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사랑 한마당, 신 부여팔경에 빠지다.
작곡과 노래 기타 연주에 빼어나시고 현재 서원대 교수이신 이병욱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신 부여팔경’ 책을 잘 읽으셨다고 하셨다. 당신 고향이 서산이신데 가까이 있는 부여에 관한 책이라 더욱 반갑게 느꼈다고 하셨다. 난 책을 예쁘게 보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강원도 홍천군에 ‘마리소리 악기 박물관’이 있다. 이병욱 교수님께서 홍천군에 기부채납을 한 박물관이다. 옆에는 숙소와 공연이 가능한 토굴이 있다. 이곳에서 유숙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어울사랑 팀이 신부여팔경 답사를 1박2일로 가면 어떻겠냐고 하셔서 좋은 경험일 수 있다고 말씀 드렸다. 4월 둘째주 토 일요일로 일정을 잡았다가, 어울림 창단 25주년 기념행사와 회원의 전시가 겹쳐 6월16일(토) 17일로 답사일이 결정 되었다.
이번 ‘어울사랑, 신부여팔경을 찾아서...’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부탁 받아, 좀 더 재미있고 특이한 여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숨어 있는 노고를 아름답고 고맙게 받았다.
하루 전날 대구에서 서울로 행사 참석을 위해 올라오신 선생님과 이분을 맞이하기 위해 즐겁게 외박을 하신 선생님 등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조계사에 있는 우정국 앞에 도착을 하니, 주황색 서울 고속관광버스(기사 이명숙)가 조계사 입구 조금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야생화연구소 소장이신 김태정 박사님은 우정국 앞에서 기다리시다가 버스를 찾아 오셨고, 8시에 출발하려 하니 이무성 화백님께서 시간을 8시 20분으로 아셔서 차를 이동하여 중간 지점인 동대문에서 차에 모셨다. 잠시 후, 교대역에서 기다리시던 19분을 태워서 총28명이 신 부여팔경을 찾아 나섰다.
어울사랑(이병욱과 어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든 까페)과 EBM(Early Bird Meeting) 그리고 부여를 여러 차례 답사했던 민학회(설립40여년 된 우리문화 연구 및 답사하는 모임) 멤버들이 함께 인연의 고리에 힘입어 바쁜 일상들을 뒤로하고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차에 올라 황경애 선생님께서 새벽에 준비하신 뜨거운 떡 한덩이 씩을 받아 요기를 하고, 오전 11시경 부여에 도착했다. 먼저, 고도보존 지역협의회 사무실에 미리 준비된 환등기로 ‘신 부여팔경’에 관한 개요와 설정이유, 비교되는 사진 등의 요점을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30분간 살펴 보았다.
이어 제1경인 ‘금성산 조망’을 보기 위해 금성산(해발121m)에 올랐다. 객관적으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부여가 워낙 낮은 구릉지들이라 부여 주변의 경관을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맑게 개인 화창한 날씨 덕에 청주에서 떠내려 오다가 호암리의 호녀가 소리를 질러 멈추게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고, 효종임금과 백강 이경여 선생의 북벌계획 관련 마음을 우암 송시열의 필체로 ‘지통재심 일보도원’(지극한 통증이 가슴에 있으나, 날은 저물고 갈길(북벌)은 멀다)이라 씌여져 있는 ‘대재각’(정향 조병호 글씨)을 품고 있는 부산(浮山)과, 전라북도 장수읍 수분재에서 시작하는 401km의 금강 줄기 중에서 낙화암 맞은편 천정대부터 반조원리까지 16km를 지칭하는 백마강, 이 강물이 사비성을 반달처럼 휘감아 돌아 일명 반월성이라고 칭해지는 곳, 등 부여의 전체적인 조망을 하였다. 조왕사로 내려 와 ‘대웅전’이라는 글씨를 보았는데 이는 군수리가 고향이신 윤월하 종정스님이 쓰신 것이다. 모시고 있는 비로자나불과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인 듯 싶다. 그러나 이 불상은 조형미가 빼어나 불심을 저절로 우러나오게 하는 고려시대의 비로자나불상으로, 앞면이 그라인더로 갈아져서 흰색으로 보이게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으나, 좌대의 조형 등 빼어난 작품임에는 이론이 없다.
