른 유래는 없으나 모래가 쌓여 마을이 형성된 그 곳을 오랜 옛날부터 그렇게 불러 왔다는 선대 원주민들의 이야기만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 또한 근년에 와서는 감만동 구찌(口)의 가설 내용을 인터넷 매체를 통해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강서구 녹산동에 “사구(沙邱,모래언덕)마을”이 있다. 별칭으로 “모래구지”라고도 부르는데 낙동강 지류의 모래 언덕에 생겨난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민락동에 “널구지”라는 지역이 또 있다. 광안대교를 타고 해운대쪽으로 가다보면 진조말산(민락동 앞바다 매립전 진조말이 있었던 산)옆에 “롯데캐슬” 아파트가 있고 그 바로 옆의 “푸르지오” 아파트가 서있는 자리가 바로 “널구지”이다. 흔히들 MBC 앞쪽을 민락본동이라 부르고 목덜미처럼 도로로 이어져 있는 백산과 진조말산의 수영강 쪽을 “널구지”라 부른다.
이곳 “널구지”의 지명 유래는 수영강 하류지역에 모래가 쌓여 흙과 다저져 널판처럼 편편해진 땅이라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처럼 민락동 널구지와 녹산동 사구마을 모래구지, 감만동 모래구지와 신평동 모래구지의 지명이 갖고 있는 의미는 모래가 쌓여 다져지고 굳어진 땅의 의미로 굳다에서 파생되어 굳이- 구지로 변형되어진 음운현상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 타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지역 어민들이 연안에서 조업 중 날씨도 찌푸듯한데다 별 까닭도 없이 일이 꼬이고 얽히며 방(坊)을 놓아도 해파리 불가사리만 올라오던 그런 날을 토속어로 날궂이(날구지)한다고 하였다. 궂다에서 파생된 방언이지만 이 같은 토속적 어휘가 갖는 음운현상으로 접근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모래口(구찌) - 아무래도 조선시대 우리들 선조께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땅에 스스로 일본말을 넣어 마을 이름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떠한 근거나 자료 하나 없음에도 그런 치욕스런 가설들이 나와 있고 또 그것이 매체를 통해 가볍게 전파(傳播)되어 통설로 굳어져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굳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선조들을 욕되게 하는 추론(推論)은 다시 한번 재론되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