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태풍이 올라오는 모양입니다. 공기가 갑자기 눅눅해지고 더워졌습니다. 바람이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뀜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기분도 달라집니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우리는 참 민감합니다. 사람이 약하디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또 사람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갈망하기에 사람은 강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즈음 주일에 듣는 복음은 요한복음 6장의 빵에 관한 긴 담화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유다인도 참 당혹스러웠을 것이고 이 복음을 듣는 우리도 역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 하니 말입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말할 수 없는 심연 속에 담긴 신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인성을 가장 적나라한 말씀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이 바로 살이고 피라고 하십니다. 가장 영적인 복음이 가장 육적인 하느님 아드님의 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주실 빵이 바로 당신의 살이라 하시고 이 살을 먹고 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십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피를 먹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하였습니다. 피는 바로 그 생물의 생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 전통을 유지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이방인들에게 유다인의 율법을 강요할 것인지, 그 율법이 구원의 조건인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였습니다. 이 회의의 결론 중의 하나가 바로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를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피는 그 짐승의 생명이었으니까요. 그런 이해를 전제하고 요한복음을 읽으면 예수님 당신의 피를 마셔라 하심은 당신의 생명을 받아라 하심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심으로써 당신이 가지신 생명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 사랑의 방식이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방식입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체를 영함은 참으로 존귀한 일이고 거룩한 일입니다. 허투루 영성체를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성체를 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고 또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룩한 일이 우리에게 너무 편한 일상이어서 무심코 행하는 일은 없는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미사에 빠지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성당에 오면서 무슨 봉사를 하기 위해 오는 것도 좋지만 그런 봉사보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미사에는 참례하지 않고 어떠한 모임에 참석한다든지 어떤 봉사직무를 수행하는 일은 우리 본질을 외면하고 곁다리 일을 마치 본질인 양 수행하는 참 안 좋은 모습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일은 우리가 성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성당에서 더 우선되는 일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미사와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환기하면 좋겠습니다. 미사의 주인공은 주례사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막바지 무더위도 잘 이겨내면 이제 곧 시원한 가을이 올테지요. 다들 건강 잘 챙기십시오.
첫댓글 드디어 훈화 다우신 글이었습니다.
가슴에 와닿는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천상의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항상 그래왔지만 그 의미를 다시 새기며,
오늘 미사 참례 후 레지오입니다.
신부님 훈화말씀을 보려고 레지오때마다 폰으로 찍었는데 여기서 보니 안 찍어도 되고 너무 좋습니다 벌써 아침저녁 공기가 다릅니다