이어 12시 30분에 구드래 돌쌈밥집에서 풍성한 채소와 주인장께서 김태정 박사님이 오셨다고 덤으로 내어 놓은 막걸리를 곁들여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이어 구드래 조각공원에서 부여군 홍산 출신 서예가인 원곡 김기승 선생이 쓰신 미마지 기념비를 보았다.
제2경인 ‘부소산 산책’을 보기 위해, 육지와 다른 이국적인 느낌으로 시작하는 방편으로 배를 타기 위해 구드래 선착장으로 갔다. 황포돛배에 올라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낙화암(삼국유사에 기록된 타사암)과 조룡대의 전설을 말하며, 고려시대의 가정 이곡 선생과 조선시대의 다산 정약용 선생이 동시에 주장한 이 전설들의 허구성 등에 대하여도 의견을 공유하였다. 고란사에서 고란초와 약수의 효험 및 ‘고란사’ 현판글씨와 사자루의 강쪽에 걸려 있는 ‘백마장강’이라는 글씨가 모두 해강 김규진 선생님이 1921년에 쓰신 것이라는 얘기 등을 나누었다. 녹음이 우거진 부소산과 백마강, 그리고 바람을 백마강관련 노랫소리와 함께 배를 타고 잠시 즐겼다.
이어 백제역사재현단지 입구, 천정대의 호암리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백제원’에 들렀다. 이곳은 구드래 돌쌈밥집을 운영하는 최규원 대표가 평생을 수집한 근대사 자료들을 종류별로 모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식물원과 함께 운영을 하고 있는데, 해설하시는 이건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2시간 정도의 견학코스가 된다는 곳이다.
이어 제6경인 ‘장하리 삼층석탑’으로 향했다. 이곳은 남쪽이 막히고 서쪽이 트여서 다른 절터와 다르게 위치한 곳으로, 고려시대 한산사가 있던 곳에 3층 석탑이 남아 있다. 이는 백제시대의 백제탑(정림사지 5층석탑)의 계통을 잇는 탑으로서 각층 탑신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어 일명 ‘모딜리아니탑’으로 불릴 만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한산면 단상리의 한산 소곡주 집에 들러 멸치와 오이를 곁들여 소곡주를 한 잔씩 시음하면서 소곡주의 깊은 맛과 의미를 막걸리타령(임별걸 작시,이병욱 작곡)에 실어 함께 합창하며 장시 흥을 돋우기도 하였다. 곧이어 6시 30분쯤 백제관에 도착하였다.
다들 분주히 짐 정리를 하고, 안마당에서는 연주회 준비를 하고, 바깥 잔디에서는 저녁 식사 및 간단한 음식(왕포리회관 식당에 부탁하여) 준비를 하였다. 부여신문 황규산 대표는 축하 꽃다발 2개를, 부여문화원 김인권 사무국장과 고도문화사업소 이종관 소장님은 구기자주를, 초등학교 동창들은 복분자 한 박스를, 중학교 동창인 광열이는 직접 키운 방울과 완숙토마토 3박스를, 김근태 국회의원의 후원회장과 김나영 어울사랑 총무님이 수박을 각자3통씩을 사오시는 등 풍성한 식탁이 준비 되었다.
이어 7시 조금 넘어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이병욱과 어울림 한마당>이 시작 되었다.
이무성 화백님께서 디자인하신 현수막을 무대 배경으로 걸어 놓았다. 또한 왕포리 중정리 등 4개 부락 이장님들이 아침부터 동네 방송을 하여 행사를 알렸고, 부여신문에서도 1면에 알림 기사를 내서 120여분이 모인 가운데 200년 된 한옥과 어우러진 음악의 선율이 이어졌고, 모닝글로리 창업자이신 황귀선 시인님이 보훈의 달을 맞아 모순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열정적으로 읊으셔서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케 했다. 주민들은 함께 장단에 맞춰 손뼉도 치고 어깨도 들썩 거리며 완전히 하나로 어우러지는 기쁨을 맛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한산소곡주와 함께 이곳 저곳에서 정다운 이야기와 함께 스탠딩파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다음 날,새벽 5시, 창이 밝아지며 새가 울기 시작하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파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한 두 분씩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산책을 하고, 뒷동산에 올라 죽순도 따고, 중학교 동창으로 토마토 농사를 짓는 이광열(당리 이장)이가 보내준 완숙토마토(가지에서 완전히 익어 맛이 깊음)로 아침 속을 달래기도 했다.
짐을 버스에 실은 후, 걸어서 왕포리 회관식당으로 가는 중에 김태정 박사님으로부터 원추리 꽃이 매일 한개씩 피고 진다는 말씀과 새순을 나물로 해 먹으면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말씀 ,그리고 꽃에서 암술과 수술을 제거하고 먹으면 달착지근한 맛이 나고 강장에 유익하다는 말씀을 듣고 실행해 보기도 했다. 소고기 무국에 소곡주 해장으로 아침을 먹으며, 전날 백제관에서의 감동과 여운이 되살아나 이병욱 교수님의 사철가와 함께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의 우리음악 한마당이 이어졌다. 또한, 입맛이 까다로운신 김태정 박사님 말씀이 이 식당의 담백하고 소박한 맛이 전형적인 충청도 음식이라고 향후에 들러 식사를 하시겠다고 하시고, 대구에서 알알이 청국장 공장을 운영하고 붓포 인간문화재 전수자이신 진선화 선생님께서도 음식 맛있게 하는 집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어 제4경인 ‘궁남지 연꽃’을 보러 가는 길에 냇갈항 길을 걸으며 김태정 박사님으로부터 벼과 식물인 줄, 노랑어리연이 연과가 아니라는 것, 흰색과 보라색의 작은 개불알꽃 이름의 유래, 밭에 망초가 나면 모든 농사가 다 망친다고해서 망초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얘기 등을 들으며 궁남지에 도착했다. 궁남지 연밭을 지나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전설을 품고 있는 궁남지 가운데에 있는 ‘포룡정(현판글씨 김종필)’에서 남은혜 명창의 소리와 함께 흥겨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궁남지(宮南池)는 백제시대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으로 인공적으로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가운데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상징하게 한 최초의 인공연못으로 일본 정원의 시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주변에 연밭을 조성했는데, 그 중에 2000년간 잠들었다 피어난 ‘오오가하스’ 연도 심겨져 있다.
이어 제5경인 ‘무량사의 김시습 부도’에 들러 5세 신동이 호가 된 이야기와 입적하고 3년 후 시신이 썩지 않고 그대로 있어 성불 했다고 하여 화장하여 턱뼈 모양의 사리를 모신 이야기 등을 공유하고, 옆에 열려있는 뽀로수를 맛있게 따먹었다. 옆에 있는 무량사에는 10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있어서 사찰을 30분 안에 돌아보는 것으로 하고, 외산 면소재지의 ‘외산맛집’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소머리국밥과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산에서 봄에 딴 고사리나물과 표고올방개묵을 곁들여 먹었다.
이이 제8경인 ‘주암리 은행나무’에 들러 해병대 출신으로 은행나무 아래서 태어난 85세의 이수복 어르신으로부터 은행나무에 얽힌 구수한 전설을 듣고, 김태정 박사님도 이 나무를 처음 보셨고 백제 성왕 때 심었다는 전설만큼 충분히 오래된 나무일 것이라는 데에 힘을 실어 주셨다.
이어 제3경인 ‘백제탑(정림사지 5층석탑)’에 들러 나당 연합군의 장수인 소정방이가 백제의 사리탑에 자신의 공적을 새겨 넣어, 파괴되는 것으로부터 살아남아,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후대에 증거하는 모습을 보았다.
6월 중순인데 날씨는 7월의 삼복 더위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러나 이를 더욱 뜨겁게 달군 참석하신 분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각자가 다른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참가한 1박2일의 ‘신 부여팔경을 찾아서...’,
각자 고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체험들이, 잠시 하나의 용광로 속에서 하나의 관심사로 녹아 용융될 수 있었다는 것, 이 체험 자체가 아름답고 곱씹어볼 수 있는 각자의 추억 속 한 페이지를 장식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2012년 6월20일 윤재환(尹財煥) 이메일: jaewhanyoo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